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08)
나의 악당들 3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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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X팔, 허리야.”
창고 한쪽에 의자를 깔고 앉아 있 던 말총머리 프리츠는 욕설을 지껄 이며 기지개를 켰다.
고대 관문에서 볼을 꿰뚫렸던 것을 포함하여, 최근 있었던 전투들로 그 는 온갖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수 도원의 성직자들에게 꾸준히 치료를 받은 덕에 지금은 희미한 흉터가 몇 개 더해졌을 뿐이었다.
“한동안 뭣 빠지게 돌아다니다 이 제야 좀 쉬는가 했더니, 이놈의 훈 련은 나날이 빡세지기만 하네.”
“앓는 소리하긴, 젊은 놈이.”
프리츠의 중얼거림에 베테랑 컨휘 어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타 박했다.
“주급 따박따박 받으며 훈련이나 하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주급이래 봤자 고작 은화 몇 닢인 데 뭘 감사까지 해.”
“그 은화 몇 닢 챙겨주기 싫어서 개수작 부리는 고용주, 세상에 많다. 평시 주급을 반으로 깎는 건 그나마 양반이고, 잠깐 해산시켰다가 저 급 할 때 재소집하는 경우도 있어.”
“그 정도는 알아. 나도 짬밥 먹을 만큼 먹었다고.”
“그래? 그럼 용병일하다 농사지어 본 적 있냐?”
컨휘어는 포이닉스 휘하에서 가장 바쁜 용병이다.
그는 병사이던 시절까지 포함하여 14년, 아니, 이젠 15년에 달하는 세 월 간 칼밥을 먹은 베테랑이다. 그 래서 고용주인 포이닉스를 대신해 지휘관 노릇을 하는 일이 잦았다. 그간 신임을 얻은 덕인지 얼마 전부 터는 용병들의 급여도 컨휘어가 관 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용병들 사이에서 컨 휘어는 워로드를 대리하는 중대장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5년 전에 ‘아수베르크’에서 오크 와 싸울 때였는데, 일주일쯤 전투가 벌어지지 않으니 갑자기 농사를 도 우라고 하더라. 밥값을 하라면서 말 이야.”
“……그래서? 진짜로 농사를 지었 다고?”
“그럼 어쩌냐? 까라면 까야지.”
“배알도 없구만. 용병이 호미를 들 어?”
“호미가 아니라 낫이었어. 그리고, 그때 아수베르크엔 ‘게벤’의 공작이 보낸 군대가 있었다고.”
“게벤의 공작이면.”
“‘블리히비트’ 말이야. 선제후에게 덤빌 수는 없잖아?”
프리츠는 성격이 모난 탓에 일행 중에 친한 이가 몇 없었다. 그나마 컨휘어와는 미테르게란트 출신이라 는 공통점이 있어서 이야기가 꽤 통 하는 편이었다.
“어이, 겔란족 친구들. 무슨 이야기 를 그렇게 재밌게 해?”
컨휘어와 프리츠가 겔란어로 무어 라 떠들어대자 퉁퉁한 에손이 쩍 하 품을 하며 물었다.
그는 바닥에 모포를 깔고 비스듬히 누워 있었는데, 근래 훈련이 가혹해 진 탓인지 그 별명답지 않게 얼굴이 반쪽이 된 채였다.
“컨휘어가 농사일하던 얘기 중이었 어.”
“농사? 농사 좋지.”
에손은 낙천적이고 넉살이 좋아서 일행 중 친하지 않은 이가 드물었 다. 오지랖이 넓긴 하지만 다른 사 람의 사정을 잘 살피는 탓에 특출나 게 더러운 성격의 프리츠와도 좀처 럼 충돌하지 않았다.
또, 겉보기완 달리 은근히 꼼꼼하 고 야무진 구석이 있어서 일행의 보 급관리도 그의 일이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밀밭을 바라보 는 것도 뿌듯하지만, 그래도 돼지나 소를 키우는 것보단 못하지. 농사보 다 훨씬 돈이 되는데다가 일도 훨씬 재밌다고.”
“온종일 똥이나 치우는 일이 뭐가 재밌어‘?”
“부정적인 면이 있긴 하지. 그래도 직접 해보면 달라. 돼지나 소는 은 근히 영리해서 먹이 주는 사람을 금 방 알아봐. 좀 친해지면 날 보기만 해도 반갑다고 꿀꿀대는데, 얼마나 귀엽다고. 그러다 새끼라도 낳으면 또 얼마나 기쁜지-”
에손이 신나게 떠들어대자, 흰 빛 이 흐르는 곡도를 기름으로 닦던 중 장병 데르비쉬가 픽 웃어 보였다.
“그렇게 좋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목장이나 하나 사지 그래?”
“목장?”
“그래. 돈이 부족하진 않을 거 아 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걸 팔아 도 되겠고.”
그녀가 턱짓으로 가리킨 건 에손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소검이었다. 경 량화 주문이 걸린 덕에 한 뼘 길이 의 포크만큼이나 가벼운 물건이다.
“그러고 싶은데, 아직 어림도 없 어.”
“왜?”
“레머릭 근처의 목장은 비싸거든. 죄다 수도원 소유라.”
“레머릭이면, 리드번 지방 말하는 거지? 꼭 거기여야 하나?”
“그럼?”
“어…… 트로셔는 어때? 땅 좋아 보이던데.”
“거긴 죄다 왕의 기수들이 차지한 땅이야. 나더러 왕의 기수가 되라는 건 아니지?”
“아니면 롱빌 근처나- 그래, 라발 턴 어때? 나리의 장원 말이야.”
“북부? 하, 난 평생 뼛속까지 남부 놈이라고……. 롱빌은 뭐, 나름 괜찮 을 것 같기도 한데,”
에손은 심드렁한 얼굴로 코를 후비 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고향이 좋지. 난 레머릭에 서 졸부 노릇하며 사는 게 꿈이라 고.
“……뭐, 그러시던가. 어딜 가든 딱 너한테 어울리는 비루한 꿈인 건 매 한가지니까.”
“뭐? 비루한 꿈?”
에손이 와락 인상을 구기자 데르비 쉬는 마른 천으로 칼날을 훔치며 낄 낄거 렸다.
“목숨 걸고 용병 노릇을 하면 좀 큰 꿈을 가져야지, 돼지가 뭐야, 돼 지가.”
데르비쉬는 우테콰이와 포이닉스에 이어 일행에서 덩치가 세 번째로 크 다.
덩치만 큰 게 아니라 운동능력도 상당히 뛰어나서, ‘이스턴라이딩’의 어느 백작가에서 복무하던 시절엔 어린 나이에 정예로 인정받아 가병 노릇을 했다.
지금은 용병들의 전열을 이끄는 돌 격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단순히 실력만 따지자면 프리 츠가 낫겠지만, 그는 툭하면 적들 사이로 홀로 몸을 던져대서 용병들 이 따르지 않았다. 반면 데르비쉬는 자리를 굳게 지키다 필요할 때 튀어 나갈 줄 알아서 선봉 역할에 알맞았
“돼지가 뭐 어때서? 돼지고기라면 아주 환장을 하는 주제에.”
“뭐? 누가, 내가?”
“그래, 너 이년아!”
에손과 데르비쉬가 티격태격하자 잠자코 앉아 있던 중검사 움베르타 가 짜증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난리야. 다들 좀 닥치고 있으면 안 돼?”
움베르타는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 적인 초승달 군도 출신의 용병이다.
조그만 방패인 타지 (Targe)를 손목 에 매단 채 묵직한 한손반검을 다루 는데, 검술과 방패술도 좋지만 발재 간과 몸놀림에 특히 강점이 있는 검 사다. 전투에선 아군 전열이 벌어질 때 이를 수습하거나, 반대로 상대의 전열이 무너질 때 이를 파고드는 역 할을 한다.
별개로, 무술을 배운 적 없는 용병 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래서 모도 스와 폴빌에서 합류한 신참내기 용 병들은 그녀를 훈련대장쯤으로 여긴 다.
움베르타는 화제를 돌릴 겸 컨휘어 에게 물었다.
“나리께는 여쭤봤어?”
“뭘 여쭤봐?”
“뭐겠어. 지원자들 말이야.”
“아, 여쭤봤지.”
컨휘어는 입술 옆을 가로지르는 커 다란 흉터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좀 고민하시는 것 같더니, 결국 허락이 떨어지더군.”
슬슬 떠날 날이 다가오자, 수도원 에 머물고 있던 신도들 중 몇몇이 일행에 합류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언데드 군세가 쳐들어왔을 때 성직 자들을 도와 전투에 나선 신실한 자 들로, 성지의 수호에 앞장선 포이닉 스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그를 위해 검을 들겠다며 나선 것이다.
“왜? 뭐가 걸리시길래?”
“머릿수도 갑자기 늘었고……. 죽 은 애들이 좀 걸리시는 눈치던데.”
“하긴.”
“실력이 괜찮은 인원만 추려서 받 으라고 하시기에 결국 여덟 명만 받 았다.”
“여덟 명이라……. 막내들 같은 초 짜는 없지?”
“걱정 마. 대산맥에서 고블린 때려 잡던 창잡이가 셋이나 껴 있고- 뭐, 어쨌든 실력은 나쁘지 않아.” 컨휘어의 말대로 수도원에 머무는 동안 일행이 꽤 늘었다.
우선 수행에 나서고자 하는 성직 자, 수도사제 오칸과 서신을 전달하 러 라바턴에서 온 사내, 야경꾼 딜 런이 포이닉스를 따르기로 했다.
이어 어찌 된 영문인지 칼란다리 교단의 성기사인 테오도라도 동행하 게 되었고, 추가로 전혀 예상치 못 한 인원도 일행에 합류했다.
“테오도라 공녀님이야 그렇다 치 고, 카바르 경은 왜 따라오겠다고 하는 거지?” “나리께서 계시를 받은 것 때문에 그런 거 아냐?”
“음, 그런가.”
어제, 그러니까, 테오도라 공녀가 합류를 결정한 뒤 일주일 정도가 지 난 뒤.
수도원의 대표자 노릇을 하고 있는 사제 마셀이 찾아와 성당기사 카바 르를 여정에 데려가라며 포이닉스를 설득했다.
포이닉스는 뜬금없는 제안에 어리 둥절해 했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무려 성당기사씩이나 되는 전력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추가로, 그가 도끼로 시귀들을 찍 어 넘기는 모습을 직접 본 헤일라가 그의 합류에 동의함으로써 포이닉스 는 카바르를 받아들였다.
“등신들, 순진하긴.”
뻐근한 허리를 비틀던 프리츠가 조 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공녀께서 나리를 따르는 걸 보고 쫄린 거야.”
“……누가 쫄려? 마셀이?”
“마셀만 그러겠냐? 너희 교단 전체 의 뜻이겠지.”
프리츠는 미테르게란트 출신답게 칼란다리 교단의 신자였다. 그러므 로 그가 말한 ‘너희 교단’이란 밀라 놀 왕국에서 성한 엘 가노어 교단을 이르는 것이었다.
“이제 나리께선 성지의 수호자라고 불리게 될 거야. 그런데 곁에 엘 가 노어 교단 사람 없이 칼란다리의 성 기사만 붙어 있는 걸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여길까?”
비웃음이 섞인 프리츠의 말에 움베 르타는 어깨를 으쓱이며 반박했다.
“사람들이 그딴 거에 의미 부여를 할까? 그리고, 엘 가노어 교단 사람 이 없긴 왜 없어. 수도사제 오칸 님 이 이미 계시는데.” “그분은 수도사잖아. 기도나 하실 줄 알지, 교단에서 뭔 개수작을 부 리려 하면 거기에 발이나 맞추겠냐? 방해나 안 하면 다행이지.”
두꺼운 나무판으로 단단히 막아둔 창문 아래, 가만히 팔짱을 끼고 앉 아있던 쇠뇌수 기돈이 인상을 찌푸 렸다.
“망나니 같은 놈, 또 아가리를 함 부로 놀리는군.”
“아가리를 놀리긴 이 새끼야, 느그 교단 하는 짓거리가 하도 투명해서 이 어르신이 유익한 지적을 해주는 거 아니냐.” “하. 대가리에 똥만 찬 놈이 멋대 로 지껄이는 게 유익한 지적이라 고?”
기돈은 신실한 광명교 신자다.
신앙심 덕분인지 좀처럼 겁을 먹는 일이 없고 전투에 나서면 기이할 만 큼 침착한 사내라 쇠뇌를 쏘면 빗나 가는 법이 없었다.
권양기까지 달린 중쇠뇌를 장난감 처럼 다룰 정도로 힘과 기술이 좋으 며, 활과 칼도 꽤 잘 다뤄서 용병들 중 주급이 가장 높다.
사실 주급이 가장 높은 건 원래 프리츠였다. 하지만 그가 하도 사고 를 많이 치는 바람에 포이닉스가 주
급을 절반으로 깎아버렸다.
어쨌든, 용병들 대다수가 광명교, 그중에서도 엘 가노어 교단의 신자 인 만큼 기돈을 따르는 이들이 많았 다. 특히 궁수와 쇠뇌수들 사이에선 기돈의 습관, 그러니까, 화살을 쏘기 전 성표를 만지며 기도를 하는 게 유행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프리츠와 기돈이 서로를 노려보자 나머지 용병 넷은 지겹다는 듯 그들 을 나무랐다.
“이미 몇 번 말했는데, 되도록 둘 은 마주치지 않는 게 좋겠어. 그냥 서로 모른 척 하라고.”
“거 X팔, 어찌 된 게 한 번이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냐.”
“맨날 아가리만 털지 말고 나가서 칼질이나 해.”
“그래, 그만하지. 곧 나리께서 오실 텐데.”
컨휘어, 데르비쉬, 움베르타, 에손 이 순서대로 하는 말에 기돈은 싸늘 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프리츠 는 얼굴이 벌게져 성을 지껄였다.
“끼어들지 마, 이 머저리 같은 놈 들아. 저 새끼가 말 엿같이 하는 거 못 들었어?”
“이 중에 너보다 말을 엿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하냐?”
“……이 군도 촌년이.”
프리츠가 움베르타를 향해 으르렁 거리기 시작하자, 데르비쉬는 고개 를 절레절레 저으며 컨휘어에게 물 었다.
“나리는 왜 안 와? 기껏 불러 모 아놓고.”
“글쎄. 세례식은 아까 끝났댔으니 슬슬 오실 때가 됐는데. 후작에게 붙잡혔나?”
컨휘어는 태평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포이닉스의 대리 지휘관 노릇을 하 는 그는, 최근 마음이 편했다.
수도사제 오칸, 야경꾼 딜런, 테오 도라 공녀, 성당기사 카바르 경과 그의 보조병 둘, 그리고 신참병 여 덟까지. 일행이 총 열넷이나 늘어나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딱히 걱정되 는 건 없었다.
그저께, 후작 일가와 대화를 나누 고 온 포이닉스가 에아본 후작과 함 께 리안 웰로 갈 것이라 통보를 해 온 덕이다.
후작의 호위대가 족히 수백 명은 넘는 데다, 앞으로 얼마간 여정이 펼쳐질 앤트럼 지방은 바로 그 후작 의 영지다.
여행이 얼마나 편해질지는 뻔했다. 보급 걱정도 없을 테고, 도적을 만 나거나 현지의 귀족과 갈등을 겪을 일도 없을 터였다.
하이캐슬에 있는 울카르 왕자와 합 류하기 전까지는 쭉 평탄하겠지, 하 고 컨휘어가 낙관적인 예상을 곱씹 을 즈음.
“어, 오래 기다렸냐?”
“나리.”
드디어 포이닉스가 나타났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컨휘어는 물론 곡도를 닦던 데르비쉬, 묵주를 매만지던 기돈, 서로 열을 내던 프 리츠와 움베르타, 그리고 그들을 말 리던 에손도 동작을 멈추고 막 창고 에 들어서는 포이닉스를 맞이했다.
“다 왔군.”
휘하의 핵심 용병 여섯 명을 훑어 보며, 포이닉스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불렀 어. 다들 앉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름다운 미 소지만, 까만 눈동자엔 약간의 망설 임 내지는 고민이 스며 있었다.
그 분위기를 느낀 용병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인 채 그들의 워로드 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