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77)
〈 277화 〉 견학 (3)
* * *
몇 달 전, 화봉국-호란.
미야는 금세 무녀의 지위를 되찾았다. 푸른 불꽃이라는 신녀의 힘은 부정의 여지가 없는 뚜렷한 증거였기에.
미야는 구속된 메이를 찾아갔다. 몰락해 버린 언니와 화봉국의 최고 권위자가 된 동생의 처지는 극적인 대비를 이루었다.
“오랜만이네. 비웃으러 왔어?”
쩍쩍 갈라지는 메이의 목소리. 숱한 고문을 받은 탓에, 그녀에게선 예전의 생기라곤 티끌 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미야는 감옥 옆에 등을 기댔다. 메이와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으니.
아무리 배신 당했다지만, 상대는 자기 언니였다. 얼굴을 봤다간 마음이 약해질지도 몰랐다.
그대로 미야는 말했다.
“언니는 쉽게 죽이지 않을 거야. 그래도…, 이제 죽을 때까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건 피할 수 없을 거야. 언니가 이 나라를, 국민들을 짓밟아 왔듯이.”
“지랄 말고 그냥 죽여.”
“내가 왜 언니 말을 들어야 해?”
“크흐. 꿈속에서만 산 년이, 의외로 나이를 헛되이 처먹진 않았네.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거 보면.”
이제 메이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그녀는 죽음을 바랐고, 동생이 부디 자기 목숨을 거둬주길 바랐다.
“언니가 먼저 시작했잖아.”
“시끄럽고 그냥 죽이라고, 씨발!!”
메이는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내질렀다. 욕지거리가 메아리처럼 감옥을 수차례 울리고, 이후엔 허무한 적막만이 내려앉았다.
“그거 알아, 언니?”
“뭐?”
“언니가 건드렸던 사람. 사실 이름 없는 영웅이었다는 거.”
“…뭐라는 거야, 개 같은 년아.”
메이는 미야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언니가 이름 없는 영웅을 애타게 찾아다녔단 걸 알게 됐어. 누군지 궁금해 했잖아. …아이작. 그 사람이었어. 최근에 얼음의 원왕까지 됐어. 이젠 널리 알려진 사실이야.”
“너,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진짜야. 내가 괜히 이런 소릴 하겠어?”
“지랄하지 말라고….”
메이는 이를 깨물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툭, 실소가 터져 나왔다. 휘둥그레진 그녀의 눈에 눈물이 적셨다.
“그딴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재수가 그렇게 없다고, 내가…? 지랄하지 마…. 웃기는 것도 정도가 있지, 씨발…. 지랄하지 말라고….”
메이는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자신이 낭군이라 일컬었던 인물이, 이 세상의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누구보다도 포섭하고 싶었던 강자가, 자신의 신경을 그토록 긁어댔던 아이작이었다니.
그 이야기는 이미 무너져 있던 메이의 정신을 마저 쥐새끼처럼 갉아먹었다. 그녀의 계획은 첫 단추부터 완전히 잘못 채워졌던 것이었다.
메이는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진실에 토가 쏠렸다.
“그럼…. 잘 지내, 언니. 다신 보지 말자.”
짧은 대화였다.
미야는 메이의 울음소리를 외면하고, 호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자리를 떠나갔다.
아직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생했다. 미야는 입술을 깨물었다. 메이의 울음소리는 예리한 칼날처럼 자기 심장을 난도질하는 듯했다.
그러나 미야는 깊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
영영 언니를 다시 볼일은 없을 것이었다.
* * *
견학 프로그램 담당인 교직원 몇 명과 화봉국의 호위 기사 한 명이 A 클래스 강의실 뒤에 자리 잡았다.
견학생들은 미리 교부된 책을 펼쳤고, 필립 교수는 수업을 시작했다.
견학생들은 이번 시간, 메르헨 아카데미의 A 클래스 수업을 체험하게 된다. 당연히 그들로선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울 터였다.
그래선지 필립 교수는 평소보다 신경 써서 설명에 주의를 기울였다. 견학생들을 배려하는 처사였다.
“음?”
미야가 내 팔을 툭툭 건드렸다.
고개를 미야 쪽으로 돌리자, 그녀는 책에 뭐라 끼적이더니 내게 슬쩍 그 부분을 내밀었다.
[ 저희, 할 얘기 많죠? ]많긴 하지.
나는 은혜의 대가를 받아야겠다. 바로 미야의 신임과 그녀라는 전력을.
뭐, 이해타산적이고 하남자스럽긴 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악신 문제는 중대한 사항인 것을.
내 책 구석에 가볍게 대답을 적은 후 슬그머니 미야에게 보여 주었다.
[ 응. ] [ 그럼 다음에 시간 내주실래요? ]미야는 자기 팔로 가리고 있던 부분을 보여 주었다. 내가 긍정하는 대답을 내놓을 것이라 예상하고 미리 적어둔 모양이었다.
‘학창 시절 같네.’
학창 시절엔 수업 시간에 자기 할 말 적은 메모지를 친구들이랑 주고 받으며 수다를 떨곤 했으니까.
어째 향수에 젖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 그러자. ]그리 적고 고개를 들자 미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빙그레 눈웃음을 지었다.
순수한 사람 치곤 미소는 여우 같았다. 꼭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 같네.
심리를 읽은 바, 미야는 내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거기. 수업에 집중하게.”
필립 교수의 지적에 나와 미야는 칠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체가 곁눈질하며 살기를 보냈으나, 미야는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
수업이 끝나자 견학생들은 교직원을 따라갔다.
미야는 떠나기 전, 내게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가볼게요, 아이작 선배님.”
“어, 그래….”
어색한 대답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위화감이 강렬했다. 생긴 건 메이와 판박이니까.
엄밀하게는, 미야 쪽이 좀 더 선한 눈매를 가지긴 했다. 메이는 기가 센 여자 스타일이라면, 미야는 눈꼬리가 쳐진 강아지 같았다.
“아, 루체 선배님.”
“……?”
대뜸 미야는 루체에게 다가가 생긋 웃었다. 나를 포함한 학생들, 그리고 견학생 타린 바르탕의 시선이 그 두 여자에게로 쏠렸다.
“아까부터 자꾸 저 쳐다보시던데.”
공기가 가라앉았다. 알고 있었나.
루체는 냉담하게 미야를 노려보며 경계심을 내비쳤다. 방금 전까지의 강의실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미야의 그 말은 겉으로 듣기엔 시비를 거는 것처럼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야의 행동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후후.”
미야는 실실 웃으면서 루체의 손을 덥석 잡아버렸다.
학생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눈살을 찌푸리며 당황한 건 루체도 마찬가지였다.
“저한테 말 걸고 싶으셨던 거죠?”
“……?”
“루체 선배님처럼 예쁘신 분이라면 저야 영광이에요. 몇 개월 못 있겠지만, 그동안 꼭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미야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수업 내내 받았던 루체의 싸늘한 눈초리를, 미야는 그저 자신을 향한 관심의 표현으로 여겼던 것이었다.
“뭐…?”
루체는 처음 마주하는 유형의 인간에게 어쩔 줄 몰라 어리둥절한 기색을 보였다.
그야말로 루체의 하드 카운터였다.
“그럼 나중에 봬요, 루체 선배님!”
미야는 선한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하곤 교직원을 따라 강의실을 나섰다. 연이어 필립 교수도 도망치듯 잰걸음으로 강의실을 빠져나가 버렸다.
붙잡혔던 손을 그대로 든 채 어깨를 부들부들 떠는 루체. 저런 눈부신 광원은 음침한 루체에게 있어서 판타지 속 흡혈귀 앞에 나타난 태양빛과도 비슷했다.
“…세상에.”
침묵으로 둘러싸인 강의실.
시엘의 감탄사만이 유독 또렷하게 들렸다.
* * *
‘지, 진심인가…?’
타린 바르탕은 함께 걷는 미야에게 곁눈질하면서 식은땀을 한 방울 흘렸다.
루체 선배에게 한 말이 진심이었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본능이 알아서 자제시켰다. 누가 보더라도 예민한 문제였으니.
아까 전의 살벌했던 강의실 분위기를 떠올려보건대, 미야는 루체에게 기 싸움을 건 것이 틀림없었다. 그토록 뚜렷했던 루체의 살기를 못 알아챌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야는 세상 만사 걱정 없는 사람처럼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이러니 오히려 무서울 지경이다…!
“타린 씨, 할 말 있으세요?”
“앗…!”
타린의 시선을 알아챈 미야가 거리낌 없이 물었다. 깜짝 놀란 타린은 다급히 화제를 꺼냈다.
“그, 저기, 무녀님은… 아이작 선배랑 아는 사이셨어요?”
이 또한 궁금한 사항이기도 했다.
미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 보는 사이예요.”
“네? 초면인 것치곤 친해 보이시던데…. 곧장 옆자리에 앉았던 것도 그렇구요.”
“제 은인이시거든요.”
“은인?”
타린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대략적인 추측은 가능했다.
“혹시 아까 교수님께서 언급하셨던, 공신제 사건이란 것과 관련 있나요?”
“네. 이쪽에 나름 사정이 있었는데, 아이작 선배님 덕분에 잘 풀렸어요. 그분이 절…, 구해주셨죠.”
만약 아이작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구해줬다고?’
미야 같은 엄청난 지위를 가진 인물도 신변에 위협을 받았던 사건이었단 말인가?
하층민 생활만 영위했던 타린으로선 얼마나 스펙터클한 사건이 터졌던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복잡한 사정이 있었나 보네요….”
“네, 그랬죠.”
“…….”
타린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달라고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미야가 그 사건 이야기를 더 하길 꺼려하는 눈치였기 때문이었다.
견학생들은 교직원을 따라 오르핀관을 나선 뒤, 다음 일정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
어느 순간, 미야의 전신을 타고 소름이 우수수 돋아났다.
원인은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한 성인 남성이었다. 미야는 그를 발견하곤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말끔한 로브 차림, 갈색 머리칼.
그와 미야는 서로를 지나쳤다.
미야는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려 성인 남성의 뒷모습을 곁눈질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푸른빛을 띠었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갔다.
“뭐야, 저 사람…?”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나지막이 독백하는 미야.
미야가 가진 신묘한 감지력은 방금 전에 지나친 성인 남자에게서 강한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그 이질감의 정체를 미야는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으나,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남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
신경 쓰였지만, 마족 같은 생물이 대놓고 뿜어내는 사악한 기운 따위가 보이지는 않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이곳은 황국 최고의 명문 아카데미다. 특이한 사람이 한둘 이상 있어도 이상할 건 없으리라.
“무녀님? 뭐 보세요?”
“아무것도요.”
타린의 질문에 미야는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