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07)
나의 악당들 507화
막간. 2년(3)
청동으로 장식한 천갑옷을 입은 고 수(鼓手)가 힘차게 북을 두드린다.
둥, 둥, 두웅- 둥, 두둥!
북과 채에 마법이 깃든 듯, 북소리 는 온 바다에 울려 퍼졌다. 열 척의 범선은 세 갈래로 줄지어 파도를 갈 랐다.
하나같이 갑판과 홀수선 위를 검붉 게 칠해서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맑고 투명한 바다에 점점이 핏방울 이 튄 것처럼 보일 것이다.
길게 뻗은 바우스프릿이나 여러 층 의 갑판은 최근 유행하는 범선과 별 반 다르지 않았지만, 육중한 충각과 선수와 선미에 솟은 육중한 망루는 조금 기이한 것이었다.
줄지은 함대의 후열에서 몇몇 마법 사가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오직 항해와 해전을 위해, 두 가문을 섬 기기 위해 길러진 도구들, ‘인코리 오스 카스트라’의 워록들이었다.
“Fulchricpil, ventus!”
전투마법사들의 주문이 완성되자 근처의 수면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갑판의 수병들은 징후를 확인하자 마자 아딧줄을 당겼다. 활대가 꺾이 고, 수면을 긁으며 불어닥친 순풍에 돛이 부푼다.
함선들은 쏜살처럼 가속했다. 깃발 이 세차게 펄럭이며, 서로 얽힌 두 마리 뱀이 일렁였다.
쇠비늘 함대.
남해를 지배하는 자하카르와 발루 인의 첫 번째 함대는 작고 아름다운 환초(環5焦)를 향하여 똑바로 나아가
고 있었다.
작은 산호섬의 해안, 바닷물이 얕 게 차오른 모래사장. 거기 선 늙은 주술사가 머리통만 한 크기의 고등 을 양손으로 치켜든 채 고함을 질렀 다.
“깨어나라-!”
물을 머금은 채 고함을 지른 것 같은, 부글거리는 목소리. 주술사가 구사하는 언어는 인간의 것이 아니 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인간이 아니 라 점액이 번들대는 회갈색 피부에 뒤덮인 아귀였으므로. 목이 없어 머리통이 몸통과 붙었으 며,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 돋아난 아가리가 제 몸통 두께만 한 크기로 벌어졌다. 두꺼운 팔다리를 가진 동 시에 목 아래에는 한 쌍의 작은 지 느러미가 달렸고, 턱이나 팔뚝 등에 는 뿔인지 촉수인지 모를 두껍고 짤 막한 돌기가 여럿 돋아나 있었다.
“깨어나라-!”
어린 동족들이 그에게 힘을 보태었 다. 마력이 늙은 주술사에게, 아니, 그가 치켜든 고둥으로 빨려들었다.
이윽고 고둥은 말간 빛을 뿜었다.
구우우-
순풍을 타고 수면을 가르는 함대 앞에 하얀 물거품이 인다. 아귀 주 술사들이 선 환초만큼이나 거대한 포말에서 물기둥이 솟구친다.
태양을 가릴 듯 높이 솟구친 검푸 른 기둥은 이내 ‘살아있는 해일’이 되어 쇠비늘 함대를 덮쳐갔다.
함대 전열의 워록들이 망설임 없이 시동어를 뱉었다.
“Ontara evarilo!”
그들이 진즉부터 준비해 둔 주문은 희미한 일렁임이 되어 쏘아졌다. 파 동이 성난 파도를 감쌌다.
시이이이-
전설 속 레비아탄처럼 함대를 집어 삼키려던 거대한 해일이 물안개를 뿜으며 급속도로 쪼그라들었다. 라 즈일의 독특한 마법 학파, 인코리오 스 카스트라의 독특한 주문 중 하나 인 ‘셀티라의 고요한 증발’이었다.
“……오오, 잠든 신이여.”
낮은 너울을 힘차게 타 넘는 쇠비 늘 함대의 모습에, 늙은 주술사는 절망에 찬 목소리로 탄식했다.
“아직 그분을 찾기는 이르다.”
검은 빛이 감도는 갑각에 붉은 털 이 돋아난 장군이 굳은 목소리로 말 했다. 8개의 두꺼운 다리로 땅을 짚 고, 우람한 상체에 집게발이 한 쌍 달린 털게였다.
주술사는 거대한 장군을 올려다보 며 물었다.
“계속 싸우는 것이 지혜로운가?”
“제사장의 명령이다.”
“그깟 민둥이 계집 때문에 숱한 목 숨을 버려야 하나?”
“닥쳐라.”
털게의 곁으로 창을 쥔 농어들이 모여들었다. 장군은 최후의 전사들 을 찬찬히 훑어보며 속닥거렸다.
“나는 싸운다. 너도 싸운다. 기뻐하 라 주술사야, 너와 나는 가장 깊은 곳으로 갈 것이다.”
“아아•…”
털게의 결의에 아귀는 신음했다.
그때, 산호섬의 연안으로 밀려들던 함대에서 경고의 고함이 터져 나왔 다.
“물밑에 적!”
“마법사-! 선저를 보호하라!”
갑판이 소란스러워지기 무섭게, 함 선들이 일으킨 포말 아래 숨어있던 조그만 그림자들이 물보라를 일으키 며 뛰쳐 올랐다.
고블린만 한 덩치에 뼈와 이빨을 엮은 무기를 쥐었으며, 크고 작은 지느러미들이 등줄기를 따라 돋아난 어인. 등줄숭어들이었다.
“죽여, 죽여-!”
“심해의 주인이여!”
검붉게 칠한 뱃전이 순식간에 작은 어인들로 뒤덮였다.
아일란트의 수병들은 능숙한 솜씨 로 대응했다. 갑판 위에서 쇠뇌를 쏘고, 창을 내리찍었다. 뱃전 하부에 달린 노구멍을 열어 칼을 내질렀다.
갑판 위에 오르는 어인의 수는 극 히 적었다. 그나마도 덩치 크고 사 나운 수병들을 감당하는 건 불가능 했다.
남해에서 가장 위험한 선원들은 아 가미를 펄떡대는 어인들을 갈가리 찢어발겨 곧장 입으로 집어넣었다. 저열한 웃음소리와 함께 동료들의 잔해가 뱃전으로 떨어지는 광경에, 용맹한 유격대원들도 지느러미를 떨 었다.
함선마다 두세 명씩 탑승한 혈기사 들은 수병들이 숭어들과 뒤섞이는 동안 수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러다 기이한 생김새의 작살을 던 졌다.
줄이 달린 자루는 통짜 쇠로 되어 묵직했고, 작살촉 옆에는 작은 항아 리가 달려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 다.
팍!
작살이 수면에 꽂히는 순간 도기는 산산이 깨졌고, 그 안에 담겨 있던 혈액은 마치 물속에서 폭죽이 터진 듯 사방으로 날카롭게 뻗어나갔다.
쇠테를 두른 함선의 바닥을 물어뜯 고, 도끼질을 해대던 상어들은 ‘피 보라’에 휩쓸려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선저에 몇 번 부딪 치더니 수면 위로 배를 까뒤집었다.
둥, 둥, 두웅- 둥, 두둥!
아름다운 산호섬에 북소리가 엄습 해왔다. 마침내 쇠비늘 함대가 해안 에 닿았다.
“하선-! 빨리, 빨리!”
“뛰어라, 이 굼벵이 같은 새끼들 아! 아일란트의 첫 번째 혈기사께서 너희들을 지켜보신다!”
하사관의 독촉 아래 수병들은 일사 불란하게 하선을 준비했다. 몇몇은 거룻배를 내리고, 또 일부는 워록들 을 잡아끌다시피 안내해 거기 태웠 으며, 나머지는 곧장 바다로 뛰어들 었다.
투구와 방패를 허리에 맨 밧줄에 묶고, 흉갑과 정강이받이 등은 그대 로 걸친 채였다. 그런데도 아일란트 의 수병들은 맨몸인양 순식간에 모 래사장에 올라섰다.
여기저기 거칠고 날카로운 요철이 돋은 중갑의 혈기사들도 마찬가지였 다. 흑발흑안의 사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던졌다.
키잉.
바닷물이 닿은 순간, 갑주가 괴상 한 소리를 내였다. 혈기사들은 즉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차라라락.
갑주가 이리저리 뒤틀리며 매끄럽 게 변해갔다. 이윽고 혈기사들은 검 붉은 쇳조각에 뒤덮였다. 묵직한 전 신 갑주를 걸친 채로도 능숙하게 헤 엄치던 혈기사들은, 이제는 정말 물 개처럼 물 속을 노닐었다.
자하카르와 발루인의 보물, ‘바다 뱀의 갑주’가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 다.
부그르르르-!
민둥이들이 상륙하는 순간을 노리 고 있던 소수의 숭어 유격대원들과 상어 파괴병들이 일제히 습격에 나 섰다.
이에 맞서 혈기사들은 작살을 내지 르고, 날카롭게 돋아난 손톱을 휘둘 렀다.
검붉은 비늘의 인간들은 어인에 버 금가는 민활함을 선보이는 동시에 완력은 그들보다 훨씬 강력했다. 공 격수단의 위력은 비교조차 되지 않 았고.
디렌츠 인근에서의 전투 중 수많은 병력을 잃었고, 근 1년간 이어진 추 격전 동안 그보다 많은 수의 전사들 이 죽었다. 덕분에 인근 바다에서는 어인족의 씨가 마르다시피 했고, 산 호섬을 지키던 소수의 병력은 방금 의 전투로 절반 넘게 도살당하고 말 았다.
쇠비늘 함대의 혈기人}, 워록, 수병 들이 모래사장에 집결했다.
얕은 바닷물이 발목에서 첨벙거렸 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자가 없었 다. 바다뱀의 갑주의 진짜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혈기사들이나 해적들 조차 그 포악함에 치를 떠는 아일란 트의 수병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방 수 처리한 장화를 신은 워록들도 이 런 환경에서의 전투를 친숙히 여겼 다.
“돌격!”
결연히 서 있던 털게 장군이 고함 을 질렀다. 아가리 근처에 달린 촉 각을 부르르 떨렸다. 부글거리는 포 효로 응답한 전사들은 창을 꼬나쥐 고 물을 첨벙대며 달려갔다.
“맹우여, 지금이다!”
거대한 털게도 전사들과 뒤섞여 달 려 나가며 구호를 외쳤다. 그것을 신호로 모래사장에 몸을 숨기고 있 던 것들이 일어섰다.
구와아아아-
아가리를 쩍 벌리며 포효하는 괴물 들은, 다름 아닌 바다거인이었다. 산 호 군대에 남은 마지막 다섯 바다거 인…….
혈기사들은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코앞에서 바다 거인이 몸을 일으키리라 예상해서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놀라거나 당 황하거나 두려워하는 법을 모를 뿐 이었다.
“투창!”
작살이 또다시 허공을 갈랐다.
바다거인들은 몸을 일으키자마자 너덧 개의 작살에 몸이 꿰뚫렸다. 거대한 덩치 탓에 길고 두꺼운 작살 이 조그만 송곳처럼 보였다. 물론 송곳이라도 손목이나 허벅지, 가슴 등을 깊이 찔리면 고통스러운 건 어 쩔 수 없는 법이다.
끄웨에 엑!
인코리오스 카스트라의 전투마법사 들도 공격을 퍼부었다. 칼바람이 눈 을 도려내었고, 얕은 물이 발목을 휘감았으며, 모래가 꺼져 구덩이를 만들었다.
바다거인이 비틀거리면 혈기사들이 작살의 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렇 게 바닥에 처박힌 바다거인들에게 수병들이 개떼처럼 덤벼들어 숨통을 끊었다.
“가장 깊은 곳으로-”
순식간에 바다거인을 처리한 아일 란트의 군대 앞에 우렁한 포효에 당 도했다. 거대한 털게가 창을 쥔 농 어들과 뒤섞여 그들에게 덤벼들었 다.
혈기사들 사이에서 누군가 말없이 걸어 나왔다.
다른 이들보다 머리 하나쯤 큰 인 영. 그는 아름다운 적색 광택이 흐 르는, 작고 날카로운 비늘을 촘촘히 휘감은 채였다.
츠으으
그의 손아귀에서 피가 뭉쳐 굳어졌 다. 핏덩이는 순식간에 덩치를 불려 길쭉한 형상, 아니, 글레이브로 화했 다.
아일란트의 첫 번째 혈기사, 선혈 백 아켈레가 허리를 비틀었다.
퉁!
다음 순간 ‘피의 무기’가 묵직한 소리와 함께 쏘아졌다. 농어들을 거 느리고 덤벼들던 털게의 상반신이 반으로 쪼개졌다.
“흐읍.”
아켈레의 손아귀에서 붉은 기류가 소용돌이쳤다. 거대한 털게의 상반 신이 폭발하더니, 거기서 튀어오른 체액이 ‘피바람’으로 화했다. 용맹한 농어들이 사방으로 몰아치는 강풍과 붉은 파편에 휩쓸려 허무하게 쓰러 져 갔다.
그가 돌아서자, 혈기사들이 소리 없이 남은 농어들을 향해 달려갔다. 수병들이 고함을 지르며 그들을 따 르려던 찰나, 아켈레가 손을 들었다.
“아니.”
선봉으로 해안에 상륙한, 이백 남 짓한 수병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제독은 산호섬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수색을 시작해라. 마녀를 찾아.”
“예, 각하!”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한 하사 관이 뿔나팔을 꺼내 힘껏 불었다.
부우우우우-
낮고도 넓게 울려 퍼지는 나팔 소 리.
곧이어 저 멀리 수평선에서 커다란 범선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었 다. 그렇게 산호섬으로 모여드는 함 선이 족히 스무 척은 되었다. 어인 족들이 도주할 것을 우려하여 매복 시켜 둔 함선들이었다.
남은 어인족들이 모두 얕은 바닷물 에 쓰러지고 얼마 뒤. 산호섬을 수 색하는 인원들이 보충되었다. 그렇 게 한 시간쯤 지나 마침내 아켈레 백작은 집채만 한 산호 앞에 섰다.
“죽은 건가?”
“마녀는 살았습니다, 각하.”
섬 한복판, 잡풀이 낮게 돋은 응달 에 두 인영이 쓰러져 있었다.
“수괴는 아군 병력이 처치했습니 다. 힘이 쇠했는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혈기사의 설명에 아켈레의 시선이 잠시 괴물에게 닿았다. 문어를 닮은 끔찍한 괴물이었다.
그는 흥미를 잃은 듯 나머지 인영 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일어날 기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호 ”
적발의 미녀. 아켈레는 무감정한 눈으로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침 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보해. 귀환하겠다.”
“알겠습니다, 각하. 타우즈 덴으로 갑니까?”
“아니.”
수병들이 찬송의 마녀를 모포로 덮 은 뒤 들것에 싣는 모습을 지켜보
며, 아켈레는 말을 덧붙였다.
“서펀트 폴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