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87)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 이명, ‘하트 여왕 앨리스’.
‘이상한 나라(Wonderland)’에서 하트 여왕의 목을 베고, 그녀의 권력과 군세(軍勢)를 독차지한 인물.
>메르헨의 마법 기사>의 몇몇 주요 캐릭터가 그러하듯 앨리스 또한 누구나 잘 아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모티브다.
앨리스는 >메르헨의 마법 기사> 흑막이자, 「앨리스 토벌전」 파트의 최종 보스이며.
게임 출시 직후 단연 유저들에게서 가장 큰 흥미를 끌어냈던 캐릭터이자, 내가 정체를 숨겨야 하는 이유 그 자체이다.
앨리스는 악신을 두둔한다. 그러니 악신에게 위협이 될 빛 속성 보유자, 이안 페어리테일은 눈엣가시나 다름없을 터.
전술했듯, 그녀가 쉽사리 이안을 건드리지 못 하는 건 그가 페어리테일 가문이라서 그렇다는 내용이 나온다. 페어리테일 가문 혈족에게 걸려 있는 [요정의 가호]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보잘것없는 평민. 레벨 170대 수준으로 강한 앨리스 상대로는 맥아리 없는 저항밖에 할 수 없는 약자 신세다.
‘일이 이렇게 돼 버리냐.’
이 또한 사태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부터 예상했던 결과이긴 했다.
특히 도로시까지 엮여 있는 마당에 앨리스처럼 강력한 존재가 튀어나오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앨리스, 무슨 일이야?”
“사태 수습하러 왔어.”
도로시가 떨떠름한 미소를 지은 채 묻자 앨리스는 태평하게 대답했다.
앨리스는 나와 도로시 쪽으로 다가오더니, 벚꽃 색감의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살짝 긴장한 척, 최대한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했다. 사실은 굉장히 긴장한 상태지만.
참고로 앨리스에겐 도로시의 [천라만상] 같은 힘이 없다. 지금처럼 나를 뚫어지게 쳐다봐도 내게서 수상한 건 엿보지 못할 것이었다.
그나저나… 이토록 곱상하고 친절해 보이는 여학생이, 언제든지 나를 죽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새삼 믿기지 않는다.
‘제발 별일 없이 지나가라….’
속으로 애원하듯 빌었고.
이윽고, 앨리스는 태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했어.”
뭘?
“뭘 납득했단 건데?”
도로시가 내 의문을 대변하듯 물었다.
“왜 너희들이 이 친구 두고 발정했는지. 나름 반반하게 생겼네.”
“니히, 너 진짜… 말 막 하는 버릇은 여전하네.”
도로시는 은근슬쩍 나와 앨리스 사이를 가로막으며 피식 웃었다.
아이작이 반반한 편이라는 사실에는 동감한다. 더 잘 생긴 놈들이야 상당수 있지만, 아이작 외모도 무시 못 할 수준이지.
하물며 서리의 시련 때, 내가 앨리스 취향이란 사실도 괴묘-체셔를 통해 얼떨결에 알아냈으니. 그녀가 내 외모를 좋게 봐주는 것도 당연한 얘기였다.
“그건 그렇고.”
앨리스는 도로시를 잠시 흘겨보았다가, 발을 옮겨 난간 아래쪽에 보이는 루체와 카야를 내려다보았다.
“좋아, 다들 모여 있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앨리스는 허리를 펴고 양손을 엉덩이 뒤로 모으고서, 특유의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고혹적인 목소리에 비해 미소 만큼은 무척 따사로웠다.
“학생회장 권한으로 명합니다. 도로시 하트노바, 루체 엘타니아, 카야 아스트레앙, 그 외 기타 1명. 전부 우리 학생회랑 동행해 줘.”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가며 친절한 어조로 명령을 내리는 앨리스.
“소란은 이쯤에서 끝내자.”
학생회장의 명령은 한밤중의 소동에 종막을 고했다.
* * *
파도처럼 굽이치는 청색 단발머리, 왜소한 체격의 A 클래스 삼석, 시엘 카르네다스.
그녀에게 아이작이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강자였다.
인두겁을 쓴 괴물인지, 어마어마한 재능을 타고난 차세대 대마법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아카데미를 지키려는 건 명확해 보였기에, 시엘은 그를 편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야만 메르헨 아카데미의 졸업장을 따고 나갈 수 있을 거 아닌가. 자연재해에 준하는 사고 따위로 이 아카데미가 터지는 일은 기어코 있어선 안 됐다.
그렇기에 아이작의 행보는 시엘의 몇 없는 관심사였다.
단순히 그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정도에 불과하긴 했어도.
그마저도 평소 주위 환경에 별 관심이 없는 그녀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큰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그런 시엘이 오늘 밤…, 한 남자에게 흥미를 품고 그를 뒤쫓은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건….’
학기말 평가 때 수석과 차석이 아이작을 지키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시엘이다.
그리고 오늘, 아이작을 두고 벌이는 두 여자의 대립은 시엘의 흥미를 확 끌어당겼다.
아이작을 데려가려던 루체.
루체에게서 아이작을 빼앗은 카야.
카야가 아이작에게 키스하려 하자, 이를 저지해낸 루체.
아이작을 데리고 도망치던 카야.
뇌신조-갈리아까지 소환해 카야와 아이작을 뒤쫓은 루체….
‘세상에, 재밌어…!’
이 상황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어떻게 배길 수 있을까.
시엘은 번개 속성 박쥐 사역마, 자뱃을 본래 크기로 소환해 그 등에 타고 아이작, 루체, 카야를 몰래 뒤쫓았다.
그들의 추격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고.
아이작과 춤추었던 그 유명한 2학년 선배, 도로시 하트노바까지 출현하는 광경도 목격했다.
그 어마어마한 강자, 아이작을 두고 벌이는 강한 여자들의 삼각 대립이라니! 시엘은 흥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역시 우월한 수컷 주위론 우월한 암컷들이 모인단 말인가.
이윽고, 학생회가 시계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사실을 짐작했으나.
한동안 시엘은 시계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무래도… 새로운 재밋거리를 찾아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
“도로시 하트노바, 카야 아스트레앙, 루체 엘타니아, 아이작. 모두 진술 대조 후 사실관계 파악 완료했습니다. 모순된 점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도로시 하트노바와 레이젤 레드리베라는 내일 오후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예정입니다.”
“응, 고생했어.”
메르헨 아카데미 중심부에 위치한 궁전 형태의 건물, 바르토스관.
아카데미 중앙행정기관이 밀집해 있는 곳이며, 학생회실 또한 그곳에 있었다.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달빛과, 빛 가리개로 조절해 은은한 불빛을 내비치고 있는 발광 램프는 고풍스러운 듯 호화로운 학생회실을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학생회장 자리. 연금발을 지닌 여학생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옆에 서 있는 학생회 선도부장, 에린에게서 보고서 뭉치를 받은 뒤 보고사항을 전달 받았다.
파티 도중에 바르토스관에 온 터라, 그녀들은 파티 예복 차림 그대로였다.
“도로시는 기어이 사교회 날에 사고를 터뜨리네.”
“과잉방위이긴 했지만, 정상참작되겠죠?”
“레이젤에 한해선. 로제 레드리베라를 친 잘못도 있으니까 가봐야 알겠지.”
사실 연금발 여학생,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은 도로시가 경징계를 받는 데 그치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남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다는 점이 표면적 이유로 참작될 수 있는 상황이고,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도로시의 존재를 사업적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으니까.
주신 만할라의 축복을 몰아 받은 희대의 천재, 고작 10년 이내로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바로 그 도로시이니. 학사의 이익과 저울질한다면 불공평한 처사여도 어쩔 수 없다. 도로시라는 존재가 가져다 주는 수혜가 몹시 크니까.
그러니 도로시가 중징계를 받는다면 메르헨 아카데미 이미지에 타격이 클 터. 이는 당장에 투자자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학사진 누구도 바라는 사항이 아니리라.
“그것보다, 의문인 건 레이젤 레드리베라 쪽입니다만.”
에린은 레이젤 레드리베라에 관한 사항도 보고했다. 현재 그는 치료받는 중이지만, 어째선지 공포에 질려 덜덜 떨고 있다는 소식이다. 입 막음이라도 당한 것처럼 아무런 증언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하고.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도로시에게 당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다던데…. 이제는 정신적 외상까지도 생겼다는 모양이다.
“2차 피해라도 발생한 건지….”
도로시 이외의 다른 인물까지 나선 건지는 불명확했지만, 아마도 맞으리라. 그리고 그 2차 피해를 일으킨 범인은 루체 엘타니아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사적인 복수겠지.
그렇다고, 앨리스는 그런 자잘한 일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굳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건 애써 파헤치지 않는 것이 그녀의 신조였으니.
“도로시한테 당한 거니까, 나중에라도 겁먹은 거겠지. 오히려 처음에 정신 차리고 멀쩡했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렇겠죠?”
앨리스는 홍차를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상냥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 외에, 나머지 사건 관계자인 아이작과 루체, 카야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그들은 사실관계 조사를 마치고 곧바로 풀어줬다. 굳이 붙잡아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히, 고생해. 파티인데 수고가 많아.”
앨리스의 미소.
에린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을 만끽했다. 한밤 중에도 앨리스는 여신처럼 빛나고 있었다.
학생회 모두에게 선망 받는 그녀다. 목소리는 몹시 고아하며, 미소는 햇빛처럼 따사로우며, 미모는 출중하며, 인품까지도 훌륭하니. 일 처리 또한 완벽하여 흠잡을 데가 없는, 비인간적일 정도로 이상적인 인간상이었다.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회장님도 마찬가지신데요, 뭘. 그럼 수고하십시오.”
에린은 뺨을 붉히면서 환하게 웃더니, 앨리스에게 상체를 숙여 인사하곤 학생회실을 떠났다.
적막이 감돌기 시작하고.
고오오오오──.
일순, 잿빛 마나가 일렁이더니 눈 깜짝할 새에 응접용 테이블 위로 보라색 고양이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재미없는 결말이야.]중절모를 쓴 뚱보 고양이, 괴묘-체셔였다. 그는 테이블에 옆으로 드러누운 채 엉덩이를 벅벅 긁었다.
“뭐가?”
앨리스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도로시 말이지, 다른 사람 피해 줄까 봐 우릴 순순히 따라주려는 분위기였지? 시시했어. 안 그러니, 앨리스?]“도로시가 진심으로 저항하면 아무도 못 막아. 고마워해야지.”
앨리스는 괴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따뜻한 홍차가 담겨 있는 찻잔을 들었다.
한동안 괴묘는 앨리스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다른 화제를 꺼냈다.
[…앨리스. 아이작이라는 애, 어떻게 생각하니?]앨리스는 아주 잠깐, 홍차를 마시려던 손을 멈추었다.
[그 도로시가 마음을 연 아이라구. 신기하지 않니? 게다가 ‘얼음 속성’이라고 하던데, 그 아이.]“…의심하고 있구나?”
[앨리스, 난 지금 모든 상황이 그 ‘방해꾼’ 녀석의 생각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조금이라도 의심해볼 수 있는 건 전부 의심해 봐야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내통자 정보 때문에 학사 측에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 황실 기사단까지 그 정보를 접한 마당에 섣부른 행동은 안 하는 게 좋을 걸.”
앨리스는 태평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팔라딘을 전부 소집해도 위협적인 그 방해꾼이, 남한테 지켜지고 휘둘리기나 하는 그런 약해 빠진 남자일 거란 생각은 안 들어.”
1학기 때 페르난도 프로스트 교수가 했던 증언에 따르면, 검은 괴물은 9성급 마법도 사용할 수 있는 대마법사 반열에 오른 자라고 했다.
그러니 앨리스의 권한으로 막강한 트럼프 팔라딘을 전부 데려와도, 9성급 마법을 사용하는 그 괴물을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반면에 시계탑에서 보았던 청은발 남자, 아이작은 어떠한가.
레이젤에게 얻어맞고, 도로시에게 지켜지고, 여자들에게 휘둘려지는 꼴이란… 앨리스가 생각하는 그 강력한 적, 검은 괴물이라고 보기에는 거리가 몹시 멀어 보였다.
“애초에 이성 관계 따위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그도 그럴게 걔, 갖고 놀고 싶게 생겼거든. 도로시도 그런 이유로 발정했어도 이상할 게 없어.”
앨리스는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곤 다시 홍차를 들이켰다. 그 목소리엔 앨리스 특유의 자상함과 성숙함, 여유로움이 묻어 있었으나 내용은 그러하지 못했다.
재밌는 걸 들었다는 듯 몸을 일으키는 괴묘. 그는 입꼬리를 찢으며 기괴한 미소를 흘렸다.
[갑자기 이런 얘길 하니까 생각나서 말이지. 앨리스도 사랑해 보고 싶지 않니?]괴묘는 오락을 추구한다.
세계 멸망이라는 앨리스의 포부를 따르는 것도, 단순히 재밌을 것 같아서 그러는 것에 불과했다.
겉보기엔 상냥하나 속내는 칠흑처럼 시꺼먼 제 주인이 연애하는 꼴을 보인다면, 괴묘 처지에선 더할 나위 없는 오락거리일 것이었다.
[도로시도 청춘을 구가하는 마당에, 앨리스도 뒤처져선 안 될 거 아니니?]부채질하듯 앨리스를 재촉하는 괴묘.
“…재밌는 소릴 하는구나.”
그러나 앨리스는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툭 던지듯 대답하더니.
다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차를 들이켰다.
[반응 시시하네….]맥 빠지는 반응.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괴묘는 테이블에 축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