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51)
방학식 날 오후.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뭉게구름이라 생각했던 게 적란운인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도중에 단련을 그만두고 기숙사 도리스관으로 돌아와야 했고.
이왕 비 맞고 씻은 겸,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한 뒤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여름방학도 맞이했으니 머릿속에 담고 있던 계획을 구체화해 보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양피지를 펼치고 깃펜에 잉크를 묻힌 뒤, 계획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다음 학기 등록금 문제.’
매 학기 등록금은 5만 겔이다. 등록금 용도에 한정해서 외부 금전을 겔로 환산할 수 있으니 그걸로 충당해도 되고, 아니면 아예 겔로 지급해도 무방하다.
나는 탄타크 지하 동굴에서 대량으로 얻은 제프림을 팔아 많은 겔을 벌어들였지만.
아르마나의 완드를 사면서 꽤 출혈 있는 지출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겔은 등록금에 비하면 조금 모자란 편.
방학 때 지출할 식비까지 고려하면 겔을 벌어들이는 데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었다.
[원소 효율]을 높여주는 아르바이트 컨텐츠를 하나 알고 있었다. 방학 동안 그 일을 하면서 벌어들인 겔과 기존의 겔을 합친다면 등록금은 충분히 마련될 것이다. 단련에도 도움되는 건 덤이다.‘방학 스케줄은….’
아르바이트 근무 시간을 제외한다면 오로지 단련의 연속이다. 아카데미 외부 컨텐츠를 즐기는 것도 성장에 도움되지만, 지루한 단련이 성장에 있어선 가장 효율적이다.
나는 상태창이 없었다면, 성장 속도가 남들보다 훨씬 뒤떨어졌을 최약체 아이작이다. 최대 효율로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결국 재미없는 아르바이트랑 단련의 연속이겠고. 그럼 남은 건….’
이번 여름 방학에서 빅 이벤트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힐드의 서리낫.
1학년 이내로 얻고 싶었던 그 전설 무기를 이번 방학 때 노릴 수 있게 됐다.
힐드의 서리낫을 얻으려면 시련을 통과해야 한다. 시련 내용은 정신적인 것이다. 현실이 아닌 일이 벌어지는데, 뭐 극복해내면 될 일이다.
시련의 내용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그래서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이안으로서 겪었던 시련과, 아이작으로서 내가 겪게 될 시련은 내용이 많이 다를 것이다.
‘내 게임 지식이 통할지 모르겠네.’
시련이 끝날 때까지 나는 서리낫이 내뿜는 냉기 속에 머무르게 된다.
따라서 서리낫을 얻기 위해서 [얼음 속성 원소 저항력]을 60 이상 올리는 게 최소한의 조건이라 한 이유는.
‘시련을 통과할 때까지 냉기를 버텨 내기 위한 최소한의 역치’라는 얘기다.
즉, 내 몸이 한계에 이를 때까지 시련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개위험한 거 아님?’
막상 서리낫을 얻을 수 있는 때가 되니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가슴속에 확 와닿았다. 뇌신조와 싸우면서 죽음이 그리 먼 얘기가 아니란 걸 느껴버린 탓도 큰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마족 담당일진이지, 시련에 있어서는 평범한 아이작일 뿐이고….
“그래도… 이거 얻으면 파워업 오질 텐데.”
목숨을 걸 메리트는 충분히 있었다. 나는 무기를 다룰 줄 모르지만, 힐드의 서리낫은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음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켜준다. 마법사가 스태프 다루듯 써도 된다는 얘기다.
즉, [빙제]를 발동시키고 힐드의 서리낫까지 쥔다면 최강 아이작 탄생인 셈이었다. 아이작 코인 떡상하다못해 화성까지 갈 기세다.
물론 [빙제]는 아직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상황. 얼음 속성 최종 패시브 스킬인데, 벌써 잘 다루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게다가 힐드의 서리낫도 부작용이 있다. 그 무기는 사용할 수록 사용자의 신체를 냉기로 잠식해간다. 물론 그 문제는 강해질 수록 점차 나아질 테고.
적어도 [빙제]처럼 아예 다루지 못 하는 건 아니니. 그것만 해도 어디냐.
“방한 도구부터 챙겨야겠네.”
각 원소 속성 최종 무기는 놀랍게도 전부 메르헨 아카데미에 있다.
‘미래에 파멸의 악신이 부활해 세상에 종말을 가져오려 하나, 용맹한 영웅이 나타나 악신을 막아서리니’.
각 속성의 대마법사들, 통칭 ‘태초의 원왕’이란 자들이 내다 본 단편적인 미래의 편린이다. 당연하게도 그 영웅은 빛의 아이인 주인공 이안 페어리테일을 의미한다.
태초의 원왕들은 먼 미래에 나타날 이안 페어리테일에게 힘을 보태기로 한다. 하지만 미래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서, 악신을 막을 영웅이 어떤 속성인지는 알 수 없었던 상황.
결국 그들은 다 같이 원소 속성별 최종 무기들을 남겨 놓기로 한 것. 그 장소가 바로 이곳, 영웅이 자신의 자질을 본격적으로 깨우치게 될 메르헨 아카데미가 된 것이었다.
‘그 설정은 2학년 2학기 때 나오지.’
즉, 이안이 속성별 최종 무기를 손에 넣는 것도 2학년 2학기 때란 얘기. 뭐, 다른 건 됐고 나중에 시엘과 잘 협업해서 적절한 때에 창명검이나 무사히 얻어와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자,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명확하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이곳저곳에 숨겨져 있는 히든 피스, ‘빙제의 흔적’을 찾는 일이다. 그 아이템은 총 4개로 구성되어 있다.
총 4개의 ‘빙제의 흔적’을 찾아내고 에일라 숲에 있는 어느 마법진에 손을 올린 뒤.
‘서리의 시련을 받겠노라’라고 한마디 해주면 알아서 시련 장소로 이동될 것이다.
‘준비물은….’
나는 옷가지나 방한용품, 불 속성 손난로 등 챙겨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시련을 버텨 내려면 일단 몸부터 따숩게 만들 필요가 있을 테니.
그러던 중, 양피지를 고정하고 있던 왼손이 눈에 띄었다.
손목에 새겨져 있는 검은색 각인. ‘8성급 사역마 계약진’.
왼손을 들어 그 각인을 자세히 살폈다. 내가 알고 있던 8성급 사역마 계약진과 동일한 형태. 다만, 아직 아무것도 깃들지 않아서 칙칙한 검은색만 띄고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문신이랑 다를 게 없었다. 지워지지도 않고, 뭔가 느껴지지도 않으니.
천앙의 대마녀는 내 운명을 보고 가장 필요한 선물로 이 계약진을 줬다고 했었지.
조만간 8성급 마수와 엮이게 될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 녀석 말곤 없을 터다.
‘빙설룡-힐드….’
서리낫을 지키고 있는 빙결의 백룡.
8성급 얼음 속성 마수, ‘빙설룡-힐드’.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최종 무기들을 지키고 있는 놈들은 죄다 8성급 마수뿐이다.
게임 극후반부쯤 8성급 사역마 계약진을 손에 넣으면, 그중 자기 원소 속성에 맞는 8성급 마수와 계약을 맺으러 갈 수 있다.
조건은 두 가지. 첫째, 최종 무기를 손에 넣었을 것. 둘째, 8성급 마수와의 승부에서 승리하여 자신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것.
‘빙설룡-힐드’를 내 것으로 만들려면 시련을 통과해 서리낫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놈을 쓰러뜨리기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그놈은 마족이 아니라 순수한 마수다. 즉, [멸악자] 비활성화 상태인 평범한 아이작의 몸으로 녀석을 상대해야 한다는 얘기.
‘말도 안 되지.’
절대로 못 이긴다. [멸악자] 상태로 8성급 사역마, 뇌신조-갈리아와 싸울 때도 죽을 뻔했던 나다. 심지어 그놈 체력도 많이 깎여 있는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하물며 평범한 아이작의 몸으로 체력 만땅인 8성급 마수, 빙설룡-힐드를 이겨라?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빙설룡 말고는 떠올릴 수 있는 8성급 마수가 없었다.
‘그 마녀는 대체 내 운명에서 뭘 본 거냐?’
사실은 그냥 손에 잡히는 거 아무거나 준 게 아니었을까.
…답이 안 나오는 생각은 지양하고 ‘빙제의 흔적’ 아이템 4개나 찾으러 가자.
각 아이템의 위치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아카데미를 뒤져볼 생각에 엿 같게 신이 난다.
나는 계획을 적은 양피지 위에 깃펜을 올려 둔 뒤, 책상 의자에서 일어나 편안한 남색 체육복과 우비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 후, 방을 나섰다.
* * *
어느덧 천 년째다. 한여름에도 북부지역을 아우르고 있는 화이트클락 공작령엔 기후와 맞지 않은 흰 눈이 춤을 추며 내려오고 있었다.
해발고도 9000m 에펠 산맥에 냉기를 휘감은 얼음 마나가 휘몰아치고 있는 까닭이었다.
태초의 원왕, 빙제, 낫을 든 마녀라고도 불렸던 얼음 속성 대마법사가 북부 지역을 지키기 위해 태고의 마족과 싸운 영향이었다. 그때 대마법사가 부렸던 8성급 사역마, ‘빙설룡-힐드’의 자태는 화이트클락 가문의 상징 ‘백룡 문양’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메르헨 아카데미의 A 클래스 소속이자 분홍빛 단발머리의 여학생, 케리드나 화이트클락은 저택에 돌아온 후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뒤.
잰걸음으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문밖에서 메이드들이 목욕 준비를 해놓겠다고 하자, 케리드나는 “어, 어…!”하고 대놓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크크크크큭….”
메이드가 떠나간 뒤.
케리드나는 식은땀을 한방울 흘리면서 사악한 악역 같은 웃음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이러면 분위기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며 쌓아온 습관이었다.
“당했구나, 그 평민 녀석. 날 무시하더니 말이야.”
귀가하려고 아카데미를 나서기 전, 방학식 때였다.
케리드나는 인파가 혼잡한 틈을 타서 청은발의 D 클래스 남학생, 아이작을 옆을 스쳐지나가며 그에게 어떤 마법을 심어두었다.
화이트클락 가계 마법, [시야 동화]. 에이미의 할로웨이 가문 [심색 분별] 마법처럼 화이트클락 가문의 직계혈통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용 마법이었다.
특정한 상대에게 마법을 걸어두면, 아무리 상대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 사람의 시야에 내비치는 광경을 눈으로 확인하고 기억 속에 저장할 수 있다.
거리가 떨어져 있을 수록 마나 소모량이 상당하므로 상대방 시야에 비치는 광경을 쭉 보는 건 어렵고, 단편적으로 띄엄띄엄 보는 게 요령이라고 저번에 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케리드나의 언니, 에이첼 화이트클락은 이 능력으로 황족을 제외한 약 20명 정도의 주요 권력자들 시야를 감시하고 화이트클락 가문의 권력 다툼에 이바지하고 있었다. 들키면 화이트클락 가문의 멸문까지도 상정해야 할 정도로 큰일이 벌어지겠지만, 이제껏 그런 적은 없었다고 한다.
참 대담한 언니였다. 여담이지만, 뭔가 숨기고도 있는 것 같고.
아무튼, [시야 동화]는 여태 다른 사람들에게 들킨 적이 없었다. 마나를 발산하고 있지 않아서 마나 감지가 먹히지 않는다는 특색 또한 있으니. [시야 동화] 마법을 감지하려면 그 마법의 사용자인 화이트클락 가문의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만 가능했다.
결국 [시야 동화]는 화이트클락이 공작 가문으로 발돋움하고 권력 다툼에서 승자가 될 수 있게 한 일등 공신인 셈.
그런 마법을, 케리드나는 사적인 용도로 써버린 것이었다. 부모님께 들키면 노발대발하실 사안이니 절대로 들켜선 안 됐다.
“대체 그 평민이 뭐길래 다들 그리 난리인지.”
청은발의 D 클래스 평민. 이번 방학 동안 그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치리라.
케리드나는 인맥을 중시했다. A 클래스에 소속되자마자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려 노력했던 게 바로 그 이유. 훌륭한 인맥은 자기 앞날에 큰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번 1학기 동안 성과는 지지부진하긴 했지만.
수석 루체 엘타니아나 차석 카야 아스트레앙, 삼석 시엘 카르네다스와 엮여 있는 그 정체불명의 D 클래스 평민의 생활을 들여다본다면.
그녀들을 인맥으로 포섭할 수 있는 좋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나는 사적인 용도로 [시야 동화]를 쓰지 않았어. 모든 건 내 사회적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함. 결과적으로 화이트클락 가문을 위한 일!’
그렇게 사고를 확장시켜가며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스스로에게 주장하는 케리드나.
창밖엔 깜깜한 어둠이 드리운 채였다. 화이트클락 공작령엔 1년 중 340일 동안 눈이 내리기에, 오늘도 사근사근 눈이 내리고 있는 풍경이 케리드나의 눈에 내비쳤다.
지금쯤 그 정체불명의 D 클래스 남자는 뭘 하고 있을까.
케리드나는 넓은 책상에 앉고 나서,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습기 찬 공간. 떨어지는 물줄기. 아이작의 시야는 부옇게 보였다.
이건… 샤워 중인 건가.
문득 아이작의 상체가 거울에 비쳤다. 생각보다… 몸이 괜찮았다.
‘뭔가, 뭔가….’
눈이 호강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평민, 이렇게 몸이 좋았던가? 의외였다.
“흐, 으, 음….”
점점 남의 사생활을 실시간으로 엿보고 있다는 사실이 케리드나에게 죄책감과 배덕감을 전해주기 시작했다. 도덕적으로 질타 받아도 마땅한 짓이었으니.
이어서 아이작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향하기 시작하고.
케리드나는 깜짝 놀라 다급히 눈을 번뜩 뜨고 [시야 동화] 마법을 차단했다. 그 이후의 시야까지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허억, 이런 마법이었어…?”
숨을 몰아쉬는 케리드나. 그녀로선 처음 써 보는 가계 마법이었다.
아주 잠깐 상대방의 시야를 본 것만으로 이만한 심리적 부담감이 느껴지다니…. 민망해서 죽는 줄 알았다.
평소 20명의 귀족을 감시하면서 살고 있는 언니는… 별의별 꼴을 다 보고 살았겠지.
‘언니, 당신은 대체 어떤 싸움을 해 오신 겁니까…?’
언니, 에이첼 화이트클락에게 이런 식으로 존경심이 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흠칫흠칫. 케리드나는 빠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기 말곤 아무도 없는 이 방에 혹여라도 누가 있는 건 아닌지.
특히나 에이첼 언니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갑자기 나타나곤 하니까 더욱 주의가 필요했다.
“조금만, 더 볼까? …아니지.”
케리드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대가 샤워 중이니. 아무리 [시야 동화]를 쓰더라도 양심적,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란 게 있는 것이다.
이미 아이작의 사생활을 훔쳐보았으면서도, 케리드나는 그런 생각으로 죄책감을 덜어내려 했다.
화이트클락 가문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 죄책감으로부터 눈을 돌려온 것일까.
뜻밖에도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었다.
* * *
빙제의 흔적은 미량의 마나도 발산하고 있지 않은 연파란색 마석이며, 총 네 등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것들을 전부 찾는 데는 꼬박 3일이 걸렸다. 하루 만에 다 찾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얼마나 만용이었는지 실감이 났다.
첫 번째 조각은 네이신 해안 동굴에서 찾았다.
두 번째 조각은 조세나 숲 어느 나무 안에서 찾았는데, 일단 그 나무 찾는 데 아침부터 밤까지의 일과가 전부 소모됐다. 가장 기억이 흐릿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조각은 도서관 고(古)서적란에 있는 어느 책 안에서. 책 제목을 알고 있었기에 도서관에서 찾는 건 금방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조각은 창궁 공원에서 찾았다. 산 위에 있는 공원으로, 메르헨 아카데미의 경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였다.
아이템을 찾을 때마다 [축하합니다! [빙제의 흔적 1]을 찾으셨습니다!] 같은 식으로 시스템 창이 나타나서 빙제의 흔적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중간에 루체가 “아이작, 뭐 해?”하고 따라붙었을 땐 운동 중이라며 대충 둘러댔다. 참고로 그녀는 방학 동안 아카데미에 남아 있기로 한 입장이었다.
─ ‘아이작, 방학 때 집에 가?’
─ ‘아니, 너는?’
─ ‘아이작 집에 안 간대서 안 가려고.’
─ ‘……???’
자기가 정을 둔 사람이 엘타니아 저택이 아니라 아카데미에 있으니 굳이 떠날 이유가 없다고.
절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이유였다.
저녁.
네 번째 마석 조각까지 찾아내자마자 나는 곧장 에일라 숲으로 향했다. 메르헨 아카데미 정문 앞에 있는 조세나 숲을 끝까지 가로지른 뒤, 기다란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숲이었다.
얼음 마나를 휘감아 연푸른빛 나뭇잎으로 이루어진 나무들은 숲의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에일라 숲의 이명이 ‘얼음숲’인 이유가 그 나무들에 있었다.
숲을 가로지르다 보니 설원을 방불케 하는 허허벌판이 펼쳐졌다. 얼음 마나를 미약하게 발산하고 있는 하늘색 잔디밭. 은근한 한기가 내 피부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벌판 한가운데, 거무칙칙한 마법진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잔디들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으나, 확실한 마법진의 형태였다.
“다 왔다.”
여기가 시련 장소. 이 마법진 너머에 대마법사 빙제가 남겨둔 빙설룡-힐드와 서리낫이 봉인되어 있을 터다.
태초의 원왕이 밖에서 마나가 감지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설정이 기억난다. 그래서 이제껏 그 누구도 8성급 사역마와 최종 무기들이 이곳에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설령 대마법사급 인물이 오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터.
나는 ‘빙제의 흔적’ 마석 4조각을 꺼내 마법진 위에 떨어뜨린 뒤.
마법 주머니에서 온갖 방한복을 다 꺼내 껴입기 시작했다.
눈 빼고 모든 걸 봉쇄했다. 내 덩치는 수많은 방한복 탓에 초고도비만이 무색할 정도로 두껍게 변했다.
‘걷기 불편해.’
그래도 걸을 만한 정도면 됐다.
나는 심호흡을 깊이 한 후.
한쪽 무릎을 굽…히긴 어려워서 그냥 누워서 두꺼운 장갑 낀 손을 마법진에 올렸다.
얼음 속성 최종 무기를 얻기 위해 시련을 받으러 가는 모양새치고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우스꽝스러웠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주문.
“서리의 시련을 받겠노라.”
순식간에 시야가 연푸른빛으로 물들었다. 마법진에서 발산하기 시작한 강력한 빛이 나를 뒤덮은 것이었다.
돌연 부유감이 느껴지자, 나는 두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