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86)
“아아….”
달빛이 스테인드글라스 천장을 뚫고 아스라이 흩어지고 있었다.
시계탑엔 벽면을 따라 계단이 나선형으로 이어져 있었고.
층계참 구석구석엔 몰래 숨어들 수 있는 비좁은 공간이 있었다.
나는 악식의 카야와 함께 그 비좁은 공간에 들어가 몸이 거의 달라붙어 있다시피 했다.
얘기는 요점만 간추려서 빠르게 끝마쳤다. 마족, 질투의 말록. 그리고 카야의 가공된 기억 등.
처음에 카야는 “거짓말이시죠…? 부끄러워서 이야기 지어내신 거 아닙니까?”라며 애써 현실을 부정하다가, 내 진지한 태도를 보고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녀는 짙은 회의감에 빠져 버렸다.
“아이작 님의 그 말씀이… 전부 가짜….”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째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나야 이런 식으로 기억이 가공될 줄 몰랐으니까….
참고로 파티장에서 카야에게 나를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던 건 변수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 따르면, 히로인들은 모두 뭇 남성들의 시선을 독차지했었으니. 흔해 빠진 클리셰대로 그중 인성 빻은 녀석들이 괜한 시비를 걸어오기도 했었다.
예상치 못할 변수는 최대한 피할 수록 좋았다. 나는 인간 상태의 말록과 신경전을 벌여야 했고, 그 자체만으로도 불확실성이 넘쳐났으니.
그래서 카야에게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미리 마족에 관한 이야기 정도는 해 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미안해.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미안하면 진짜로 해주시든가요.”
뾰로통한 얼굴로 말하는 카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녀가 들었다던 낯부끄러운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진 않았다.
“…뭐, 해주실 거라 기대도 안 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이작 님이랑 이렇게 두근거리는 상황에 처해졌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니까.”
“이제 나갈 거야. 루체랑 얘기 나눠야 하….”
“조금만.”
카야는 내 머리 옆, 벽을 살며시 짚었다. 나가지 말라는 듯.
이미 몸이 거의 밀착한 상태였기에, 카야의 부드러운 부위가 맞닿아 절로 황홀한 소름이 올라왔다. 어떻게든 피하려고 최대한 몸을 벽에 밀착하고 있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얼굴을 들이미는 카야. 어둠. 미약한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어렴풋이 분간하게 했다. 역시나, 여느 때처럼 악식 다운 음흉한 미소가 만면에 가득했다.
“조금만 더 이러고 있어요, 아이작 님.”
[ 카야 아스트레앙 ]심리 : [ 당신과 가까이 있어서 설레고 있습니다. ]
나도 마냥 싫은 기분만은 아니었다. 하물며 그 귀여운 카야가 악식의 인격을 갖추면서 색정적인 표정과 몸짓이 몸에 배어 버렸으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놈의 애정캐….’
너무 귀여워서 환장할 것 같았다….
또각─.
그때, 구두 굽이 계단 밟는 소리가 울렸다. 한 명. 딱 들어도 루체의 발소리임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목적대로 카야와 오해를 풀었으니, 이제 루체를 누그러뜨리기만 하면 될 일.
또각─, 또각─.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져 온다.
나는 나가는 길을 막고 있는 카야의 팔을 밀어냈다. 그녀는 저항했으나, 내가 힘을 주고 빤히 쳐다봐주니 얼굴을 붉히면서 끝내 투항했다.
그렇게 비좁은 공간에서 빠져나가, 계단 난간 앞에 서서 사선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맞은편 아래쪽, 달빛에 반짝이는 로즈골드색 머리칼의 여학생이 계단을 오르다 말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역시나 루체였다.
“아이작…!”
[ 루체 엘타니아 ]심리 : [ 당신을 봐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
루체는 표정이 단숨에 밝아졌다가, 이내 조용히 숨을 가다듬고 감정을 진정시켰다.
“그 애, 너 뒤에 있는 거지?”
“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카야가 내 옆으로 튀어나왔다.
루체는 잠깐 눈살을 찌푸렸으나, 표정을 갈무리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 애한테 심한 짓 한 건 미안 하게 생각해. 나도… 경황이 없었어. 솔직히 그 애, 도가 지나쳤으니까.”
“딱 봐도 아이작 님께서 싫어하실 만한 행위를 하던 게 누구던가요? 전 오히려 아이작 님을 도와줬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루체 엘타니아 당신, 스스로가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라고 생각 안 하십니까?”
“아이작. 그 애가 갑자기 키스하려 해서 놀랐던 거지? 멋대로 널 데려가기까지 하고.”
살벌하다…. 자기들끼리 멋대로 이야기 진행하네.
아니, 조금 다르다. 루체는 나만을 바라보고, 나에게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카야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다.
타인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는 루체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카야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를 무시하는 루체의 태도가 못마땅한 눈치였다.
“저 보고 얘기하세요. 지금 무시하시는 겁니까?”
“…….”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루체는 카야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두 여자의 기 싸움에 짓눌리는 기분이었으나, 이제 그녀들이 더 이상 대립을 이어가지 못하도록 내가 나서야 할 터.
카야가 뭐라 말을 이어가려 하자, 나는 그녀 앞으로 팔을 슬쩍 내밀어 말을 멈추게 했다.
“아이작 님?”
“루체, 카야. 날 소중히 여겨줘서 고맙긴 한데, 난 오늘 파트너가악!”
차라라랑─.
일순 내 주위로 형형색색의 별빛 마력이 일어났다. 나는 말을 채 끝마치지도 못한 채 곧바로 시계탑 정상을 향해 몸이 끌려갔다.
휘이이이이───!
나에게만 한정해서 새로운 물리법칙이 정립되고, 중력이 자유자재로 작용하는 듯한 기분. 그대로 나는 나선형 계단의 끝, 큰 시계가 있는 마지막 층에 이르러서야 강제력으로부터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놀라울 건 없었다. 나를 끌고 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
루체와 카야는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들은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번쩍 치켜세워 나를 쳐다보았다.
이곳에 있는 어느 누구 것보다도 막대한 마력이 바람처럼 피부를 쓰다듬고 지나가고.
모습을 드러낸 건, 찬연한 별 무리를 휘감은 유독 빛나는 존재.
연보랏빛 머리칼이 흘러내린다. 그녀가 모두의 시야에 들어왔다.
“왠지 볼일이 오래 걸리더라니. 왜 누나가 안 보는 사이에 납치당하고 있었어, 회장?”
“선배….”
도로시 하트노바가 웃는 얼굴로 물어왔다.
루체가 뇌신조를 소환한 시점에서 도로시가 우리를 따라올 건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그래도 막상 직접 보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도 출현한 느낌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도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된 건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루체, 눈빛이 무섭다.
아무리 타인에게 살갑게 대하는 도로시라고 해도 루체의 대인기피증 예외대상은 아니었으니.
“도로시 하트노바 선배…?”
내 옆에 서 있는 연보랏빛 머리칼의 여성이 누구인지 대번에 파악한 듯한 카야.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인 이상, 별빛 마법을 목도했다면 도로시가 누구인지 모르는 게 더 어렵다.
“얘들아, 장난은 여기까지 하자. 남의 파트너 뺏어가는 건 도리가 아니잖아?”
눈살을 찌푸리는 카야와 루체. 내게 파트너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파트너가 도로시라는 사실이 그녀들의 신경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내게도 카야와 루체는 소중하다. 같이 있고 싶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 나는 도로시와 파트너를 맺어, 그녀와 둘이서만 놀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먼저 한 약속을, 신의를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분위기 뭐야?’
그러나… 공기가 무겁게 침잠한다. 어느 쪽이건 나를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피부가 떨려온다. 이 상황을 대체 어째야 하냐….
우선, 이 시계탑 안에서 흐르는 신경전의 중심이 나라는 사실이 지나치게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이 세 명의 여자로부터 도망치는 건 내 실력으론 절대로 불가능하다.
‘어쩌냐, 진짜.’
진짜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였다.
“……!”
또 다른 강한 마력이 내 피부를 덮쳐왔다. 도로시의 강대한 마력이 주위로 일렁이고 있는 탓에 감지가 늦어졌다.
나와 도로시는 얼른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어 눈에 들어온 건.
“이제 그만하지 않을래?”
달빛이 투과하는 거대한 시계를 등지고 서 있는 단아한 용모의 여성.
아름다운 금빛 드레스 차림은 곱게 묶은 연금발과 잘 어우러졌고.
흑백 체크무늬 머리띠와 검은 꽃 모양 헤어핀, 흑백 귀걸이, 목에 단 흑백 초커는 그녀에게 색감을 덧입히고 있었다.
그녀 옆에는 머리에 작은 중절모를 쓴 뚱뚱한 보라색 고양이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내가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메르헨의 마법 기사> 흑막.
그녀는 특유의 고혹적인 목소리를 흘렸다. 달밤임에도 그녀의 안광이 매혹적인 연분홍빛을 흩뿌렸다.
“우리가 곤란해지거든.”
연이어, 여러 동물 형태의 사역마를 탄 학생들이 시계 근처 틈새로 들어와 연금발 여성 뒤로 진열을 가다듬었다.
파티에 걸맞은 예복 차림. 그러나 왼쪽 가슴팍에 달려 있는 검과 마도서 모양의 은빛 브로치는 그들이 어디 소속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메르헨 아카데미 행정에 관여할 수 있는 학생 최고 권력 기구, 학생회.
그리고 그들을 수하로 두고 있는 연금발의 여성은, 바로 그 학생회의 수장.
[ 앨*()(&^%#( *&$&* ]Lv : 1&^*&%$
종족 : &*@간
속성 : $&^%!#)
위험도 : $*(&*4#
심리 : [ ♠♥♣◆ ]
고유 특성 [붉은 여왕의 역설]로 그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존재감이 뚜렷한 여성.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