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35)
〈 235화 〉 다시 방학식
* * *
“기분이 이상하네요.”
방학식 전날이다.
수국 정원 구석에서 화이트에게 이번 학기 마지막 교육까지 끝마쳤다.
방학에 수행할 과제를 설명한 후, 우리는 바위 의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담화를 나누었다.
“아이작 선배 덕분에 눈에 띄게 강해져서. 이게 대마법사님께 교육을 받은 셈이었잖아요? 천금을 줘도 못 얻을 기회였네요…!”
“적어도 4성급까지는 마스터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아, 그랬죠…. 저 해충이었죠….”
화이트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아니, 벌레만도 못한…. 못난 제자라 죄송했어요오….”
“그런 뜻은 아니고.”
더 잘 가르쳐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뜻이었다.
화이트 머리를 쓰다듬으며 방긋 웃었다.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웠다. 고생했어.”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화이트의 서글픈 표정이 서서히 풀려갔다. 화이트는 내 손길에 안정감을 느꼈다.
“아이작 선배는 아카데미에 계속 남아 계실 거죠?”
“되도록 그럴 생각인데, 아마 바람 쐬러 잠깐 나갈지도 모르겠어.”
뒤펜도르프에 가서 왕위 즉위식도 진행해야 하고, 원왕 회의를 위해 화이트클락 공작령도 방문해야 한다.
아카데미에선 암갑귀-고르모스의 도움을 받아 특훈도 할 계획이었다.
또한, 사령의 칼가르트가 이미 부활했다면 방학 동안 녀석을 토벌하러 갈 생각이었다. 아직 정보 수집 목적으로 보낸 괴묘-체셔가 돌아오지 않았지만.
목적지인 로펜하임 남작령은 내 [천리안]도 닿지 않을 만큼 거리가 멀었다. 설령 [천리안]이 닿았다 해도 괴묘를 찾기는 어려웠을 터.
괴묘가 걱정되었으나, 앨리스는 자기가 느끼기에 괴묘에게 아무 문제 없다며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했다.
“그러면 아이작 선배, 시간 되실 때 브얀스에도 한번 들러주세요.”
브얀스는 제르베르 황국의 수도였다.
“졸업하신 뒤라도 상관없어요. 극진히 대접할게요.”
“고마워, 생각해볼게. 그리고 시계 건은… 안타깝게 됐다.”
“괜찮아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라서요….”
화이트에게 회중시계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설명했다.
회중시계는 황실에서 회수해 갔으며, 황실 마탑에서 면밀히 조사 중이었다.
처음에 화이트는 내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죽기 전까지 암살을 시도해온 어머니가 유일하게 준 멀쩡한 선물이라 여겼던 게 사실은 가장 위험한 것이었으며, 회심의 한 수인 줄은 몰랐으므로.
며칠은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이미 전례가 있었기에 빠르게 진실을 받아 들여가는 눈치였다.
“이미 죽은 사람한테 또 당할 뻔했던 제가 바보였죠…. 지금은 그냥 열심히 살아가려구요.”
과거의 미련을 버린 화이트는 싱긋 웃으며 내게 작은 주먹을 내밀었다.
“아카데미 오고 정말 많은 은혜를 입었어요. 감사했어요, 아이작 선배. 방학 동안 보고 싶을 거예요.”
“너도. 한 학기 동안 고생했다. 나도 보고 싶을 거야.”
나는 화이트와 주먹을 맞댔다.
……
“지금부터 메르헨 아카데미 방학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2학년 1학기 마지막 날. 대낮의 하늘은 푸르고 청아했다. 전교생이 아카데미 광장에 모이고 방학식이 시작되었다.
학생회장 퇴임식도 함께 진행되었다.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회장으로 선출될 시 3학기 동안 직무를 수행하고 직책을 내려놓기 때문이었다.
무대 위에서 앨리스 캐럴은 퇴임 연설을 했다. 특별한 것 없는 무난한 내용이었다. 연설 끝에 앨리스가 인사하자 학생들은 갈채를 보냈다.
퇴임식은 관례에 따라 방학식에 진행한 것일 뿐, 앨리스는 이번 방학까지 학생회장 직책을 수행해야 했다.
다만, 마무리 단계로 몹시 부분적인 업무만 하면 될 뿐이라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라고 앨리스가 이야기해줬다.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학생회장 선거가 개최될 터. 이미 학사 행정에 관여하는 학생 모임, 4성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어느덧 방학식이 끝나고 아카데미 교문이 완전히 개방되었다. 많은 학생이 마차를 타고 대륙으로 넘어갔고, 나는 아카데미에 남았다.
으리으리한 황실 마차가 호위병들을 이끌고 교문 앞에 이르렀다. 나는 스노우화이트와 메를린을 배웅했다.
메를린에게 동생을 안 보고 가도 괜찮냐고 묻자, 그녀는 호위 기사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온 것이니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아이작 선배, 다녀올게요! 나중에 봬요!”
화이트와 인사를 나누자 어째 황국의 호위병들이 내게 깍듯이 인사했다.
친하게 지내보자는 황실의 의사처럼 보여서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교문을 지나는 트리스탄 험프레이도 발견했다. 녀석은 날 봤음에도 못 본 척 지나가 험프레이 가문 마차에 올라탔다.
이후론 카야와 시간을 보냈다.
악식의 인격이 없는 탓인지 무척 소심해졌으나, 내 뺨에 키스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조심히 다녀오라고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고 그녀를 배웅했다.
그리고 텅 빈 훈련장에서 꿀 빨 생각을 하며 교정을 걷던 중.
“이봐.”
“……?”
한 여학생이 말을 걸어오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물결치듯 내려오는 청색 단발머리. 조막 만한 체구.
내 마법학부 동기 중 전교 3등. 시엘 카르네다스였다.
사복 차림인 걸 보니 그녀도 곧 아카데미를 떠나려는 모양이었다. 반쯤 뜬 졸린 눈은 그냥 눈이 있으니 일단 떴다는 느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시엘도 >메르헨의 마법 기사> 공식 히로인이라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네, 시엘. 어쩌냐. 나한테 3등 뺏겨서 슬프겠다?”
“보자마자 유혈 사태를 마렵게 하는군.”
“이안 데려간다며?”
“주워들었나 보네.”
이제 이안이 시엘의 도움으로 빛 속성 전설 무기, 창명검을 구하러 갈 시기니까.
시엘은 이안에게 특훈 환경을 제공해주겠다고 하고 대신 신성력을 연구할 기회를 달라고 했을 것이었다. 어떻게 연구할지도 얘기를 나눴겠고.
이안은 카르네다스 가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겸 더욱 강해지기 위해 시엘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으리라.
카르네다스 가문 대저택에서 지내는 동안 단련하는 이안에게, 시엘은 가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약속을 전할 테고.
약속의 증표를 내보여 이안을 설득한 뒤, 그를 창명검이 있는 천상 세계로 데려갈 것이었다.
다행히 창명검을 얻기 위한 시련은 평범한 전투가 아닌 정신력 싸움이 될 터라 걱정은 없었다.
‘정신력은 내가 아는 이안 그대로니까.’
고인물 컨트롤과는 무관한 부분에서 이안은 내가 아는 주인공, 이안 페어리테일이 맞았다. 잘하고 오겠지.
시엘은 여느 때의 차분하고 무감정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뭐, 내가 이안 페어리테일을 어쩌든 네가 상관할 건 아니지. 그것보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뭔데?”
“영업 비밀. 잘 알겠더라고.”
작년 1학년 1학기 학기말 평가 이야기였다. 마나 감지가 어려운 펠 카드를 찾으러 다닐 때 영업 비밀을 들먹였던 기억이 났다.
잊고 있었는데. 문득 그때의 기억이 추억처럼 떠올라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카르네다스 가문은 널 환영해. 다른 가문들도 마찬가지겠고, 너한테 잘 보이려고 물고 빨고 다 하려 들 거야. 꼴리고 쓸모없는 여식들 너한테 시집 보내려 할 거고, 뒤펜도르프엔 온갖 외교적 선물이 쏟아지겠지. 세계가 널 중심으로 돌아갈 거란 얘기야.”
시엘은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곤 무감정한 목소리로 유려하게 읊조렸다.
“그만큼 널 적대하는 세력도 늘어날 거야. 이 세계엔 아직 숨겨진 강자가 많으니까. 쓸데없이 도전 정신만 넘치는 무인들의 당랑거철. 오로지 네 명성만 보고 뒤통수를 쳐 엄청난 이익을 챙기려는 만용 넘치는 무식한 놈들. 이런, 내가 아니어도 유혈 사태를 면치 못하겠군. 네가 혼자 더럽게 강하더라도 피해를 막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널 위한 정보통이 황국에 넘쳐 나면 어떨까?”
사전 대비가 된다.
아직 나는 전투시가 아닌 평상시에 강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사전에 위험을 감지하고 대비할 능력은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본론을 말해. 거래하고 싶다는 거지? 너희 가문이 그 역할 수행해 주는 걸로.”
“정답.”
시엘은 검지로 날 가리키며 긍정했다.
“우리 가문은 그런 쪽으로 유명해. 덕분에 많은 가문의 약점도 쥐고 있어. 후회는 없을 거야.”
“나한테 요구하고 싶은 건?”
“카르네다스 가문의 뒷배.”
알기 쉽네.
시엘은 내 비호 아래 무사히 졸업하길 원하며, 가문의 이익도 챙기길 원한다.
어느 쪽이든 손해 볼 거래는 아니었다.
“천천히 생각해볼게.”
“긍정적인 답변을 내줬으면 좋겠군.”
나는 시엘을 제치고 지나가다 할 말이 떠올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 시엘.”
“왜?”
“이안이랑 에이미, 다치지 않게 잘 부탁한다.”
뒤통수 너머로 시엘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제야 미심쩍음을 눈치챘는지 그녀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깃들었다.
“너…, 알고 있었어?”
“글쎄다.”
“…….”
그대로 나는 훈련장으로 떠나갔다.
* * *
카르네다스 가문의 마차가 시엘과 이안, 에이미를 태웠다. 이안은 방학 동안 카르네다스 가문의 도움으로 강해질 미래를 상상하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에이미는 그런 이안이 귀여워서 싱글벙글 웃는 와중에도 시엘을 신경 쓰곤 했다.
시엘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살며시 숙인 채 고민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미는 시엘에게 말을 걸지 말지 고민하다가, 방해하지 말자고 결정하고 말을 아꼈다.
‘어디서 정보가 샌 거지?’
시엘은 아이작과의 대화를 되새겼다.
─ ‘이안이랑 에이미, 다치지 않게 잘 부탁한다.’
─ ‘너…, 알고 있었어?’─ ‘글쎄다.’
카르네다스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숨겨진 비밀이자 약속을 아이작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바로 빛의 아이를 발견하거든 천상 세계로 데려와 달라는 약속을.
대마법사란 불가해한 능력을 행하는 자.
아이작은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서 이미 그 약속을 간파했던 걸까.
‘아니, 어쩌면….’
이안을 천상 세계로 데려가는 것 자체가 아이작의 뜻인지도 몰랐다.
그곳에서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만약 위험 요소가 들이닥친다면 시엘은 이안을 지키기로 다짐했다.
가문의 약속을 따라 이안을 천상 세계로 데려가려는 건 결국 시엘의 결정이었으니. 이안의 안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진 않고선 마음이 뒤숭숭해질 뿐이었다.
심지어 이안을 지키는 일이 이 세계를 지키려는 아이작의 뜻이라면 더더욱 그리해야만 할 터.
시엘은 아이작이 보호하는 테두리 안에서 메르헨 아카데미를 무사히 졸업해 떵떵거리며 살아갈 생각이었으니.
그러한 세속적인 목적만을 생각하며 시엘은 고민을 끝마쳤다.
“…낮잠 잘 시간이군.”
시계를 보고 중얼거리는 시엘. 마침 졸음이 몰려오고 있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낮잠을 자는 건 시엘에게 중대사였다.
시엘은 마법 주머니에서 누구나 기절하는 베개를 꺼내 머리에 베고 드러누웠다. 카르네다스 가문의 마차 좌석이 침대처럼 넓게 특수 제작된 연유가 드러났다.
“너희들. 나 자야 하니까 지금부터 잡담 자제해.”
“여기서 잔다고…?”
시엘은 금세 잠에 빠졌고.
이안과 에이미는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도 곤히 잠들어 버린 시엘을 보고 당황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