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단출한 반격 (6)
왼쪽 어깻죽지에 도끼를 얻어맞은 사람과는 원활히 소통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곱게 자란 영애거나, 평소 궂은 일은 전부 남에게 떠밀어온 사제라면, 원활한 소통은 더더욱 힘든 일이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과도 비교적 원활히 소통할 방법이 존재한다. 바로 오른쪽 어깻죽지에 도끼날을 겨누고, 똑바로 대답 안 하면 이번엔 이쪽이라고 설명해주는 것.
몰덴 성의 지하. 끔찍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엘가의 사제, 세니시스는 고분고분 묻는 질문들에 답했다.
“대주교, 대주교님의 명이었어요……. 흐으윽……. 왜인지 변방까지 감시를 강화하라고 하셔서…… 성전군을 이끌고 이곳으로…….”
“맞아요, 예……. 복수하려고 온 거 맞아요……. 제가 오해를 해서……. 아버지가 악마가 아니라, 악마 남작과 여러분 때문에 죽은 거라고 큰 오해를 해서…….”
“흐윽, 없어요. 근처에 있는 성전군은 저희들이 끝이에요……. 교단에도 말 안하고, 저희 가문에도 말 안할 테니까,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
카딤은 일단 도끼를 거뒀다. 당연히 저 공수표만도 못한 약속을 믿어서는 아니었다.
“여기서 성도까지, 네놈 같은 엘가쟁이들과 마주칠 위험이 가장 적은 경로는 어느 쪽이지.”
“……예?”
“한번만 더 그렇게 되물어보면, 경고없이 도끼를 내려찍겠다.”
“……!!”
도끼가 다시 어깻죽지에 얹혔다. 한 차례 안심시켰다가 올려놓은 덕에 협박 효과는 배가됐다. 세니시스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쥐어짜 대답했다.
종합해 보자면 이런 얘기였다.
고르덴 백작령 쪽, 섬돌바위 평야 쪽, 이렇게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 전자는 자잘한 무리들이 많은 대신, 거물을 만날 가능성은 낮다. 후자는 인적이 드문 대신, 숨어있는 강대한 악마나 ‘데카그램’을 마주할 수도 있다.
혹시 몰라 ‘진실을 꿰뚫는 별’로 검증해 보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카딤은 슬며시 턱을 쓸었다.
허접한 성기사들을 상대하며 잠시 이런 충동이 들기도 했다. 교단에 정체를 들키든 말든, 신경쓰지 말고 그냥 성도로 무작정 돌격할까 하는.
“…….”
하지만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자신들, 암살조는 발각당해도 신변에 큰 위협은 없을 터였다. 데카그램이 오건, 대주교가 오건, 이렇게 전부 처죽여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적들도 그걸 알기에, 대주교를 어디론가 잠적시키고 남은 데카그램을 죄다 국경으로 투입하는 불상사를 일으킬 지도 몰랐다.
여전히 정체를 감추는 건 중요한 일. 그런 면에서 보다 끌리는 길은 후자, 섬돌바위 평야 쪽이었다. 인적도 드문 데다가, 좋은 피를 얻거나 데카그램을 처죽일 기회까지 있다 하지 않았는가? 다만 현재 자신은 홀몸이 아닌 만큼, 일행들의 의견도 들어보자 생각하여 판단을 유보했다.
한편 세니시스는 집요하게 카딤을 훑었다.
“흐으응, 흐으응, 흑…….”
눈물을 줄줄 흘리고 신음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날 방도를 궁리했다. 회심의 무기였던 신을 통한 협박도 먹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직 가장 강력한 무기가 남아 있었다.
아무리 비정하게 군다 한들, 저자도 어쩔 수 없는 사내. 보는 눈도 없는 곳에서 아리따운 여인과 단 둘이 있는데 원초적인 욕망을 배겨내긴 힘들 터.
“흐으응, 죄, 죄송한데…… 이 예복, 상의만 좀 벗어도 될까요? 상처에 자꾸 옷감이 들러붙어서…….”
“…….”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흐느적흐느적 옷을 벗었다. 왼팔을 소매에서 빼낼 땐 쩌릿한 격통이 솟구쳐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겨우겨우 예복을 훌렁 벗어던지고는 가련한 여인의 작태를 연출했다.
비록 도끼에 한 번 찍혀 망가졌다 하나, 한때 황자와 고위 주교들마저 홀렸던 몸. 핏자국 사이로 도드라진 새하얀 피부와 유려한 몸선은 여전히 뭇 사내들의 정욕을 끓어오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비를 죽인 야만인 앞에 알몸을 내보였다고 수치심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도도한 영애로서의 자존심도, 분노한 사제로서의 거드름도 깨끗이 접어버렸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여기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저 녀석이 자리를 비웠을 때 ‘전음 성법’을 쓰면 돼. 바로 아들렌 성에 구조 요청을 보내자.’
풋내기 사제나 다름없는 그녀지만 비상시에 쓸 성법 하나 정돈 익혀 뒀다. 세니시스는 은근히 가슴께를 쓸다가, 옷을 벗었더니 너무 춥다며, 잠깐만 안아주시면 안 되냐며 노골적인 유혹을 보냈다.
카딤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고깃덩이라도 바라보듯 무심하게 바라보다 이렇게 툭 말했을 뿐.
“재밌군.”
“흐응? 무엇이…….”
“시체가 알아서 수의를 벗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예, 예에?”
세니시스가 눈을 깜빡이는 찰나, 홍염의 직선이 어둠을 가로지르고.
쐐 – 액, 푹 – !
화르르르르륵 – !!
불타는 단검이 목울대에 꽂혔다. 지옥불이 번져 삽시간에 새하얀 나신을 에워쌌다. 치솟는 불길과 누출된 숨 소리가 얽혀 새된 비명을 빚었다.
‘하야아아아아악!! 헥, 커허어어어…….’
몰덴 남작의 묘소를 파헤쳐 능욕한 여사제는, 자신이 태워버린 시체와 똑같은 방식으로 화장되었다. 차이점은 오직 하나, 살아있는 상태로 치뤄졌단 것뿐.
화르륵, 틱, 티디딕…….
카딤은 새까맣게 탄 시체에서 지옥불 단검을 회수했다.
“이제 그다지 춥진 않을 거다.”
그러곤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
몰덴 사람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50명에 이르는 성전군이 고작 용병 한 사람에게 도륙나는 광경은, 가장 목석 같은 주민마저 기절초풍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긴 했다. 하룻밤만에 아들렌 자작의 병사들이 몰살당했던 사건.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바로 대낮에, 만인이 똑똑히 지켜보는 앞에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아니, 악마도 이런 힘을 발휘할 순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혼백이 빠져나갈 법한 경악과 공포를 공유했다. 혹여 다음 표적은 자신들일까 싶어 집 구석으로 달아나 벌벌 떨었다.
하지만 야만인의 도끼날이 그들을 향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외려 예기치 못한 호사가 찾아왔다.
“그, 여러분! 여러분을 해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그보다 여기, 먹거리를 좀 나눠드릴 테니까 다들 와서 받아가십시오!”
““…….””
야만인 용병과 함께 있었던 행상인의 외침. 처음엔 반신반의했으나, 정말로 식료품과 생필품을 잔뜩 나눠주자 눈을 휘둥그레 치떴다.
그 물자의 출처는 다름 아닌…… 성전군이 여길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가져온 것들이었다.
모쪼록 주린 배를 채우고 경계심을 덜어낸 몰덴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했다. 큰 구덩이를 파고, 성전군의 시체를 감쪽같이 매장하고, 그리고…… 잿더미가 되어 버린 선대 영주의 유해를 수습하여 다시 묘소를 꾸리고.
몰덴의 영주, 델피나는 꽤 오랫동안 겪은 일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도 결국은 정신을 차리고 해야 할 일을 했다.
“이리 오시지요, 용병님, 그리고 일행 분들…….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군요. 일단, 연회장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선대 영주와 마찬가지로, 델피나 역시 ‘접대의 관습’을 잊지 않았다. 연회장의 상석에 손님들을 앉히고, 현재 성내에서 만들 수 있는 제일 호화로운 메뉴를 카딤 일행에게 대접했다.
비록 지난번과 다를 바 없이, 그 메뉴는 염장 닭고기 조림에다 뜨끈한 콩 수프였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다시 찾아오셨을 땐 극진한 예우로 맞이하기로 약속드렸는데…… 이토록 조촐한 대접밖에 못 해드려서…….”
카딤은 개의치 않았다. 이전에 드워프제 투척도끼를 선물 받은 것만 해도 차고 넘치게 후한 대접이었다. 어차피 원하는 바가 따로 있기도 했고.
“아니, 상관없다. 대신 우리가 여길 지나간 것, 그리고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선 단단히 함구하도록.”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추호도 걱정마십시오. 설령 엘가의 별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절대 용병님들에 관해 이르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경비대장이란 놈과 약속한 것도 하나 있는데…….”
“……?”
“……아니. 말이 길어질 것 같으니, 일단 식사부터 하지.”
카딤 일행은 대접받은 손님의 의무를 다했다. 즉, 음식을 몇 그릇이나 말끔히 싹싹 비웠다. 덕분에 어두웠던 델피나의 안색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식사를 마친 후, 카딤은 끊었던 말을 이어갔다.
“너도 모르진 않을 거다. 고작 ‘악마 남작’에 관해 뜬소문이 퍼졌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단 걸. 정말로 엘가쟁이들을 건드렸으니 이 영지가 오래 무사하긴 힘들 거다. 아무리 깨끗하게 시체를 치워도 언젠간 들켜서 탈이 나겠지.”
“…….”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성전군은 이 용병이 혼자 처단한 것이지만, 몰덴 측도 책임을 면할 순 없었다. 아니, 애초에 델피나는 책임을 면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다.”
“……어떤 것이죠?”
“동맹 측으로 전향해라. 그리고 엘가를 버리고 아탈라를 믿어라. 그러면 너희들에게 스스로를 지킬 힘을 주겠다.”
“……!”
카딤은 그렇게 내뱉고는, 어쩐지 제 말이 전형적인 악마가 꼬드기는 대사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엄연히 사실만을 말했다.
이윽고 예브릴이 기다렸다는 듯 밖에 나서 누군가를 데리고 나타났다. 약속을 따라 문신을 부여받은 경비대장, 델톤. 그는 미리 연습했던 대로 문신을 발동하며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
“화, 황야의 아버지를 위하여!”
퍼 – 걱!!
벽돌 무더기가 두부처럼 부스러졌다. 델피나는 물론, 델톤 자신도 화들짝 놀라 토끼눈을 떴다. 이로써 힘을 주겠단 말이 사실이란 것만큼은 확실히 증명이 된 바.
델피나는 잠자코 숙고에 잠겼다.
국경에 인접한 영지이니 전향이 아주 힘든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독실히 믿은 적도 없으니 엘가 교단을 버리는 건 상관없는 일이었고. 문제는 용병이 저런 제안을 한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아탈라’라는 신이 믿을 만한 신인지였다.
목적에 관해선 카딤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자신은 아탈라를 대행하는 대전사이며, 그 투신에게 비호받고 있다고. 엘가의 훼방을 면하고 그 추종자들을 처단하려면, 투신의 신도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그리고 아탈라에 관해선 예브릴이 설명을 베풀었다. 그분은 투쟁과 황야의 신, 척박한 대지에서 투쟁하는 전사들을 수호하는 투신이라고. 불신자들을 무자비하게 심판하는 엘가와 달리, 굴복하지 않고 투쟁하는 모든 자들을 축성하는 신이라고.
델피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로소 저 용병의 진정한 정체, 그리고 초인적인 힘의 근원을 깨달았다. 한참이나 더 고심하다가 어렵사리 마른 입술을 뗐다.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탈라란 신에 대해선 여전히 아는 바가 거의 없고……. 힘을 주신단 건 감사한 말씀이지만……. 오늘 이렇게, 어느 신의 추종자들이 벌인 패악질에 지아비의 유해마저 잃은 탓에…… 섣불리 또 다른 신을 믿는다 말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
“……그럼에도, 용병님을 뒤따라 적진으로 달려든 제 지아비처럼, 용병님을 믿고 따를 순 있겠지요. 예, 두 차례나 목숨을 걸고 몰덴을 구해주신 용병님…… 아니, 대전사님을 믿고 따를 순 있겠지요.”
델피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카딤 앞에 다가와 경건하게 무릎 꿇었다.
“제 지아비의 명예, 그리고 제 목숨과 영혼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몰덴 성과 그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 저 델피나 폰 메스트리덴은 대전사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죽는 날까지 투쟁과 황야의 신, 아탈라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변방의 협소한 영지라 하나, 그 인구는 1천여 명 남짓. 제국령에 내디딘 첫 발자국치곤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카딤은 엄숙하게 영주의 맹세를 받아들였다.
“그 맹세, 아탈라의 이름을 걸고 기억하도록 하지.”
*
대전사와 그 일행은 금방 영지를 떠났다. 그들에겐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될 막중한 사명이 있었다. 그래도 남은 병사들이 아탈라의 문신을 부여받은 덕에, 다시 몰덴이 패악질을 부리는 자들에게 점거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했다.
떠나는 손님들을 환송하고 돌아오는 길. 델피나는 다시 남편의 무덤 앞에 섰다.
“…….”
고즈넉이 묘소를 훑어내리는 미망의 눈동자.
주민들이 지극정성으로 복원한 덕에, 남작의 묘소는 겉모습만큼은 이전과 얼추 비슷하게 돌아왔다. 허나 이 안엔 더 이상 관짝도, 시체도 없었다. 잿가루가 되어버린 옛 인연의 잔해는 엉성하게 들뜬 흙과 뒤섞여 분별할 수가 없게 되었다.
후우우웅…….
바람이 불었다. 휑하니 몰아치는 바람이 목덜미를 쓸었다. 만일 얼마 전이었다면, 그녀는 이를 여전히 차갑기만 한 겨울 바람으로 알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젠 알았다. 느낄 수 있었다. 바람 속에 섞인 희미한 온기를, 봄을 알리는 전령의 숨결을.
손님들이 떠나가기 전, 어젯밤에도 델피나는 이 자리에 서 있었다. 기척을 알고 찾아온 건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이었던 건지, 어느샌가 카딤이 그녀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거기서 뭣 하는 거지.’
‘아, 용병…… 아, 아니, 대전사님…….’
‘명예로이 죽은 남편을 추도하는 건가. 아니면 엘가쟁이들을 향한 복수심을 다지는 건가.’
‘…….’
지난번에 작별할 때 그녀는 카딤에게 분명히 들었다. 남편이 강철 같은 의지로 악마를 처단하고 명예롭게 죽었다고. 그 말을 들음으로써 모든 미련을 접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이의 시체가 영영 불타 사라졌다 생각하자, 마음속에 뻥 뚫린 공허함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잠시간 저도 모르게 허심탄회한 넋두리를 내뱉었다. 얘기를 들은 카딤은 잠자코 생각하다 이렇게 반응했다.
‘네 남편이 사라졌다니. 무슨 말이지. 여기에 빤히 남아 있는 게 보이거늘.’
‘예? 그게 무슨 말씀…….’
‘이전에 이 위에다가 무언갈 심었던가?’
‘아, 예에……. 작년에 키우지 못했던 꽃의 구근을 조금…….’
‘얼마 뒤면 알 것이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얼마 뒤까지 갈 것도 없었다. 바로 오늘, 델피나는 떠나간 전사가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움트고 있었다. 엉성하게 뒤덮인 흙 위로, 알뿌리 틈새로 움튼 푸릇한 새싹이, 떠나간 자가 선사하는 마지막 선물이, 지켜주지 못했음을 사과했던 지난날의 추억이.
잊지 못할 봄날을 담은 튤립이.
‘델피나에게…… 이 말을 전해주시오……. 튤립들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델피나는 고개를 높이 처들었다. 하늘을 맑고 창창한데, 어째서인지 눈앞에는 부연 장막이 드리워졌다. 지그시 눈시울을 감고 따스한 훈풍을 맞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봄이 왔어요, 당신.”
비로소 앞서간 자를 떠나보내는 미소를 짓고.
“당신이 가장 아끼던 보물, 당신이 그토록 귀중히 여기던 몰덴에 다시 봄이 왔어요.”
그대 없이도 살아갈 기나긴 세월을 다짐하며.
“이제는 정말로…… 봄이 온 것 같네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