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26)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1학년을 마친 뒤 겨울방학 동안 나타나는 적들이 있었지.
그중 한 명은 길드에서 만나 가끔 투닥거리는 라이벌 격 인물이라 무시하면 되고.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악마의 기둥이라 불리는 거대한 마족이었다.
악마의 기둥은 옛적부터 아스트레앙 공작령 땅 밑에 어둠 마력의 형태로 잠든 채, 조금씩 힘을 비축해 오고 있던 마족이었다.
이번 겨울방학을 그냥 넘겨 버리면, 악마의 기둥은 완전체 마족으로 강림하여 대규모 재앙을 낳을 터.
하지만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강림의 때가 이르기 전에 놈은 강제로 조기 출현 하게 된다.
그 조건은 단 하나, 이안 페어리테일처럼 신성력을 지닌 자의 접근.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어떤 의뢰를 받으면 악마의 기둥이 나타나는 장소에 이를 수 있었다.
‘늦을 뻔했네.’
내 [천리안]은 이제 가늠조차 되지 않을 만큼 아주 먼 반경까지 살필 수 있었다. 숙련도를 꾸준히 올려온 덕분이었다.
그 힘을 한계까지 사용해 아스트레앙 공작령, 악마의 기둥이 출현하는 장소를 수시로 살펴왔다. 이안이 어떤 의뢰를 먼저 받고, 어떤 의뢰를 나중에 받을지 예상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사암의 시련이 끝나자마자 암갑귀-고르모스에게 다음에 보자는 인사를 하고 시련 장소를 빠져나간 뒤, 또다시 [천리안]을 발동했고.
이안이 이 근방을 지나다니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 많고 많은 타이밍 중 하필….’
내가 시련 치를 때 그러냐.
결국, 나는 곧장 메르헨 아카데미와 육지를 잇는 연륙교를 빠져나왔고.
몰래 빙설룡-힐드를 소환해 구름 위로 부리나케 날아왔다. 물론 부담이 크긴 해도 적당히 타고 날아다닐 수 있는 크기로 소환했다. 본래 크기의 빙설룡을 다루는 건 아직 엄두도 못 내니까.
목적지에 도착하고 다시 [천리안]으로 주변을 살핀 뒤, 누군가에게 내 정체를 들킬 염려는 없겠다고 판단했다. 이 근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악마의 기둥 주위를 둥둥 떠다니는 방울 속에 있을 테니.
[멸악자]가 발동되자 일부러 냉기를 머금은 얼음 마력을 내뿜었다. 카야가 위험해 보였으니, 마족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였다.현재 [멸악자] 상태의 나는 최고 레벨인 200.
몸이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마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이 느껴진다.
“아이작 님…?”
카야는 연녹빛 바람을 휘감은 채 공중에 떠 있었다. 식은땀이 한 방울 삐질 흘러내리는 모습. 나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악마의 기둥이 출현할 때 카야가 가세하는 건 알고 있었다. 여긴 아스트레앙 공작령.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어느 시기에 악마의 기둥이 튀어나오든 그녀가 날아오는 건 필연이었다.
다행히 변수 없이 카야는 잘 도착했고 이안과 에이미를 지켜주었다. 잘 버텨줬어.
원래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카야를 탱커로, 에이미를 서포터로, 이안을 딜러로 한 즉석 파티가 결성되어 악마의 기둥을 상대했었지. 하지만 카야 혼자 버티고 있는 상황을 보면 이안이 기절했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
사암의 시련을 거친 후로, >메르헨의 마법 기사> 시나리오를 되새김질하려니 강한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본래의 시나리오’라는 표현이 맞는 걸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본래의 시나리오를 헤아려 미래를 짐작하는 건 여전히 유효했기에, 일단 의문은 보류해 두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뭐, 명칭도 유지하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죽음의 땅이 내 생명력을 잡아먹으려 든다.
그러나 그 힘은 내게 유효하지 않았다. 내 마력이 지닌 농도가 악마의 기둥을 훨씬 웃돌고 있으니까. 작은 쥐덫으로 커다란 강철을 깨부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카야.”
“네, 네에…!”
“고맙다. 잘 버텨줬어.”
소년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지만 진심이었다.
카야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심리 간파]를 쓰고서 그녀가 감동과 희열, 격한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벗어나.”
나는 마법사 로브의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쓰며 담담하게 말했다.
후드를 쓴 것으로 지금의 내 옷은 인식 저해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나를 봐도 정확한 체형을 구분할 수 없겠지.
카야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붉은 거대수를 마력의 형태로 전환했다.
뒤통수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간단히 [천리안]을 발동하면 새 발의 피 만한 아주 적은 마력만 소모하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뒤쪽을 살필 수 있었다.
붉은 거대수가 빛나는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을 때.
그 틈에서 기절한 이안을 껴안은 채 주저앉아 있던 에이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누…?”
「빙벽 (얼음 속성, ★4)」
드드드득──!
얼음의 벽이 내 등 뒤로 솟아올라 나와 에이미 사이를 가로막았다.
두꺼운 나무 안에 있었으니 나와 카야의 대화 소리는 들리지 않았겠지.
에이미가 나를 제대로 볼 틈도 없이, 카야는 이안과 에이미를 바람 마법으로 들어 올렸다.
“앗, 자, 잠깐! 꺄아아악!!”
이내, 함께 허공을 가로지르며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대뜸 높은 데까지 붕 떠올라 버린 에이미는 표정이 새하얗게 질린 채 비명을 내질렀다. 맞다. 쟤, 고소공포증 있었지.
어쨌든.
이제 이 근방엔 나와 마족, 단둘만이 남겨졌다.
악마의 기둥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카야 일행을 놓치고 싶지 않았겠지. 하지만 나를 경계하느라 저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마족의 상태창을 띄웠다.
[ 혼탁의 바벨 ]Lv : 165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불
위험도 : 최상
심리 : [ 당신에게 강한 위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혼탁의 바벨.
놈이라면 내 새로운 힘을 시험하기 위한 샌드백으로 제격이었다.
지금 나는 이성적인 사고도, 사리분별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막 새벽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기도 했다.
대량의 바위 마력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온 이후부터였지. 서리낫을 얻었을 때와 비슷했다. 아마 내 몸이 새로운 힘에 적응해가느라 그런 것일 터.
감각적으로, 내 몸 속 깊은 곳에 두 개의 수납장이 느껴진다.
한쪽에는 맹렬한 냉기가 휘몰아치고 있고, 그 중심에 서리낫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태산처럼 드높은 돌벽이 굳건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고, 그 중심에 묵직한 대검이 꽂혀 있었다.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다.
바위 마력이 모여 들고, 연갈빛 광채를 비추더니 한 자루의 대검이 내 오른손에 쥐어졌다. 바위 마력이 날을 타고 은은하게 흐르며 검신에 새겨진 단조로운 고대어를 비추었다.
바위 속성 전설 무기, 고르모스의 암철검.
그립감과 무게감이 썩 마음에 들었다. 휘두르는 맛이 있을 듯했다.
나는 암철검을 어깨에 걸쳤다. 내게서 연갈빛 바위 마력과 황옥빛 석설이 뿜어져 나왔다.
───────[끼리리리릭─────!]
악마의 기둥이 포효했다.
놈이 일구어낸 죽음의 땅, 그 외곽에서 새까만 검붉은 마력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하늘까지 뻗어나갔다.
공기가 텁텁해진다. 어마어마한 화염의 벽이 열기를 내뿜으며 이 주변 일대를 잡아먹었다.
잇달아 우우웅, 하고 화염의 벽에 검붉은 마법진이 빼곡히 새겨져 나갔다.
‘바로 1페이즈 마지막 패턴이네.’
당연히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이미 침잠의 오르페를 상대할 때 겪지 않았는가.
내가 내뿜는 마력은 저놈의 것보다 훨씬 월등하다. 필시 생존의 위협을 느꼈을 테니, 전력을 퍼붓지 않으면 죽으리라고 짐작했겠지.
모든 마법진이 나를 겨냥하고.
끼리리릭, 거리는 기이한 울음소리와 함께 모든 마법진이 검붉은 화염으로 일렁이는 대량의 어둠 칼날을 퍼붓기 시작했다.
주위를 제 색으로 칠할 만큼 빈틈 없이.
상공에서 공기를 가르며, 지상에서 땅을 가르며, 수많은 어둠 칼날이 일제히 나를 노려왔다.
파아아앗─────!!
콰가가각─────!!!
어둠 칼날이 내게로 쇄도했다. 지면이 어긋나고, 박살 나고, 베어지며, 주위의 모든 생물들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생명을 모조리 빨아 먹혔다.
노도의 연격. 일부러 당해 보니 느껴진다. 적어도 비슷한 레벨이었으면 뼈도 못 추렸겠네.
“…훌륭하구나.”
화아아악─────!!!
암철검을 부웅 휘두르자 연갈빛 바위 마력이 폭풍처럼 몰아치며 어둠 칼날을 몰아냈고.
내 바위 마력이 진동파처럼 거친 기세로 사방팔방 뻗어나갔다.
악마의 기둥이 가진 거대한 눈이 번뜩였다. 내게 조금의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 모양이었다.
───────「암식 (바위 속성, ★7)」
암철검의 패시브 스킬, [암식]. 내 등 뒤에 바위 마력이 고리의 형태를 이룬다.
암철검을 꺼낸 동안 적용되며, 효과는 방어력이 뛰어난 마력 갑주를 내게 씌워주는 것.
혼탁의 바벨이 쏟아 낸 어둠 칼날 연격도, 내 바위 마력으로 이루어진 갑주를 깨부수지 못하는 이상 내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할 것이었다.
반개한 내 눈에서 눈동자가 신비로운 황옥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고밀도의 바위 마력이 내게 기분 좋은 무게감을 전해주었다.
카앙─!
암철검을 지면에 내리꽂았다. 검신의 끝이 검게 물든 땅을 파고들어 균열을 일으켰다.
여기서 오로지 이 대검이 가진 힘만을 시험해볼 것인가.
‘아니.’
아니다. 고작 그 정도로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느껴진다. 한 단계, 더 높은 경지가 있었다.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얼음과 바위 속성의 최고 경지를 쳐다볼 수 있는 위치에 이르니, 새로운 경지가 흐릿한 실루엣처럼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마력 회로가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흐리멍덩했던 머릿속에 점차 광명이 찾아든다.
차갑고도 무거운 감각.
극한의 마력 운용력이 내 내면에서 무언가를 일깨우려 했고.
암철검의 바위 마력이 그 무언가에 선명한 빛깔을 더해주었다.
원소 마법 단련을 수천 번, 수만 번, 쉴 새 없이 반복하며, 피를 쏟아 내며.
쌓아오고 쌓아 올려, 이제는 숨 쉬듯 또렷이 새겨낸 감각을 [멸악자]의 힘으로 비로소 극한까지 끌어낸다.
그렇게.
얼음과 바위, 두 속성으로 일구어낸 두 갈래 길이 한 지점에서 교차했다.
쿠구구구───.
등 뒤로 바위 마력이 이룬 원형의 고리에 황옥빛 바위 갑주가 덧대어졌다.
그리 수 개의 바위 고리가 내 등 뒤에 떠 있는 채로 고정되었다.
연이어 대량의 바위 마력이 뒤쪽에서 모여 들었다. 온갖 황옥빛 바위 조각들이 허공에 생성되어 둥실둥실 떠다니며─.
“이번엔 내 차례다.”
나는, 쥐고 있던 암철검에 얼음 마력을 쏟아부었다.
화아아아아─────!!
증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냉기. 휘몰아치는 바위 마력과 눈보라. 내 머리칼과 마법사 로브가 사납게 펄럭인다.
암철검에 깃든 막대한 바위 마력에 얼음 마력이 우아하게 뒤섞였다.
쿠우우우, 지면이 흔들렸다. 잇달아 내 뒤에서 무시무시한 바위 마력이 화려하고 웅장하게 피어올랐다.
그 속에서 산맥보다도 거대한 한 마리의 골렘이 몸을 일으키며 형상을 갖추었고.
그 골렘의 등 뒤로 거대한 바위 고리가 떠올랐다.
번뜩이는 연푸른 안광. 강렬하게 감도는 얼음 마력.
녀석의 손에는 암철검의 힘을 본뜬 바위 대검이 쥐어졌다.
거대 골렘과 나와의 융화력은 최대치. 마치 녀석과 한 몸이라도 된 것 같은 일체감이 느껴진다.
녀석은, 나를 따라 얼음과 바위 속성의 드높은 경지에 발을 내디뎠다.
웅대한 위용.
골렘 사역마, 분쇄자-이든.
녀석은 전장을 압도했다.
고오오오오━━━━━━━━━━━━.
사역마의 능력치와 성장 속도는 주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융화력이 최대치인 까닭인지, 빙설룡-힐드와는 달리 [멸악자]로 강화된 내 새로운 힘을 이든에게 한껏 퍼부어 줄 수 있었다.
덕분에 녀석의 레벨은 일시적으로 175까지 증가했으며.
마수 중 이례적으로 두 번째 속성까지 깨우치는 데 성공했다.
“이든, 해치워.”
내 한 마디가 내려앉자, 분쇄자-이든이 바위 대검을 치켜들었다. 그 동작만으로 사방에 거센 바람이 퍼져나갔다.
혼탁의 바벨은 어둠 칼날을 격랑처럼 퍼부어 대며 대항했으나, [암식]의 효과를 적용받는 분쇄자-이든에게는 티끌 만큼도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콰아앙───!
이든이 한 발짝 앞으로 내딛자 땅이 울리며 폭음에 가까운 소리가 났다.
묵직한 파공음이 내질러진다. 이든이 거대한 바위 대검을 사선으로 휘둘러 연푸른 실선을 내리그었다.
휘몰아치는 연푸른빛 눈보라와 석설.
강맹한 일섬.
혼탁의 바벨이 갈라지고, 놈의 몸통은 순식간에 얼음덩이가 되어 지면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직 다음 페이즈가 남아 있었다.
혼탁의 바벨에 새겨져 있던 커다란 눈이 뒤집혀 붉은 자위만을 내보였다. 이내.
쾅─, 쾅─, 쾅─, 쾅─!
마치 바위끼리 서로 맞부딪치며 나는 듯한 규칙적인 굉음. 종잇장 접히듯 바벨의 몸체가 접혀나가며 한 지점으로 응축된다.
순식간에 바벨은 검붉은 화염이 팔과 등 뒤로 일렁이는 잿빛 괴물, 3m 신장을 지닌 근육질 외눈 거인 형상으로 변모했다. 입술이 없어 이빨이 훤히 드러난 입은 귀밑까지 찢어져 기괴한 인상을 자아해 냈다.
혼탁의 바벨, 2페이즈.
놈의 주위로 불꽃이 타오르는 마법진이 전개되었다.
단숨에 채찍 수십 개가 사정 없이 휘둘러지듯 검붉은 화염이 마법진으로부터 퍼져나갔으나.
그때는 이미, 내가 땅을 박차고 놈에게 도달한 직후였다.
[……!!]마력의 흐름이 보인다. 모든 공격이 느리게 보였다.
“끝내자.”
찰나의 순간, 나는 화염 마법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암철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연푸른 일섬이 놈에게 쇄도했다.
파공성과 함께 바벨의 육체는 반으로 갈라졌고.
콰가가강──!
얼음 마력과 바위 마력을 머금은 진동파가 퍼져 나가 풍압을 일으키며, 두 동강 난 놈의 육체를 무서운 기세로 날려 보냈다.
검붉은 화염의 벽, 열기를 집어삼키고 몰아치는 폭한 속.
나는 암철검을 어깨에 걸치고 냉기를 머금은 숨을 조용히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