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70)
〈 270화 〉 화이트는 강해지고 싶다 (2)
* * *
“아…. 뭐, 이제 가끔은 저런 식으로 하는 것도 괜찮겠네.”
“그럼 5분 안에 전부 없애 봐.”
루체의 담담한 지시.
“화이트, 한번 해 봐.”
“네!”
아이작도 지시하자 화이트는 각오에 찬 눈으로 표적들을 쳐다보았다.
‘잘해야 해.’
매번 자길 도와주고 아껴주는 아이작 선배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화이트는 다시 바람 마법진을 전개하고 3성급 바람 마법 [풍검]을 날렸다.
차악, 하고 연녹빛 바람의 칼날이 근육질 벨로 하나를 갈라냈다. 루체는 마력을 컨트롤해 [풍검]에 베인 물 형상을 스스로 없앴다.
그리 세 번째 물 형상을 없앴을 때.
푸우우!
“헉!”
근육을 뽐내던 벨로의 형상 하나가 기습적으로 입에서 물줄기를 뿜어냈다.
일직선으로 허공을 가로지르는 물 공격. 깜짝 놀란 화이트는 반사적으로 4성급 바람 마법 [풍벽]을 전개했다. 그녀 앞에서 바람이 강하게 소용돌이치며 물줄기를 휩쓸어 날려 보냈다.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다. 화이트가 내뱉은 안도의 한숨이 공기를 떨리게 했다.
“오, 반격도 하네.”
아이작은 안경을 들치며 감탄했다.
“바, 방금 그건…?”
“무작정 표적만 부숴봤자 시시하기만 하니까. 불규칙적으로 물을 쏘아대는 거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서,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왜?’라고 하는 듯한 루체의 눈빛에 화이트는 덜덜 떨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전엔 잘했어, 화이트.”
“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기습이었잖아. 곧바로 [풍벽] 전개한 건 예전이랑 비교해서 엄청난 성장 아니냐?”
아이작은 웃는 얼굴로 화이트와 무녀 메이가 대련했을 때를 떠올렸다. 화이트는 중요한 순간엔 오히려 냉철해지며 마법 연산 속도가 평소보다 빨라지는 경향이 있었다.
“실전에 강한 타입이었네.”
“아이작 선배….”
가히 범접하지 못할 대마법사 멘토의 칭찬은 화이트를 춤추고 싶게 만들었다.
“에헤헤, 고마워요. 그럼 이어서 할게요!”
화이트는 웃는 얼굴로 의욕을 불태우며 [풍검]을 시전했다.
그리고 4분 뒤.
화이트는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지면에 드러누워 있었다. 아직 물로 이루어진 근육질 벨로의 형상들은 제 근육을 자랑하며 건재했으나, 화이트는 한계에 봉착해 버렸다.
“아이작 선배.”
“어….”
“전 먹을 것만 축 내는 가축. 쓸모없는 해충이에요.”
화이트는 자괴감에 빠진 목소리로 조곤조곤 읊조렸다.
“저기, 그, 힘내라…. 루체도 고맙고.”
아이작이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위로하는 동안, 루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되돌아갔다.
물로 이루어진 근육질 벨로의 형상이 착착 사라져갔다.
* * *
개강이 며칠 안 남은 때였다. 학생들이 거의 다 돌아왔다.
그간 아카데미에서 벌어졌던 흉흉한 사건들 때문에 휴학이나 자퇴를 결정한 학생들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다. 물론 극소수였다. 기왕 힘들게 명문 아카데미에 입학해 놓고 그러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닐 테니까.
교장 엘레나에게 얘기를 전해 듣기로, 학부모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 교직원들이 곤혹을 치렀다고 했다. 다만, 예상과는 달리 불만의 목소리는 적은 편이었다고 했다. 아마 사람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다며. 알 바는 아니었다.
새까만 먹으로 칠해진 하늘에 소금 같은 별빛이 뿌려져 있었다. 고요하고 평온했다.
나는 오른손에 쥔 마력기로 마력 운용력을 단련하며, 빠르게 뜀박질하면서 아카데미를 돌고 있었다.
‘등록금 문제는 간단히 해결됐고.’
2학년 2학기 등록금은 제대로 납부했다. 사치 안 부리고 성적 우수 장학금도 받았던 덕분에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검은색 마력기는 인상이 절로 찌푸려질 만큼 마력 운용의 난도가 높았다. 이렇게 마력 순환이 빡센 마력기는 처음이었다.
─ ‘이 중에서 골라라. 전부 어디 가서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물품들이다.’
이 마력기는 아스트레앙 공작령에서 마족을 해치운 공로로 제랄드가 준 보상이었다.
여러 선물 중 하나를 고르면 되었는데, 어디 가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고강도의 마력기가 있어서 고민 없이 그걸 골랐다.
양손에 쥘 수 있도록 두 개를 받았지만, 두 개를 한꺼번에 다루기엔 아직 내 실력이 모자라 하나만 사용하고 있었다.
이 마력기가 망가지지 않는 한, 앞으로 더 강도 높은 마력기를 찾겠다고 돈 들일 일은 없을 것이었다.
“……?”
수국 정원을 달리던 중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 평소에 멘토링을 진행하는 작은 호수 방면이었다.
가로수들을 지나쳐 수국 정원 구석에 이르자, 바람 마법진을 전개한 순백의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스노우화이트였다.
흙 먼지를 뒤집어쓴 듯한 더러운 옷. 새하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땀으로 번들거리는 두 뺨에 달라붙어 있었으나, 화이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멀찍이 떨어진 바위 표적을 향해 3성급 바람 원소 마법 [풍검]을 사용했다.
차악! 콰각!
바람의 칼날이 바위 목표물을 몇 번이고 빗겨 갔다. 그러나 화이트는 연신 마력을 끌어올렸고, 끝내 [풍검]이 바위 표적에 명중했다.
“와아…! 맞았, 맞았어요! 맞았어!”
바위 표적 근처에 서 있던 메를린이 “훌륭하십니다, 화이트 황녀님.”하고 박수를 쳐주었다.
멘토링 끝나고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단련하고 있었네.
“에헤헤! 이제 먼 거리도 문제 없다구요, 메를린!”
“잘하셨습니다. 다음은 이걸 맞추실 차례군요.”
“헤…헤….”
메를린이 만든 바위 목표물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기사로서 무기술에 치중해 왔지만, 간단한 원소 마법 정도는 사용할 줄 알았다.
화이트의 얼굴에 들어찼던 성취감이 막막함으로 뒤바뀌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아이작 공?”
“으엑? 아이작 선배?”
메를린이 가장 먼저 나를 발견했다. 화이트는 화들짝 놀라곤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
“왜 다시 여기에…? 어쩐 일이에요?”
“운동하다 그냥 와봤어.”
화이트 옆에 서서 그녀가 전개한 바람 마법진을 살폈다. 화이트는 자기 마법진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운지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획이 깔끔하네. [풍검]에 한정해야겠지만, 마력도 안정적으로 흐르고 있고.’
방금 전에 연달아 휘두르던 [풍검]은 군더더기가 없었고, 연산속도도 평소보다 빨랐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체력과 마력량이 눈에 띄게 늘었어.’
땀에 젖은 화이트를 보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특한 녀석.
“저, 뭔가 잘못됐나요…?”
화이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 완벽하다.”
“네?”
“이제 잘하네, 화이트.”
나는 환하게 웃었다.
“아….”
화이트는 멍하니 날 쳐다보았다. 흐에엥, 거리며 힘들게 단련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곧, 화이트의 눈가에 눈물이 핑 감돌았다.
“성과가 확실히 나타나고 있어. 잘하고 있어, 정말로.”
“흐흑, 아이자악 선배애….”
뭐야? 얘 왜 울어?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메를린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러나 화이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울먹이며 두 손으로 제 눈물을 훔쳤다.
“너 왜 그래?”
“제, 제가 무슨, 그런 소릴 다 듣고…. 흐윽, 전 제가 구제 불능의 해충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여태 아이작 선배가 좋은 말 했던 것도, 그냥 좋은 사람이라서, 제가 보잘것없는 가축 같다는 생각이 드셔도 안쓰럽게 여기고 위로해주는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에…. 그래도 강해지고 싶어서 힘내다가, 흐흑, 그런 소리 들으니까 눈물이 나요오…!”
“지금까지 날 뭐로 본 거냐. 그런 생각한 적 없어.”
마인드가 너무 부정적이지 않냐.
“너 그리고 자기 비하가 너무 심하다. 난 전부 진담이었어. 어서 뚝해라, 뚝.”
“흐윽, 으아앙…! 아이작 선배애애…!”
더 서럽게 울잖아….
아카데미에 와서 자기 모자란 실력을 인정하고, 무녀 메이와 대련하며 자괴감을 느꼈던 화이트다.
화이트는 황녀라는 신분에도, 세계 제일의 미모에도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다. 사람은 죽으면 모두 똑같은 최후를 맞이한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던 까닭이 가장 클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요인마저 힘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를 낮춰 보는 성향이 짙어진 것.
게다가 나름 힘들게 단련해 오기도 했으니까. 얘도 얘 나름대로 고충이 컸겠지.
‘아. 이럼 안 되는데.’
문득 고시 2차 통과하고 서럽게 울었던 때가 떠올라서 절로 감정이 이입되고 말았다. 아이고, 눈물 나려 하네….
“화이트 황녀님….”
메를린은 흐뭇하게 웃었다. 이 녀석도 힘겹게 단련하며 걸어온 길을 떠올리니 화이트의 눈물에 마음이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메를린과 시선을 교환하고, 다시 화이트를 쳐다보며 가볍게 웃음 지었다.
“그만 울어라. 내일 개강인데 얼굴 붓겠다.”
“죄송해요오…. 크흥.”
화이트의 어깨를 두들겨 주니, 녀석은 콧물 삼키는 소리를 내며 서서히 울음을 그쳐갔다.
“조아여…!”
“뭐가?”
갑자기 두 눈을 반짝이는 화이트.
“지금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태세 전환이 빨랐다. 뭐, 좋은 현상이었다.
화이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작 선배. 그때 그거, 다시 해 봐요.”
“지금?”
마력을 뒤섞어 마력 운용력을 높이는 단련을 의미했다.
예전에 빚을 변제하는 대신 그리 단련하기로 하였으나, 화이트의 실력이 최소치에도 이르지 못하여 그 단련법은 나중으로 미뤄야만 했다.
“…후회 안 할 자신 있냐?”
“괜찮아요. 전 성장했으니까!”
“그럼 우는 소리 하지 마라.”
“안 해요!”
이 단련법이 마력기보다 좋은 점은 유연하게 상대 수준을 맞춰줄 수 있다는 점이다. 서로 상대의 마력에 호응하며 마력을 흘려내고 뒤섞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마력기보다 안 좋은 점은 고점이 낮다는 것이다. 실력 좀 쌓이면 빡센 마력기 하나 쥐고 단련하는 편이 더 낫긴 하다.
나로선 화이트의 마력을 직통으로 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럼 내 목표인 고유 특성 하나를 얻을 수 있는 시기가 더욱 빨라질 터.
“그래, 해 보자.”
드르륵.
나는 [바위 생성]을 사용해 간단한 바위 의자 두 개를 만들었다. 나와 화이트는 바위 의자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았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한쪽 팔을 뻗었고, 손바닥을 맞댔다.
차츰 마력을 온화하게 흘려낸다.
스으으으.
내 연푸른빛 마력과 화이트의 연녹빛 마력이 연기처럼 스멀스멀 흘러나와 천천히 뒤섞였다.
잔잔한 분위기. 그러나 얼마 안 가 화이트의 인상이 마구 구겨졌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 행위는 마치 전신 운동, 플랭크와도 비슷하다. 지금 화이트는 격렬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마력기와 원리가 동일하다. 내가 항상 느끼고 있는 고통이었다.
반면에 나는 수준 낮은 마력기를 쥐고 마력을 순환시키는 느낌만 들었다. 너무 쉬워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제 버틸 수준은 되네.”
“에헤헤…. 그렇다구요…!”
화이트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리고 5분 뒤.
서서히 얼굴이 썩어가던 화이트는 입에 거품을 물고 지면에 엎어져 버렸다.
“으어억….”
“괘, 괜찮냐?”
“괴, 괴로워어…. 괴로워요오, 아이작 선배애….”
화이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우는 소리 안 한다며.
나는 안경을 한 차례 들쳤다. 내 입가엔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이 악물고 잘 버텼네. 5분 정도면 괄목할 만한 성과야.”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눈이 촉촉하게 젖은 화이트는 내 얼굴과 내 손을 번갈아 보았다.
오늘로써 「요정 대전」에서 쓰이면 좋을, 내가 원하던 고유 특성을 얻을 수 있는 시기가 앞당겨졌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화이트의 성장에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화이트 황녀님. 멋진 인내심이셨습니다. 제가 봐도 괄목할 만한 성과였습니다.”
메를린도 내 옆에 서서 화이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작 선배애, 메를리인….”
이번엔 분위기가 훈훈해서 감동인지, 화이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려고 했다.
화이트는 웃으면서 나와 메를린의 손을 잡았다.
“다들 고마…, 으갸악!”
아, 방심했다.
마력이 한동안 뒤섞였던 탓에, 아직 잔류 중이던 내 마력과 화이트의 마력이 맞부딪치자 반발을 일으켰다.
흘려 냈던 마력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신체 접촉을 피했어야 했는데.
“흐윽….”
“아…, 미안.”
고통스러워하는 화이트에게 나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