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21)
〈 221화 〉 앨리스 토벌전 (17)
* * *
앨리스 캐럴 사건은 황국 영토에서 벌어졌다.
메르헨 아카데미가 수습하기엔 사태의 심각성이 몹시 컸다. 따라서 앨리스 캐럴 사건을 황실에서 다루려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나를 향한 황실 기사단의 경계심이 느껴졌다. 토벌대를 구성하는 로얄 가드와 황실 기사, 황실 마법사 부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황국의 파수꾼. 상대가 누구든지 황국을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검과 스태프를 빼 들 수 있는 신념 있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해결한 건 나야.”
나는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내가 없었으면 황국에 대량의 인명 피해와 천문학적인 재산 손실이 발생했을 거야.”
솔직히 메피스토를 불러들인 건 나고, 아카데미를 위기 아닌 위기에 빠뜨린 것도 나였다.
하지만 어차피 메피스토 군대는 언젠가 쳐들어올 놈들이었다. 시스템의 힘을 받은 내가 없었으면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 선택에는 앨리스 캐럴을 악신 토벌대로 끌어들인다는 전력 확충 목적도 있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지옥 난이도는 플레이어 캐릭터인 이안 페어리테일의 컨트롤 능력을 극한까지 요구한다.
이안을 호위하면서 악신을 대적하고, 동시에 피해자를 최대한 발생시키지 않으려면 내겐 하트 왕국처럼 좋은 전력이 가능한 한 많이 필요했다.
즉, 애당초 내 행보는 전부 황국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강경하게 굴어도 꿇릴 게 없었다.
“그러니 혐의자들의 신변은 너희가 양보해. 얘네 어떻게 할지는 내가 결정할 거니까.”
내 단호한 발언에 부단장 마그리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진심이십니까? 그리하면 곤란해지실….”
“마그리오.”
토벌대 대장이자 로얄 가드인 자큘 칼릭스가 나섰다.
황실 기사단과 부단장 마그리오는 길을 비켰고, 자큘은 내 앞에 마주섰다. 내가 누구인지 감안해 여기 모인 황실 기사 중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자신이 직접 나선 듯했다.
신장 190cm 정도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성. 얼굴에 깊은 주름이 물결처럼 새겨져 있었다.
허리춤에 찬 보검은 그가 황국의 특급 전력인 로얄 가드임을 증명했다.
자큘은 얇은 눈매로 나를 쏘아보았다.
[ 자큘 칼릭스 ]Lv : 178
종족 : 인간
속성 : 바람, 불
위험도 : 하
심리 : [ 당신과 싸울 각오를 품고 있습니다. ]
위험도 ‘하’. 레벨 178에 위험도가 낮게 책정된다는 건 자큘이 ‘당장에’ 싸울 의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여차하면 허리춤에 찬 황국의 재보인 그 보검으로 내 목을 노리려 들 터.
자큘의 위험도가 사라질지 높아질지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었다.
“지고하신 빙제님께 인사드립니다. 황실 기사단, 로얄 가드 ‘자큘 칼릭스’라고 합니다. 사건을 해결해주신 점에는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원하는 보상이 있으시면 황국 차원에서 가능한 한 들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을 강조하는 자큘. 그는 나를 노려보면서도 예를 갖추며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앨리스 캐럴의 신변은 양보해드리기 어렵습니다. 이번 사건과 더불어 이제까지 황국에서 벌어졌던 여러 마족 출현 사건, 마족과의 내통 정보, 마족의 목적, 진상 파악 등…. 우리 황국이 규명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들의 핵심이 그 여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황국 법도에 저촉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는 얘깁니다.”
황국 차원에서도 앨리스 캐럴을 포기하기 어려웠다. 이해한다.
“그러니 황국 법도를 집행하는 걸 방해하실 생각이라면…. 실례지만, 아무리 빙제님이 상대라 하여도 저희는 목숨 걸고 무력을 행사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자큘의 손은 허리춤에 찬 보검에 머물렀다.
“…….”
나는 자큘을 쳐다보며 시야각을 넓혔다.
황금 장신구를 단 하얀 독수리가 인근 건물 옥상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카를로스 황제의 사역마였다.
사역마를 통해 아카데미 광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고 있겠지. 예상했다. ‘나’라는 새로운 원왕이 나타났으니까.
제르베르 황국의 카를로스 황제는 되도록 모든 원왕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했다. 원왕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카를로스 황제가 원왕 상대로 저자세로 나오는 건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치가 질서와 평화라 그런 것일 뿐. 황국 법도를 개무시하고 막 나가는 원왕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적대하려 들 터.
카를로스 황제는 황제답게 가치 판단에 따른 단호한 결단력을 갖고 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해온 짓거리는 악신을 저지해야 한다는 목적을 근간에 둔다.
그리고 악신이 부활하는 곳은 황국 땅인 이곳, 메르헨 아카데미이며 악신 토벌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들 또한 이곳에 모여있지 않은가.
즉, 여기서 뒤펜도르프를 짊어진 내가 황실 기사단과 피까지 보면서 황국과의 관계를 개판 내 버리면.
가장 중요한 무대인 메르헨 아카데미에 잔류하는 것과 나중에 악신 토벌을 위해 황국에 도움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었다.
이는 내 목적에 크게 저촉되는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태를 무사히 넘기고, 황제나 적어도 그에 준하는 대리인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올려야 했다.
우리와 황국은 서로 피 봐서 좋을 게 없는 사이니까.
“아이작.”
그리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큘의 시선이 앨리스 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길을.”
뒤펜도르프 단장급 병력의 대열이 순식간에 반으로 쪼개졌다.
그 길로 곧장 나아가 앨리스와 가까이서 마주보고 섰다. 그녀는 내가 준 마법 위장 복식을 어깨에 걸친 채 옷깃을 살며시 움켜쥐고 있었다.
앨리스의 연분홍빛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심중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기 위해서였다.
“애기야, 난 뭐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단다. 나 때문에 황국과 마찰을 빚을 필요 없어.”
앨리스는 나에게만 들리도록 작고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상했던 말이었다. 쓸데없이 이해심 많아 보이는 미소도. 내 이해득실을 멋대로 따진 거겠지.
앨리스는 황국에 붙잡힌다면 숱한 고문도, 인간 미만의 대우도, 처형도 각오해야 할 처지였다. 팔라딘도 마찬가지고.
얘네는 지금 스스로를 열심히 변호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결과든 겸허히 받아들일 작정이었으니.
“그리고, 애기는 꼭 해야 할 일이….”
“야, 앨리스.”
그딴 건 내가 허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 말 기억 나냐? 내 옆에서 속죄하면서 살아가라고.”
앨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만히 있어. 난 너 포기 안 해.”
새겨들으라고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앨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많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숨을 내쉬고, 앨리스의 어깨를 토닥이고 다시 자큘 칼릭스에게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앨리스는 어깨를 토닥인 내 손을 낚아채더니 자기 목에 갖다 댔다.
“……?”
서늘한 앨리스의 목. 그녀는 내 손을 자기 목에 부드럽게 문질렀다. 마치 그 살결의 감촉을 느껴달라는 듯.
연이어 앨리스는 다시 고개를 들고 특유의 상냥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만, 눈동자는 결연했다.
“애기야.”
그 순간, 앨리스의 목에 맞닿은 내 손을 타고 뒤펜도르프 병력과 계약했을 때 느꼈던 감각이 또렷이 새겨졌다.
잠깐 놀라 눈이 커졌으나, 앨리스의 의중을 파악하고 곧바로 표정을 갈무리했다.
“나 줄게. 가져가렴.”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내 귀청을 은은하게 울렸다.
문득 무저갱에서 앨리스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내 목적은 악신을 토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니 앨리스에게는, 속죄할 거면 악신 토벌에 목숨을 걸으라고 일러둔 채였다.
‘자신을 내주겠다’. 그 뜻은 곧, 악신 토벌을 위해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내 힘이 돼 주겠다는 의미겠지.
다시 앨리스 쪽으로 몸을 돌리고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엔 담담한 표정의 내 얼굴이 담겨 있었다.
“…괜찮겠냐?”
“애기가 날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게 가장 나은 속죄 방법인 것 같거든. 그리고 내기도…, 내가 진 것 같고.”
내기라 한다면 어느 쪽이 먼저 상대를 마음에 품을지, 말고는 없었다. 이 상황에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진심인지 장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을 정리했다.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러자 앨리스가 말을 꺼냈다.
“약속해주겠니? 앞으로 내 곁에 있어주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할게.”
앨리스는 싱긋 웃으면서 자기 목에 갖다 댄 내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리의 뜻이 일치했다.
휘우우우우.
내 손을 타고 연푸른색 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은 앨리스 목을 감싸며 하나의 낙인을 새겨나갔다.
그렇게 앨리스 목에 새겨진 새로운 낙인은 내 마력의 빛깔을 은은하게 내비쳤다. 앨리스 캐럴이 내 것이라는 증표였다.
나와 앨리스가 하수인 계약을 맺는 순간이었다.
“……!!”
광장에 있는 모두가 놀랐다. 특히 도로시와 루체, 카야, 팔라딘이 가장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인간은 누군가의 사역마나 하수인이 될 수 없다. 도덕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마력 근원지가 그리 계약할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즉,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앨리스는 아니었다. 얘는 이례적인 경우니까.
계약의 메피스토는 절대적인 계약의 권능으로 앨리스조차 하수인이 될 수 있도록 마력 근원지의 구성을 조작했다. 그래서 「9막, 앨리스 토벌전」까지 앨리스는 메피스토의 하수인이었고, 그 낙인을 목에 새겨둔 채였다.
그래서 방금 앨리스는 나와 하수인 계약을 맺을 수 있는지 시도했고, 가능하다고 서로 느꼈다. 이미 그녀의 마력 근원지는 조작된 상태 그대로였기에.
결국, 우리는 의사를 합치시켜 주종 관계를 맺은 것이었다.
이로써 앨리스는 내 동료이자 하수인이 되었다. 그녀는 내 것이며,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만 했다.
이는 동시에 앨리스가 뒤펜도르프 소속이 되었다는 뜻이자 하트 왕국을 우리의 속국으로 두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앨리스에게서 떨어지고 등을 돌렸다.
황실 기사단과 토벌대를 훑어보며, 앨리스의 목에 새겨진 낙인이란 명백한 증표를 내보이며.
나는 크게 소리쳤다.
“들어라!”
공적인 선언이었다.
“앨리스 캐럴은 내 하수인이 되었다! 이에 따라 그녀가 다루는 사역마도, 병력도 전부 내 것이 되었다!”
하트 여왕-앨리스.
괴묘-체셔.
악몽룡-재버워크.
호룡-밴더스 내치.
팔라딘.
접접 새를 포함한 마수 하수인.
트럼프 병력.
하트 왕국의 전력은 전부 내 것이 되었다.
부단장 마그리오 할펜트는 주먹을 파들파들 떨었다. 당혹감과 분노, 두려움이 복잡하게 뒤섞인 반응이었다. 인간과 인간이 하수인 계약을 맺는 걸 처음 봤기 때문이겠지.
여기에 당위성을 부여해 주는 건 ‘빙제’라는 내가 새로 얻은 신분이었다. 대마법사는 본래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말도 안 되는 이적을 행하고는 하니까. 얼음의 대마법사라고 예외겠는가.
로얄 가드 자큘 칼릭스는 눈을 더욱 가늘게 좁히고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가, 토벌대와 황실 기사단 선두에 서 있는 자큘과 맞섰고.
불만 가득한 그의 눈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니 이들을 벌하는 것도, 이들의 처우도, 전부 내가 정한다. 이들을 건드리는 건 뒤펜도르프, 그리고 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거야.”
나는 악신이란 존재에 대적하면서도 사람들을 지켜낼 셈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바람이든, 만용이든, 허세든, 오만이든, 어리석음이든, 기어이 이뤄낼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엔 앨리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큘은 입을 다문 채 이를 꽉 깨물었다. 그의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걸 보고 알아챘다.
“…재고해주시길.”
이윽고, 자큘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나를 노려보면서.
“앨리스 캐럴을 뒤펜도르프 소속으로 두신다는 건, 뒤펜도르프가 이번 사건에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리고 재차 말씀드리지만, 앨리스 캐럴은 마족과 내통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벌어졌던 마족 출현 사건 전부, 앨리스 캐럴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전부… 감당하실 작정입니까?”
자큘의 저의를 알았다.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게 되었으므로 배상 책임을 들먹이며 나를 협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을 멋대로 결정지을 수 없는 자의 의견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감당? …누가 할 소리냐?”
네 위치를 알아라.
내가 볼 일이 있는 건 카를로스 황제였다. 사태가 외교 문제로 번진 이상 로얄 가드인 자큘로선 황제의 뜻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자큘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금빛 장신구로 치장된 하얀 독수리 마수가 아카데미 광장으로 날아왔다.
아까부터 우릴 지켜보던 카를로스 황제의 사역마였다. 카를로스 황제는 이제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자큘을 포함한 토벌대와 황실 기사단은 반사적으로 기사식 예법으로 인사했고, 독수리 사역마는 자큘의 어깨에 안착했다.
그 사역마는 자큘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 뒤, 다시 멀리 떠나갔다. 카를로스 황제가 명령을 내린 듯했다.
자큘은 내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께서 세 밤 이내로 이곳으로 오겠다고 하십니다. 빙제님을 뵙고 싶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황국 수도 브얀스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3일로는 어림없다.
빠르고 몸집도 큰 마수라도 타고 온다면 모를까, 황제라면 당연히 고상한 마차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겠지.
아무래도 진작 메르헨 아카데미에 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앨리스 캐럴 사건의 사건 관계자 신변은 일단 인계하도록 하겠습니다.”
“황명이야?”
“그렇습니다. 되도록 빙제님의 사람을 건드리지 말라는 명입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황제 폐하께서 직접 빙제님과 논의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카를로스 황제는 더는 서로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애당초 마족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는 앨리스와, 마족을 처치하고 사람들을 지켜온 나는 완전히 상충되는 관계였다. 그런 우리가 팀을 먹었으니, 카를로스 황제는 내 뜻을 먼저 헤아리려는 눈치였다.
“죄송합니다. 조금 전 무례는 용서해주시길.”
자큘이 사과하자 토벌대와 황실 기사단 모두 내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그들을 지켜보다 등을 돌렸고.
뒤펜도르프 병력이 좌우로 정렬하여 내준 길을 유유히 걸어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