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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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악당들 200화
44. 꿈결(10)
인적 드문 영지와 짙은 안개.
쓸쓸한 고성(古城)과 흐린 달빛.
그리고, 정체를 숨긴 백작…….
다크월드의 네 번째 챕터를 대표하 는 오브제 내지는 소재들이다.
김승수로서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챕터 4는 ‘드라큘라’와 같은 고딕 호러 소설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 이었다. 덕분에 플레이어마다 호불 호가 조금씩 갈렸더랬지.
뭐, 내 경우엔 호에 가까웠다.
분위기야 어쨌든 시나리오가 단순 한 편이거든.
챕터 4에 들어서면 음습한 숲을 지나며 타락한 수호자를 쓰러뜨리고 마을에 숨어든 주문도둑을 잡아 죽 인 뒤 고성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면 성을 지키는 수많은 괴물들 과 타락한 기사, 요염한 몽마(夢魔) 등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놈들을 모 두 처치하면 백작의 세 부인이 등장 한다.
그들까지 소멸시킨 뒤에야 챕터의 최종 보스와 마주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마티안베르 백작으로 위 장한 흡혈귀 군주,
‘텐비에르마’였다…….
나는 노인의 주름진 얼굴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노인의 가슴에서 칼날을 뽑자 ‘게 헥-’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 다.
흐음. 숨도 쉬지 않는 반(半)언데 드 주제에 왜 이런 소리가 나는 걸 까?
목에 박힌 커다란 쇠말뚝 때문에 노인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꼭 박 제된 벌레 같은 모습이다.
“흡혈귀 새끼가,”
위엄찬 미중년의 모습이 아니라-
“이런 쭈그렁 늙은이가 되어서.”
고성의 꼭대기 층이 아닌-
“숲속의 주점에 나타났을까?”
난 그렇게 물으며 쇠말뚝에 발을 얹었다. 그 상태로 지그시 체중을 싣자 꾸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마 룻바닥이 깨지며 쇠말뚝이 더 깊이 박혀갔다.
“께게윽,”
“으응?”
놈은 입에 피거품을 문 채 눈을 부릅떠 나를 노려보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놈은 노인의 모 습을 하고 있었지만 흡혈귀 군주답 게 끈질기기 그지없었다. 무고한 희 생자에게서 강탈한 생명력을 불태우 며 존재를 이어가고 있는 거겠지.
‘니터벨람 경’, ‘마티안베르 백작’, ‘흡혈귀 군주 텐비에르마’까지.
이름을 세 개나 가진 괴물이 힘겹 게 입을 열었다.
“어, 떻게.”
……이야, 모가지에 쇠말뚝을 박고 도 말을 하네. 신기한데.
“사제들, 도, 알아차리지 못, 하는, 내 주문, 을-”
“주문……? 아.”
놈이 말하는 건 ‘달의 망토’라는 이름의 주문일 거다.
흡혈귀 군주의 고유 주문으로, 흡 혈귀 특유의 사악한 기척을 지워서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주문이지.
“그걸, 간파하다, 니. 불, 가능한 일인, 데.”
“불가능하긴.”
나는 피식 웃으며 한쪽으로 손짓했 다.
그러자 눈을 사납게 뜬 채 켈린느 를 내려다보던 뭉치가 나를 보며 새 된 소리를 내었다.
“••••♦•저요?”
“그래, 너.”
뭉치는 ‘에-’ 하고 망설이다가 얼 른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 와중에 도 녀석은 양손에 쥔 단검을 휘리 릭, 돌려 역수로 쥐며 칼날을 손목 뒤로 숨겼다.
“자, 뭉치야.”
쫄래쫄래 다가온 뭉치의 어깨에 왼 팔을 둘렀다.
“으엣-”
“네가 설명해 줘.”
“에으, 네‘?”
“어떻게 주문을 간파했는지 말이야.” 난 그리 말하면서도 오른손에 쥔 흐룬팅을 노인에게 겨누고 있었다. 뭔가 개수작을 부리면 곧장 사지를 잘라버리기 위해서였다.
“어, huxlsheng, 아니, 숨이요, 숨 이 이상해서-”
뭉치가 어째 말을 더듬대기에 나는 녀석의 어깨에 두른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주었다.
“뭘 그렇게 떨어. 숨이 이상했다 고?”
“엣, 네. 숨소리요.”
“어떻게 이상했는데?”
“일부러 내는 거여써요.”
“ 일부러?”
“네, 일부러. 자는 척할 때 숨 내 는 것 같이요.”
“그랬구나.”
칭찬의 의미로 뭉치의 등을 토닥여 준 뒤 녀석을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이제 알겠냐? 산송장 새끼들이 어 쭙잖게 사람 흉내를 내니까 들키지.”
텐비에르마는 내 얼굴에 떠오른 비 웃음을 보곤 빠득, 이를 갈았다.
“멍청, 한, 소리. 나와 내 신부들 은, 언데드보다 인, 간에 가까운-”
“아이씨, 뭐 이리 말이 많아.”
녀석의 의문에 답해주기 위해서
‘촌스러운 보라색 튜닉이랑 모피 코트만 보니까 딱 알겠더라. 켈센느 누나도, 음, 그대로고. 모니터로 봤 던 거랑 똑같던데?’
라고 지껄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 다.
그래서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쇠말 뚝을 꾹 짓밟아 주었다.
“끄어 억-”
텐비에르마는 말하다 말고 쉰 목소 리로 비명을 질러댔다.
“뜨거, 뜨거워!”
“오, 그래?”
난 장화의 징 박힌 굽이 놈의 턱 에 닿기 직전에야 쇠말뚝에서 발을 떼었다.
“롱빌의 보웬 신부님께서 직접 축 성을 해주셨거든. 한 달도 넘게 지 났는데 아직 효과가 남았나 보네.”
뒤쪽에서 쇠뇌수 기돈이 내 말에 호응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빛 속에서 정화되어라, 마물아!”
몇몇 용병들도 짧은 기도를 구호처 럼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주근 깨 미라는 장검을 뽑아 들며 헛웃음 을 터뜨렸다.
“하, 평소엔 헌금 한 번 안 하는 놈들이. 흡혈귀들을 보니 막 신앙심 같은 게 솟구치냐?”
미라의 빈정거림에 갈색 머리칼을 땋은 여인, ‘에산나’가 미간을 찌푸 렸다.
“그딴 농지거리를 할 때가 아니야, 미라.”
그녀는 단창과 방패를 쥔 채 성큼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향하는 곳에는 새하얀 드레 스와 부드러운 어깨가 인상적인 몸 뚱이가 살덩이를 부풀리며 잘린 목 을 수복하고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귀엽게 미소를 짓고 있던 미소 녀, 토펠린의 몸뚱이였다.
에산나는 그 몸뚱이를 걷어차 바닥 에 눕힌 뒤 가냘픈 가슴팍에 단창을 꽂아 넣었다.
푸욱!
“어지간히도 끈질긴 놈들이군.”
그녀는 미친 듯이 꿈틀거리는 소녀 의 몸뚱이에 턱 하니 발을 올렸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성수가 든 유리 병을 꺼내며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나리, 이대로 정화해 버리죠?”
“아니.”
난 주점 안을 쭉 돌아보았다.
흡혈귀 군주 텐비에르마와 그의 세 부인이 이끌고 온 호위병과 하인들 은 이미 죽어 나자빠져 있었다.
놈들이 죽었다고 확신한 이유는, 흡혈귀 주제에 바닥을 피로 적시고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격이 좀 떨어지는 놈들이 었나 본데.
둘째 부인인 가네시는 엘렌의 손에 재가 되어버렸으니 남은 건 텐비에 르마와 그의 첫째 부인인 켈센느, 셋째 부인인 토펠린뿐이었다.
“그 둘은 살려둬. 아직 물어볼 게 있으니.”
놈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흡혈귀들 이었지만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무 력화된 상태였다.
게다가 은도금 무기로 무장한 열댓 명의 용병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 는 판국이니 놈들이 할 수 있는 것 은 거의 없었다.
내 명령에 쇠뇌수 기돈이 바닥에 널브러진 가방에서 쇠말뚝 너덧 개 를 꺼내 들었다.
“그럼, 간단한 안전장치는 해두겠 습니다.”
“뭐, 그러던가.”
내 허락을 얻은 기돈이 희희낙락한 얼굴로 토펠렌에게 다가가자, 퉁퉁 한 에손이 미간을 좁혔다.
“그걸 박으려고?”
“당연하지.”
“좀 께름칙한데.”
불길하다는 듯 혀를 차는 에손의 말에 중장병 데르비쉬도 고개를 끄 덕였다.
“맞아, 흡혈귀 새끼들이잖아.”
“그러니까 말뚝을 박아둬야지. 언 제 개수작을 부릴지 몰라.”
“굳이 그럴 것 없이 성수나 꺼내 들고 기다리지그래?”
“기다리긴 뭘 기다려. 저 저주받을 놈들이 벌떡 일어나서 덮칠 때까지 기다리자고? 다들 같은 생각이야?”
기돈은 용병들을 슬쩍 둘러보았다. 다들 에손이나 데르비쉬처럼 찝찝하 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뭐, 정 그렇다면.”
기돈은 찢어질 듯 미소를 지었다.
“이 영광은 내가 차지하도록 하지. 기꺼이 말이야.” 그가 낄낄대며 토펠린의 몸뚱이에 말뚝을 박아넣기 시작할 무렵.
미간을 찌푸린 엘렌이 손을 털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일행에 미친놈이 너무 많아.”
녀석의 말에 ‘충격의 전쟁망치’를 장도리처럼 쥐고 있던 우테콰이가 팽, 코웃음을 터뜨렸다.
“하! 네가 할 말 아니다.”
“……왜 시비야, 넌?”
“시비 아니라 걱정이다, 계집. 너, 스스로를 모른다.”
“내 걱정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하 지그래?”
엘렌의 말에 우테콰이가 껄껄 웃어 댔다.
그동안, 테이블 근처에 있던 헤일 라는 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 마름모꼴 장식이 하나만 남은 장갑 을 벗어 조끼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 이었다.
마침 실내에서 터진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란 하곤과 키곤 형제가 헐레 벌떡 뒷문으로 들어왔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
두 사내가 실내를 둘러보고 입을 벌리며 경악하자, 헤일라는 마름모 장식 다섯 개가 온전히 남아 있는 장갑을 왼손에 끼며 입을 열었다.
“내 욕조는?”
“……아니, 아가씨. 지금 욕조가 중 요한 게 아닌,”
“누구 마음대로?”
“예?”
바 앞의 의자에 다리를 꼬아 앉은 헤일라는 형제를 돌아보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빨리 가. 내 욕조를 지켜.”
헤일라의 무감정한 눈빛과 실내의 광경에 압도된 두 형제는 얼굴이 창 백해진 채 뒤돌아서고 말았다.
그즈음 흡혈귀 군주 텐비에르마는 쇠말뚝이 선사한 고통을 이겨내고 상처를 어느 정도 수복했다.
나는 놈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질 문을 건넸다.
“네 의문을 풀어줬으니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지?”
“게흐으-”
“대답해. 흡혈귀인 네가 왜 이런 쭈그렁 늙은이가 됐지? 흡혈귀의 몇 안 되는 장점이 ‘불로’ 아니던가?”
예상외로, 텐비에르마는 너무나 쉽 게 입을 열었다.
“내, 내 영지를. 도둑질, 당했, 다.”
“……영지를, 도둑질당해? 누구한 테?”
놈의 눈에서 희미한 빛이 번뜩거렸 다. 주홍색에 가까운 밝은 적광에는 원통함과 증오가 한가득 스며들어 있었다.
“내, 망토자, 자락, 아래, 엎드려 발바닥을 핥, 핥으며 살아가던, 좀도 둑 놈이-”
“그러니까, 그 좀도둑이 누군데.”
“사이, 츠. 사이츠.”
“••••••뭐?”
난 순간 놈의 말을 듣고 멍청하게 눈만 깜빡거렸다.
그런 날 대신해 우테콰이와 티격태 격하고 있던 엘렌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사이츠? 지금, 사이츠라고 했어?”
“그래. 그, 좀, 도둑놈.”
“설마, 그 사이츠가, 주문도둑 사이 츠? 여명의회에서 추방된 그 사이 츠‘?”
“맞아, 그놈. 주문, 도둑. 사이츠.”
“사이츠가, 네 영지를 훔쳤다고?”
“그렇다. 그, 놈이야.” 텐비에르마는 이를 갈아대며 사지 를 들썩거렸다. 끓어오르는 증오가 축성된 쇠말뚝이 주는 고통을 이겨 낸 모양이다.
“내 영지가, 비로, 비로소 제대로, 완성된 직후, 내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사이츠’는 엘렌의 스승인 제마르 를 죽인 살인자이자 라-팔라이스 궁전의 금서를 훔친 도둑이다. 바로 그놈 때문에 엘렌이 누명을 쓰고 궁 전에 추격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게임에서 주문도둑 사이츠 는 챕터 4의 두 번째 픽넴이었다.
그런 놈이 챕터 4의 보스인 흡혈 귀 군주 텐비에르마의 영지를 빼앗 았다고?
“아니- 사이츠는 기껏해야 주문 몇 개 부리는 도둑놈에 불과한데, 그런 놈이 흡혈귀 군주인 네게서 영 지를 빼앗았다고?”
과장을 조금 보태어 비유하자면, 주문도둑 사이츠는 부잣집만 골라 터는 특수강도고 흡혈귀 군주 텐비 에르마는 전국구 조폭 보스다.
그만큼 체급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는 뜻이지.
“아니, 미친.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그깟 놈 때문에 흡혈귀 군주가 이런 죽기 직전의 노인네가 됐다고? 네가 어지간히 병신이 아니 고서야-”
“놈, 놈에게. 조력, 자가 있었다.”
“조력자?”
“그래. 조력자. 무시무시, 한, 조력 자.”
그 순간. 텐비에르마가 눈매를 파 르르, 떨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놈 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수백의 혈족을 거느리는 흡혈귀들 의 군주가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다.
“……누군데, 그 조력자가?” “아아.”
놈의 눈이 순간 초점을 잃었다.
“심연의, 강자. 사악한, 마술사. 천 사를 베는 자. 암흑 군주의 충직한 기사. 악마이되 악마가 아닌 자.”
“잠깐, 잠깐만.”
나는 스멀거리는 불길함에 마른침 을 삼키며 놈에게 질문했다.
“암흑 군주의, 충직한 기사? 설마, 암흑기사 말하는 거냐, 너?”
“그래. 그리들 부른다. 암흑기사.”
“아니, X발, 암흑기사가 여기서 왜 나와? 지저(地底)나 암흑계에서나 나타나는 놈이 왜-”
나는 말하다가 말고 입을 쩍 벌렸 다.
“……맞아, 그때.”
챕터 3의 최종 보스인 ‘여왕 라마 쉬다’가 암흑계의 힘에 물들었을 때.
아누파드들의 여왕인 라마쉬다가 죽은 뒤, 그 배에 암흑계로 이어지 는 통로가 열렸더랬다.
그곳에서 악신 우쉬투의 권속이 끊 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미친놈 처럼 칼을 휘둘러 놈들을 저지해야 했다.
그러다 무수한 상처를 입은 탓에 어쩔 수 없이 ‘약탈’을 사용하고 말 았다.
그렇게 악신의 권속들이 뿜어낸 피 를 마구 흡수했고, 결국 그 마력에 물들어 이성을 잃고 말았다. 꼭 유 체이탈을 한 것처럼 포이닉스의 몸 뚱이가 날뛰는 것을 내려다본 기억 이 선명하다.
그렇게 악신의 권속들이 모조리 도 륙당하자, 라마쉬다의 배에 뚫린 암 흑계의 통로가 어둠을 뿜어댔다.
그 어둠이 하늘과 땅을 뒤덮을 무 렵.
거대한 체구, 자주색 수증기를 뿜 어대는 장창, 광택이 흐르는 검은 갑주, 투구의 틈 사이로 번쩍거리는 보랏빛 안광을 가진 무언가가 나타 났다.
그게 바로, 암흑기사였다…….
……그때 그 암흑기사는 나를 무어 라 비웃곤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 이후로 놈이 나타나거나 소식을 들은 바가 없었기에 잠시 잊고 있었 는데.
“암흑기사가, 레이븐즈 클리프에 있다고? 사이츠의 조력자가 되어 서?”
“그렇, 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구만.
사이츠가 특수강도고 텐비에르마가 전국구 조폭 보스라면, 암흑기사는, X팔, 삼합회 회장이라고!
아니, 어떻게 일이 이렇게 꼬일 수 가 있지?
설마 여왕 라마쉬다를 빨리 처리하 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건가?
아니면, 원래 시나리오상 암흑계의 전령에게 물들었어야 할 ‘강도남작 알비안느’를 사우스하버에서 미리 죽여버린 것 때문에?
아, 물론 라마쉬다의 배에서 튀어 나온 암흑기사가 지금의 이 암흑기 사와 동일 인물인지는 확실치는 않 구나.
……아니, 아니지. 확실하지.
중간계에 암흑기사가 둘이나 있을 리가 없잖아. 아니, 없어야만 해.
있으면 그건 재앙이지. 밸런스 붕 괴고.
뭐, 챕터 4에서 암흑기사가 떴다는 것부터가 이미 재앙이고 밸런스 붕 괴지만…….
내가 정신이 반쯤 나간 채 머리를 짚고 있는 동안, 텐비에르마의 중얼 거림은 계속되었다.
“그, 눈. 아름다운, 눈.”
놈은 사지를 들썩거리며 목소리를 점차 키워갔다.
“암흑의 군주께로, 인도하는. 그, 눈-!”
“나리. 저 새끼, 저거. 괜찮은 겁니 까?”
빡빡이 스티드먼이 그렇게 우려를 표할 무렵, 텐비에르마의 목소리는 마치 천둥과도 같이 주점을 흔들어 댔다.
“나의, 자식들아!”
구오오오-!
그 목소리와 함께, 놈에게서 사기 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Fidhos,”
우테콰이가 무어라 지껄이더니 전 쟁망치를 휘둘렀다. 거력을 품은 망 치가 쇠말뚝을 두드렸고, 텐비에르 마의 머리통이 단숨에 잘려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의 고함은 계 속되었다.
“암흑의 군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다-!”
“이런-!”
나는 단숨에 발을 들어 놈의 머리 통을 퍼석, 박살 냈다.
“포이닉스 님!”
궁수 콜이 고함을 지르며 유리병을 던졌고, 나는 그걸 받아 마개를 열 어 텐비에르마의 가슴에 쏟아부었 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보라색 튜닉과 살점이 순식간에 녹아버렸 다. 그렇게 성수는 텐비에르마의 심 장까지 녹여버렸고, 요란하게 쏟아 지던 사기도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 다.
“……어후, 씨. 엿 되는 줄 알았 네.”
중장병 데르비쉬가 푹 한숨을 내쉬 었다.
갑작스러운 난리에 주점 안의 사람 들은 심장이 떨어질 듯 놀랐지만, 텐비에르마의 마지막 고함은 아무런 이변도 일으키지 못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으, 으어, 나리들!”
벌컥, 뒷문을 열리더니 하곤과 키 곤 형제가 창백한 얼굴로 뛰어 들어 왔다.
헤일라가 곱게 아미를 찌푸렸지만, 두 사내는 그게 보이지도 않는지 턱 을 떨어대며 고함을 질렀다.
“밖에, 밖에-!”
“밖에, 뭐?”
“이, 이상한 사람들이,”
그 순간.
뭉치가 깜짝 놀라 사방을 돌아보았 다. 뒤이어 나도 밖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마른침을 삼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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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에 놓아둔 양초 접시가 덜덜 떨다가 바닥으로 떨어질 무렵, 용병들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를 눈치채고 얼굴을 하얗게 물들였 다.
주점 내에 흐르던 기묘한 침묵을 끝낸 것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우 테콰이였다.
“밖으로, 나가-!”
우레와 같은 고함에 호응하듯, 사 방에서 사나운 울음소리가 터졌다.
“끼에에에에-!”
파랑손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