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47)
나의 악당들 347화
59. 고원(7)
유릴이다.
울카르를 살육왕이라는 이름으로 왕좌에 등극시킬 제물, 혹은 촉매제. 그게 바로 유릴 공주다.
정확한 근거를 댈 순 없다. 그저 직감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울카르의 눈빛을, 거기 담 긴 끈적한 어둠을 봤다면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물론 나처 럼 다크월드의 시나리오를 대충이나 마 알고 있어야겠지만.
어떤 형태가 됐든 울카르의 타락에 유릴의 신변 상 문제가 결정적인 영 향을 끼치리라는 것이 내 확신에 가 까운 추측이다.
이렇게 판단이 서고 나니 머릿속이 좀 꼬이는 기분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사우스하버에서부터 시작해 여기, 고원에 이르기까지 내가 온갖 고난 을 겪어온 이유가 뭘까. 그 동기가 뭘까.
답은 하나, 생존이다.
언젠가 중간계엔 종말이 닥쳐올 거 다. 이를 앞두고 어딘가 한적한 곳 에 숨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시한부로 무력하게 죽어 가고 싶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발 버둥을 치고 싶었다.
그래.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크 월드의 주인공이라는 버겁기 짝이 없는 배역을 받아들인 건 오직 살아 남기 위해서였다.
이런 입장에서, 울카르 왕자의 타 락을 막는 건 엄청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암흑군주’가 자신의 선봉장이자 나팔수로 삼은 존재가 바로 살육왕 울카르다. 그런 살육왕이 애초에 탄 생조차 하지 않는다면?
챕터 6에 해당하는 ‘왕도’를 생략 하는 건 물론이고, 이어지는 후반부 -제도, 지저, 명계, 암흑계-챕터에 서도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을 거 다.
거기에 더해 밀라놀 왕국의 멸망도 막을 수 있다. 그러면 원전에서는 없던 인간 세력의 지원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지.
자, 그렇다면 여기서 진짜로 중요 한 건 뭘까?
고원을 공격해오는 두 선제후를 물 리치는 것? 아니면 타락의 격발장치 인 유릴 공주를 확보하는 것?
닥치고 후자라는 게 내 판단이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런 법이 다. 연고도 없는 변방 땅이 쑥대밭 되는 것보다 내 가족, 내 친지가 다 치는 게 더 고통스럽다.
그러한 이유로, 전쟁 따윈 때려치 우고 왕도로 달려가고 싶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고원을 지키는 일보다 유릴을 구하 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하지 만, 그쪽은 역량을 쏟아봐야 성과를 얻기가 어렵다. 울카르의 말마따나 강력한 군대가 도사린 왕도에 다짜 고짜 쳐들어갈 순 없는 노릇이다.
이러니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복 잡할 수밖에.
초조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곧장 헤일라의 천막으로 달려갔다.
“헤일라. 헤일라.”
배꼽 어림에 양손을 모으고 옆구리 엔 큼지막한 알-흐룬팅이다. 맨날 이렇게 끼고 자는 건가?-을 둔 채 인형처럼 잠들어 있던 그녀는 좀처 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포이?”
“미안. 급한 일이라서.”
깜빡거리는 눈꺼풀 아래로 동공이 마구 흔들리는 걸 보니 한밤중의 손 님에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가문과 연 이 닿아 있다는 교단의 대의원에 관 해 물었다. 또,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이안-밥티스트. 왕국 남부에서 주 교가 된 뒤 교단의 대의원이 된 사 제야. 어떤 일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만 발루인과 자하카르의 요청이라고 하면 되도록 협력하겠지.”
“믿을 만하다는 소리지?”
“응. 목숨까지 내놓진 않겠지만 우 리를 위해 어느 정도의 손해쯤은 감 수할 거야.”
“그럼 그 사제를 통해서 누군가를 보호해줄 수도 있을까?”
“누군가?”
“유릴 공주.”
“울카르 왕자의 여동생?”
“응. 지금 성 토마시아 수녀원에 있다는데, 교단의 대의원 정도면 거 기에도 선이 닿을 거라고 해서.”
유릴이 암살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는 이야기는 굳이 꺼내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을 눈치챈 건지 아니면 궁금하지 않은 건지 헤일라도 질문 을 해오지 않았다.
“편지를 써 볼게. 아마 원하는 도 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후우, 고마워.”
달리 왕도에 영향력을 뻗을 방법이 없으니, 당장은 이 정도가 최선인 것 같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자 헤 일라는 잠이 덜 깬 듯 멍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끝이야?”
“어?”
“용건은 이걸로 끝이냐고.”
“아, 응.”
까만 눈동자에 미세하게 원망 비스 무리한 게 번졌다. 난 미안함에 눈 썹을 긁적이며 말을 덧붙였다.
“깨워서 미안해. 아침에 정신없이 출정하고 나면 한동안 못 볼 테니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없을 것 같더 라고.”
핏빛갈기 용병단의 잔당을 쫓는 추 격대엔 말에 익숙한 부하 여덟 명, 그리고 테오도라 공녀만 데리고 합 류하기로 했다. 영지를 빠르게 홅는 게 목적이니 소수로 움직이는 게 편 했다.
헤일라와 우테콰이, 그리고 나머지 부하들은 오스 백작의 본대를 따라 곧장 하이캐슬로 향할 예정이다. 본 대는 대부분 보병으로 이루어져 있 으니 하이캐슬에 도착하는 건 추격 대와 대충 엇비슷할 것이다.
“……그래, 알겠어.”
헤일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도로 푹 몸을 쉬었고, 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며 그녀의 천막 을 나섰다.
흠. 뒤통수가 따가운 건 기분 탓일 까.
추격대는 백오십이 조금 안 되는 숫자였다.
뭐, 나름 소수라면 소수인데, 그 백오십 명이 다들 여유분의 말을 한 마리씩 더 달고 있는 기병들이라 그 런지 별로 적어 보이진 않았다. 출 정을 위해 모여 있자니 얕게 덮인 눈밭이 금세 시꺼먼 진창이 될 지경 이다.
이 백오십 중 백 명 정도가 울카 르의 부하들이다.
거대한 안키르, 화가 휠테르, 새매 기사 지젤라를 비롯한 기사가 총 열 다섯, 그에 따르는 종자가 스물 남 짓이다. 마스터 리몬드와 마스터 에 포즈, 마다즈 라오 등 마법사가 아 홉이고 나머지는 모두 란델 아저씨 나 안드로스 같은 친위기병들이다.
여기에 오스 백작의 허락 아래 합 류한 앤트럼의 기병이 서른 남짓 된 다. 각지에서 모인 기사와 그 종자 들을 위주로, 젊은 향사인 브랜 경 과 일전에 유능함을 뽐낸 누데인족 기병장교 세토가 대표 노릇을 할 예 정이다.
여기에 내 일행이 딱 열 명 더해 진다. 베테랑 컨휘어와 말총머리 프 리츠 등 친병이 넷, 밀렵꾼 카바스 와 창잡이 맥케이크 등 괜찮은 승마 술의 용병이 셋에 야경꾼 딜런, 그 리고 울카르가 특별히 요청해 합류 한 테오도라가 그 구성원이다.
인원을 나눠 편성하고 안장에 식량 과 물을 싣는 등, 이틀 전부터 대비 를 해두었지만 인원이 인원인지라 기동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했 다. 그리하여 어스름이 깔릴 즈음 일어난 기병들은 해가 반쯤 뜨고 나 서야 출정 준비를 마쳤다.
“하이캐슬에서 봐.”
아탈란테는 바이콘에 탄 나와 눈높 이를 맞추기 위해 두둥실 떠올랐다. 공허의 통로를 뚫은 뒤로 염동력 운 용이 더 자연스러워진 탓에, 그녀의 공중부양은 안정적이기 짝이 없었 다.
“그래. 거기서 봐.”
“몸조심하구.”
그녀는 내 머리칼을 한차례 쓰다듬 곤 입술을 맞췄다.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다행히 혀까 지 오가진 않았다. 아탈란테도 나름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는 모양이다.
“우테콰이, 정말로 같이 안 갈 거 야?”
“왕국과 제국의 싸움이다. 대초원 의 전사로서 끼어드는 걸로 모자라 쫓기까지 할 수 없다.” 우테콰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따라갈 수 없다. 늑대는 빨리 지친다.”
“……하긴, 등에 200킬로쯤 얹고 다니면 누구든 빨리 지치겠지.”
“하하, 옳은 말이다!”
“애들 좀 잘 봐줘. 한동안은 별일 없겠지만.”
껄껄 웃는 놈과 손을 맞잡고 나니, 불쑥 헤일라가 다가왔다.
« o O”
……흐!
푸흥-
바이콘이 거칠게 콧김을 뿜으며 땅 을 긁어대자, 약간의 피곤함이 서린 눈동자가 놈에게로 향했다.
심장에서 회오리치는 마력이 정교 한 위압감을 발휘했다. 날카로운 이 를 드러내던 바이콘은 혀를 날름거 리며 고개를 돌렸다.
“……헤일라?”
“나중에 봐.”
“어…… 응, 그래. 하이캐슬에서 보 자.”
옆으로 다가와 잠시 날 올려보던 헤일라는 휙 하고 등자를 밟고 올라 섰다. 지금껏 그녀를 봐온 것 중에 가장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어,”
내가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그녀 는 손을 뻗더니 판금 흉갑의 목 부 분을 잡아채었다. 그리고, 입맞춤.
그렇게 보드라운 감촉과 달콤한 향 기만 남기고, 헤일라는 쿨하게 돌아 서 버렸다.
……와. 한 방 제대로 먹었네.
“출발! 출발한다!”
마침 안키르 경이 우렁차게 고함을 질러댔기에, 난 헛웃음을 삼키며 고 삐를 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