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52)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반짝이는 지면에 눕혀진 채였다. 몸 아래에선 마법진이 잔잔한 연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얼음으로 가득한 동굴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련 장소였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닌 곳이다.
나가려면 빙설룡의 허락이 필요하니까. 이 공간의 출입 권한은 그 용에게 있었다.
‘역시 화려하네….’
게임에서 보던 거랑 현실에서 보는 건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넓은 동굴은 마치 얼음 궁전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로 으리으리한 경관을 자랑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거대한 아치형 통로를 눈에 담고서 나는 헛숨을 집어삼켰다.
통로 너머, 말끔한 형태의 아름다운 빙괴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안에는 하얀 용이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갇혀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뚱뒤뚱 그 백룡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방한복을 하도 껴입은 탓에 걷기가 불편했다.
통로를 지나자, 웅장한 빙괴의 크기가 나를 압도했다.
동굴을 에워싼 얼음 안에는 연푸른빛 냉기 마나가 나돌며 조명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 빛은 빙괴 속 하얀 용의 백옥빛 비늘을 한층 더 영롱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빙괴 안에서도 은은하게 나돌고 있는 연푸른빛 마나. 백룡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빙괴가 유지될 수 있도록 마나가 흐르고 있는 듯 보였다.
그 용은 제르베르 북부의 상징이자 전설이며.
한때 빙제의 사역마였던 8성급 마수, 빙설룡-힐드였다.
[ 빙설룡-힐드 ]Lv : 180
종족 : 마수
속성 : 얼음
위험도 : X
심리 : [ 당신을 반가워하고 있습니다. ]
빙괴 속 빙설룡의 두 눈이 뜨였다. 천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는 광경.
에메랄드처럼 반짝이는 눈동자가 내 쪽을 향했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은 파충류의 것과 같았다.
[인간이여, 서리의 시련을 받으러 왔는가?]빙설룡의 고아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성인 여성 쪽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과연…. 현실로 본 빙설룡의 모습은 어마어마했다. 뇌신조에 맞먹는 크기. 나 같은 건 발로 한번 짓밟으면 벌레처럼 가볍게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긴장된다. 나는 나지막이 숨을 내쉰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곳에 온 것으로 그대의 자격은 증명되었다. 시련의 문을 개방하겠다.]화아아아아아────!!
빙설룡 뒤에 있던 거대한 얼음문이 아가리를 벌리더니, 강렬한 연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으로 이루어진 통로 끝엔 시꺼먼 어둠이 자리 잡고 있었다.
통로 안쪽에서 한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방한복으로 꽁꽁 싸맨 데다가 원소 팔찌를 얼음 속성 저항으로 맞춰둔 상태임에도 추위가 피부에 와 닿았다.
나는 이제부터 저 한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통로를 지나야 한다.
[가혹한 환상이 그대의 정신을, 가혹한 냉기가 그대의 육신을 집어삼키려 할지어니.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해 서리낫의 주인이 될 자격을 증명해 보이거라.]크, 저 공적인 멘트 오랜만에 들어본다. 긴장감과는 별개로, >메르헨의 마법 기사> 2학년 2학기 파트 때 최종 무기 얻으러 와서 감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가슴이 웅장해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제 목숨을 건 게임이 시작된다. 얼어 뒤지기 전에 시련을 극복해내면 서리낫은 내 차지다.
시련의 내용은 악질적이다.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들이 시련을 받는 자의 정신을 좀 먹기 위한 목적으로 짜깁기되는 식.
게임에서는 이안이 괴롭힘과 멸시를 당했던 과거의 한 때가 들이닥쳤었다. 하지만 그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 그런 시련 따윈 스토리 좀 보다가 몹 몇 개 해치우면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내게는 어떤 시련이 들이닥칠지 모르겠다. 이 몸, 아이작의 과거를 헤매게 될까.
‘어떤 시련이든 지금까지랑 다를 게 없지.’
나는 넘어설 뿐.
특히나 정신력 쪽은 자신 있는 영역이었다. 이 최약체에 빙의됐을 때도 정신력만큼은 다른 스탯들보다도 월등히 높았으니.
아무튼, 오늘은 아이작 코인이 급격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날이 될 터.
나는 빙설룡을 지나쳐 연푸른빛 통로로 들어갔다.
뜻밖에 빛은 빠르게 사그라졌고, 어스름한 통로의 풍경이 내 눈에 비쳤다. 깜깜한 밤, 오로지 눈보라만이 소나기 빗발치듯 휘몰아치고 있는 광경이었다.
넓이를 알 수 없는 통로. 다만, 저 멀리. 끝에서 작은 빛줄기 하나가 등대처럼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저곳에 서리낫이 있을 터다.
“개추워…!”
「얼음 장막 (얼음 속성, ★2)」
나는 냉풍을 막기 위해서 장막을 몸 주위로 씌운 채 전력 질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눈알마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달리면서 3초 동안 눈을 감고, 아주 잠깐 눈을 떠서 내가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한 후 다시 3초간 눈을 감는 식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빛줄기에 가까워질 수록 눈보라가 더욱 거칠게 몰아쳤다. 극한의 추위는 방한복 안쪽의 피부를 파고들어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 정도였다.
이윽고.
─────서리의 시련을 받으라.
빙제라 불리던 여인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리며.
나는 정신을 잃어 버렸다.
* * *
빙설룡-힐드는 기억 속을 헤집으며 감상에 잠겨 있었다.
방금 시련을 받으러 들어간 적안의 남자.
추위를 얼마나 끔찍이 싫어하는지 방한복을 빈틈 없이 싸맨 모습은 비록 볼품없었으나.
빙설룡인 자신을 마주했음에도 그는 한 치의 놀라움도, 두려움도 내보이지 않았었다. 마치 당연히 백룡이 여기 있을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심지어 겉보기엔 약해 보였으나, 그에게서 흘러나오고 있는 오오라는 빙설룡이 그리워했던 연푸른빛의 짙은 무언가였다.
빙제. 한때 빙설룡을 사역마로서 호령했던 고대 대마법사의 기운이, 그 약해 보이는 남자에게서 흘러나오고 있던 것이다.
정확히는 아이작의 9성급 패시브 스킬 [빙제]를 간파했을 뿐이었으나, 빙설룡은 그런 정확한 사실까진 모르고 있었다.
[천 년이란 세월도 참으로 허무하구나.]약 천 년 전, 언제나 고독 속에서 살아가던 냉철한 대마법사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최고위 마수, 빙설룡에겐 천 년이란 세월도 무색한 법이었다.
그 세월 동안 빙설룡은 꿈속을 표류해 왔다. 꿈속에선 빙제와 함께 세상을 누빌 수 있었으니.
그리고 천 년이 지나, 그리워했던 대마법사의 영혼이 다음 생애를 살기 시작했다고 한들.
이상할 게 없었다. 이 또한 운명이리라.
[끝내 환생했는가, 빙제여.]그는 틀림없는 빙제의 환생.
빙설룡은 천 년 동안 서리낫의 마나가 메르헨 아카데미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억눌러왔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서리낫의 주인이 나타나고.
그가 빙제의 환생이기까지 하다면.
이제 그만 꿈속에 갇혀 살길 그만둘 때가 된 듯했다.
* * *
● ● ● ● ● ● ● ● ●
“지금부터 마법학부 1학년 여름방학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학기말 평가 재시험은 몇 가지의 원소 마법 테스트로 이루어졌다. 기존의 학기말 평가 스케일에 비하면 매우 조촐했으나,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어느덧 1학기 종료. 이제까지의 성적을 전부 합친 점수가 1학기 성적이 된다.
나는 300명 중 230등이었다. 뭐, 예상했던 바였다. 꼴찌가 아닌 게 어디일까.
갈 길은 멀었으나 나는 여전히 수석을 노리고 있다. 성적은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방증해주는 중요한 지표………………………………….
푸른 하늘, 커다란 뭉게구름 무리가 유유자적……………………….
…….
……?
“…뭐야?”
격한 위화감. 이미 겪었던 시간대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는 정신을 되찾았다.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메르헨 아카데미 중앙 광장에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는 의자에 마법학부 1학년생들이 줄줄이 앉아 있었다.
한창 방학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방학식이라면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을 텐데….
“이게… 시련?”
시련이라면, 당연히 내가 몰랐던 아이작의 안 좋은 과거 같은 게 나오리라 생각했었다. 이 기회에 아이작의 과거를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건…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방학식 땐 아무 일도 없었다. 평화롭게 진행되었고, 평화롭게 끝이 났다. 이날 굳이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카야가 돌발 행동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한 것 정도였지.
오히려 너무 평화로우니 되려 불안해진다.
방학식이 진행되어 가고, 루체가 단상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상태창을 켰다.
[ 루체 엘타니아 ]Lv : 150
종족 : 인간
속성 : 물, 번개
위험도 : X
심리 : [ 당]_*$&*()*)&^*&(#$adox#$@%%odI행()(&&&!@ ]
심리 상태가 깨져서 나온다.
[심리 간파]가 잘못될 리 없었다. 즉, 이 세계가 잘못되어 있다는 방증이었다.역시나 루체는 내게 온화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여쁜 미소에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날 뭔 일이 벌어지는 거냐…?
‘일단… 그때처럼 행동해 보는 게 좋겠다.’
기억을 되살리며 방학식 날과 똑같은 행동을 취해 보기로 결정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시련은 이안의 정신을 망가뜨리려고 작정한 듯 그를 몰아붙였었다. 지금의 시련 또한 예외일 리 없었다. 필시 내 정신을 좀 먹기 위한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질 터.
방학식이 끝난 후, 나는 천천히 나비 정원 구석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이작 님!”
“카야?”
“가, 가, 감사 인사를 전하러 왔습니다!”
역시나 카야가 날아왔다. 우리는 그때와 똑같은 내용의 대화를 주고받았고.
쪽.
카야는 내 뺨에 키스하더니.
“주,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전속력으로 줄행랑을 쳤다.
나는 아카데미 어딘가에 우뚝 솟아 있는 시계탑을 쳐다보았다. 이 시점이면 방학식이 끝나고 30분이 경과한 때였다.
‘그다음, 내가 뭘 했더라?’
머리 싸매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단련하러 갔었다.
나비 정원 구석에서 혼자 열심히 단련하다가.
갑자기 하늘이 우중충해지고 비가 쏟아져서 기숙사로 돌아갔고.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한 뒤, ‘빙제의 흔적’을 찾으러 나갔었다.
늦은 밤엔 기숙사에서 초급원소학 서적을 읽다가 잠들었지.
단지 그 뿐인 일상이었다.
그 뿐인…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었는데.
‘대체 뭐지…?’
그렇게 방학식 날의 기억을 톺아보고 있을 때.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거대한 굉음이 귀청을 터뜨릴 기세로 울려 퍼졌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소리의 진원지 쪽으로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돌연 하늘에서 구름을 뚫고 내리쬐기 시작한 붉은 광채. 섬뜩한 핏빛 오로라가 하늘을 에워싸기 시작하고.
첨탑만 열 개가 넘어가는 궁전 디자인의 건물. 학사 행정의 중심지. 그리고 악신 네피드의 부활 법진이 새겨져 있는 장소. 바로 메르헨 아카데미의 중심 건물, ‘바르토스관’에서 붉은빛의 기둥이 우주를 향해 끝없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보았던 ‘악신 네피드의 부활 장면’이 내 기억 속에 겹쳐지며.
[강력한 마족을 감지했습니다!!] [적과의 레벨 차이가 극심합니다!!] [※ 당장 도망치십시오!] [※ 당장 도망치십시오!] [※ 당장 도망치십시오!] [※ 당장 도망치십시오!] [※ 당장 도망치십시오!] [※ 당장 도망치십시오!] [※ 당장 도망치십시오!] [※ 당장 도망치십시오!] [※ 당장 도망치십시오!] [※ 당장 도망치십시오!]경고창처럼 연이어 떠오르는 시스템창 너머.
붉은빛의 기둥을 대상으로 상태창 하나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 파멸의 악신 네피드 ]Lv : ■■■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불, 허무
위험도 : 극■
심리 : [ ■■■■■■■■■■■■■■■■■ ]
거대한 검은 날개 다섯 쌍이 빛의 기둥 양옆으로 펼쳐져 세상을 드리우고.
날개의 주인인 검은 드레스 차림의 한 여인이 무중력 상태라도 된 것처럼 고요히 허공에 떠오른다.
드레스 치마 밑단은 바르토스관을 뒤덮을 수 있을 만큼 길었다. 마치, 수십 미터는 될 법한 비정상적으로 기다란 다리를 가진 여인이 바르토스관 옥상에서 빛의 기둥을 등지고 서 있는 듯한 광경.
피부가 움찔움찔거리고, 온몸의 털이 모조리 곤두섰다. 내가 [멸악자] 특성을 발동한다고 한들, 비교조차도 안 될 강대한 마력이 바르토스관을 중심으로 물결처럼 흐르고 있었다.
“지랄하지 마….”
시련이란 것도 정도란 게 있다.
극복해내야 할 것도 정도란 게 있는 것이다.
붉은빛의 기둥에서, 검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이 튀어나와 아카데미 상공을 가로지른다. 세 개의 머리가 기괴한 울음소리로 포효한다.
[ 파멸룡-아지 다하카 ]Lv : 200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불
위험도 : 극상
심리 : [ ■ ]
이어, 검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마물 군단이 튀어나와 섬뜩한 웃음소리를 흘려대고.
[ 흑염체 ]Lv : 190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불
위험도 : 극상
심리 : [ ■ ]
붉은 오로라 너머, 하늘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눈동자가 세상을 관조한다.
[ 앙그라 마이뉴 ]Lv : 200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불
위험도 : 극상
심리 : [ ■ ]
파멸룡-아지 다하카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검은 화염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화염은 화염의 한계를 초월해 건물과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차별 없이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니, 태운다기보다는 소멸시키고 있었다.
돌연, 허공에 이리저리 생성되어 가는 이질적인 검은 구체들. 그것에 맞닿는 모든 것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 터.
여긴 대륙 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외딴 섬. 도망칠 곳은 대륙을 잇고 있는 대교뿐이나, 어차피 지금부터 빠져나간다 해도 이 세계를 끝내러 온 저들에게서 도망칠 순 없을 것이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화르르르르르륵─────────!!!!!!
악신 네피드가 팔을 위로 뻗고.
그 위로 검은빛을 내뿜는 화염구가 생겨나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크기를 키워나갔다.
흑염구 사방엔 이질적인 검은 빗금이 새겨졌다. 공간의 균열. 천문학적인 양의 마력이 공간마저 일그러뜨린 것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이 세계의 최후를 두 눈에 담는 것 말고는.
이윽고 악신이 가볍게 팔을 내리자.
흑염구가 천천히, 세상에 내려앉았다.
━━━━━━━━━━━━━━━━━━━━━━━━━━━━━ 「■■ (어둠 속성, ★9)」
검은 불꽃이 맹렬하게 세상을 집어삼켰다.
전신이 타들어 가는 고통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종언(終焉).
세상은 멸망하고.
나는 사라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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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마법학부 1학년 여름방학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눈을 한번 감았다 뜬 감각으로, 나는 방학식이 시작될 때로 되돌아와 있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귀가 먹먹해져서.
방학식 진행자의 목소리, 학생들의 나지막한 수군거림이 조금도 들려오지 않았다.
“진짜…, 제정신이냐.”
고개를 푹 수그리고 한숨을 푹푹 내뱉었다. 양옆에 있는 학생들이 내게 곁눈질하며 눈치를 줬지만, 아랑곳할 심리적 여유는 없었다.
심호흡을 수차례 반복했다. 악신이 전해준 본능적인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왔어도, [빙제]의 [얼어붙은 영혼] 효과 덕분에 나는 금방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조용히 사고했다.
“…해보자.”
악신의 풍채를 한번 목격한 정도로 좌절할 생각은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와 별다를 게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어떤 역경이든 넘어서면 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