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53)
“크크큭, 때가 되었구나. 평민이여.”
나름대로 사악한 웃음소리.
연극을 좋아하는 케리드나는 ‘악역 영애’라는 역할에 푹 빠져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악역 영애라 칭하며 악당인 척 어설프게 연기할 때가 많았다.
지금의 웃음소리 또한 그 영향이었다.
북부 화이트클락 공작령. 화이트클락 가문 저택. 슬그머니 눈을 뿌리고 있는 하얀 하늘엔 슬슬 어둠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분홍빛 단발머리 여성, 케리드나 화이트클락은 방안 책상에 혼자 앉아있었다.
감시 마법 [시야 동화]를 통해 아이작의 시야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나, 격한 심리적 부담감 탓에 며칠간 마음을 추슬렀던 그녀.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다시 본래 목적대로 아이작을 감시할 때가 된 것.
“크큭…. 네놈의 민낯을 드러낼 때가 왔다, 가소로운 평민.”
아까부터 케리드나는 씨익 웃으면서 식은땀을 흘리며, 연극하듯 어색한 대사만 연신 내뱉고 있었다.
망설여졌다. 여전히 며칠 전처럼 긴장되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미래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이윽고, 케리드나는 눈을 확 감아버렸다.
[시야 동화] 발동. 지직거리는 전기가 뇌리를 스쳐 지나가고,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에 있을 아이작의 시야가 내비치기 시작했다.“어…?”
뭔가… 이상했다.
보이는 건 깜깜한 어둠 속, 눈보라만이 살벌하게 휘몰아치고 있는 광경. 3초간 새까만 어둠이 됐다가 아주 잠깐 다시 현장의 모습이 보이고 또다시 어두워지길 반복. 아이작은 눈조차 뜨기 힘들 만큼 매서운 추위 속에 머무르고 있는 듯 보였다.
화이트클락 공작령은 1년 365일 겨울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메르헨 아카데미를 포함한 다른 지역은 엄연한 여름일 터였다.
그가 북부 지역으로 온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애당초 먹물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는 환경 자체가 부자연스러웠다. 아직 그리 어두운 시간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작은 그 정체 모를 위험한 장소에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했다.
“흡…!”
그러다 돌연 아이작이 바닥에 나자빠져 버리자, 케리드나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대로 아이작은 눈을 감은 채 의식을 잃어 버린 듯했다. 그 탓에 현재 아이작의 시야는 완전히 암전되어 버렸고.
눈을 감은 채로 머리를 쓸어 올리는 케리드나.
“크, 큰일 난 거 아니야…?”
케리드나는 목소리를 떨었다.
“이, 일어나…. 안 일어나고 뭐하는데…!”
한동안 케리드나는 급박한 마음이었다. [시야 동화]는 육신의 시야만 살필 수 있을 뿐이니, 아이작이 시련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케리드나의 눈엔 한 인간이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만이 내비치고 있었을 뿐.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케리드나는 번뜩 눈을 떴다. [시야 동화]가 자동으로 풀리자마자 잰걸음으로 방을 뛰쳐나갔다.
부모님은 다른 귀족가에 친분을 다지러 간 상황. 저택에 남아 있는 가주 대행인 언니, 에이첼 화이트클락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에이첼 언니이!!”
에이첼은 현명하다. 그러니 그녀라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소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아이작을 어떻게 구해내야 할지 해답을 찾아내 줄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며, 케리드나는 에이첼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저택 복도를 가로질렀다.
* * *
>메르헨의 마법 기사> 최종 무기를 얻기 위한 시련.
시련을 극복하면 특정한 원소 속성 최종 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이때, ‘시련을 극복하라’의 정확한 의미란 무엇인가. 그 의미를 찾아내는 일조차 시련의 내용 중 일부이나, 내 게임 지식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겁 먹지 않고 위기와 맞서 싸워서 살아남으면 된다.
주인공, 이안 페어리테일에게 닥쳤던 시련은 그를 괴롭혔던 망나니 귀족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과거의 이안은 놈과 부하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을 때가 많았을 뿐이었는데.
시련에선 몇 번이고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시련 속 망나니 귀족의 행위가 도를 넘어도 한참이나 넘었기 때문이다. 시련용 설정이라고 해야 할까. 발암 전개였지만 막판에 사이다를 주긴 했다.
이런저런 사연도 다루었다. 마법 기사를 목표로 하게 된 배경이라든지, 이안만의 트라우마라든지….
지금으로썬 아무래도 좋은 내용이지.
결과적으로 이안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겨 내고 망나니 귀족을 쓰러뜨린 뒤, 시련을 클리어한다.
‘나한텐 그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악신인 거고.’
시련 스케일이 수지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긴 하지만, 한탄해봤자 소용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뭐, 맥락은 같겠지.
내 경우엔 ‘세계 멸망 막기’가 시련 클리어 조건이 되는 건가.
짝─!
나는 양손바닥으로 양 뺨을 거칠게 때렸다.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였다.
방학식 진행자와 학생들이 일제히 날 쳐다보았다. 뭘 봐, 새끼들아.
방학식은 총 20분간 진행된다. 그리고 이후 30분이 지나면 악신 네피드가 부활. 즉, 한 회차당 주어지는 시간은 최대 50분.
이곳에서 흐르는 시간은 현실 세계의 것보다 훨씬 빠르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이미 체험한 바였다.
정확히 얼마나 차이 나는지는 모르겠으나, 죽어 가고 있으면 캐릭터 몸에 표시가 났었으니 금방 알아챌 수 있을 터.
‘일단 세계 멸망 어떻게 막냐?’
근본적인 문제.
아무리 그래도 최종 보스 스펙을 벌써 따라잡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여기선 [허구지옥]에서 엔드 스펙으로 강해졌던 편법이 먹히지 않으니까.
‘정보가 부족해…. 일단 무슨 상황인지부터 파악해야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악신 네피드가 부활하는 메르헨 아카데미의 중심, 궁전 형태의 거대한 행정 건물 바르토스관이었다.
도대체 왜 악신이 조기 부활하게 되는 건지, 그 원인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마치 하나의 성을 방불케 하는 호화스러운 외관. 그 위쪽을 쳐다보자마자 나는 곧바로 의문의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넓은 면적의 옥상을 돔이나 비눗방울 형태의 반투명한 장막이 메우고 있었다. 절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런 설정이었냐….”
어이가 없네.
옥상을 가리고 있는 반투명한 금빛 장막. 수많은 아날로그 시계 모형이 장막에 새겨진 채 이리저리 공간을 휘젓고 다녔다. 시침, 분침, 초침이 빠르게 회전하는 모양새가 눈에 띄었다.
옥상 한가운데에는 이질적인 빛깔의 비석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장막은 그 비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9성급 시간 마법, [영원의 비석]이었다.
저 마법이 발동되고 있는 영역 안에서는 시간이 가속화된다. 3학년 때 나와야 할 악신이 조기 부활하는 원인이 저것이었나.
흔한 이야기지만, 이 세계관 마법에도 금단의 영역이란 게 있다.
진리와 신의 영역을 넘보는 마법들. 시간 조작 계열의 마법이 그 대표적인 예시.
바로 그런 마법이 바르토스관 옥상에 전개되어 있는 것이다.
‘옥상 가려면 무조건 건물로 들어가야 한단 거네.’
[영원의 비석]으로 생겨난 장막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 겉면에 맞닿는 모든 것의 시간이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그 어떤 충격도 저 장막엔 닿을 수조차 없을 터였다.마나가 발산되는 일에서조차 시간이 멈춰버리기 때문에 마나 감지가 안 되는 건 덤이다.
바르토스관 자체를 부수는 건?
안 된다. 가까이서 보니 바르토스관 외벽 색과 비슷한 연노란색 색감의 반투명한 보호막이 씌워져 있었다. 아마도 바르토스관 내부에 있는 어느 사역마의 방어 마법일 터였다.
‘이 모든 소행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메르헨의 마법 기사> 스토리상 ‘그 여자’밖에 없었다.
‘미치겠네.’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악신에 이어 그 여자까지 날 가로막는다니….
시련은 방법만 알아내면 극복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가상 세계는 내가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구멍을 바늘구멍처럼 작게 만들어 놓고, 전력으로 나를 가로막을 거란 얘기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서 바르토스관의 호화로운 문을 열었다.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건물에 들어서자, 나는 예상대로의 상황에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으리으리한 중앙홀. 아름다운 구조물과 동상, 예쁘장한 무늬가 아로새겨진 벽면에는 새빨간 혈흔이 난잡하게 흩뿌려진 채였다.
그리고 병사들의 행렬.
트럼프 카드 문양이 새겨진 하얀 군복 차림의 거한들이 한 손에 창을 들고 벽면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반쪽이 기괴하게 웃고 있는 디자인의 가면을 쓴 트럼프 병사들.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이 부리는 하수인 군대였다.
[ 트럼프 병사 ♠ ]Lv : 130
종족 : 아인
속성 : 물
위험도 : 상
심리 : [ 당*](&%& 경()!)!so(* ] [ 트럼프 병사 ♥ ]
속성 : 불
[ 트럼프 병사 ♣ ]속성 : 바람
[ 트럼프 병사 ◆ ]속성 : 바위
트럼프 병사의 박력은 바르토스관을 장악하고 있었다.
[안녕?]별안간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기이한 목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내 발치에서 난 소리였다.
이 목소리를 어찌 모를 수 있을까.
>메르헨의 마법 기사> 「앨리스 토벌전」. 거기서 플레이어를 가로막는 강력한 보스 중 하나.
이미 예상했음에도 온몸에 소름이 우수수 돋아났다.
나는 고개를 숙여 머리에 검은 중절모를 쓴 보라색 고양이를 눈에 담았다. 살집이 있는 몸체는 우둔해 보이나, 표정엔 여유가 넘쳐나는 고양이였다.
그 고양이는 입을 귀까지 찢으며 내게 미소를 건네왔다.
[ 괴묘-체셔 ]Lv : 175
종족 : 마수
속성 : *^*%*%!^&*
위험도 : 최상
심리 : [ 당&*)(&(^%$&^ 살)(&(*^#$#%^ ]
앨리스 캐럴의 8성급 사역마, ‘괴묘-체셔’. 이 작은 고양이의 강함은 뇌신조-갈리아 못지않다.
이 세상은 내가 시련을 극복하는 걸 가로막기 위해.
내가 두려워하고 있던 적 중 하나, 앨리스를 대령한 모양이었다.
[귀엽게 생겼네. 딱 앨리스 취향이야. 앨리스가 환장하겠어.]체셔는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은 성격이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상대를 죽일 수도 있고.
상대를 죽이려다가 갑자기 ‘방금 호흡이 잘 돼서 기분 좋아졌어’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살려줄 수도 있는.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는 성격.
그러나 오히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개념 없는 성격이기에 더욱이 잘 먹히는 것이 있었다.
‘자, 심호흡.’
체셔의 경계심을 풀 방법 같은 건 >메르헨의 마법 기사> 고인물로서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으니.
나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은 후, 무릎에 손을 짚고 체셔를 굽어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뭐야, 귀여워…!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 처음 보는데!”
[…니옹?]“누구 고양이냐? 와 씨, 털 고운 거 봐라. 대박.”
[니옹?]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던가.
체셔는 칭찬에 약하다. 그것도 엄청. 앞뒤 맥락은 상관하지 않는다. 이곳이 전쟁터 한복판이든, 살인사건 현장이든. 녀석은 칭찬받는 상황 자체를 좋아하니까.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력으로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네 주인 진짜 누구냐? 완전 부럽다…. 나도 이렇게 예쁘고 잘생긴 고양이 키우고 싶어.”
체셔는 중성이다. 남자로서의 칭찬, 여자로서의 칭찬 모두 좋아한다.
[보는 눈이 있구나, 애송이. 이 몸이 예쁘고 잘 생겼단 사실은 명명백백하지.]허리를 펴고 의기양양해하는 체셔.
이어, 내가 연신 맥락 없는 칭찬을 퍼붓자 체셔는 기쁜 듯이 고개를 들썩여댔고.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냐오옹!]언제부턴가 체셔가 피겨 선수처럼 빠르게 몸을 회전하는 재주를 선보이고, 나는 허리를 굽힌 채 박수를 짝짝 쳐 대고 있었다.
트럼프 병사들이 근엄하게 정렬해 있는 가운데서, 마치 우리끼리만 재롱 잔치를 연 분위기였다.
[어떠냐, 이 몸의 현란한 재주는? 점수를 매기자면 몇 점이지?]“한… 9점?”
[냐오옹! 9점 만점의 9점이란 얘기인가!]체셔는 즐겁게 웃으면서 또다시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긴장감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으나, 나는 녀석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열심히 애써야 했다.
“근데 아까부터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너처럼 예쁘고 잘 생기고 재주도 출중한 멋진 고양이가 말이야.”
[냐오옹! 이제 곧 세계를 멸망시킬 종언의 신이 강림할 예정이라서 말이야! 방해받으면 안 돼서 전부 죽이고 있었지~.]“흐음, 그래?”
‘방해’. 바르토스관 안에 있으면 [영원의 비석]을 방해하는 게 가능하단 얘기인가.
‘…해볼 만하겠어.’
체셔의 말을 곱씹자마자, 이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가 단숨에 머릿속에서 정립됐다.
그 순간.
──────────── 「검은 토끼 (중립 속성, ★7)」
서걱─.
“…아?”
영문을 알 수 없는 충격이 전신을 꿰뚫었다.
의지와는 무관하게 눈이 돌아갔다. 어떤 마법을 맞고 내 몸이 기능을 잃었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아무런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축 늘어지고 말았다.
완전한 무감각.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는 상태. 숨조차도 쉴 수가 없었으니. 이성조차도 마비되어 가는 것 같았다.
허무하게 죽어 가고 있다. 그 사실을 여실히 실감하며─.
또각, 또각─.
흐릿해져 가는 시야에 담기기 시작한 것은, 레드 카펫이 깔려 있는 널찍한 중앙 계단과.
그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기다란 연금발의 교복 차림 여학생이었다.
흑백 체크무늬 머리띠와 초커로 자신을 치장한 그녀는, 잿빛 마법진을 거두고서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네가, 그 방해꾼이었구나.”
연분홍빛 눈동자가 나를 직시했다.
고혹적인 목소리. 뭇 남심을 홀리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끈적이는 목소리였다.
‘앨리스 캐럴….’
>메르헨의 마법 기사>의 흑막.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흘렸다.
[ 앨*()(&^%스 캐&* ]Lv : 1&^*&%$
종족 : &*@간
속성 : $&^%!#)
위험도 : 최*(&*4#
심리 : [ ♠♥♣◆ ]
앨리스의 고유 특성 [붉은 여왕의 역설] 때문에 그녀의 정보는 확인할 수 없다.
관찰자로부터 모든 정보가 떠나버리는 그녀의 형이상학적인 능력은 상태창조차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도로시가 [천라만상]의 힘으로 앨리스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연유 또한 여기에 있었다.
내 앞에서 두 무릎을 모으고 쪼그려 앉는 앨리스. 턱을 괴고 나를 내려다본다.
적막. 앨리스는 그저 내가 숨이 멎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감상하고 있었다.
두뇌가 기능을 상실해간다. 그 어떤 생각도 깊게 할 수 없었다.
이내, 내 목숨은 힘을 다한 불씨처럼 조용히 사그라져갔다.
● ● ● ● ● ● ●
“지금부터 마법학부 1학년 여름방학식을 거행하도록….”
“끄학!”
쭉 숨을 참고 있다가 한번에 몰아쉬듯, 나는 힘겹게 호흡했다. 잠깐 내지른 외마디 비명이 컸던 탓인지, 방학식 진행자가 말을 멈추고 학생들과 함께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하아.”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한동안 숨을 가다듬었다. 호흡이 진정되자마자 곧바로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진행자는 잠시 동안 날 쳐다보다가 다시 방학식을 이어갔고.
학생들도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루체나 카야 같은 친분 있는 애들 빼고. 특히 루체의 걱정 어린 눈빛은 눈에 확 들어왔다.
물론 그런 데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대충 알겠다.’
앨리스는 [영원의 비석]을 사용해 악신의 부활을 앞당겼다.
그래서 악신은 조기 부활했다.
즉.
‘앨리스 쓰러뜨리고 악신 부활 막으면 되는 거네.’
방법론은 명확했다. 앨리스를 뚫어내는 게 우선이었다.
앨리스는 메르헨 아카데미의 최대 전력으로서 도로시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앨리스 토벌전」이 벌어질 때는 도로시가 이미 목숨을 잃은 뒤다. 결국 이안은 동료들과 함께 앨리스의 하수인들을 처치해나가며, 바르토스관에서 그녀와 처절한 결전을 펼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시간대엔 도로시가 살아 있다. 게다가 당장에 앨리스를 쓰러뜨리기 위한 온갖 전력을 끌어모을 수도 없는 노릇.
즉 앨리스를 뚫으려면 도로시를 영입하면 될 일이고, 그것 말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도로시 어딨어?’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방학식 날, 나는 도로시를 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