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59)
* * *
“아이작은 말이야, 잘생긴 것 같아.”
[흐음….]루체는 그다지 사람 외모에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었다.
상대가 어떻게 생겼든지 간에 혐오감부터 물밀듯이 몰려오는 까닭이었다.
반대로 아이작에게는 친밀감밖에 느껴지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의 외모에 주의 깊게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루체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이 뇌신조-갈리아에게는 영 낯설게만 느껴졌다.
“맞아, 잘생겼어.”
[흐음….]하늘이 어둡게 물든 밤. 최상위권 기숙사, 샤를관에서 책을 읽던 루체가 혼잣말했다.
반지를 쓰다듬으면서 내내 아이작을 떠올리며, 그녀는 헤실거렸다.
“아이작이 여기서 제일 잘생긴 것 같아.”
[흐음….]하늘이 청명한 빛을 흩뿌리는 낮. 수업동 야외 복도를 거닐면서 루체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하는 말에 뇌신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되게 잘생긴 애랑 친구였구나….”
[흐음….]단련을 하는 중에도 뜬금없이 깨달았다는 듯 내뱉는 그놈의 아이작 외모 칭찬.
“오늘의 아이작도 잘생겼었다…!”
[흐음….]‘아이작은 잘생겼다’란 말이 루체의 입에서 안 튀어나오는 날이 없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어느 날 루체가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던 중, 반지를 내려다보고 내뱉었던 것이었다.
노을빛이 그녀의 로즈골드색 머리칼을 물들이고,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뺨에 색감을 더해주었다. 입꼬리가 멋대로 춤추었다.
그때, 루체가 독백하길.
“좋다, 아이작….”
[…….]한 명의 여성.
꽃내음이 나는 듯했다.
뇌신조는 루체의 사역마다.
그렇기에 주인인 그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그녀는 달콤한 감정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 마음이 부풀고 부풀어, 끝내 내뱉어진 한 마디가 그것이었다.
루체는 행복해했다.
아이작이 준 기억은 완벽했다. 그 기억을 곱씹을수록 루체는 달착지근한 맛을 느꼈다.
왼손 약지.
이 손가락에 끼워야 마도무기의 효과가 발휘될 뿐이라지만.
이미 그 반지는 루체에게 더없이 귀중한 의미로 내비치고 있었다.
루체에게 또 하나의 보물이 생긴 것이었다.
루체에게 아이작은 목숨처럼 귀한 존재였다.
그는 자신이 지켜줘야 했고, 자신이 아껴줘야 했다.
죽어 가는 과자집 마녀를 품에 끌어안은 채 울부짖었던 기억이, 루체의 심지 깊은 곳에 뿌리내려 일구어낸 처절한 강박이기도 했다.
더 이상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작의 모든 걸 기억하려 하고, 그의 모든 걸 파악하려 하면서, 그를 무엇보다도 아꼈다.
아이작의 지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 그 구불구불한 형태를 전부 외우고 있다.
아이작의 홍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 그 미세한 주름 하나하나를 전부 외우고 있다.
아이작의 머리카락 길이, 손톱 길이, 보폭, 발소리, 걸음걸이, 자주 취하는 손동작…. 그 모든 걸 거의 매일 파악했다.
그렇다고 아이작의 사생활을 들춰내려 하거나, 그를 자기 멋대로 제 품에 두려 하면 그는 떠나 버리고 말 터.
저번 학기 사교회 때 아이작에게 만행을 저지르고 사과하며, 루체는 반성했다. 단연 친구라면 상대의 자유의지를 멋대로 조종하려 들면 안 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작이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는 대략적으로라도 상상하고 싶었다. 혼자만의 타협이었다.
떠올린 건 냄새. 살 내음.
그것은 아이작이 오늘 하루를 뭐 하면서 보냈는지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루체는 후각을 강화하는 신체 버프 마법을 단련하고, 아이작의 모든 냄새를 기억했다.
저번 학기 때 그를 껴안아주기도 하거나, 그의 어깨에 턱을 괴기도 하면서.
자연스러운 신체 접촉으로 아이작과 거리를 좁히고.
그의 신체 이곳저곳에서 나는 향기를, 상황 유형별로 모두 기억해 왔던 것이다.
─ ‘아이작, 당장 입 벌려 봐.’─ ‘그럴 땐 보통 ‘아’ 해 보라고 하지 않아?’
얼마 전, 루체는 아이작에게 음식을 떠먹여주었다.
처음에는 그가 배고플까 봐 음식을 먹여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아이작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서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날, 아이작 입속을 오갔던 포크의 냄새를 맡다 보니 그의 침 냄새를 외워야겠다는 판단이 섰고.
돌아가는 중 포크 냄새를 집중적으로 맡고서 그의 침 냄새를 꼼꼼이 기억했다.
그의 겉면에서 나는 냄새는 모두 외우고 있었지만.
그의 몸속에서는 무슨 냄새가 나는지 아직 몰랐으니까.
현재, 나비 정원 구석.
루체는 아이작을 보자마자 곧바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몰래 냄새부터 확인했다.
미세하게 다른 냄새가 났다. 귀 쪽에서, 모르는 냄새가.
루체의 머릿속은 수많은 시나리오를 떠올려 냄새의 출처를 빠른 속도로 찾아다녔고.
그녀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도로시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오른쪽 귀 쪽에 아이작 침 냄새가 났다. 시간이 지나서 흐릿해졌지만, 그 냄새가 미세하게 남아 있었다.
“둘이… 뭐 했어?”
루체의 목소리에 살기가 어렸다.
그녀는 도로시 하트노바를 싫어했다. 아이작과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장 많이 뺏어가는 여자니까.
그러나 도로시는 아이작의 소중한 사람. 그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루체는 도로시를 신경 쓰지 않는 데 그치기로 했다. 그녀와 아이작이 함께 있더라도, 마음은 불편하지만 존중해주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황상, 아이작과 도로시가 서로의 귀를 물고 빨았다는 건 분명했다.
그 광경이 상상되니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어서 이 더부룩함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틀리길 바라며, 루체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그리 물었던 것이었다.
“루체, 너 갑자기 왜 그래?”
아이작은 [심리 간파]로 루체의 심리를 파악하고 생각을 정리한 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때, 도로시는 태평하게 웃으면서 뒤통수를 짚은 루체의 팔을 툭 쳐 냈다.
아이작은 당황해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후배야.”
가라앉은 도로시의 표정.
입가에는 미미한 미소가 걸렸으나, 단순히 스스로가 다짜고짜 화내는 걸 자제하기 위해 터득한 가짜 미소에 불과했다.
루체의 공격적인 태도에 심기가 건드려진 것이었다.
“누굴 위협하고 있어? 건방지게.”
“…….”
도로시의 목소리는 미소와는 대조적으로 몹시 냉소적이었다.
그 경고 같은 물음에 루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감정하게 도로시와 두 눈을 마주할 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폭탄처럼. 끓는 기름과 물이 맞닿듯 두 여자의 살기가 충돌해 주위에 섬뜩한 기운을 퍼뜨렸다.
그러던 중.
키가 조금 더 큰 도로시는 루체를 더욱 가까이서 내려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나랑 아이작이 뭘 했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
“아이작이 널 소중히 생각하니까, 나도 최대한 널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렇게 버릇없게 나오면 내 노력이 뭐가 될까, 후배야?”
도로시의 목소리는 과거의 기억을 거치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즈의 나라에서 모험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도로시에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 속에 버젓이 자리 잡은 황폐한 고향 땅의 풍경.
고개를 숙이면 몇 년 안에 죽으리라는 저주의 낙인만이 눈에 비칠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살아왔다. 마법의 재능을 발휘해 모험가로서 활동하며, 가난하고 지랄 맞은 생활을 이어나가 왔다.
그때의 도로시는 어렸다.
인맥 없는 어린애는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고.
그녀의 천재적인 재능은 질투와 핍박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웃는 가면을 연신 써오면서, 억울함과 분통함을 삼켜오며, 도로시는 애써 살아왔던 것이다.
루체가 자신을 얼마나 무시하든, 웃으면서 장난스레 넘겨 왔던 건 모두 그런 경험에서 비롯된 능숙한 대처였을 뿐.
도로시는 마냥 좋은 성격이 아니었다. 단지 참고 있던 것에 불과했다.
“주제 좀 알자, 루체 엘타니아. 이 언니는 그렇게…, 참을성이 좋지 않아.”
루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제야 그녀가 뭐라 말하려는 때, 아이작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그러자 루체의 입이 목소리를 내길 멈추었다.
루체와 도로시의 시선이 아이작에게로 돌아갔다.
“루체, 그만하자.”
아이작은 루체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순한 눈매와는 달리, 앙칼지고 진중한 눈매였다.
아이작은 두 사람 모두가 좋았다.
일부일처제인 한국에서 살았다면 당연히 한 여자만 사랑하고 다른 여자에겐 눈독조차 들이지 않았겠지만.
기왕 일부일처제가 아닌 세계에 와서 좋아했던 사람들을 만났으니.
여길 떠나게 되든, 쭉 머무르게 되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애정을 퍼부어 주고 싶은 마음이 그득한 것이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록 스스로가 쓰레기가 된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이 너무 좋은걸 어떡하겠는가.
만일 자기 행동으로 인해 그녀들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진다면.
그 문제를 오롯이 자기 몫으로 여기고, 그는 책임질 생각이었다.
설령 그녀들이 아이작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결과에 치닫더라도.
그는 그녀들을 향한 애정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기에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었다.
“도로시 선배도. 싸우지 말고.”
아이작의 단호한 목소리.
무거운 공기.
아이작과 도로시를 번갈아 보는 루체.
이미 루체는 아이작과 도로시가 서로에게 각별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이작이 마도무기 반지를 살피고 있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도로시부터 떠올랐던 건 그런 연유 때문이었다.
아마 아이작은 도로시를 이성으로서 좋아하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평소에 그녀를 소중히 여기는 아이작을 본다면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루체에게는 아이작뿐이었다.
루체는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마도무기 반지. 이건 엘타니아 가문이라고 해도 쉽사리 구할 수 없는 신비한 물건이었다.
골동품점에서 구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지.
다만.
‘그릉….’
이름 없는 영웅.
아이작이 그 상식을 초월하는 미스터리한 대마법사라고 가정한다면, 얼마나 대단한 마도무기를 들고 왔든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서 루체는 반지를 받았을 때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았던 것.
단지, 그녀의 머릿속은 아이작과 함께 할 미래를 한참이나 상상해낼 뿐이었다.
“하지만 회장, 너도 봤잖아. 얘가 다짜고짜….”
“후우.”
루체의 한숨이 도로시의 말을 가로막았다.
사교회 때 아이작에게 사과한 후로, 루체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이작이 반지를 주며 자신과 함께할 미래를 그려주었을 때, 루체의 그 다짐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독점하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았던 것도 그런 까닭.
아이작에게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그를 제 뜻대로 다루지 말고, 존중하고 아껴주자. 쭉 그의 곁에 머무르기 위해서.
물론 그 생각대로 마음이 잘 따라주지 못했으나.
루체는 차근차근 제 결심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머릿속을 가라앉히고 힘겹게 감정을 삭히는 루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도로시에게서 한 발짝 떨어지고.
“…미안해.”
이내, 루체는 사과했다.
그 말을 듣고서 아이작은 흠칫 놀랐고, 도로시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더이상 카야를 공격했던 사교회 때처럼, 루체는 어리숙하고 고지식하게 고집부리고 싶지 않았다.
아이작을 무력으로 빼앗으려 해봤자 그만 곤란해질 뿐이니까.
그와 함께 그려냈던 미래가 점점 멀어지게 될 뿐이니까.
아카데미 생활.
학기를 거듭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들은 서로 부대끼고 많은 일을 겪고 성장해가며, 사고의 변화를 겪는다.
2학년인 루체도 그리 성장해 있었다.
루체는 도로시에게 고개를 숙였다.
“화내서 미안해.”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멈춰 버린 루체.
도로시가 말이 없자 사과를 거듭한다.
“아, 어? 어어?!”
사과를 받아줄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도로시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뜻밖의 사과에 난처해 하는 도로시. 설마 루체가 순순히 사과할 줄은 조금도 예상치 못했으니.
“아, 그, 뭐시냐! 나도, 막 짜증 내서 미안하다…!”
도로시의 오른손이 허공을 어색하게 맴돌았다. 사과마저 어색했다.
도로시는 부자연스럽게 웃으며 아이작을 쳐다보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윽고, 도로시는 ‘흐음’하고 표정을 갈무리했다.
생각이 정리되었다. 점차 온화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걸렸다.
“회장. 누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났다. 공부할 게 떠올랐어!”
선배이자 연장자로서, 도로시는 루체의 진심을 이해하고 그 자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이작과 서로 얘기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다만, 도로시가 공부라니. 굉장히 신빙성 없는 얼버무림이었다.
“아, 네….”
“오늘은 이만 들어가 볼게! 수고해~.”
“조심히 들어가세요, 선배. 고마웠어요.”
아이작은 도로시의 의도를 눈치채고 미소를 흘렸다.
도로시는 배시시 웃으면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등을 돌리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하늘에 짙푸른색 옅은 어둠이 엄습한 때.
마침내 도로시의 모습이 사라지자, 루체는 고개를 들었다.
다소곳이 선 채로 도로시가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는 루체.
무척이나, 싸늘한 눈빛.
간헐적으로 꿈틀대듯 찡그려졌다 펴지길 반복하며, 일부러 감정을 숨기려고 애쓰고 있는 얼굴.
“……?”
그제야 아이작은 알아차렸다.
도로시가 떠나기 전까지 루체가 고개를 들지 못했던 건, 감정을 억누르느라 그랬던 것.
“아이작, 너.”
“어?”
루체의 무감정한 눈동자가 아이작을 향했다.
“저 선배 좋아하지? 이성으로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