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9
제58화
콰직-! 콰지직….
멀쩡한 하늘과 디디고 있던 땅에 쩍쩍 금이 가는 건 강설도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애초에 타인의 기억을 엿본다는 경험 자체가 희소한 것이었지만.
“어째서… 어째서!”
잿빛의 기사는 고함을 지르며 분노했다.
홀로 생일을 맞이한 아이의 케이크 위 다 타버린 초처럼, 회색으로 물든 그녀는 슬픔과 후회를 쏟아냈다.
“크으윽….”
강설은 제 몸 하나 가누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카루나를 붙잡았다.
오히려 카루나가 강설을 붙잡아야 맞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의 카루나는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난… 난, 가지 못했어.”
잿빛의 기사가 죽는 그 순간까지 푸른 눈의 기사를 기다렸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일까.
카루나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러다 살아나가지 못하겠어!’
낯선 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이 정신세계가 아무 관련 없는 이의 공간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중요한 전력인 카루나와 연관이 깊은 이의 정신이었다.
카루나가 제정신을 차리기까지, 강설이 일행의 고삐를 잡아야 했다.
“쟈마드!”
“쇳덩이가 말썽이군! 알았다!”
후우웅…
휘리릭-!
거대한 덩치의 쟈마드가 소환되어 카루나와 강설을 낚아채 어깨에 들쳐멨다.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강설이 시야를 확장했다.
[통찰안이 발동합니다.]
[이질적인 마력의 움직임을 발견합니다.]
때마침 발동하는 통찰안.
황금빛 눈동자가 붕괴하는 세계에서 거친 마력의 기류를 잡아냈다.
배수로처럼 마력이 어느 한 곳으로 계속해서 빨려들고 있었다.
‘수정의 힘이 다해가는 거야!’
만일, 수정의 힘이 바닥날 때까지 이곳에 남아있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몰랐다.
“나가야 해, 저기! 저기다, 쟈마드!”
“알았다! 달린다, 꽉 잡아!”
쟈마드는 카루나는 몰라도 강설을 세게 움켜쥘 순 없었다. 그랬다가 부서지기라도 했다간 큰일이었으니까.
강설은 쟈마드의 어깨를 꽉 부여잡고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촤아아아아-!
“빌어먹을, 물이다!”
갑자기, 홍수라도 난 것처럼 난데없이 파도가 밀려들었다. 파도는 계속해서 일행을 밀어냈다.
첨벙-!
“크으윽….”
“푸허어! 흐읍….”
쟈마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강설과 카루나를 끌어안고 잠영했다.
그 때문인지, 거센 물살도 한결 덜했고 그들은 점차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제발 조금만 더….’
기나긴 탈출의 끝이 보였다.
엄청난 경험을 했기에, 시간이 빠르게 흐른 건지 느리게 흐른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푸하아!”
“켁… 케엑….”
촤아악-!
마침내, 강설 일행은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수정구가 빗물에 잠겼던 거였군, 제기랄.”
“콜록… 콜록….”
쟈마드가 카렌의 정신세계가 물에 잠겼던 이유를 알아냈다.
콰르릉-!
쏴아아아…
현실은 지금, 비가 오고 있었다.
‘정신세계라 전이가 발동하지 않은 건가?’
원래라면 빛무리에 휩싸여 안전하게 이동해야 정상이건만.
강설은 어렵사리 탈출해야만 했던 방금의 상황이 아찔하게 느껴졌다.
‘후… 그래도 살아 돌아왔으니 다행이지.’
결과론적으로만 보자면, 첫 번째 모험을 안전하게 끝마쳤으니 다행이었다.
[다음 모험을 시작합니다.]
[열 번째 모험이 시작됩니다.]
[모험 10. 다 타버린 자]
모험 10. ‘다 타버린 자’
당신은 대삼림에서 부활이 예정된 시체의 정신세계를 확인했습니다.
시체의 정체는 놀랍게도 아주 오래전, 대륙에 그 이름을 떨쳤던 몬트라 제국의 수호자 중 한 명인 카렌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체의 정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미 당신의 소환수인 카루나 또한 몬트라의 수호자 중 한 명으로 밝혀졌습니다.
다행히 당신은 위험한 정신세계를 기지를 활용해 빠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차오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런 문제는 사소하게 여겨질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정신적 속박이 풀린 카렌이 곧 깨어날 겁니다.
지금의 카렌은, 본능만 남아있는 상태지만 매우 강력할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만일 그녀가 이성을 되찾는 날에는 감히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선택해야 합니다.
싸울 건지, 물러날 건지를.
목표 : 카렌 제거.
목표 달성 실패 시 후유증 ‘패잔병’ 상태에 빠집니다. 또한 당신의 명예와 명성이 추락합니다.
이에 더해 이전 모험에서 축적된 보상을 얻지 못합니다.
현재 남은 시간 「23 : 59」
강설이 서둘러 카렌을 뒤돌아봤을 때, 통찰안이 발동했다.
[카렌 : 홍련(紅蓮)의 기사]
등급 : 영웅
추정 레벨 : 35~40
고대의 제국 몬트라, 그곳의 수호자 중 한 명.
폭발하는 힘을 다루며, 단시간 내에 입지전적인 위치까지 올라간 인물.
단일 개체로서도 훌륭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녀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할 때는 그녀의 쌍둥이 형제인 카루나와 함께할 때다.
기본 능력 : [몬트라 검술 5], [불태우기 3], [불의 꽃 4], [화염의 손아귀 4], [상급 체술 3], [막판 뒤집기 2], [홍련참(紅蓮斬) 1], [화상 저항 3], [긍지 2], [기사도 1], [파쇄 1], [일당백 2], [정신조작 저항 4]
특수 능력 : [이어진 영혼 5], [균형 5]
‘후퇴한다.’
강설은 모험 설명에서 언급된 투쟁과 도주 중 선택하라는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 미친; 40렙? 40이라고?
– 35렙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 그 말이 더 얄미워 시발!! ㅋㅋㅋㅋ
– 현재 확인된 최고렙 ㅋㅋ루삥뽕
– 아니 장난치냐고 ㅋㅋㅋ 10렙도 안 된 모험가 앞에 40렙이 등장한다고?
– 어이… 이거 깰 수 있는 거냐고?
시청자들이 강설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레벨 차이가 심각해.’
일반적으로 단독 모험, 그리고 파티 모험의 보스는 희귀 등급이었다.
카루나와 쟈마드는 모험의 특성상 이례적으로 영웅 등급이었던 것이고.
이 때문에 강설은 자신이 있었다.
초반부에 흔치 않은 영웅 등급의 소환수가 둘이나 있었고, 이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는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영웅 등급의 소환수가 둘 있더라도 레벨 차이가 이만큼 나면 무리야.’
아마도, 카루나와 쟈마드가 계속해서 성장하여 완성된다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저렇게까지 레벨이 올라갔다는 것부터가 이미 성공이라 봐도 좋았지만.
“제길….”
강설은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한탄했다.
이번 모험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쟈마드가 그를 불렀다.
“이봐.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빨리 결정해야 할 것 같다.”
“뭐?”
“저길 봐라.”
드드드드드드…
쟈마드가 가리킨 방향은 카렌이 있는 말뚝이 있는 곳이었고, 당연하게도 그녀는 쇠사슬과 주박으로 칭칭 감겨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쇠사슬이 하나씩 깨져나가며 거대한 진동이 함께 찾아왔다.
‘깨어나려는 거야!’
막강한 사령체들은 부활할 때 그만큼 많은 생명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활 의식의 장소로 대삼림이 선택된 거고.
지금, 카렌의 말뚝이 박힌 곳으로 대삼림의 생명력이 모여들고 있었다.
츠즈즈즈…
주변 수풀이 새카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도망친다!”
강설은 카루나와 쟈마드를 재빨리 그림자 공간으로 회수한 다음, 오른쪽 발로 왼쪽 발의 뒤꿈치를 걷어찼다. 그리즈의 비밀 연구소에서 추가 보상으로 얻었던 구사일생의 장화를 사용하기 위해.
팟-!
펑-!
[위기 탈출이 발동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이동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강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저 생명력 흡수에 휩쓸렸다간 미라가 될지 아니면 먼지가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빨리! 더 빨리!’
다다다다…
과열된 장화의 뒤꿈치에서 계속해서 불꽃이 발생했다. 불꽃의 길을 만들며 강설이 카렌에게서 꽤 벗어났다고 생각한 그때,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삐이이이이이-
마치 폭격이라도 당한 듯 귀가 먹먹해졌다.
강설은 충격파에 고꾸라져 넘어졌다.
“크아악!”
워낙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으니 강설이 받은 타격도 없진 않았다.
‘온몸이 아프네. 일단, 벗어난 건가?’
어마어마한 파동의 중심지를 뒤돌아본 강설은 눈을 깜빡였다. 도저히 믿지 못할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푸스스…
스스스…
그가 지나온 곳의 나무들이 전부 말라 죽어 있었다. 사태의 진원지에서 꽤 벗어난 것을 생각해 보면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파장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면….’
대삼림의 나무들이 떼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물론, 대삼림이 워낙 넓고 이 정도 상처야 흠도 아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휘리릭-!
강설은 혹시 모르니 다시 카루나와 쟈마드를 소환했다.
카루나는 정신적인 공황에서 약간은 회복한 듯한 기색을 보였다. 강설은 그가 대답할 기력이 있는 것 같아 질문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카렌은 제 쌍둥이 누이입니다.”
“몬트라는 또 뭐고?”
“모르겠습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 시간적인 괴리감이….”
쟈마드가 카루나의 행태를 꼬집었다.
“쇳덩이, 고장 난 거 아니었나?”
“말을 삼가십시오.”
“흥, 어버버하면서 네 주인의 골칫덩이가 된 게 누구였지?”
“…죄송합니다. 주인님.”
강설은 카루나가 제정신을 차린 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사소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다.
‘페널티를 감수하고 모험을 포기해야 하나?’
모험을 포기할 시 패잔병 페널티와 더불어 명성과 명예가 추락, 거기다 보상까지 획득 불가능이다.
‘하나 같이 치명적인 페널티뿐이야.’
그것이 목숨보다 중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만, 강설은 무려 최강자의 자리를 노리는 플레이어였다.
모험의 공백과 더불어 지금까지 쌓은 것들을 잃는 건 강설의 목표와는 전혀 상반되는 일이었다.
강설이 고민을 거듭하는 그때, 카루나가 운을 떼었다.
“주인님.”
“카루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강설은 그가 말한 부탁이라는 게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카렌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으로선 이길 수 없어.”
“이기기 위해 가려는 게 아닙니다. 구하기 위해 가는 거지.”
맞는 소리다.
강설은 입술을 깨물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곰곰이 자신이 한 말을 되뇌었다.
‘지금으로선… 이길 수가… 지금… 지금이라고?’
강설이 지금껏 돌파한 모험이 몇 개인데, 그동안 말도 안 되는 난이도를 체험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험들을 돌파하며 그가 정립한 이론이 있었다.
‘지금 깰 수 없는 모험은 애초에 배정될 확률이 거의 없어!’
그래서 모험의 초반부, 중반부, 후반부가 각기 나뉘는 것이다.
시스템은 마치 운명이 정해진 것처럼, 플레이어가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을 던져준다.
그리고 지금 그 이론을 여기에 적용해 보자면.
‘오히려 지금이기에 이 모험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거야. 생각해라, 생각해! 강설!’
거의 30에 가까운 레벨 차이.
가볍게 날린 주먹 한 번에 절명할 수도 있는 끔찍한 격차. 이 격차를 극복할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찾아야 해, 뭐가 있지? 내가 지금 당장 활용할 만한 수단이 뭐가….’
강설은 퍼뜩, 지금이기에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떠올랐다. 아니, 오히려 딱 지금이어야만 하는 수단.
‘사자의 진리교!’
처음 생각했을 땐, 그들의 악행을 막아야만 하는 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사자의 진리교를 이 모험의 적이라고 생각했고.
‘아니, 적이 맞긴 하지. 하지만….’
그런 말이 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다.
‘그들을 이용해야 해!’
문제는 어떻게 이용하냐는 것이다.
다른 이라면 여기서 또 한참의 시간을 허비하면서 고민했겠지만, 강설은 달랐다.
이런 건,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