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78)
〈 278화 〉 체스 (1)
* * *
기숙사, 샤를관. 루체 엘타니아는 메이드에게서 머리 손질을 받으며 화장대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안은 시종일관 조용했다. 묵직한 침묵 속에서 메이드는 기계적으로 루체를 꾸미기만 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업무를 마친 메이드는 다소곳이 인사하곤 방을 떠났다.
루체는 의자에서 일어나 전신 거울에 제 모습을 비쳐 보았다.
몸에 들어맞는 교복과 몰포나비 머리 장식. 햇빛을 받아 연한 분홍빛과 은은한 금빛을 동시에 머금은 로즈골드색 머리칼은 매끈하고 곱살했다.
“…….”
단아한 기품이 흐르는 이 모습을 많은 남학생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다. 미녀 콘테스트에도 선정됐었으니, 자신이 미인 축에 속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다만…, 오늘따라 루체는 회의감과 더불어 강한 의문을 느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취향이란 게 있다. 그렇다면 자신은 아이작의 취향에 얼마나 부합하는 사람일까.
아이작은 매번 세계 최고의 미모를 지닌 것으로 유명한 황녀, 스노우화이트와 시간을 보낸다.
최근엔 무녀 미야라는 파리까지 아이작에게 꼬이려는 기색을 보인다.
그 외에도 도로시나 카야, 앨리스 같은 여우들이 아이작과의 친분을 과시한다.
그녀들 사이에서, 자신은 아이작의 마음속에 얼마만큼 자리 잡고 있을까.
[왜 그러지, 루체?]화장대 쪽. 까마귀처럼 작은 형태로 소환되어 있는 뇌신조-갈리아가 물었다.
“갈리아. 내 매력 포인트가 뭐라고 생각해?”
[…흠.]갑작스러운 물음에 뇌신조는 침음을 흘렸다.
또 시작이군. 뇌신조는 그리 생각했다.
아직 사랑에 서투른 열여덟 살 소녀, 루체 엘타니아.
그녀는 첫사랑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심도 깊은 고민에 빠질 때가 많았다.
“왜 대답 안 해?”
[모든 게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딱 골라서 대답하긴 어렵군.]“건성이네.”
[거, 건성이 아니다. 내 눈에 넌 그저 딸 같으니까. 당연한 소리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지?]“그냥, 나 말이야.”
루체는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용모를 두 눈에 새겼다.
“아이작이 좋아 죽는 여자가 되고 싶어.”
[……!]뇌신조-갈리아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런 생각이 강해졌어.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
[흠. 그건, 나쁘지 않은 마음가짐이군….]조급해진 건가. 좋군.
뇌신조는 두 날개로 손주를 품는 때가 한 발짝 다가온 듯해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표정을 가다듬고 들뜬 기색을 내비치지 않으려 했다.
[잘 들어라, 루체.]날개 한쪽을 슬쩍 들어 올리는 뇌신조.
[간단한 귀결이다. 아이작이 좋아 죽는 여자가 되고 싶다면, 아이작의 취향에 걸맞은 여자가 되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먼저 아이작의 취향을 알아보면 될 거 아니냐?]“…….”
[한번도 알아본 적이 없나 보군.]“응.”
[그렇다면 은근슬쩍 떠보듯 물어봐라. 그다음, 차근차근 아이작의 취향에 부합해지도록 노력하면 된다. 나도 한때는 마음에 품었던 암컷 뇌조의 마음을 얻고자 그녀의 취향을 알아본 적이 있다. 그때 그녀가 좋아한다던 무지갯빛 깃털로 치장해 분위기 좋은 곳에서 구애의 춤을 췄었지….]“결과는?”
“그럼 왜 차인 거야?”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아….”
뇌신조의 눈에 눈물이 감도는 걸 보고, 루체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 *
>메르헨의 마법 기사> 「10막 1장, 견학생」.
내용은 별거 없었다. 견학생 만나고 만담 나누는 게 주요 내용이었지.
10막의 하이라이트는 제르베르 황국에 갑자기 출현하는 마족 칼가르트의 횡포였다. 칼가르트는 이미 방학에 토벌했기에 10막은 평화롭게 스킵될 것이었다.
‘서브 퀘스트도 신경 쓸 필요 없겠고.’
2학년 2학기 파트 중 서브 퀘스트, 학생회장 선거.
게임에선 직접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지만, 서브 퀘스트로 개입할 순 있었다.
시나리오대로라면 내 동기, 케리드나 화이트클락이 다음 학생회장이 된다.
케리드나는 학생들과 고루고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녀의 노력은 학생회장 선거 때 빛을 발할 것이었다.
서브 퀘스트에선 이안이 케리드나의 선거운동에 도움을 주게 된다. 보상은 학생회장 케리드나의 권한으로 특정 맵이 열리게 되는 것 정도였다.
‘거긴 그냥 가면 되고.’
초반에 이미 몰래 갔다 왔다. 비밀 상점이 있는 곳이니까.
어쨌든, 나로선 학생회장 선거에 개입해봤자 메리트가 없으므로 그저 관망할 계획이었다.
“후우, 후우….”
이른 아침. 습한 공기로 폐부를 적시며 구보하던 중이었다.
전신이 땀으로 흥건했다. 반면에 일반인이 전력 질주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도 호흡은 차분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아이작 선배님 아니세요?!”
대뜸 한 남학생이 내게 다가왔다.
“아벨?”
“기억해주셨네요. 영광입니다, 하핫!”
청회색 머리의 능글맞은 남학생, 아벨 카르네다스. 녀석이 내 옆에서 함께 뜀박질했다.
우리는 각자의 학부에 맞는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녀석도 구보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야?”
“마침 보이길래 인사나 나누러 온 거죠! 그나저나 아이작 선배님, 이번에 아카데미 대항전 참가하실 거예요?”
“그럴 것 같은데.”
「11막, 아카데미 대항전」은 공식 시나리오로, 쏠쏠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대회다. 참가하는 건 당연했다.
“오, 진짜요? 이거이거, 우리 아이작 선배님, 메르헨 아카데미의 위상을 높여주실 생각?”
“마음대로 생각해.”
왜 ‘우리 아이작 선배님’이야. 징그럽게.
“키야! 아카데미끼리 벌이는 승부에서 빙제 참전이라니. 메르헨 아카데미 뽕 제대로겠습니다, 아주! 다른 아카데미한텐 허무한 양민학살이 되겠지만요.”
쾌활한 목소리며, 사람 좋은 미소며, 역동적인 제스처며, 아부며…. 붙임성 하나는 자기 누나, 시엘과는 완전히 딴판인 녀석이다.
“꼭 그렇지만도 않아.”
“예?”
“대회엔 규칙이 있고, 나도 그걸 지켜야 하니까.”
내가 유리한 건 맞지만, 양민학살이 되도록 주최 측에서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런 뻔하고 재미없는 대회를 누가 보겠는가.
“…아이작 선배님은 너무 신중하시달까, 겸손하시네요.”
“너도 참가하게?”
“피가 끓는 혈전에 제가 빠져서야 쓰겠습니까? …라고 하고 싶지만~, 자신은 없어요. 하핫. 원래 참가자는 A 클래스가 독식하잖아요. 전 어디까지나 B 클래스 1등일 뿐이라…. 안 되면 관객이라도 돼서 아이작 선배님 응원하러 가야죠!”
“말은 고맙다.”
얘기만 들으면 의형제라도 맺은 사이 같지만, 우리는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아벨은 능글맞은 겉모습과는 달리 승부욕이 강하다. 저번 학기의 합동 전술 평가 이후로 내게 호승심을 품기까지 했으니.
내 정체가 밝혀진 후론 그 호승심이 열등감으로 바뀐 느낌이 든다. 녀석은 굳이 티 내지 않았지만, 내 앞에서 심리를 감추는 건 어려운 일이다.
대충 사회생활용 미소로 화답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번 학기에 아이작 선배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조금 이해가 안 됐던 게 있는데요.”
“응.”
“‘몸 조심해’라고 하셨던 거, 무슨 뜻이에요?”
화이트 병문안 갔던 날 했던 말이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맥락이 조금 이상했단 말이죠? 아직도 쬐끔 신경 쓰여서 말이죠…! 아이작 선배님이 이름 없는 영웅이라고 밝혀진 후론 진짜 신경 쓰이거든요, 이거?”
“뭐, 그거야….”
>메르헨의 마법 기사> 공식 시나리오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회중시계가 총 3개 있다.
첫째는 화이트의 영원 시계.
둘째는 앨리스의 환상 시계.
셋째는 아벨의 천위 시계.
그러한 까닭에 아벨은 내 감시 대상 중 하나였다.
천위 시계는 화이트의 경우처럼 소유자 아벨이 갖고 있어야만 했다. 때가 되면 이 녀석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의 뜻이야. 그냥 형식상 해준 말.”
“그랬나요…. 아이작 선배님께서 그러시면 저 같은 일반인은 무섭습니다?”
아벨은 분위기를 풀려는지 유쾌하게 실소를 터뜨렸다.
이후, 아벨은 빙설룡-힐드로 화제를 돌리더니 힐드의 아름다운 자태를 자세히 관찰하고 싶다고 했다.
단칼에 거절했다.
……
“음?”
오르핀관 복도. 사물함을 열자 편지 봉투가 보였다. 누군가 잠긴 사물함 틈새에 편지를 집어넣었나.
그 자리에서 편지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 아이작 선배님. 오늘 방과 후에 나비 정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꼭 와주세요. – 미야 ]미야가 넣어 둔 편지구나.
편지지를 다시 고이 접어 봉투에 넣었다. 아무래도 미야는 견학 프로그램 일정에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당연히 가야….
“그건 뭐야?”
“……!”
내 어깨에 누군가가 턱을 괴더니 아름다운 음색으로 내밀하게 속삭였다.
깜짝 놀라 고개를 휙 돌렸다. 왼쪽 어깨에 루체가 턱을 괴고 날 가까이서 꼬나보고 있었다. 언제 다가온 거지?
생기 없는 푸른 눈동자가 음험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녀에게서 흐르는 좋은 향과는 대조적인 살벌한 눈빛이었다.
“루체…? 뭐냐, 말도 없이.”
“반가워서. 인사하면 안 되는 타이밍이었어?”
“그건 아닌데….”
내가 편지를 다시 사물함에 집어넣자 루체의 눈이 편지를 쫓았다.
“그거, 무슨 편지야?”
사물함에서 필요한 책을 꺼내자 루체가 넌지시 물었다.
숨길 것도 없었다.
“아. 무녀가 넣어 둔 편지 같다. 걔 나랑 이것저것 엮인 사이잖아. 그래서 할 얘기 있다고 편지 남겨둔 것 같은데.”
“그래?”
루체는 내 사물함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미야의 편지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은밀하네. 네 사물함에 편지를 다 넣어 놓고.”
“……?”
루체는 눈을 가늘게 좁히고 나지막이 독백하더니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가자, 아이작. 수업 늦겠다.”
“어, 그래….”
나와 루체는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반대편에서 여학생이 내 왼편을 지나가려 하자, 루체는 내 왼편으로 위치를 바꿔서 걸었다.
“아이작, 나 궁금한 거 하나 생겼어.”
“뭔데.”
“넌 이상형 뭐야?”
이건 뭔 뜬금없는 질문이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