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89)
똑똑─.
[주거침입! 주거침입! 내 주인 준법정신 실종!]“…….”
빡─!
[벨로, 충격! 폭력 반대! 폭력 반대!]주말, 오전 햇볕이 가로수를 선명히 비추고 있었다.
중하위권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브릭스관 인근에 학생들이 나다니지 않고 있을 때였다.
원피스 차림의 한 여학생이 평소보다 크기를 키운 범고래 마수, 벨로 위에 탄 채 브릭스관 어느 방 창가 앞에 와 있었다.
벨로는 옅은 물 마나를 몸에 휘감은 채 허공을 유영한다. 크기만 키우면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비행할 수 있는 사역마였다.
그 위에 타있는 로즈골드색 머리칼 여학생, 루체 엘타니아는 시끄럽게 떠드는 벨로를 한 대 때린 뒤, 앞에 있는 창문을 통해 내부를 살폈다.
아무도 없구나.
환기를 위해 슬쩍 열어둔 창문 안쪽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방의 주인이 샤워실이나 화장실에 있는 것도 아닐 터.
‘아까 아이작이 단련하러 나가는 거 확인했으니까.’
사실 이미 이 방에 아무도 없다는 것쯤은 진작 파악하고 있었다. 만일을 대비해서 살펴본 것뿐이었다.
드르륵.
루체는 망설임 없이 창문을 열어젖힌 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은 처음 상태 그대로 살짝 닫아 놓았다.
“으, 축축해….”
벨로의 물 마나 때문에 아랫도리 쪽이 온통 젖어 버렸다. 뇌신조를 탔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사교회 날, 학생회로 끌려갔던 루체는 뇌신조-갈리아 소환을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지금의 뇌신조가 안전하다고 인정받았다고 한들, 저번 학기말 평가 사건 탓에 아직도 뇌신조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까닭이다.
그래서 시험삼아 벨로를 타고 온 것이었으나, 원피스 아래쪽과 속옷이 다 젖어 느낌이 무척 찝찝했다. 역시 벨로는 타고 다닐 게 못 된다.
[내 주인 주거침입 성공! 범법행위 완벼ㄱ……!]루체는 벨로를 역소환했다. 벨로의 목소리가 흩어지자 쥐 죽은 듯 깊은 고요가 찾아왔다.
손에는 쿠키가 든 작은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고급스럽게 포장된 그 종이봉투엔 [저번 일은 미안했어 – 루체가]라고 적혀 있는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쪽지에는 요즘 유행한다는 캐릭터 그림도 가까스로 알아낸 끝에 열심히 그려 둔 채였다. 웃는 얼굴을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이걸로 아이작 기분이 풀릴지 모르겠지만….’
사과용 선물을 상대방 영역에 몰래 갖다 놓으면 그의 마음을 풀어 줄 수 있다고 어느 책에서 보았다.
루체는 그 내용을 따라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녀의 방식엔 준법정신과 일반적인 상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사교회 날, 아이작을 붙잡아두기 위해 강경책을 썼으나 끝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가 이런 꼬락서니다. 오로지 아이작과의 사이만 틀어지는 리스크만 짊어지게 된 셈.
자기가 한 행위에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아이작을 묶어두려고 했던 행위는 자기 판단상 불가피했던 것이니까.
다만, 아이작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만큼 소중하기론 두말할 게 없는 사람. 그렇기에 그에게 미움 받는 건 죽을 만큼 싫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두면 효과가 좋다고 했지…?’
가장 좋은 장소는 책상이겠지.
루체의 계획은 놀랍도록 체계적이었다.
1. 아이작 방에 쿠키를 두고 간다.
2. 단련을 마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아이작은 쿠키와 쪽지를 보고 감동한다.
3. 쿠키를 맛있게 먹은 뒤, 루체가 보고 싶어져 그녀를 용서하고 더욱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이제 이 쿠키를 두고 도망치기만 하면 완벽하다고 루체는 생각했다. 아이작 혼자서 감동하고 여운에 젖을 시간을 준 뒤, ‘루체를 용서하고 더 친하게 지내야지’하고 결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치밀한 계획이었다.
“……?”
책상에 쿠키가 든 종이봉투를 두던 중, 문득 책상 위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과 온갖 양피지들이 루체의 눈에 들어왔다. 정확하게는, 책들 뒤편에. 마치 일부러 감춰 놓은 듯이.
책들은 문제없으나 두루마기처럼 돌돌 말려 있는 양피지가 의아할 정도로 많았다. 뭘 저리 쌓아둔 것일까.
그것들은 아이작이 이 세계로 빙의된 때부터 부단히 짜왔던 계획, 그리고 미래에 관한 정보들이었다.
악신 네피드를 쓰러뜨리기 위한 계획과 정보들이 그 양피지들에 총망라되어 있었다.
양피지를 버리지 않고 몰래 보관해 둔 이유는, 아이작의 기억이 끝까지 온전하리란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악신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장거리 레이스다. 몇 년간 게임을 플레이할 수 없는 처지에선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이치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만일을 대비해 나름 책 뒤편에 숨겨두긴 했으나, 뛰어난 시력을 지닌 루체의 눈을 피해갈 순 없었다.
“아이작의 비밀….”
이런 건 대게 은밀한 것이기 마련.
루체는 아이작이 가끔 자기 흉부를 힐끔힐끔 곁눈질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게 정상적인 성욕을 가진 친구라면, 어쩌면 저 양피지들의 정체는….
‘야한 그림이구나.’
루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말이지, 귀여운 변태 친구다.
아이작은 어떤 성적 취향을 지녔을지 은근한 호기심이 동했다. 루체는 책들을 꺼내고, 그 뒤편에 숨겨져 있던 양피지를 아무거나 손에 집히는 대로 하나 꺼내보았다.
돌돌 말린 양피지를 고정시킨 끈을 풀고 내용을 펼치는 루체.
그 아무렇지도 않게 한 행위로, 루체는 아이작의 비밀을 눈에 담고 말았다.
“…뭐야?”
야한 그림이 아니었다. 애초에,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글자인가? 생전 처음 보는, 반듯반듯한 느낌의 기이한 언어다. 그 언어가 체계적으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나름 많은 언어학 서적을 독파한 루체임에도, 그 언어 만큼은 왠지 조금도 읽어낼 수 없었다.
‘고대어 비슷한 건가? …그럼 아이작이 왜 고대어를?’
한글.
이 세계 사람인 루체가 그 언어를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였다.
저벅─.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루체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양피지를 돌돌 말고 끈을 묶은 뒤, 재빨리 원상복귀시켰다. 겉보기엔 조금도 놀란 기색 없이, 차분해진 표정으로 손동작만 굉장히 빨랐을 뿐이었다.
발소리는 복도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굉장히 가깝다.
그리고 이 발소리는.
‘아이작…!’
아이작, 바로 이 방 주인의 것.
루체가 그 사실을 삽시간에 파악할 수 있는 연유는 간단했다.
바로 ‘보폭’.
아이작의 발소리가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어느 정도의 음 높낮이로 울리는지 루체는 이미 외워둔 상태였으니까.
그 외에도 그의 체취, 홍채의 생김새, 피부색, 손금 모양, 모발의 굵기 따위는 전부 외워두었다. 발소리로 아이작 구분하기 정도야 식은 죽 먹기였다.
지금 당장 벨로를 소환해서 창밖으로 도망치기엔 이미 늦었다.
여기서 들켜 버리면 루체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었다.
게다가 요새 아이작과 사이가 서먹서먹해졌는데. 다짜고짜 그를 만나기보다는, 몰래 주는 쿠키 선물로 마음을 풀어주는 걸 우선시하고 싶었다.
이곳에서 숨을 곳은? 침대 밑엔 공간이 없다. 왜 이따위로 설계된 것인가. 애꿎은 가구 제작자만 탓해 본다.
아이작이 거의 코앞이다.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빠르게 숨을 수 있는 곳은 세 곳뿐. 장롱과 샤워실, 화장실이다.
루체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다가, 쿠키가 든 종이봉투를 집어 들고 다급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 * *
똥 마렵다.
일단 단련하러 나가기에 앞서 아침 대변부터 해결하고 가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공중화장실도 있지만, 그냥 속 편하게 내 방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철컥.
나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
뭘까. 나가기 전과 같은 듯하면서도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왔다 간 것처럼…. 내 뇌가 신호를 보내온다.
“어?”
금세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챘다.
창가 앞 바닥. 살짝 물기가 묻어 있다.
저기에 물기가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최근에 묻은 것. 즉, 누군가가 내 방에 들어왔었다는 얘기.
나는 나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되돌아왔으니, 침입자는 아직 이 공간 안에 몰래 숨어 있을 것이다. 내가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나와 친한 사이라면 그럴 리가 없을 터. 애당초 내 지인이 내 방에 몰래 숨어들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
순간, 오싹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내달렸다.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 그녀가 떠오른다.
최근에 나는 그녀와 안면을 틔웠다. 내가 도로시의 비호 아래에 있다는 소문도 학생들 사이에서 퍼져나간 상황.
그러니 앨리스가 나를 조사하러 나왔을 가능성이 머릿속에서 제기된다.
‘만약 앨리스가 맞다면, 하수인이라도 보낸 건가?’
어째서 물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가능성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환풍을 위해 조금 열어둔 창문 구석에 끼워두었던 작고 투명한 종잇장이 있었다. 그것이 사라졌다.
이는 누군가가 내 방으로 들어와 일부러 창문을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려놨다는 얘기다.
앨리스 본인이 직접 올 리는 없었다. 한창 사려야 하는 처지일 테니.
그러니 만약 앨리스가 하수인이라도 몰래 보내온 거라면.
내가 방에서 떠난 틈을 타서, 내가 방해꾼이라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들어왔을 게 뻔했다.
‘그렇다면… 내가 오자마자 숨을 수밖에.’
퍼즐조각이 맞춰지듯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지금, 이 방에… 앨리스의 측근이 있다.
숨을 죽인다. 긴장감을 유지한다.
품 안에서 재해의 검집을 꺼내 들고, 양 손가락을 맞댄 뒤 마나를 응축시킨다.
응축된 얼음 마나가 쥐어진 오른손. 그 앞에 [빙결 폭발]의 마법진이 구현되었다.
재해의 검집은 왼손으로 쥐고 언제든 적을 향해 효과를 발동할 수 있도록 준비 자세를 취했다.
도망치는 것보다는 맞서 싸우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앨리스는 섣불리 나를 죽일 수 없는 처지다.
둘째, 내겐 주거침입자에게 대항한다는 합당한 명분이 있다.
셋째, 방해꾼인 검은 괴물에 비해 내가 무척이나 약하다는 사실을 그 하수인에게 입증할 수 있다. 이는 앨리스의 귀에 들어가고, 나는 검은 괴물 후보군에서 밀려날 터.
게다가 잘 풀리면 역으로 앨리스를 학사 측에 찌를 수도 있는 상황.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여러모로 득이 많은 상황이었다.
‘자, 어디냐.’
앨리스는 실수했다. 설마 내가 똥이 마려워서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
혹여나 책상 밑에 숨어 있나, 바퀴벌레처럼 천장에 붙어 있나, 다 살펴봤으나 역시 보이지 않는다.
나는 발소리를 자제하고 천천히, 장롱 쪽으로 다가갔다.
끼이이이익─.
아무도 없다.
다음은 샤워실.
끼이이이익─.
여기도 없는가.
그렇다면… 다음은 화장실이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 화장실 문 앞에, 앨리스의 하수인이 있다.
상대는 분명… 마족이 아닐 것이다. 즉, 나는 평범한 아이작으로서 적과 싸워야 한다.
“후우.”
언제든 오른손에 응축된 마나와 재해의 검집으로 2방의 [빙결 폭발]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
선빵필승이다.
나는 깊이 심호흡하고서.
화장실 문을 확, 열어젖혔다.
“…….”
“…응?”
…잠시 내 눈이 잘못됐나 싶었다.
혼란스러운 나머지, 내 오른손에 응축되어 있던 얼음 마나가 허공에 허무하게 흩어졌다.
변기 위에, 로즈골드색 머리칼의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문이 열리자마자 놀랐는지 뻣뻣하게 굳은 채로 두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여기서 뭐해?”
“그게, 이거 주려고….”
변기 위의 여학생, 루체는 내게 빨간 리본으로 묶여 있는 작은 종이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들고 리본을 풀어 내용물을 살피자, 모양이 뒤죽박죽인 쿠키 여러 개가 눈에 보였다. 딱 봐도 정성껏 만든 모양새다.
“아, 고맙다. 근데, 여기서 뭐해…?”
루체는 말하기 곤란한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 순간, 루체의 하반신 쪽이 젖어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아채고야 말았다.
나는… 실수했던 것이다.
“아니, 미안하다….”
나는 조용히 화장실 문을 닫아주었다. 그대로 문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고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문 안쪽에선 숨 막힐 정도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엔 알아선 안 되는 게 있는 법이고.
방금 나는 그것을 목도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