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60)
나는 마차 앞에 타고 봉처럼 생긴 손잡이를 잡았다. 여기에 마력을 흘려보내면 마차와 감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손잡이가 나와 마차를 이어 주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이제 마력을 흘리면서 손잡이를 앞으로 살짝 밀면.
내 마력 운용에 따라 마차가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크으, 이거지~.”
[원소 효율]이 뛰어날수록 마차는 수월하게 나아간다.심지어 나는 메르헨 아카데미 마법학부 학생. 한 학기뿐이라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마법 단련에 치중해온 사람이다.
과장 좀 보태자면, 내가 운행하는 마차는 손님들에게 흔들림 없는 수준의 안락함을 제공할 것이다.
나는 옆에 이든을 태운 채 마차를 끌었다. 텁텁했던 여름 바람이 시원하게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마차를 끌고 나아가다 보면, 흰색 기사복 차림의 사람들을 흔히 목격할 수 있었다. 잦은 마족 출몰 건을 조사하고자 파견 나온 황실 기사단이었다.
본래 아카데미엔 그 어떤 세력도 개입돼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으나.
이번 사태는 너무도 중대한 나머지 황실이 개입하고 만 것이었다.
지금쯤 학사 인력들이 얼마나 개고생하고 있을지 눈에 선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나는 영업이나 잘하면 될 테고.
어느덧 내 마차는 상업 지구에 도착했다. 그곳엔 유동 인구가 상당수 있었다.
아카데미가 일구어낸 독자적인 경제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제르베르 황국의 국민들.
나는 그들을 향해 자본주의 미소를 흘리며 영업용 멘트를 날렸다.
“지금까지 이런 마차는 없었다. 이것은 침대인가 마차인가? 흔들림 없는 편안한 운행을 약속드립니다! 메르헨 아카데미 재학생이 운행하는 마차, 지금 바로 이용하세요!”
[꾸웅, 꾸우!]내 홍보 멘트 뒤에 이든의 리듬감 있는 울음소리가 합쳐지니 꽤 그럴싸한 울림이 되었다. 마치 TV 속 중독성 있는 광고의 한 장면 같았다.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이 마차를 운행한다고 하니, 지나가던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긴 했다. 애당초 마차 끌고 다닌다고 소리치면서 홍보하는 사람 자체가 드문 탓도 있겠지만.
“학생! 나 좀 태워줘!”
첫 손님은 유쾌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요새 학생들이 자기 빵집을 이용 안 해준다고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그 말에 맞장구쳐주며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학생, 즐거웠어!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이라 그런가, 승차감이 정말 편하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부 아르바이트는 성과제다. 벌어온 겔에서 마차 대여료와 일정 수수료만 떼고 나머지를 받는 식.
나는 단련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기에,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겔을 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영업사원 아이작 달립니다.
“지금까지 이런 마차는 없었다. 이것은 침대인가 마차인가…!”
“학생! 여기!”
“네엡!”
내 홍보 멘트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궁금해서라도 타려는 분위기였다.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이 마부 일을 하는 경우 자체가 드문 경향도 있고. 나였어도 신기했겠다.
어느덧 8번째 손님을 맞이했다. 상대는 모녀였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 2살 배기 아기가 엉엉 우는 탓에 엄마 쪽은 곤란해하는 눈치였다.
“미안해요, 학생. 딸아이가 울음을 안 멈춰서…. 뚝, 해야지, 뚝.”
“으에에에에에에에엥!!!”
딸아이 우는 소리가 사이렌 소리를 방불케 했다. 크게 될 아이군.
「얼음 생성 (얼음 속성, ★1)」
“으에에에… 엥…?”
나는 허공에 [얼음 생성]을 쓰고 곧바로 마법을 풀어가며 연푸른빛 가루를 연속적으로 흩뿌렸다.
달리는 마차 안. 아름다운 가루가 연신 창밖으로 흘러가니 아기는 놀란 눈치였다.
아기는 마차 창문을 향해 양팔을 뻗으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내비쳤다. 나는 연신 빛나는 가루를 만들어내며 아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후훗. 고마워요, 학생.”
“별거 아닙니다.”
일종의 서비스일 뿐. 옆에선 이든이 [꾸웅!]하고 호응해주었다.
모녀는 메르헨 아카데미 행정실 쪽에 볼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행정직 사람이 자기 동생인데, 요새 통 볼 수가 없어서 한번 차나 마실 겸 얼굴 보러 왔다고.
아쉽게도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행정직 인력은… 지금 학사 내 온갖 문제로 갈려 나가고 있으니.
“…….”
모녀 손님을 떠나보낸 후, 한동안 바르토스관 건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서리의 시련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한다.
물론, 그 감정과는 별개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게 있었다.
‘[천리안]을 감시용으로 써먹고 싶은데.’
되도록 [천리안]을 이용해서 앨리스를 감시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앨리스 자체를 봐버리는 건 무척 위험한 행위였다. 엑스트라 배드 엔딩 N.11 「돌연사」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
체셔는 기척을 감지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내가 [천리안]으로 앨리스를 봐버리면, 체셔가 곧바로 제 주인을 향한 기이한 시선을 감지하고 나를 살해하러 올 것이다.
‘지금은 없지만.’
참고로 앨리스는 귀가한 상태였다. 그래서 [천리안]으로 학생회실을 들여다봤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뭐, 차차 생각해볼 일이지. 나는 다시 마차를 끌기 시작했다.
밤. 마차를 정류소에 두고 일당을 정산한 뒤, 하위권 기숙사 도리스관으로 돌아왔다. 수익은 제법 쏠쏠했다. 생활비를 고려한다면, 이 기세로 3주 정도만 일해도 잔여 겔까지 합쳐 등록금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단련까지 모두 마치고서 나는 기숙사에서 곤히 잠들었다.
아침이 되고, 잠에서 깨어난 직후.
나는 왼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왼쪽 손목에 새겨져 있던 8성급 사역마 계약진은 소환진의 형태가 된 후, 자취를 감춘 채였다.
그대로 마나의 흐름에 집중해, 작은 형태의 빙설룡-힐드를 상상했다.
돌연 왼쪽 손목에서 사역마 소환진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연푸른빛을 미약하게 발하기 시작했다.
이든을 소환할 때처럼 뭔가가 소환되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코앞에서 두꺼운 장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튀어나오려는 뭔가가 도저히 튀어나오질 못했다.
“안 되네….”
나는 팔을 내렸다. 내가 하려는 건 빙설룡-힐드를 작은 형태로나마 소환하는 일이었다. 요새 매일 마력이 최대치를 찍는 아침마다 반복하고 있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설정상, 사역마는 역소환되면 마나의 형태가 되어 주인의 마음속 공간에 들어간다고 한다. 때문에 마나를 재조합해 사역마의 형체를 작게 만들 수 있는 거라고 알고 있다.
사역마를 작게 만들어 소환시 소모 마력량과 유지 마력량을 줄이는 건 주인도 같은 속성일 때 가능하다. 단, 여기엔 레벨과 그 속성의 [원소 효율]이 크게 개입된다.
내 레벨과 [원소 효율] 수준으로는 빙설룡을 아주 작은 형태로도 소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얘기 나누고 싶은데.”
그간 빙설룡에게 어떤 말을 할지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은 뒤, 빙설룡에게 도움을 구하자고.
녀석을 속이면서까지 내 힘으로 써먹고 싶진 않았으니까.
내 마음은 빙설룡에게 끊임없이 전달되고 있긴 하겠지만, 직접 대화하는 것만 못할 터였다.
뭐, 지금은 마차나 끌러 가자. 빙설룡 소환은 내일도 시도하기로 하고.
나는 마부복으로 갈아입고 기숙사를 나섰다.
……
마차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5일째 되는 날.
오늘따라 학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학사 인력뿐만 아니라 황실 기사단마저도 분주했으니.
나는 그들의 심리 상태를 읽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뇌제?’
대마법사이자 번개의 원왕. 그가 투자 명목으로 메르헨 아카데미에 찾아온다고 한다.
현재 메르헨 아카데미는 잦은 마족 출몰 건으로 투자자들을 잃어가고 있었다. 메르헨 아카데미 코인 그래프가 우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저점을 찍은 상황이란 얘기다.
하지만 고위 귀족들 사이에선 내년에 황녀가 입학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을 터. 하물며 성녀와 무녀까지도 올 예정이니.
뇌제가 그런 정보를 알아내고서 메르헨 아카데미 코인 저점 풀매수를 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걔가 왜 직접 오는데?’
사신을 보내면 될 뿐인 일을, 어째서?
>메르헨의 마법 기사> 1학년 여름방학 도중 그런 적은 단연코 없었다.
황실 기사단과 학사 인력들은 필시 숨겨진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하고 긴장한 분위기였다.
일단 뇌제는 악역이 아니다. 선역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중립인 입장. 따라서 그의 출현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건 아니었다.
하지만 본래의 시나리오와 다른 일이 터졌으니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뭔가가 꼬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테니까.
지금은 마차 영업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마차를 끌고 멀리 이동한 뒤, 아카데미 건물 사이의 골목에 숨어서 [천리안]을 발동했다.
──── 「천리안 (중립 속성, ★7)」
아카데미 정문의 풍경을 살폈다. 황실 기사단과 학사 인력들이 정렬하고 고개를 숙인 채 길을 열어 준 상황. 이런 대접을 받을 정도의 귀인은 극소수다. 황녀와 같은 황실 소속 인물이라든지, 주신 만할라를 섬기는 헬리제 교단의 성녀라든지, 아니면… 원왕이라든지.
보라색과 금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원왕의 호화 마차가 아카데미 정문으로 들어섰다. 내 마차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새삼 실감이 날 정도로 으리으리한 마차였다.
호화 마차는 자색 군복 차림의 호위병들을 대동한 채였다.
수하들이 마차 문을 열어 주고, 한 남자가 마차에서 내렸다.
검은 로브 차림에 기품이 넘쳐나는 남성. 앞머리가 반올림된 보랏빛 머리칼, 전기가 흐르고 있는 화려한 눈동자.
‘리얼 뇌제네.’
진짜 이 형 왜 왔냐고.
황실 기사단의 4번대 펜리르 기사단 부단장을 필두로, 기사단 전체가 뇌제에게 예를 표했다.
단장은 현재 황국 수도 브얀스에 있으므로, 부단장이 여기 있는 기사 중 가장 높은 직급의 인물이었다.
뇌제는 기사단의 인사 따위엔 조금도 관심 없어 보이는 눈치였다.
그리고.
“……!”
돌연, 뇌제가 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황급히 [천리안]을 풀었다.
‘미친!’
큰일 났다…!
왠지 불안해서 조금만 보고 그만두려 했는데, 바로 들켜 버리냐.
어서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했다.
나는 다급히 마차를 타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든을 소환하고 영업용 멘트를 마구 날리면서. 처음부터 마차 영업 중이었다는 듯이.
“지금까지 이런 마차는 없었다! 이것은 침대인가 마차인가! 흐, 흔들림 없는 편안한 운행을 약속…!”
콰가가강───!
“우왁!”
하지만 뇌제가 내게 이르는 속도는 섬광처럼 빨랐다.
눈앞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진짜로 실체적인 날벼락이었다. 나는 강제로 마차를 멈춰 세워야만 했다.
날벼락이 떨어진 자리엔, 눈 깜짝할 새에 뇌제가 나타나 서 있었다.
[ 자울 드래고니악 ]Lv : 199
종족 : 인간
속성 : 번개
위험도 : ???
심리 : [ ??? ]
허공에 흩어지는 수 갈래의 번갯불.
번개 마나가 일렁이는 눈동자로 무덤덤하게 나를 쳐다보는 뇌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엿 됐다….
* * *
자브로크 마차가 메르헨 아카데미 정문에 들어섰을 때.
번개의 원왕, 자울 드래고니악은 마법의 기척을 느꼈다.
“뇌제 님?”
“…잠시 기다리고 있어라.”
치지지직─.
대마법사의 경지 중 하나, 원소 변신. 자울은 자기 자신을 원소 마법의 형태로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황실 기사단은 번개 원소로 변하려는 자울을 보고 식겁했으나.
“금방 돌아오지.”
자울은 그리 말하고서 하늘로 솟구쳤다.
그는 번개의 형태가 되어 [천리안]을 쓴 아이작에게 단숨에 이르렀다. 마법의 기척을 쫓아온 것이었다.
“흐음?”
자울은 눈살을 좁혔다.
청은발, 적안. 에이첼이 설명했던 외형의 남자.
심상치 않은 마법이라 생각했지만, 설마 이 놈이었다니.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상상했던 것 이상의 기운이 느껴진다. 눈앞에 있는 사내는 차기 빙제 후보가 틀림없었다.
왜 마부복을 입고 마차를 운행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는 마족의 잦은 출몰을 예측하고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한 뒤, 자기 정체를 숨긴 채 마족을 처치하고 다니는 자.
단순히 돈을 벌겠다거나, 마차 운행이 마력 운용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시시한 이유 따위는 아닐 터였다.
자울이 직접 아이작을 보겠다고 한 이유는, 그만의 안목이 있기 때문이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아이작의 본질은 어떠한지, 그가 얼마만큼의 힘을 지녔는지, 가치관이나 신념이 어그러져 있지는 않은지.
앞으로 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그리고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이곳에 온 이유 또한 달라질 터였다.
예정대로 자울은 아이작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작이 끌고 다니는 마차를 이용하는 것이리라.
“날 태워라.”
“…예?”
명령조. 거절은 절대로 받지 않겠다는 뉘앙스였다.
“아앗, 예! 손님이셨군요!”
아이작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굽실굽실 대답했다.
일단 뇌제의 장단에 맞춰줘야겠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흐, 흔들림 없는 편안한 운행을 약속드립니다!”
자울은 아이작의 영업용 멘트를 무시하고 마차에 올라탔다.
방금 전까지 타고 온 자브로크 마차보다 훨씬 비좁고 열악한 환경.
뭐, 상관없었다. 자울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마부 아이작의 뒤통수가 보이는 앞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기품 있게 운전해라. 목적지는 아카데미 정문이다.”
“예, 옙!”
아이작은 마차를 끌고 아카데미 정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자울의 눈동자가 번개 마나로 반짝였다. 그는 눈살을 좁혔다.
‘역시….’
아이작, 저 남자에게서 흘러나오고 있는 연푸른빛 기운의 정체를 어찌 모를 수 있을까.
각 원소 속성의 정점에 이른 자에겐 그에 맞는 굵직한 오오라가 흘러나온다.
불의 원왕, 염제(炎帝). 물의 원왕, 도제(濤帝). 바람의 원왕, 풍제(風帝). 그리고 눈앞에 있는 아이작, 바로 저 남자처럼….
심지어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도로시 하트노바의 [천라만상]처럼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일도 가능하다.
아이작의 본질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은.
셀 수없이 많은 눈이 덕지덕지 박혀 있는, 이 세상 모든 걸 집어삼킬 수 있을 법한.
무한에 가까운 마력 덩어리 괴물이었다.
[ ■■■. ]꺼져라.
아이작의 본질 속 미지의 괴물이 그리 말하자, 자울은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내달리는 오싹한 감각을 느꼈다.
이 세계에서 번개 원소 속성의 최강자 반열에 오른 자신이, 아주 잠깐이나마 공포를 느끼다니. 대체 얼마만의 감정이란 말인가.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아이작에게서 느껴지는 마력량 자체는 지나칠 정도로 적은 편이었다. 자울은 발산 중이 아닌 마나라도 감지할 수 있는 초월적인 마나 감지력을 지니고 있기에, 아이작의 최대 마력량을 측량할 수 있었다.
‘대체 뭐란 말이냐, 이 남자는…?’
자울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심했다.
빙설룡, 서리낫의 주인.
얼음 원소 속성의 정점이 되어야만 지닐 수 있는 오오라.
본질 속에 감추고 있는 미지의 존재.
강함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저 괴물이, 턱없이 낮은 마력량을 가졌다고? 그게 말이 되는가?
즉, 저번에 에이첼과 얘기했던 대로 아이작은 최대 마력량을 조작한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자기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이는 필시 자신과 같은 대마법사의 경지.
역시 직접 아카데미까지 와서 확인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사내란 걸 알았다면, 이어서 억지로라도 알아내야 할 게 있었다.
아이작은 자신을 위협할 존재인가, 화합을 도모할 존재인가. 이에 따라 자울의 추후 행보가 결정될 것이었다.
“학생인가?”
“예? 아, 네.”
“이름은?”
“아이작이라고 합니다.”
“성씨는 없나 보군.”
“네, 평민이어서….”
“졸업하면 뭘 할 셈이지?”
“아, 마법사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려고 여기 마법학부에 온 거니까요.”
저만한 남자가 평범한 진로를 읊조리는 꼴이 신경에 거슬렸다.
자울은 질문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어떤 마법사가 되고 싶나?”
“예?”
“마법사도 진로의 폭이 넓지. 귀족의 자문 마법사, 마탑 마법사, 용병 마법사, 모험가 마법사 등…. 그리고 그 안에서도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마법사의 종류는 또다시 나뉜다. 타인을 지키기 위해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 자기 사리사욕만을 채우기 위해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 네놈은 어떤 마법사가 되고 싶으냐, 이 말이다.”
마차의 수레바퀴 돌아가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리고.
아이작은 고민에 빠졌다가, 이내 대답했다.
“구체적인 진로는 못 정했지만, 어떤 마법사가 될지 생각해 둔 건 있어요.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악신 네피드를 쓰러뜨리고 이 세상에 계속 남아 있게 된다면, 아이작은 생계를 위해 마법사를 목표로 삼을 터였다.
그렇다면 어떤 마법사가 될 것인가.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 같지만, 서리의 시련을 거친 후로 아이작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자랑스러운 마법사가 되고 싶네요.”
아이작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서리의 시련 최종 관문에서 아이작은 한국에서의 엄마를 떠올렸다.
뼈 삭으니 탄산음료 좀 자제하라던 엄마. 별별 걱정으로 언제나 잔소리를 해대던 엄마. 필요한 반찬 있으면 만들어서 자취방 냉장고에 넣어줬던 엄마. 그가 집에 돌아가면 아들이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상다리 휘어지도록 차려놨던 엄마. 때때론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보내줬던 엄마. 아들을 믿어줬던 엄마.
아직 고시 공부할 동안 당신은 이 세상을 떠나버렸고.
아이작의 세상이 한번 무너졌을 때가, 서리의 시련 최종 관문 때와 겹쳐 보였다.
그러니 기왕 살아갈 거라면, 가장 소중했던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렇군.”
자울은 눈을 감았다.
아이작의 가치관, 사고방식이 어긋나 있지 않다는 건 그 대답으로 충분했으니. 거짓말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정문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으나, 이만 물러날 때가 된 것 같았다.
치지지지직────!
“어?!”
자울은 번개 마나의 형태가 되어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화들짝 놀란 아이작은 본능적으로 “겔은?!”하고 소리쳤으나, 자울은 이미 멀리 떠나간 뒤였다.
콰가강───!
아카데미 정문 앞에 날벼락이 내리쳤다. 학사 인력들과 황실 기사단은 크게 놀랐으나, 자브로크 호위병들은 익숙한 광경이라는 듯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날벼락은 번개 원소 마나가 되어 허공에 모이더니, 자울의 모습이 되었다.
자울은 덤덤한 표정으로 자브로크 마차로 향했다.
“볼일은 마쳤네. 이동하지.”
“예!”
곧 자울은 마차에 탑승하고.
자브로크 마차는 호위병들과 함께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실 기사단과 학사 인력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마차 안. 자울은 호화로운 좌석에 앉은 채 창밖 아카데미 풍경을 가만히 내다보기 시작했다. 그 맞은편에는 여기사 한 명이 다리 위에 검을 올린 채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자울의 최측근이자 근위 기사, 헤라였다.
“직접 봐서 다행이었네. 헛걸음은 아니었군.”
“차기 빙제 후보를 만나셨습니까?”
뇌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적으로 둘 만한 자는 아닌 것 같더군.”
마치 심연처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강인함은 둘째 문제였다.
아이작, 그 강자의 사고방식이 여느 순수한 학생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점이 자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만큼 강한 자라면 어딘가 일그러져 있기 마련인데.
“단지, 나쁘지 않았네.”
언젠간 자신을 포함한 원왕들 앞에서 아이작이 새로운 원왕이 되어 나타난다면.
자울은 그리 싫은 감정을 느낄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