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331)
〈 331화 〉 미첼 (1)
* * *
내 방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옷 매무새를 살폈다.
교복 넥타이에 달린 브로치는 최종 학년을 상징하는 보라색 빛깔을 내비쳤다.
1학년 때에 비해 신체도 많이 달라졌다. 눈매는 성숙해졌고, 키는 185cm로 성장했다. 체격도 봐줄 만하며, 옷을 벗으면 압축된 근육이 선명히 보인다. 극적인 성장세였다.
처음 아이작이 되었을 땐 연약한 미소년상이었다면, 이젠 소년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완전한 미남상이었다.
“준비됐고.”
뜨거운 커피를 타고 냉기 마력을 흘려 식힌 뒤 단번에 들이켰다.
마지막으로 동그란 리벨라의 안경을 쓰고 가방을 챙겨 기숙사를 나섰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아카데미에 만연했다. 신축 건물들과 새로운 구조물들을 보니 신선한 기분마저 든다.
하늘은 푸르다.
교복 차림의 학생들은 웃으면서 수다를 떨며 등교한다.
문득 청소부가 염동력으로 빗자루를 다루며 높은 곳에 떨어진 꽃잎들을 쓸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야, 저기.”
“와….”
날 힐끔힐끔 쳐다보며 감탄하는 여학생들이 보였다.
존경, 경외, 설렘이 읽혔다. 이젠 익숙한 시선들이었다.
“아이작, 좋은 아침.”
“안녕. 가자.”
기숙사 대문 앞에서 루체 엘타니아가 날 맞이했다. 그녀는 이제 ‘오늘 날씨 좋지?’ 따위보다 좀 더 무난한 인사말을 쓸 줄 알게 되었다.
그간 루체와 많은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평소처럼 지내기로 서로 불문율로 합의된 것 같았다.
가장 소유욕이 강했던 루체였기에 누구보다도 내 하렘에 반대할 줄 알았는데, 이젠 그런 건 딱히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내 사회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하렘을 꾸리지 않는 편이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루체는 다른 여자들을 허락하는 대신 어떻게든 내 첫 번째 여자가 되려는 눈치였다.
‘내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진 모르겠지만.’
만약 루체를 포함해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면, 당연히 그녀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퍼부어줄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우리는 함께 등굣길에 올랐다.
이곳은 메르헨 아카데미 제2캠퍼스다.
제2캠퍼스 이주에 반대하는 교직원이나 학생은 없었다.
반대 의사를 품었더라도 눈치껏 조용히 있었을 것이다. 제2캠퍼스 건축은 마족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던 탓에 진행된 사안이었으니.
이미 좋은 인식이 박살 날 대로 박살 난 기존의 터에서 벗어난다는 데 누가 반대할 수 있었을까.
위치도 좋았다. 수도 브얀스 인근이니까. 여차하면 브얀스에서 곧장 황실 기사들이 달려와 아카데미를 지켜 줄 수도 있으리라.
게다가 아카데미는 폐쇄적인 교육 방침에서 탈피해 학기 중에도 교문을 개방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덕분에 주말엔 마음껏 외출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메르헨 아카데미의 정통적인 방식을 그리워하는 학생들도 많았으나, 지금은 제2캠퍼스 시범 운영에 동참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지금부터 메르헨 아카데미 신입생 입학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카데미 광장에 질서정연하게 정렬한 신입생들이 보였다. 입학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와 루체는 광장 쪽을 살폈다.
입학시험 우수자로 무녀 미야와, 노아 바르탕의 동생인 타린 바르탕이 보였다. 그중 미야가 수석인 듯했다.
‘역시나.’
당연한 결과겠지. 더 볼 것도 없었다.
광장을 지나쳐 수업동으로 향했다. 제2캠퍼스여도 학생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모든 건물들엔 제1캠퍼스에서와 같은 이름이 주어졌다. 내가 향한 곳은 오르핀관(신)이었다.
학생들의 존경심 어린 시선과 갖은 인사를 받아주며 3학년 임시 반에 도착했다.
3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학생들 개개인의 진로에 걸맞은 커리큘럼을 따르게 된다.
클래스별 공통 수업은 모두 들어야 하지만 이는 최소화되어 있다.
‘난 이제 들을 필요도 없지만.’
오즈마의 힘을 흡수하면서 얻은 특혜는 능력치뿐만이 아니다.
지식도 포함이다.
지금의 나는 9성급 마법조차 사용할 수 있는 방대한 지식량을 갖춘 상태였다.
‘날로 먹기다, 진짜.’
오즈마의 생애를 받아들이고 알았다.
그녀는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의 본질 속을 떠돌아다니며 많은 지식을 공유받았다.
태초의 원왕들도 그 대상이었다. 오히려 원왕들이었기에 오즈마를 더욱 끌어당겼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덕분에 9성급 마법까지의 지식을 모조리 습득했다.
문득 오즈마의 생애에서 보았던 태초의 암제가 떠올랐다.
진실을 좇겠다며 얼음 호수에 찾아갔던 태초의 빙제와는 달리, 태초의 암제는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진실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
그의 호탕함과 용맹함은 내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었다.
“이제 같이 수업 들을 일, 거의 없겠네.”
임시 반 교수가 반 배정 평가 공지사항을 전달하던 때, 옆자리에서 루체가 소곤거렸다.
“그렇겠네.”
“안 외롭겠어?”
“외롭진 않겠지. 너나 다른 애들이 다 여기 있는데.”
“그래?”
내가 오즈마의 힘을 흡수하며 얻은 고위 마법 지식은 어디까지나 천 년 전의 것.
엘리트 교수들의 현대 마법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 외의 수업을 들을 메리트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교장 엘레나 우드라인과 이야기를 나눈 뒤, 실습 수업 두 과목을 제외하곤 수업에서 모두 빠지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허락돼선 안 될 일이었으나 지금이 특수환 환경이었기에 그리 합의할 수 있었다.
‘황제에게 악신 얘길 전했으니까.’
슬슬 말할 시기가 되었기에 카를로스 황제에게 악신이 언제쯤 부활할지 이야기했고, 그는 국민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그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며 안전을 꾀했다.
아카데미의 모든 이를 제2캠퍼스로 이주시킨 진짜 이유였다.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악신이 부활하기 전에 제1캠퍼스가 있는 섬을 텅텅 비워야 할 테니.
교장 엘레나도 예외적으로 그 정보를 전달 받았기에 내 편의를 봐주었다.
그리 확보된 개인 시간 동안엔 단련에 박차를 가할 셈이었다.
‘메피스토가 문제네.’
내가 아카데미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상주하는 이유다. 메피스토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지 모르니까.
현재 상귀-메르뷸을 필두로 내 많은 하수인들이 메피스토를 추적하고 있다. 원더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깜깜무소식이었다. 수색 범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불가피했다.
그나저나….
“뭐 하냐, 루체?”
얘 뭐지?
루체는 교수를 쳐다보며 슬그머니 내 손을 더듬고 있었다. 은밀한 마찰이 야릇하게 느껴졌다.
“유혹하는데?”
“뻔뻔하네….”
루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아카데미 상가에 들어선 마도구점에 들렀다. 첫 방문이었다.
저번에 알아본 바, 젊은 여자 사장이 운영한다는 상점이었다. 제2캠퍼스가 최근에 완공된 까닭에 상점들도 죄다 이번에 입점했다.
대부분 기존의 아카데미 상가에 있던 상점들로, 이번에 이사했다. 다들 종업원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었다.
“어서 옵…, 회장!”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던 연보랏빛 머리칼의 여성이 날 맞이했다. 그녀는 빗자루질을 멈추고 내게 환한 미소를 건넸다.
“어쩐 일이야? 누나 보러 왔어?”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이 그녀의 능청맞은 얼굴을 아름답게 비추었다.
종업원, 도로시 하트노바였다. 나는 그녀를 보러 왔다.
“으윽…!”
이럴 수가.
심장이 미친 듯이 달음박질하자 가슴을 움켜쥐고 신음을 토해냈다.
상점 콘셉트에 맞게 예쁜 마녀 복장을 한 도로시의 모습이 심장에 강력한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사진기 챙겨올걸. 뼈아픈 실수다.’
지금 이 순간, 이 감정을 기억 속에만 간직해야 한다니. 참으로 원통하고 비통하구나.
“니히히, 누나가 예뻐서 심장에 타격을 입었구나! 맞지?”
“꼭 그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해야 합니까…?”
도로시가 내게 달려와 웃는 얼굴로 묻자 나는 눈을 좁히고 장난스레 따졌다. 감정 읽히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춤을 추듯 한 바퀴 몸을 돌렸다.
“다음에 자랑하려고 했는데. 여기 유니폼 완전 예쁘지? 내 나름대로 맞춤 제작도 했다구?”
“네, 잘 어울립니다.”
“니히히.”
“선배, 혹시 이상한 놈들이 꼬리 치진 않았죠?”
“응? 그런 일이야 뭐…. 없었던 것 같은데?”
도로시는 내 눈을 피했다.
“있구나.”
“어쩌겠어…. 누나의 매력은 주체하고 싶다고 주체할 수 있는 게 아니라구?”
어깨를 으쓱하는 도로시.
확실히. 도로시라면 고백 받은 경험이 많았을 듯했다.
“회장도 그 매력 때문에 반한 거잖아, 나한테?”
“그건 그렇죠.”
“조금은 부끄러워해도 좋을 텐데. 귀염성이 없네.”
도로시는 빗자루 위에 손을 올리고 그 위로 턱을 받쳤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날 귀여워하는 미소가 만면에 가득했다.
그녀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별거 아니었다.
별빛 마력의 단련법은 명상 말곤 없으며, 이는 종일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남는 시간엔 생계를 병행할 목적으로 이곳에서 일하기로 한 것이었다.
“헉…!”
마도구가 담긴 가벼운 상자를 옮기던 젊은 여자 사장이 날 발견하더니, 헐레벌떡 달려와 내게 상체를 굽혔다.
“어, 어서 오세요! 비, 빙제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엔 어쩐 일로…?”
내게 존경심과 두려움을 품은 듯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새로운 빙제가 나타났다는 소식만이 세계에 퍼져 있었다면, 이젠 아예 내 이름이나 얼굴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각종 서적에서 이름 없는 영웅이라 불렸던 빙제의 영웅담을 담아냈고, 도시를 유랑하는 방랑 시인들은 노랫말로 나를 찬미했으며, 황국에서도 나와의 동맹 관계를 공식적으로 선포했으니.
하물며 황국에선 뒤펜도르프에 온갖 외교적 선물 공세를 퍼붓는 실정이며, 내 활약상 덕분에 뒤펜도르프의 위상도 올라가 내 위치는 더욱 공고해졌다.
사실상 이젠 날 못 알아보는 이를 찾기가 더 어려워진 셈이었다.
당사자인 내겐 무척 낯부끄러운 일이었으나, 이젠 별 감흥이 없었다.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는 실감이 난다.
“법진용 양피지 사러 왔어요. 30장 묶음 정도로.”
그냥 도로시 보러 온 것이었지만, 기왕 왔으니 뭔가 팔아주는 편이 낫겠지.
“당장 준비해 오겠습니다!”
여자 사장은 허겁지겁 선반에 두루마리 형식으로 가지런히 놓인 양피지 묶음을 3개 가져 왔다.
값을 치르고 도로시를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망막에 새기고 싶어서였다.
그녀도 같은 마음인지 나와 눈을 맞추며 방긋 웃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정말로 영광입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 사장은 과하다 싶을 만큼 상체를 연신 숙여댔다.
“저야말로. 예쁜 유니폼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내 말 뜻을 이해하지 못 했는지 여자 사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의문을 표했다.
나는 도로시와 손을 흔들고 인사한 뒤 상점을 나섰다.
……
“여기가 좋겠네.”
해가 뉘엿뉘엿 지며 하늘이 어스름한 주황빛으로 물든 때였다.
딱히 사람이 드나들 것 같지 않은 야외 대련장을 발견했다. 내 옆엔 이안 페어리테일과 에이미 할로웨이가 나란히 있었다.
“역시 있구나. 신축이라 그런지 예전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이네!”
“난 예전 감성이 더 좋은데.”
감탄하는 에이미와 투덜대는 이안.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나와 이안은 대련장 위에서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섰고, 에이미는 관중석에서 우릴 지켜보았다.
“이안, 너도 실력 좀 붙은 것 같으니까 이제부턴 더 빡세게 간다. 각오해.”
“얼마든지!”
이안은 수련용 검을 거머쥐고 자세를 취하며 힘차게 대답했다.
좋은 기합이다.
“모르칸.”
내 앞에 연푸른빛 소환진이 나타나더니, 그 위로 얼음 마력이 뭉치며 장신의 서리 기사가 나타났다.
은빛 갑주를 차려 입은 그는 냉기를 흘리며 연푸른 안광을 발했다. 뒤펜도르프의 기사단장, 모르칸이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내게 예를 표했고, 이안은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이안 훈련시키는 데 어울려 줘. 평소보다 난도 올려서.”
[존명. 받들겠습니다.]모르칸은 엄숙하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안을 쳐다보았다.
신장이나 체격, 모두 크게 차이가 났다. 모르칸은 허리춤에 찬 검이 아닌 내가 준 수련용 검을 한 손으로 꼬나쥐었다.
그리 대련이 시작되려는 때였다.
“뭐야, 전혀 승부가 안 되겠는데?”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와 모르칸, 이안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이미 뒤편. 관중석에 아카데미 교복과 빨간 망토를 입은 소녀가 양손으로 턱을 괸 채 대련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복 리본에 착용된 붉은색 브로치는 1학년을 상징한다. 즉, 신입생이었다.
그 소녀를 알았다. 후드를 덮어쓰지 않아 머리가 훤히 보인다. 땋아 내린 샛노란 머리칼과 벽안.
입이 벌어졌다.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었으니.
“너…?”
처음 봤을 때보다 어엿하게 성장해 있었으나 분명했다.
날 왕자님이라 부르고 내게 화신의 가호를 내렸던 빨간 망토 소녀, 미첼이었다.
이안과 에이미는 나와 미첼을 번갈아 보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는 사이야?”
이안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첼은 사뿐히 뛰어 대련장에 이르렀다. 연약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뛰어난 운동 신경이었다.
그녀는 내 앞으로 다가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오랜만이야, 오빠. 만나러 왔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