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25)
화록청의 요정-실피아는 인간에게 말했다.
죽은 이의 뼈와 살을 내게 바쳐라.
내가 그를 먹고, 이 땅에 마르지 않는 생명을 하사하마.
제르베르 황국, 아스트레앙 공작령은 푸른 녹음과 넓은 포장길이 조화를 이루는 무역의 요충지다.
황국의 영웅이자 검성, 제랄드 아스트레앙 공작이 거느리고 있는 영역이며.
화록청의 요정-실피아의 축복이 내려앉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하는 계절 앞에선 그 명성도 무색한 법이었다. 아스트레앙 공작령 주위를 메운 숲은 하얀 눈에 뒤덮인 채 겨울을 견디고 있었으니.
담녹색 양갈래 머리칼의 귀족 소녀, 카야 아스트레앙이 숲속 눈밭을 거닐었다.
살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잔잔한 호숫가. 그 한가운데 있는 아주 작은 섬 위로 나이를 지그시 먹은 거대수 하나가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었다.
사람들이 이르길, ‘생명의 언약’이라고 불리는 나무였다. 인간과 화록청의 요정이 언약을 맺으며 씨앗을 뿌렸고, 그 씨앗이 자라나 지금의 거대수가 된 것이었다.
그 나무만큼은 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푸른 잎을 잃지 않았다. 식물 마력으로 뒤덮인 까닭이다. ‘화봉국-호란’에 영영 꺼지지 않는 염원의 불꽃이 있다면, 아스트레앙 공작령에는 영영 푸른색을 잃지 않는 그 나무가 상징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카야가 다가오자, 생명의 언약 주위로 자연의 식물 마나가 공명하고.
반딧불이 형태의 연녹빛 자연 마나가 제 모습을 드러내 허공에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했다.
“실피아!”
카야는 소중한 친구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 외침은 숲속에 무력하게 흩어졌다.
“실피아, 나 왔어! 카야!”
고요.
여름방학에도, 겨울방학에도. 화록청의 요정-실피아는 카야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상대가 요정이라고 해도 걱정되고 만다.
카야는 몸에 연녹빛 바람을 휘감고서 붕 떠올라 호수를 가로지르고, 생명의 언약 앞에 도달했다.
그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서 식물 마력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마력을 느끼고 화록청의 요정이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실피아는 도저히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허탕이네….”
카야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 나무에서 등을 뗐다.
다시 연녹빛 바람을 몸에 휘감고서 호수를 가로지르고, 지면에 착지해 숲을 빠져 나가려던 때.
“……!”
별안간 카야는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올라오는 감각을 느꼈다. 이제는 익숙하리만치 불길한 마력.
아스트레앙 공작령. 여기서 꽤 멀리 떨어진 위치.
탁 트인 능선 위. 삽시간에 검은 구름이 생겨나더니 드넓게 퍼져나가고, 한 곳을 구심점으로 소용돌이쳤다.
끼리리리릭, 거리는 오싹한 울음소리가 진동했다. 소용돌이치는 구름 아래, 어둠 마력이 벽돌 쌓듯 쉴 새 없이 포개어지기 시작했다.
그리 무서운 속도의 건축이 끝나자, 하늘에 맞닿을 정도로 거대하고도 길쭉한 무언가가 어둠 마력을 흩뿌리며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냈다.
새까만, 마치 기둥의 형상. 혹은 탑의 형상.
처음엔 건축물인가 싶었으나, 그것이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족, 악마의 기둥. 그것이 형상을 갖추고, 지상에 검은 뿌리를 내리며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카야의 잠시 두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 마족이란 존재는 이미 여러 번 마주쳤으니까.
하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몹시 위험해 보인다. 카야가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수차례 봐 왔던 마족 사이에서도 저 검은 탑 마족의 힘은 강한 편에 속할 것이었다.
부우우웅───!!
카야는 몸에 연녹빛 바람 마법을 싣고 빠른 속도로 숲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퍼져나가는 파공음. 카야가 지나간 자리엔 뒤늦게 거센 바람이 뒤따라 나무를 뒤흔들었다.
[마족이네. 꽤 위험해 보인다.]옆에서 악식의 인격이 속삭였다. 카야와 똑같은 인상착의. 오로지 카야에게만 보이는 또 다른 그녀였다.
붉은 눈동자를 서늘하게 치켜뜬 채 악마의 기둥을 노려보는 악식. 그 인격은 카야가 얼마나 속도를 높이든 그녀 옆을 따라붙었다.
[죽기 싫으면 혼자 뛰어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마라.]“알고 있어.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악식의 영향으로 카야는 마족의 힘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아마도 저 검은 탑 형태의 마족은 일대를 제 영역으로 가꾸리라.
분명 피해자가 나올 것이었다.
하필 이때 가장 믿을 만한 전력인 아버지이자 검성, 제랄드 아스트레앙은 성녀의 축복을 받기 위해 어머니 히스토리아와 함께 멀리 떠나있는 상황. 한 해의 말미에 이를 때마다 치르는 의식이었다.
거기다 아스트레앙 가문에서 기사단을 소집해 봤자 늦겠고.
황실에서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 봤자 사흘, 기동력이 뛰어난 정예 멤버로 별동대를 꾸려봤자 이틀은 족히 소요될 터.
악식은 팔짱을 낀 채 한숨을 푹 내뱉었다.
“파치!”
[퍄아!]카야는 어깨에 바람 속성 날다람쥐 사역마, 파치를 소환했다.
“당장 저택에 가서 이거 전해 줘! 최대한 빨리!”
[예써!]카야는 품 안에서 붉은 종잇장을 꺼내 파치에게 건넸다. 아스트레앙 공작 가문의 상징인 검과 호랑이 형상을 본 따 만든 문양이 그 종잇장에 새겨져 있었다.
아스트레앙 공작 가문에 보내는 신호. 붉은 종잇장은 위험도 최고 수준을 가리키며, 그 뜻은 ‘전력으로 위험 요소를 배제하라’였다. 그 위험 요소가 무엇인지는 굳이 명시할 필요도 없으리라.
파치는 손날을 눈썹 옆에 갖다 대며 절도 있게 경례한 뒤, 카야의 어깨에서 뛰어내려 옆구리에 늘어진 비막을 활짝 펼쳤다.
파치가 떨어지자, 카야는 연료를 콸콸 들이붓듯 마력을 쏟아부어 빠른 속도로 공기를 가로질렀다. 연녹빛 마력이 그녀의 뒤를 꼬리처럼 뒤따랐다.
……
“칫.”
“이안, 괜찮아?”
“괜찮아…!”
예상 밖의 위기였다.
이안 페어리테일은 겨울방학에도 강해지기 위해, 아스트레앙 공작령에 찾아와 길드 의뢰를 전전하고 있었다.
검은 토끼 귀 리본을 단 하얀 단발 머리 소녀, 에이미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안을 따라갔고.
그들은 아스트레앙 공작령에서 만난 두 명의 모험가와 함께 마물 사냥 따위의 의뢰를 해치우고 있었다.
이때 하필 저리도 위험해 보이는 마족이 튀어나오다니….
끼리리릭, 거리며 하늘을 향해 쭉 뻗은 검은 탑이 어둠 마력을 뿜어댄다. 붉은 자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눈은 이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외벽이 꿀렁이는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마족.
그 주위, 상공에선 커다랗고도 까무잡잡한 방울이 대량으로 떠다니고 있었다. 어둠 마력으로 이루어진 감옥이었다.
저 거대한 마족은 일대에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방울에 가두어 그들의 마력을 흡수하는 듯하다고, 이안은 생각했다.
어둠 방울에 먹혔던 이안은 빛 속성 검격으로 에이미와 함께 탈출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 것이었다.
악마의 기둥을 상대로 전투 태세를 취한 그들. 하늘까지 뻗은 마족에 비해 인간인 그들은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러나 이안은 위축되지 않았다. 위축될 수 없었다.
저 높은 곳에 있는 어둠 마력으로 이루어진 방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담겨 있다. 함께한 건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인연을 맺은 모험가 동료들도, 주변에 있던 마을 주민들도.
“난, 지지 않아…!”
반드시 구해 내리라. 이안은 각오를 다지며 양손에 쥔 검을 꽉 쥐었다.
─────[끼리리리리리릭─────!!!]
그때, 기분 나쁜 울음소리가 대기를 울리고.
검은 탑 마족을 타고 세 개의 어둠 고리가 피어올랐다.
파아아아앗───!!
“끄윽!”
“꺄악!”
세 개의 어둠 고리에서 새까만 어둠 마력이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반사적으로 가장 선두에 있던 이안은 광원을 생성해냈고.
그 광원은 빛 속성 방어막을 형성시켜 이안 자신과 에이미를 지켜내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폭풍. 지면이 우르르 깨져나간다. 이안의 빛 속성 방어막은 어둠 마력이 전해주는 충격을 고스란히 들이받았다.
“끄아아아아!!”
이안은 기합을 내질렀다. 힘겨루기. 그러나 승패는 불 보듯 뻔했다.
저 어마어마한 마족을 상대로 공격을 방어해내겠다는 건 판단을 그르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광익의 참격] 같은 빛 속성 공격을 날려 어둠 마력을 갈라내고 악마의 기둥을 짧게나마 무력화시키는 편이 효과적이었으리라.그러나 이안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적의 공격을 예측하고 파훼한다는 건 아무리 그라도 어려운 일이었으니.
쨍그랑──!
결국, 빛 속성 방어막은 유리창 깨지듯 깨져 버렸고.
선두에 있던 이안은 어둠 폭풍의 충격을 고스란히 들이받았다.
연이어 그 여파로 이안과 에이미는 지면에서 튕겨 나가 무력하게 허공을 방황해야 했다.
“이안!!”
허공에서 정신을 바짝 차린 에이미는 이안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싸늘한 어둠 마력이 공기를 훑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황폐하게 변해 버린 능선 위. 엉망진창으로 부서지고, 검게 물들어 버린 땅. 어둠 마력이 지면에서부터 매캐한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온갖 식물, 날아다니는 새 무리, 주위를 돌아다니던 동물들은 모두 생명력이 깎여나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악마의 기둥. 이곳은 이제 어둠 마력으로 뒤덮인 죽음의 땅이 된 것이었다.
쿠웅.
서로를 부둥켜안은 이안과 에이미의 몸이 지면에 떨어졌다. 에이미는 미동조차 없는 이안을 바라보며 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이안!!”
이안은 기절했다.
“기절할 때가 아니야! 빨리 일어나아!!”
에이미는 이안을 껴안고 상체를 일으키더니, 울먹이면서 그의 어깨를 사납게 흔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흔들어도 이안은 깊은 잠에 빠진 사람처럼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큰일이었다.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 이안 없이… 자기 혼자서 저런 마족을 상대로 어떻게 살아남으란 말인가.
“어…?”
곧, 에이미는 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감각을 느꼈다.
생명력이 빨리고 있는 감각이었다. 아무래도 이 땅은 죽음의 땅이 돼버린 모양이었다.
에이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렇게 큰 마족이 튀어나왔고, 여긴 아스트레앙 공작령이다. 필시 아스트레앙 가문의 발 빠른 지원이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그들이 오기까지 버틸 수는 없을 듯했다.
“…넌 진짜 손 많이 가.”
그렇다고 해도, 에이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에이미는 이안이 쥐고 있던 검을 가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기절해 버린 이안을 등지고 검은 탑 마족을 마주 보고서, 에이미는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마족을 향해 비장하게 검을 내밀었다.
무척이나 초라한 체급 차이.
공포심을 감출 수 없었다. 검을 쥔 양손이 파들파들 떨린다. 생존본능이 당장에라도 도망치라고 아우성치지만, 이미 늦었다. 여기서 도망치기 전에 드넓게 펼쳐진 죽음의 땅에서 생명력이 다하는 최후밖에 맞이할 수 없을 테니. 애당초 저 마족이 이안과 에이미를 놓아줄 리 없었다.
저 검은 탑 마족에게 협상을 시도한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은 집어 던지자.
남은 선택지는 싸우는 것뿐.
에이미의 불꽃이 검날을 타고 흐르며 그녀의 눈동자와 피부를 비추었다.
동시에, 그녀는 머리 위로 연붉은빛 화염 속성 마법진을 전개했다.
“내가 너 많이 좋아하는 거 알고는 있어? 멍청아.”
그리고, 에이미는 이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그가 얄밉다는 듯 삐친 얼굴로 혀를 배 내밀었다.
카라라라락───!
더 이상 말할 수 있는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마족은 뒤편에서 웅대한 마법진을 전개하더니, 새까만 어둠의 칼날을 우르르 퍼부었다.
에이미는 헛숨을 집어삼켰다. 검을 어설프게 휘둘러 불 속성 검기를 날리고, 마법진에서 [화염구]를 발사해 대항해본다.
그러나 현실은 매정했다.
불 속성 마법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저 많은 어둠 칼날 중 단 하나조차도 그녀는 막아 낼 수 없었다.
에이미는 죽음을 직감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해 보지도 못하고, 저 바보 같은 녀석이랑 제대로 된 사랑도 나눠보지 못하고, 이렇게, 이렇게, 모든 게 허무하게 끝나 버리는구나.
날아드는 대규모의 어둠 칼날을 바라보며 에이미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때.
─────「바포메트의 노래 (바람 + 피 속성)」
화아아아아아아─────!!!
마력을 머금은 맹렬한 바람이 셀 수 없는 참격처럼 들이닥쳐 어둠 칼날과 맞부딪쳤다.
몰아치는 마력의 바람이 에이미와 기절한 이안의 머리칼, 옷자락을 뒤흔들었다. 검날이 격렬히 맞부딪치는 살벌한 패링 소리. 도저히 바람에서 날 법한 소리가 아니었다.
에이미는 고개를 들었다. 연녹빛 바람에 휘감긴 한 소녀가 허공에 멈춰 선 채, 담녹색 양갈래 머리칼을 휘날리고 있었다.
무척 안정적으로 떠 있다. 높은 바람 마법 숙련도.
에이미는 그 여자를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카야 아스트레앙…?”
아스트레앙 공작 가문의 차녀이자 메르헨 아카데미 마법학부 1학년 차석. 카야 아스트레앙. 그녀였다.
카야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저 마족을 본래의 카야가 막는다는 건 불가능했기에 악식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악의 꽃]. 카야의 목을 타고 오른쪽 뺨까지 가시 줄기가 엮인 꽃 모양 문신이 올라와 있었다.피 속성 마력이 그녀의 몸 안에서 끓어오른다.
악식의 카야는 손에 쥔 아르마나의 완드로 악마의 기둥을 가리키며 전투 태세를 취했다.
“후우.”
카야는 심호흡했다. 이미 마족과 마주치는 건 수차례나 겪어 왔기에,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저 검은 탑 마족 앞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길 수는… 없다. 그 정도의 전력 차는 카야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니 아스트레앙 가문의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 최우선. 아스트레앙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이 땅 위에서, 카야는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그것보다, 얘기는 나중에…!”
대화할 시간은 없었다. 수많은 어둠 칼날이 상공에서 공기를 가로질렀고, 심지어는 땅을 가르기까지 하며 카야에게로 뻗어왔다.
카야는 마력을 한껏 끌어올려 아르마나의 완드를 아래쪽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지면에 새빨간 빛깔과 연녹빛을 머금은 마법진이 전개되고, 붉은 살덩이들이 튀어나와 이안과 에이미를 감쌌다.
살덩이는 붉은 나무의 형태가 되어 위로 쭉 뻗어 나갔고, 단단한 붉은 껍질로 감싸졌다. 검은 탑과 대비되는 거대수. 현재 카야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이었다.
죽음의 땅과 저 거대한 마족 앞에서 그들을 지켜낼 방법은 이것뿐.
“잘도, 아스트레앙 땅에서 난리를 피워주는구나. 마족이.”
악식의 카야는 살벌한 어조로 읊조렸다.
재차 어둠 칼날이 떼 지어 연격으로 들이닥치고, 카야는 [바포메트의 노래]로 대항했다.
튕겨 나간 어둠 칼날은 날아다니는 새에 맞닿자 생명력을 빨아들여 죽음을 맞이하게 했고.
붉은 나무에 흠집을 내면 나무는 삽시간에 상처 부위를 회복했다. 회복력으론 최상위 속성인 식물 속성과 피 속성이 결합한 나무인 만큼 그 회복력은 아득히 뛰어난 수준을 자랑했다.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었다. 저 공격을 피한다는 건 맨몸으로 소나기를 피한다는 것과 다를 게 없었기에. 조금의 방심도 금물이었다.
“끄으으…!”
아르마나의 완드를 쥔 카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버티기 힘들었다.
그녀가 만들어 낸 붉은 나무가 거침없이 깎여나갔다. 이러다간 자신의 마력이 먼저 바닥나고 말 터.
그래도 지켜내리라.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꼴을 카야는 견딜 수 없었으니. 특히 마족 따위에게 아스트레앙 땅에 있던 사람들이 죽는 사고라면 더욱.
그러나 전력 차는 명확했다.
저 마족은 마치 즐기기라도 하는 듯, 웃고 있는 눈으로 여유롭게 어둠 칼날을 쏟아붓기만 반복하고 있거늘.
카야는 힘겹게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
수십 번의 공격을 주고 받고서, 카야의 바람 마력 위력이 팍 줄어들었다.
그러나 검은 탑 마족은 여유롭게 어둠 칼날을 쏟아부어 카야를 노려댔다.
저 공격은, 막아 낼 수 없으리라.
그때였다.
무시무시한 마력이 카야의 생존본능을 위협했다.
악마의 기둥 또한 당황했는지, 제 몸에 새겨진 거대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동시에 어둠 칼날들이 일제히 마력의 형태가 되어 그에게 도로 흡수되었다.
마치 본능적으로 조금이라도 전력을 비축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공격을 거둔 듯했다.
악마의 기둥은 카야에게서 눈길을 돌려, 죽음의 땅을 유유히 걸어오고 있는 한 사내를 목도했다.
카야도 그 사내를 쳐다보고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작 님…?”
군청색 후드 로브 차림의 청은발 사내.
고작 그가 나타난 것만으로, 일대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