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97)
네 번째 관문 통과.
나는 잔야의 지팡이를 등허리 쪽에 동여맸다. 다들 사역마는 역소환한 상태였다.
우리는 기절한 필립 교수를 지나쳐 아치형 문을 향해 나아갔다.
“역시 아이작 님 생각대로 됐네요! 이것이 짬의 차이라는 겁니까!”
“운이 좋았던 거야.”
카야가 눈을 반짝이며 호들갑 떠는 모습은 오랜만에 본다.
대충 식상한 멘트로 맞받아쳤다. 우리는 핸디캡을 떠안은 필립 교수를 쓰러뜨렸던 것에 불과하니까.
만약 전력을 쏟을 수 있는 그와 싸워야 했다면, 내가 세운 작전 대부분은 물거품이 됐겠지.
그래도.
‘예쓰~.’
통과했으면 된 거지~.
어차피 굳이 필립 교수와 또 싸울 일도 없을 텐데.
“겸손! 멋있습니다, 아이작 님!”
“그러냐.”
무한한 존경심은 부담스럽지만, 카야가 무척 귀여워서 입가가 샐쭉거렸다. 뺨을 긁는 척 입가를 잠시 가렸다.
“생각보다 시시했다. 만전인 필립 교수나, 아리아라든지, 엘레나 교장 같은 녀석들이랑 한 판 붙어보고 싶은데.”
리제타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불거렸다.
필립 교수는 싸워볼 만하다고 쳐도, 헤겔 마탑주 아리아나 메르헨 아카데미 교장 엘레나는 우리로선 절대로 못 이긴다. 한 대 때리기도 전에 처발릴 걸.
그래도 리제타 녀석의 순수함을 깨부수고 싶지 않았기에 잠자코 넘어갔다.
네 번째 관문을 지나자 깊고 어둑한 동굴이 이어졌다. 약한 불빛만 흩뿌리는 발광 램프가 드문드문 있어,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물씬 풍겨왔다.
어느 지점. 벽면에 설치된 발광 램프에 새겨진 흠집이 눈에 띄었다.
여기다.
나는 발을 멈춘 뒤, 카야에게 슬쩍 팔을 내밀어 그녀를 멈춰 세웠다.
“리제타, 이제 됐으니까 가도 된다.”
이제부터 개구리 마족을 상대하러 가야 한다.
리제타는 네 번째 관문까지만 도와주기로 약속했었으니, 보내줄 때가 되었다.
“말 안 해도 갈 생각이었다. 알아서 해라.”
리제타는 그리 말하고서 점점 멀어져갔다. 시크하구만.
[ 리제타 라이온하트 ]심리 : [ 당신에게 방해되지 않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
여린 심리와는 다르게. 나야 좋지.
발로 지면을 툭툭 건드렸다. 이쯤이면 되겠다.
아래쪽으로 오른팔을 뻗고 바위 마나를 흘려보냈다. 내 머리 위로 연갈빛 마법진이 새겨진다.
“지하로 갈 거야. 착지 준비해”
“네, 아이작 님.”
“그리고 지금부터 뭘 보든 그냥 무시해라.”
“…네?”
전술했듯, 개구리 마족은 별거 아니지만 잡는 과정 자체는 기괴하다.
애당초 >메르헨의 마법 기사>는 UI나 컷씬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잔혹동화 콘셉트의 게임이다. 그래선지 적들이 하나같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지.
하다못해 엑스트라 배드 엔딩을 막기 위한 찌끄레기 마족을 잡으러 갈 때에도 기괴한 연출은 패시브인 셈.
카야에게는 수차례 경고했다. 그러나 그녀는 기어코 나와 동행하고 싶다고 간청했다. 내 여정에 동참하고 싶다면서.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암석 붕괴 (바위 속성, ★4)」
콰아아앙───!
천장에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바위기둥이 뻗어 나와 지면을 박살 냈다.
와르르, 지면이 무너져 내리고.
나는 카야와 함께 부유감을 느꼈다.
「바람 생성 (바람 속성, ★1)」
휘우우우우──!
고밀도의 연녹빛 바람이 우리 몸을 휘감았다. 카야가 일으킨 바람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타듯 우리는 서서히 지하로 가라앉았다.
“어어…?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하다는 말이 잘 어울릴 만큼 드넓은 지하 공간.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동굴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황량한 풍경.
싸악─.
이 지하 동굴에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단두대가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단두대 칼날이 내려간다.
무형의 힘이 단두대 칼날을 다시 끌어올린다.
칼날엔 이미 보라색 피가 딱지처럼 굳어 있었다. 단두대가 내려가고, 다시 올라갈 즈음엔 새로운 피가 덧대어진 채였다.
[개골─.] [개골….] [개골! 개골─!]단두대에 묶여 있는 것은, 팔과 다리를 가진 사람 같은 형태의 무언가였다. 다만, 개구리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피부는 옅은 녹색. 머리는 양옆으로 늘어진 듯하다.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머리가 늘어진 만큼 두툼한 입술도 길게 찢어져 있었다.
발가벗은 모습으로 엎어진 채, 단두대에 묶여서 머리만 쭉 내밀고 있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듯했다.
꿈틀.
단두대가 개구리 괴물의 머리를 가볍게 갈라낸다. 그럴 때마다 단두대에 꽉 붙들려 있는 몸체가 격하게 꿈틀댄다.
피슉, 머리가 날아들어 지면 한 곳에 자리 잡는다.
그러자 목이 잘린 무언가의 목에서 지렁이처럼 꾸물거리는 무언가가 대량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더니, 다시 머리의 형태로 결집된다.
그러면 다시 단두대 칼날이 어김없이 낙하해 재생된 머리를 날려 보낸다.
“이게, 대체….”
카야는 입을 틀어막았다. 눈동자가 덜덜 떨렸다. 거 봐, 이런다니까.
지면에 발이 닿자 질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하다. 지면을 이루고 있는 건 수많은 개구리 괴물의 머리였으니.
머리 틈 사이사이로는 보라색 핏물이 강물처럼 고여 있었다.
그로테스크하긴 한데, 나야 고인물이라 별 감흥이 없었다. 원래 여기가 이런 곳임을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주구장창 봐 와서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래도 좀 징그럽긴 하네.
“괜찮…?”
안심시켜 줄까, 하고 카야에게 말을 걸려는 때. 나는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그녀가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조금씩 내리자 보였다. 그녀의 입가에, 점성 있는 투명한 액체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침이었다.
마치 지독한 굶주림에 시달렸던 사람이 맛있는 음식이라도 발견한 것 같은 모습. 홀린 것처럼, 그녀는 목이 잘려 나가고 있는 괴물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싹한 감각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왜 이래?’
얘 갑자기 왜 이러는데?
“카야?”
“아, 네, 아이작 님. 쓰읍.”
내 부름에 카야는 정신이 번쩍 든 듯 입가에 흐르던 침을 소매로 슥 닦았다.
“추태를 보여 죄송합니다. 갑자기 침이….”
평범한 반응이 아니다.
혹시 지금의 반응이, 카야의 마음 깊숙한 곳에 악식이 숨어든 까닭과 연관되어 있는 건가?
“…가자.”
일단 개구리 마족부터 잡는 게 우선이다. 카야 생각은 잠시만 미뤄두자.
“네, 네에…!”
카야와 함께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개구리 괴물 머리로 이루어진 땅이 질퍽거렸다.
귓가엔 싸악, 거리며 목이 날아가는 소리.
개구리처럼 울부짖는 것들의 외마디 비명이 연신 울려댔다.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곳은 개구리 마족의 고유 마법. 매일 다른 장소에서 출현하는 개구리 마족은, 합동 실습 평가가 진행되는 오늘만큼은 이곳에 영역을 펼쳐둔 채로 자기 하수인들이 처형당하는 광경을 즐긴다.
허상의 리파나 질투의 말록이 사용하는, 마력 감지가 안 되는 공간 창조 마법과 비슷한 유형이지만 이 영역에 담겨 있는 마력량은 몹시 적은 편.
엑스트라 배드 엔딩을 막기 위한 쩌리 마족 주제에 괜스레 번거롭다. 앞으로 싸우게 될 부유섬이나 악마의 기둥, 심연괴수도 그런 재주는 없건만.
어쨌건, 개구리 마족이 우리 같은 침입자를 인지한 순간.
이 드넓은 머리 벌판에서, 쉴 새 없이 목이 잘리고 있던 놈의 하수인들은 신체의 자유를 되찾는다. 제각기 약해 빠졌다. 수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참고로 하수인 놈들은 마력으로 만들어진 가짜 생명체라 경험치는 못 된다. 그러니 나는 개구리 마족, ‘염원의 마일로’나 잡으면 그만인 것.
“아이작 님, 저거…입니까?”
“응.”
걷는 도중, 단두대 사이사이를 거닐고 있는 고급스러운 옷차림의 양서류가 눈에 들어왔다.
신장 2m. 개구리처럼 생긴 머리는 양옆으로 늘어져 있었다. 양손과 양발은 개구리의 것과 똑같았다. 인간처럼 자연스레 이족보행을 하고 있다.
피부색은 검은색에 가까운 진녹색. 머리에는 작은 왕관을 쓰고 있고, 붉은 망토를 휘날리고 있다.
이 핏물과 머리로 이루어진 광활한 평야와는 어울리지 않는 복식이었다.
놈도 우뚝 멈춰 서더니 눈꺼풀이 없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Lv : 100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물
위험도 : 상
심리 : [ 당신의 목을 자르고 싶어 합니다. ]
‘역시, 금방 찾았네.’
개구리 마족, 염원의 마일로였다.
[게루루루루루루루루룩!!]염원의 마일로는 거대한 입을 크게 벌려 목청이 터져라 포효했다.
귀 아프네.
뭐, 됐다. 이제 저놈만 해치우면 목표 달성이다.
철컥─.
철컥─.
철컥─.
염원의 마일로가 내지른 포효를 트리거 삼아, 개구리 마족들을 구속하고 있던 단두대가 일제히 풀려났다.
[게랴랴랴랴략!!!]개구리 마족 마일로가 입을 더욱 크게 벌려 침이 고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공격 지시다.
놈의 하수인들이 검은색과 파란색이 조화를 이루는 마법진을 전개하며 내게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저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지.
[마족을 적으로 인식했습니다.] [고유 특성 [멸악자]가 발동됩니다!] [레벨과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크게 향상됩니다!] [스킬트리가 일시적으로 +10이 됩니다!]분위기만 괴기할 뿐인 쩌리 마족이니 가볍게 발라주고 돌아가면 된다. 등에 동여맨 잔야의 지팡이를 꺼내 들 필요도 없었다.
───────「얼음 창 (얼음 속성, ★4)」
푸슉! 화아아아───!
내 머리 위에 구현되어 있던 연푸른빛 마법진이 얼음으로 이루어진 굵직한 장창을 발사했다.
연푸른 냉기가 화염의 형태로 잔상처럼 남겨지고.
[얼음 창]은 눈 깜짝할 새에 마일로의 몸체에 이르렀다.퍼어엉──!
폭발음에 가까운 소리.
충격파가 퍼져나갈 때쯤, 마일로의 몸체엔 거대한 구멍이 생겨나 있었다. [얼음 창]이 꿰뚫고 지나간 자리였다.
[게루룩….]하고 마일로가 쓰러졌다.간단한 승리였다.
“…음?”
…뭐야?
마일로가 잿빛 가루가 되기 전.
꿈틀대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녀석의 몸 아래로, 돌연 피 웅덩이가 생겨났다.
꾸르르르르──.
피 마력이 마일로를 회복시킨다. 아직 죽지 못 하는 수준까지만.
악식의 마법이었다.
카야를 쳐다보았다. 눈동자는 영롱한 붉은색. 악식으로 인격이 뒤바뀐 채였다.
마치 현혹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일로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카…?”
“하아.”
끈적한 숨소리.
카야는 두 뺨을 붉게 물들인 채, 흥분한 표정으로 진한 숨결을 내뱉었다.
그리고.
쿠와악───.
핏물로 이루어진 해골 머리가 피 웅덩이에서 튀어나와 염원의 마일로를 집어삼켰다. 놈의 형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퍼어어어엉────!
연이어, 지면 곳곳에서 피의 파도가 간헐천처럼 솟구쳤다.
‘시벌, 뭐야?!’
마력으로 이루어진 핏물이 응집되고, 수 개의 거대한 해골 머리 형태가 되더니.
“하압.”
푸우우우우────!
카야가 입을 벌리자, 피의 해골 머리들 또한 입을 쩍 벌려 개구리 마족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쓰나미처럼 주위로 맑은 핏물을 퍼뜨리며, 지면을 메우고 있는 잘린 머리까지도 우악스럽게 잡아먹는다.
살벌한 핏빛 마력이 천장을, 지상을, 단두대를 뒤덮어간다.
괴이했던 평야가 사라지고, 투박한 동굴의 전경이 내 눈에 비치기 시작했다.
카야는 돌연 입안에서 찔꺽거리고 오도독거리는 무언가를 우물우물 씹었다. 음식이라도 먹는 것처럼, 맛을 음미하다가 꿀꺽 목구멍 안쪽으로 삼켜냈다.
“후아….”
카야는 붉게 물든 뺨을 어루만지며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마치, 공복이었던 사람이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짓는 표정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