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85)
〈 285화 〉 온천 (1)
* * *
숙소에 도착한 도로시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도로시의 방은 본래 참가자 숙소의 통제를 담당하는 교직원들에게 배정되는 곳이었다. 그녀는 감독관 역할이었기에 그 방에서 묵게 되었다.
학생들이 머무는 방보다 시설은 나은 편이었으나, 큰 차이는 없었다.
[여긴 관광지. 경쟁자들은 죄다 멀리 떨어진 숙소에 배정된 상황. 방해꾼 없음. 그 와중에 아이작과 데이트 시간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나의 주인…. 기회 잘 잡았네, 도로시?]침대 위.
하얀 고양이 사역마, 엘라는 가지런히 정돈된 자기 발톱을 관찰하고 있었다.
엘라는 기다란 속눈썹이 달린 눈을 연신 깜박거렸다.
“기회 같은 게 아니야. 오늘은 그냥 아이작 쉬는 거 도와줄 생각밖에 없어. 계획대로라면 내일부턴 싸울 일이 좀 생길 테니까.”
도로시는 거울 앞에 서서 셔츠 단추를 잠그며 대답했다.
아까 아이작과 만났을 때, 그의 감정이 밝게 물들어갔음을 도로시는 명확히 느꼈다. 여느 때와 같았다.
자신이 아이작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사실은 도로시에게 크나큰 위로였다.
특히, 오늘은 아이작이 쉬려는 날이었다. 이런 날엔 어떻게든 아이작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단추 풀어.]별안간 기습적으로 파고드는 엘라의 서슬 퍼런 다그침.
도로시는 흠칫 놀라 단추 잠그기를 멈추었다.
엘라는 한숨을 내쉬며 도로시를 쳐다보았다.
[도로시, 가슴골 정도는 드러내는 편이 좋다니까? 왜 그 자랑스러운 걸 굳이 감추려는 거야?]“이 녀석아…, 이 옷은 단추를 다 잠그는 편이 예쁘다구? 잘 봐, 나 답게 청초하잖아?”
엘라는 어이가 없어서 허,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너, 아이작도 본능에 좌지우지되는 수컷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건 아니지? 연적이 없는 틈에 적극적인 대시를 해도 모자랄 판에…. 배가 불렀어, 아주.]“응, 안 들려~. 갔다 올게! 방 잘 지키고 있어!”
[도로시!]도로시는 실실 웃으며 도망치듯 방을 뛰쳐나갔다.
엘라는 쯧쯧, 하고 혀를 차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냥 부끄러워서 그런 거잖아. 정말…, 배짱이 부족해.]주인의 기분은 사역마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엘라는 도로시가 마냥 답답할 따름이었다.
말괄량이 같은 녀석이, 아직 아이작에게 신체를 노출시키는 데 부끄러움과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 * *
참가자 숙소에 도착하고 배정된 방에 들어섰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봤기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시설은 꽤 준수한 편이었다.
[주인, 도와줄 거 없나?] [구우!]인간의 모습을 갖춘 빙설룡-힐드가 침대에 앉아 있었고, 작은 골렘 사역마 이든은 내 옆에 붙어 있었다.
힐드는 변신한 직후였기에 뽀얀 피부를 자랑하는 나체를 내보였다.
“넌 옷부터 입어라.”
[앗.]20대 초반의 아가씨 같은 용모다.
번듯한 여성의 몸체였기에,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고 얼른 배낭에서 옷을 꺼내 힐드에게 가볍게 던졌다.
여성용 속옷과 어두운 색감의 옷, 하얀 외투였다. 저번에 도로시가 골라준 것이다.
[매번 깜박하는구나. 빠르게 입겠다.]휙휙 착의하는 힐드.
녀석에게 있어서 옷이란 그저 자신을 꾸미기 위한 장식품에 불과했다. 맨몸을 드러내는 데 아무런 수치심도 느끼지 않으니까.
그 탓에 어서 옷을 입으라고 다그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했다.
“이든, 이거 저기에 놔줘.”
[알았따!]생활용품만 꺼낸 작은 배낭을 이든에게 건넨 뒤,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든은 배낭을 방구석에 놔두었다.
마법 주머니처럼 수납 마법이 걸린 것에 물건을 집어넣으면 물건이 이리저리 부딪혀서 아주 난리가 나버린다.
그래서 과포장이라도 안 하는 이상 물건의 온전한 상태를 보장할 수 없으므로, 깨질 위험이 있는 물품들은 대부분 작은 배낭에 담아둔 채였다.
[주인, 난 뭘 도우면 되겠느냐?]“됐어. 이제 곧 나갈 거라서.”
[나가서 뭐 할 생각이지? 뭐…, 보나 마나 또 단련이겠군.]“쉴 거야.”
[그래, 쉴….]뚝 말을 멈추는 힐드.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귓구멍에 이상이라도 생겼는지 자기 귀를 톡톡 두들겼다.
이든도 [구우?]하고 나를 돌아보았다.
[내 청각 기능에 잠시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주인, 방금 뭐라고 했지?]“쉰다고. 오늘은 단련 안 해.”
[아아…. 뭣이?]내 대답을 제대로 이해한 힐드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돌연 무겁게 내려앉는 공기.
힐드와 이든은 두두두 내게 잰걸음으로 다가오더니 고개를 바짝 들이밀었다. 힐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절박하게 물었다.
[무,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이냐? 네 입에서 쉰다는 소리가 나오는 건 처음이지 않느냐…!] [구우!] [인간이란 보통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고 하거늘…! 혹시 그런 연유인가? 그런 것인가?!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냐? 대답해라, 주인!] [구우!]“왜 호들갑이냐, 너네…?”
얘들은 내 입에서 쉰다는 소리가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냥 오늘은 쉬는 게 나아. 가보면 알 거야.”
[어딜 말이냐? 저기? 주인?]나는 사역마들을 제치고 방을 나섰다. 녀석들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강아지처럼 졸래졸래 나를 뒤따랐다.
문을 열자 예쁘게 차려입은 도로시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활짝 웃는 모습이 눈부셨다.
“준비됐어?”
“예, 갑시다.”
“힐드, 이든? 안녕!”
도로시는 내 뒤에 있는 힐드, 이든에게 손을 흔들었다.
힐드는 [반갑다, 도로시.]하고, 이든은 [구우!]하고 한쪽 팔을 번쩍 들며 인사를 받았다.
우리는 숙소를 나섰다.
“느흐흐, 대체 어딜 가려고 우리 단련충이 단련을 마다할까?”
“도로시 선배.”
“왜?”
“온천 좋아해요?”
대뜸 도로시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뭐지?
“…온천?”
싫어하나?
“거기 갈 생각입니다. 싫으시면 어쩔 수 없고요.”
싫다면 도로시는 밖에서 대기해야만 한다. 난 오늘 반드시 온천에 들러야만 하니까.
올드렉이 온천의 명소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온천의 근원지인 핫센 화산에 몸에 좋은 자연 마나가 나돌기 때문이었다.
기왕 이런 곳에 왔으면 하루 정도는 단련이 아닌 휴식에 투자하는 편이 이득이라는 얘기다.
식은땀을 삐질 흘리는 도로시. 심리가 읽히지 않으니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시, 싫긴, 누가? 전혀 아닌 데에?”
도로시는 억지로 웃더니 자기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잊었나 보군, 회장? 이 누나는 오늘 너랑 딱 붙어서 널 전담, 통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구? 온천 정도는 따라 들어가는 게 맞는 거야.”
“그럼 뭐, 상관없고요.”
회장 소리 나왔네. 당황했나 보다.
몸에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다든가, 뭔가 숨겨야만 할 것이 있어서 그런 거라면 내가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그런 암울한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럼 괜찮겠지.
‘도로시랑 같이 온천….’
상상만 해도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이곳의 온천은 맨몸으로 입수할 수 없고, 제공되는 가운을 차려입어야 하지만.
가운 차림의 도로시를 본다는 사실만으로 눈이 즐거운 건 물론이요, 그녀와 함께 온천물에서 힐링하는 시간은 최고의 순간일 터였다.
과하게 표현하자면, 행복사로 죽을 우려도 있었다.
“너 인마, 너무 기뻐하는 거 아니야? 누나 상대로 이상한 상상 했지?”
도로시는 스스로를 껴안는 자세로 자기 가슴을 가리며 상체를 뒤로 빼더니, 능청맞게 웃으면서 추궁했다.
날 놀리려는 의도였다.
“…….”
“저기, 왜 대답 안 해…?”
얘가 사람 감정 읽을 줄 안다는 걸 깜박했다.
……
[이곳이 온천인가….]이든, 힐드, 도로시와 함께 도착한 곳은 숙박촌에서 수십 분 걸어간 곳에 위치한 노천탕이었다.
뿌연 증기 속, 이든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얇은 가운만 달랑 걸친 차림이었다. 서늘한 밤바람과 따뜻한 증기가 한꺼번에 피부를 감쌌다.
“다른 데에 비해 손님이 많진 않네. 왜 여기로 온 거야?”
“여기가 제일 나아 보여서요. 피로 회복, 몸에 쌓인 독소 물질 배출 후 분해, 근육통 완화, 마력 회로에 안정감 제공, 피부 개선 등. 여기서 거둬가야 할 효능이 아주 많습니다.”
“아, 그래. 단련충 답게 유식하구만….”
이곳은 남녀 혼욕탕으로, 남녀 구분 없이 손님이 여럿 있었다.
이곳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본래 이 세계의 온천은 남녀 혼욕이 기본이니까. 단순히 몸을 씻는 목욕보다는 몸에 좋은 효과를 거두기 위한 목적이 강한 편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옛 유럽의 온천 문화와 비슷하다.
전술했듯, 이곳 온천의 근원지인 핫센 화산에 담긴 자연 마나가 몸에 이로운 효과를 극명하게 끌어올린다. 특히 이곳 온천물에는 그 자연 마나가 훌륭하게 섞여 든 편이었다.
‘일반인들은 그 차이를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즉, 이곳이야말로 숨겨진 명소인 셈이었다.
[당최 이해할 수가 없구나. 뜨거운 물에 몸 담그는 행위가 뭐가 좋다고 이런 시설들이 발전했는지 원….]힐드는 여러 온천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을 바라보며 투덜댔다.
“전 주인이 이런 데 안 데려다줬어?”
태초의 빙제, 베로니카 아슬리우스가 살았던 시대가 어땠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전생에서 온천의 역사가 깊었던 걸 고려한다면, 베로니카의 시대에도 온천 정도는 있었을 듯했다.
‘걔라면 힐드를 신경 쓰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한데….’
태초의 빙제는 뭐랄까,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이었을 테니까.
설령 목욕탕에 가려 했더라도 힐드는 역소환시켰을 것이었다.
“뭐, 몸 담가보면 알 거야. …근데 도로시 선배, 아까부터 왜 그래요?”
“뭐가? 내가 왜? 뭐 문제 있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엉성한 미소와 상기된 뺨.
도로시는 가운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가슴골 따위를 가리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오히려 몸매가 부각되어 다른 면에서 내 눈이 호강하고 있었다.
‘부끄러운 건가?’
사람이 흥분해 코피를 쏟을 수도 있다는 게 순전히 만화적 표현 따위가 아님이 절로 실감이 났다.
실제로 코피가 나지 않았지만.
“누나 먼저 들어간다?”
“아, 네….”
도로시는 다급히 간이 샤워실에서 몸을 간단히 씻은 뒤, 아무도 없는 온천물에 입수했다.
곧 그녀는 “느햐아…. 살 것 같다….”하고 축 늘어졌다.
나는 이든과 함께 씻고서 녀석을 껴안은 채로 도로시가 있는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이든은 눈을 감더니 [구우우….]하고 온천물이 바위 몸에 스며드는 감각을 즐겼다.
[잠깐, 주인…!]어째선지 힐드는 내가 용암에라도 들어가는 것처럼 아연실색했다.
“왜?”
[뜨, 뜨겁지도 않은 것인가? 이리도 조심성이 없다니…! 이든, 네 녀석은 왜 갑자기 조용해진 거지? 위험한 거 아닌가?!]설풍이 몰아치는 환경에서 자랐던 까닭일까.
추위에 익숙한 얼음 속성 마수로서 이런 뜨거운 물에 지레 겁먹고 마는 모양이었다.
주위 손님들은 어그로를 끌고 있는 힐드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중 남자들은 입을 떡 벌리더니 힐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시끄럽고, 일단 들어와 봐.”
[…끄.]사역마는 주인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힐드는 인상을 구긴 채 온천물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힐드는 눈을 반쯤 뜨고 경계심을 내비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물에 발가락을 살짝씩 맞대길 반복했다. 녀석의 발가락에 흐르는 미미한 냉기 마력이 엿보였다.
뿔이 없는 상태라 그런지 느껴지는 마력의 양은 많지 않았다.
답답하네….
“힐드, 손.”
[응?]힐드가 자연스레 내민 손을 붙잡고, 나는 녀석을 끌어당겼다.
[흐얏!]녀석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온천물에 빠졌다. 첨벙, 하고 온천물이 튀겼다.
[주, 주인…! 뜨겁다! 녹아내려! 잡아먹힌다…!]힐드는 내 팔을 꼭 껴안은 채로 눈을 질끈 감고 격렬한 공포에 휩싸였다.
이윽고, 막상 아무 일도 없자 녀석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응?]당황하며 내게서 떨어지는 힐드.
녀석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도로시는 힐드를 보며 실실 웃었다.
[주인, 이 기분은 대체…?]“좋지?”
힐드는 내 사역마이기에, 녀석이 느끼는 기분이 주인인 내게로 온전히 전해져 왔다.
온천의 기분 좋은 감각이 힐드의 전신에 퍼지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5분 뒤.
[주인…. 이것은 아주 좋구나…. 좋은 것이다….] [구우우….]내 옆에 앉은 힐드는 입을 헤 벌린 채 눈을 감고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이든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힐드는 평범한 인간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는, 녀석도 평범한 인간처럼 온천물을 즐길 수 있으리라 확신했던 것이었다.
이든은 나나 힐드에 비해 감각이 무딜 터였으나, 생애 처음 겪는 온천물에 무척 황홀해 했다.
“후우….”
“느햐….”
눈을 감고, 전신을 감싸는 따뜻하고 포근한 감각을 만끽했다.
여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이런 휴식이 호화롭게 느껴진다.
하물며 옆엔 최애캐까지 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었다.
그때였다.
“용케 여기가 명소인 걸 알았네.”
문득 들려오는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 나는 눈을 뜨고 정면을 쳐다보았다.
내 맞은편에 두 명의 젊은 남자가 같은 온천물에 들어왔다. 전신을 뒤덮은 얇은 가운은 그들의 근육질 몸매를 가리지 못했다.
두 사람 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머리카락 색은 청색과 적색으로 각각 달랐지만, 얼굴 만큼은 서로 똑같았다. 쌍둥이 형제였다.
“너희, 어느 아카데미에서 왔냐?”
내게 말을 걸었던 적색 머리칼의 남자가 거만하게 웃으며 물었다.
나는 그들이 누군지 알았다.
‘맥그리거 형제?’
아카데미 대항전에서 라이젤 아카데미 측의 최고 전력. 3학년 쌍둥이 형제.
레벨은 각각 161, 162.
학생 나이치고는 모두 내로라하는 천재들임이 틀림없는, 맥그리거 형제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