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38
38화
해수.
15세 미만의 성장기인 소년 소녀가 3년간 혹독한 훈련을 이기지 못하고 절반이 넘게 죽는다.
훈련생들의 마지막 시험은 기사 암살, 이곳에서 다시 절반이 실패하여 죽음에 이른다.
그렇게 2할의 생존률을 뚫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3급 해수라는 칭호가 주어진다.
사해는 전원이 기사를 일대일로 암살할 수 있는 괴물들이 모인 단체라는 뜻이다.
서걱, 훙, 후웅, 슥.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해수들이 사냥꾼들 틈으로 파고든다.
사냥꾼들도, 해수들도 검을 휘두르지만 금속 마찰음은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검은 빗나가고, 누군가의 검은 심장을 파고든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다.
“사, 사해다!”
“사해 해수들이…… 큭.”
협회 본부 소속 사냥꾼들의 수는 현재 백사십여 명, 해수는 스무 명도 되지 않아 머릿수는 열세지만 마치 검은 파도처럼 그들을 휩쓸었다.
턱, 터덕.
“끄으으…….”
길지 않은 시간,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두 발로 서 있는 사냥꾼은 없었다.
저벅저벅저벅.
보폭이 일정하고 가벼운 발소리에 가브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셀이 한 손에 누군가의 머리통을 쥐고 다가오고 있다.
붉은 머리의 백인대장 델파의 머리다.
절단면이 지저분한 걸 보니 목을 몇 바퀴 돌려서 뽑아 온 것으로 추측됐다.
“빨리도 왔군.”
비꼬는 게 아니라, 실제로 비조를 보낸 지 일주일 만에 도착했다. 받자마자 밤낮없이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왜 비폭을 터트리지 않으셨습니까?”
비폭은 위치를 알리는 기능으로 사용하는 사해 전용 폭죽이다. 가브는 셀이 터트린 것을 보고 이 장소로 찾아온 것이었다.
“챙겨 왔을 리가 없잖아, 비조도 내 것이 아니었…… 아.”
가브가 말을 멈추며 고개를 돌리자 그 뜻을 알아차린 셀이 말을 이었다.
“세실리아와 덩치 큰 사내는 군에 넘어가기 전에 접촉했습니다.”
“다행이군.”
“상처가 깊습니다. 쉬십시오. 마무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가브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 * *
저벅저벅저벅저벅.
피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한 무리가 밤길을 거닌다.
술병을 들고 비틀비틀 걸어가던 취객 하나가 그들을 발견하고는 정신을 번쩍 차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들에게는 피 냄새만큼이나 짙은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콰앙!
셀은 굳게 닫힌 본부의 문을 거칠게 열었다.
“오셨습니까! 태제!”
문을 열자마자 예상과는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중년인 한 명이 꽁꽁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고, 그 뒤에 무장한 사내들 다섯 명이 허리를 깊이 숙이고 있는 것이었다.
가운데의 부본부장 코르소는 허리를 천천히 펴며 손으로 앞의 중년인을 가리켰다.
“이자가 협회의 본부장입니다. 이자가 모든 것을 꾸몄습니다. 소식을 듣고 도주하려는 것을 저희가 잡아 놨습니다.”
“그쪽은?”
“저는 부본부장 코르소라고 합니다, 태제.”
부본부장이라는 말에 셀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명백한 냉소다.
눈치 빠른 코르소는 바로 무릎을 꿇고 말을 이었다.
“살려만 주십시오. 상관의 독재를 방관한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이 개새끼가! 태제! 이놈이 절 꼬드긴 겁니-.”
턱.
셀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본부장의 입을 한 손으로 막았다.
본부장은 자신의 두 볼이 이대로 구멍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부장, 두 번째 만남이군요. 그때 내가 많이 우스웠나 봅니다.”
“으, 읍! 읍!”
본부장은 입을 잡힌 채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셀은 그를 건조하게 바라보다가 다른 손의 엄지로 그의 눈을 지그시 눌렀다.
지지지직, 퍽!
“으으으으읍!”
한쪽 눈알이 터지며 하얀 액체와 피가 흘러나왔고, 본부장은 그 어마어마한 고통에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쳤지만 셀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살고 싶으세요?”
차분한 셀의 목소리에 본부장은 거짓말처럼 몸부림을 멈추고 하나밖에 없는 눈으로 애원의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왜 그랬습니까?”
셀은 말과 함께 한 손은 그의 턱에, 한 손은 정수리에 얹고 목을 홱 돌렸다.
우두둑.
목이 180도 돌아간 본부장은 줄 끊어진 연처럼 그 자리에 픽 쓰러졌다.
셀은 손을 털고는 발을 옮겨 코르소 앞에 섰다.
“자, 말해 보세요. 그쪽을 살려 두면 어떤 쓸모가 있는지.”
코르소는 그의 싸늘한 눈을 마주한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입이 바짝 마르고 손이 덜덜 떨린다.
이자에게 어설픈 연기나 동정심 자극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
“혀, 협회 지부가 일곱 개입니다. 백인대 하나씩은 모두 꾸리고 있으니 칠백 명이 넘습니다. 태, 태제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번거로우실 수 있습니다. 제가 그들의 수장을 한자리에 모으겠습니다.”
코르소는 지금 태제에게 쓸모 있는 일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것에 불안했다.
“좋습니다.”
허락에 코르소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셀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지켜보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셀은 뒤돌아서며 손을 한 번 휙 저었다.
그러자 해수들이 코르소 양쪽에 있던 사내들의 목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슥, 슥, 서걱.
“흐, 흐읍…….”
이제 검을 다룰 줄 모르는 사무직원들을 제외하고 본부 소속 암살자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않게 되었다.
코르소는 바짝 엎드려 있는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손바닥과 얼굴로 핏물이 흘러들어 왔지만 셀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 * *
사냥꾼 협회 제국 본부 응접실.
공포에 질린 코르소는 다른 생각 따위 하지 못하고 나흘 만에 지부장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코르소의 생각과 달리 셀은 그들을 처리하지 않고 구두로 충성을 받아 내며 새로운 계약을 걸었다.
“협회 본부는 오늘부로 사해가 관리하겠습니다. 각 지부에서는 숙련된 사냥꾼을 스무 명씩 지원하여 무너진 본부를 세우는 데에 힘을 보태시기 바랍니다.”
“다, 당연하지요. 돌아가자마자 바로 지원하겠습니다, 태제!”
“최선을 다하여 힘을 보태겠습니다.”
방금 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것을 눈치챈 지부장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태제에게 충성을 보였다.
본부에 소속된 사냥꾼만 백인대 세 개, 절반은 가브 일행에게 당했지만 그들이 스무 명도 안 되는 해수들에게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당했다고 착각하여 그 압도적인 힘에 바짝 엎드리는 지부장들이었다.
셀은 코르소에게 일곱 개의 지부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감찰하는 감찰사 역할을 주었다.
전에 맡았던 일보다 훨씬 고되지만 그는 살려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했다.
가브 일행은 여관에서 협회로 거처를 옮기로 했다.
협회 본부에 다다르니 입구에 사내들 몇 명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가브와 세실리아를 알아본 해수 한 명이 인사를 건넸다.
전에 짧게 같은 조에서 활동했던 1급 해수 배쉬였다.
“방으로 먼저 안내해 드릴까요?”
“그게 좋겠군.”
가브 일행은 배쉬의 안내에 따라 2층 숙소에 짐을 풀었다.
수백 명이 죽어 나가 빈방은 많았다.
똑똑.
어둠이 짙어질 때쯤, 노크 소리가 가브의 상념을 깨웠다.
가브는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일어나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문밖에는 새하얀 얼굴에 싸늘한 눈빛을 지닌 셀이 서 있었다.
“도착하셨다고 해서 들렀습니다. 말씀드릴 게 있는데,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
“들어와.”
셀은 짧게 고개를 숙이고는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고 가만히 주변 소리를 한 번 듣고는 그답지 않게 작게 입을 열었다.
“선배님, 태제…… 카로스 말입니다.”
“말해 봐.”
“그때 이후로 알아봤는데 화장을 맡은 해수가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이미 죽었더군요.”
그의 말에 가브는 귀를 쫑끗 세웠다.
“죽었다라…….”
“시체도 카로스의 것이 아니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입니다. 선배님은 뭔가 알고 계셨던 겁니까?”
가브는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중에, 나중에…….”
“아, 예, 알겠습니다.”
셀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라도 그 파장이 매우 클 것이기 때문이다.
세실리아는 긁힌 상처가 전부였지만 가브와 발튼은 중상을 입어 최소 일주일은 회복에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가브는 그 시간도 아까워 자신의 방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세실리아와 발튼, 그리고 사냥꾼 협회 임시 본부장을 맡게 된 1급 해수 배쉬였다.
배쉬는 코가 뭉툭하고 강직한 인상을 지녔다.
가브는 테이블에 에런이 준 서류를 펼쳤다.
여덟 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합치면 제국의 지도가 되는 형식이었다.
“원을 그린 곳이 실종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이다. 흑마법은 필연적으로 산 인간이 필요하지. 실종 사건이 최근에 몇 건이나 있는지, 언제 일어났는지만 알아 와.”
지도를 보던 가브의 시선이 배쉬에게 향했다.
배쉬는 경직된 차려 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예, 선배님, 확실히 알아 오겠습니다.”
가브는 고개를 끄덕이고 세실리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세실리아는 그놈만 찾아. 얘 멀쩡해지면 같이 데리고 다니고.”
가브의 말에 발튼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에 반해 세실리아는 싸늘한 기운을 풀풀 풍겼다.
“혼자 찾는 게 편합니다.”
“아니, 내가 안 편해. 같이 다녀.”
가브의 단호한 어투에 세실리아는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 조장.”
“그래, 그럼 나가 봐.”
가브의 명에 세실리아가 먼저 방을 나섰다.
발튼은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배쉬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나가고, 복도에 서 있던 셀이 들어왔다.
“선배님.”
“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명색이 사해의 태제인데 복도에서 기다리게 만들었다는 것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셀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별로 안 기다렸습니다. 인사드리려고 왔습니다. 많은 도움 못 드리고 가게 되어 죄송합니다.”
“일주일 동안 잠도 안 자고 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니군. 어서 가 봐. 한창 중요할 때잖아.”
“예,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오겠습니다. 몸 잘 챙기십시오.”
셀은 자리에서 일어나 깔끔한 자세로 묵례를 하고는 뒤돌아섰다.
가브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입술을 떼었다.
“셀, 고맙다.”
척.
셀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그는 그 자세로 정지된 듯이 잠시 가만히 있다가 뒤돌아서 가브에게 다시 한번 묵례를 했다.
그는 입가에 미소 비슷한 것을 짓고 있었다.
* * *
가브와 발튼은 놀라운 치유력을 보이며 사흘 만에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발튼은 바로 세실리아와 함께 탐색에 나섰고, 가브는 임시 본부장 배쉬를 찾아갔다.
똑똑.
“들어오세요.”
가브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에 앉아 서류를 살피던 배쉬가 재빨리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배쉬는 가브가 조장으로 있을 적에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마물의 구렁텅이에서 조원을 구해서 묵묵히 걸어 나오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앉아. 실종 건을 보고 싶은데.”
가브의 물음에 배쉬는 서류를 빠르게 분류했다.
“여기, 일단 네 군데를 추려 놨습니다. 최근 한 달 내에 세 건 이상 발생한 마을들입니다.”
가브는 미간을 좁히며 받아 든 서류를 살폈다.
흑마법은 마법의 종류에 따라서 특정 부류만 필요로 한다.
다른 마을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지만 한 마을은 주기적으로 젊은 사내와 여인이 실종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가브는 다 읽은 서류를 습관적으로 찢으려다가 배쉬의 얼굴을 보고 멈췄다.
“앞으로도 계속 알아봐 주게. 손을 빌릴 곳이 여기밖에 없군.”
밤까마귀는 이미 그들에게 드러났기 때문에 그들에 관한 일을 맡길 수 없다.
가브의 말에 배쉬는 당황하여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언제든지 맡겨 주십시오. 제게는 선배님과 다시 손을 맞춘다는 것이 큰 영광입니다.”
가브는 배쉬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