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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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악당들 508화
67. 아이스보발트의 영주(1)
왼쪽 손목에 ‘차원 인장’이 새겨지 고, 거기에 준차원인 ‘꿈의 영지’가 깃든 이래 꿈은 온전히 내 영역이 되었다.
꿈을 꿀지 말지 선택하는 건 가장 기본에 속하는 권능이다. 꿈을 깨부 술 수도, 새롭게 만들어낼 수도, 마 음먹은 대로 조정할 수도 있다. 타 인을 내 꿈에 끌어들이는 것도, 그 렇게 끌어들인 타인에게서 꿈을 뽑 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짓들을 도저히 즐길 수가 없었다. 막대한 양의 마 력을 써야 하는데다, 길고 강렬한 두통을 유발하기 때문.
또한, 결정적으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힘을 휘두르는 것은 못내 부담 스러운 일이었다. 꿈이란 기억이나 무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는바, 꿈의 권능을 오용하는 것이 정신의 오염 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게 나의 주된 우려였다.
결국 꾸준히 활용되는 권능은 두 개 정도였다. 깊이 잠들기 위해 꿈 을 지우는 것, 그리고 혹시나 악몽 을 꾸게 되면 거기서 탈출하는 것.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며 미간을 좁혔다.
꿈속이라는 사실을 또렷하게 자각 하고 있음에도 권능이 발휘되지 않 는다. 꽤 당혹스럽다.
구우우웅.
별들이 들어찬 암흑공간. 익숙한 풍경이다.
조금 늦어지는 깨달음을 재촉하려 는지, 소년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 었다.
“이야, 오랜만이네.”
“트릭스터.”
은빛 왕관과 별 박힌 칠흑 로브로 치장한 트릭스터가 어느새 내 앞에 둥둥 떠 있다.
비현실적인 아름다움과 공포스러운 신비를 듬뿍 담은 얼굴로, 늙은 소 년은 해맑게 빙글거렸다.
“이게 얼마 만이야. 지난번에 본 게…… 언제였더라?”
“2년쯤- 아니, 더 됐군. 세테니오 라로 향하던 길이었으니까.”
“그래, 세월 한 번 빠르지?”
트릭스터는 땅에 내려서더니 두툼 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조금 낡은 듯한 가죽 소파는 처음부터 그 자리 에 있었던 듯 암흑공간 위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솔직히 좀 놀랐어.”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될 거라곤 생각 못했거든. 낮은 가능성들의 조 합이라는 사실은 둘째치고, 네게 그 정도의 가능성이 있을 줄이야.” “시나리오 얘긴가?”
“ 맞아.”
소년은 조금 신이 난 기색이었다. 맑게 반짝이는 눈동자는 나이마저 잊은 듯했다.
“뻔히 아는 길을 두고 새로운 길을 찾는 얼간이는 드물지. 덕분에 충분 히 즐기고 있어.”
숫제 장난감 취급하는 말에 입매가 절로 굳는다.
살기를 억누르려 애썼다. 늙은 소 년에게 성질을 부리는 게 아무 소용 도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침묵을 눈여겨보던 파란 눈이 재차 빛난다.
“드디어 어른이 됐구나. 그래, 그래 야지. 그럴 만한 시간이고, 그럴 만 한 환경이니.”
“곧 봄이지? 서두르는 게 좋을 거 야.”
“ 뭘.”
“새로운 시나리오, 새로운 챕터 말 이야.”
트릭스터를 지그시 바라보다 천천 히 입을 열었다.
“말이야 쉽지. 새 왕이 나를 얼마 나 경계하는데.”
“홍, 엄살은.”
“ 엄살?”
난 눈썹을 까딱거렸다.
발끈한 기색을 내보이고, 기다렸다 는 듯 불평을 늘어놓는다.
“돈을 물처럼 써가며 별 개지랄을 다 떨었지만 허접한 끄나풀 몇 명 심어두는 게 한계였다고. 심지어는 그러고도 왕궁이나 여명의회엔 얼씬 도 못했지……
“그래, 그것도 볼만하더라.”
“보고도 그딴 소리를 해? 이런 상 황에서 왕도에 대가리를 들이밀라
고?” “상황은 언제나 변하는 법이지. 그 리고 모든 건 결국 네 선택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가던 트릭스터는, 돌연 입을 다물었다. 그 리고 슬쩍 미간을 좁혔다.
나는 보란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왕도로 가는 건 맞나보 네?”
“……여우 같은 자식. 이제는 수작 질이 아주 습관이 됐네.”
“생존본능이야. 수작질이 아니라.”
내게는 다행스럽게도, 늙은 소년은 금세 화난 기색을 지웠다.
“……뭐. 상관없어, 이 정도는.”
굳은 입매가 다시금 풀어졌다. 슬 며시 지어지는 미소는 사람을 절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지금과 같은 흐름은 대개 난이도가 높아. 네가 유리한 디테일 들을 꽤 갖춰두긴 했지만, 그 반대 도 적지 않고.”
“난이도가 높다고? 내 레벨을 감안 해도?”
“레벨? 설마 아직도 권장 레벨 같 은 걸 고려하고 있어? 시나리오고 챕터고 다 어그러뜨린 주제에?”
“고려하지 않을 이유는 또 뭐야? 상황이 어찌어찌 변해서 난이도가 대폭 오른다 한들 레벨이 65쯤 되 면 다 해결할 수 있을 텐데.”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팔짱을 낀 트릭스터는 발을 까딱거 리며 말을 이어갔다.
“문제는 시간이지. 대영주 노릇만 해서 65레벨이 될 무렵이면 암흑계 가 거길 모조리 집어삼킬 테니.”
직접 경험해봐서 알잖아, 트릭스터 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에 난 가만히 눈썹을 긁적였다.
본격적으로 방백 노릇을 시작한 뒤 로 온 영지를 누비며 강도떼, 탈영 병 패거리, 떠돌이 마법사, 위장한 첩자들을 베어 넘겼다. 너른 숲을 개척하며 고블린 부족, 바실리스크, 동굴거인, 슬라임 군집 따위를 퇴치 했다.
그렇게 2레벨이 올랐다.
10레벨로 시작해 42레벨에 이르기 까지 딱 1년이 걸렸는데, 이후 44레 벨까지 근 2년이 소요된 것.
“지금 필요 경험치가 240만이지? 네가 최근에 처치한 노상강도들의 경험치가 15에서 30쯤 되니까……. 휴우, 내가 다 막막한걸.” 영주가 된 뒤 새삼 느낀 거지만, 현실은 게임과 전혀 달랐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거인의 소굴 을 쓸어버리고 경험치를 몇 만씩 챙 긴 뒤, 서버를 다시 열어 괴물들을 재생성하는 식으로 같은 행동을 반 복할 것이다. 240만의 경험치도 금 방 채울 수 있겠지.
현실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애초에 경험치를 수천씩 주는 괴물 -트롤, 거인, 와이번, 히포그리프, 드레이크 등-들은 희소한 편이다. 그런 놈들이 흔했다면 인간들이 어 떻게 도시와 마을을 세울 수 있었을 까. 인과의 순서가 어떻든, 인간과 괴물의 영역이 겹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설혹 내 영지, 그러니까, ‘드펠켄 방백령’에 그런 괴물들이 존재한다 해도 찾아내어 처치하는 건 전혀 다 른 차원의 문제였다.
소문과 흔적을 모으고, 추적꾼과 몰이끈을 풀고, 숲을 뒤진다. 모든 과정에 앞장을 서는 건 필수다. 휘 하의 기사나 병사들에게 경험치를 뺏기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내 조 급증과 욕심 덕분에, 길고 지겨운 사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전투는 늘 순식간에 끝이 났다.
그렇게 경험치를 몇 천이라도 얻으 면 다행이지만, 허탕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막 영주좌에 앉았을 무렵에 는 단순히 가도를 순찰하며 도적들 을 토벌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경험 치 파밍이었다. 또 몇 달쯤 지났을 때는 범죄자의 수가 줄고 젤른트리 개척에 속도가 붙으며 괴물 소탕 쪽 이 더 나아졌고.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범죄자 도 괴물도 거의 씨가 말랐다. 다음 겨울이 올 때까지 레벨을 하나라도 올릴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할 지 경……. 영지가 평화로워질수록 경 험치 파밍의 기회는 줄어드는 법이 었다.
“자, 잡담은 이만하고.”
내 상념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는 것을 눈치챘는지, 트릭스터는 짝 손 뼉을 쳤다.
“보너스 타임이야. 저번에 ‘아엘로 포스’ 받았지? 그럼 이번에는,”
난 냉큼 원하는 것을 말했다.
“목걸이 줘. 마저랑 스킬 채우게.”
트릭스터는 천연덕스레 답했다.
“싫은데?”
“……어?”
“저번에는 네가 골랐으니 이제 내 차례야.”
난 방긋 미소를 지었다.
“하여간, 좆 같은 새끼.”
늙은 소년은 소리 없이 웃으며 붕 떠올랐다. 소파는 흔적도 없이 사라 진 뒤였다.
“즐거웠어. 이만 가봐.”
그가 윙크를 하기에, 나는 중지를 치켜들었다. 소년이 어깨를 들썩이 자 별이 가득한 암흑공간이 진동하 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기대하지. 행운을 빌어.”
쨍, 세상이 조각났다.
“아이스보발트는 처음이라고?”
가도를 따라 걸어가는 무리 속에 서, 키 큰 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끄 덕였다.
“촌놈인 줄은 알았지만, 좀 심하구 먼. 그 나이 먹을 때까지 그 깡촌에 만 처박혀 있었던 거야?”
턱수염이 무성한 중년인의 물음에 ‘에곤’은 부루퉁한 표정을 지을 뿐 이었다. 중년인 ‘알반’은 낄낄거리다 가 문득 떠오른 게 있는지 고개를 기울였다.
“잠깐만. 그러면 ‘평시 훈련’에 참 여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거 네?”
“예.”
“그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드펠 켄의 소집령’을 받은 적이 있다며?”
“트롤 토벌에 낀 적이 있어요. 작 년 봄에.”
“트롤-?”
알반은 작년 봄에 들었던 소식을 기억해 냈다. 깊고 어두운 숲 어귀 에서 트롤 몇 마리가 나타나 개척민 들을 습격했다는 이야기였다.
“아, 그래. 너 ‘소반할츠’에서 왔다 고 했지.”
“예. 마을 근처에 집결지가 펼쳐져 서 곧장 그리로 합류했어요.”
“그럴 수가 있어? 훈련에 참여한 기록이 없으면 소집도 안 받는다고 들었는데?”
“그땐 예외였어요. 백작님이 직접 명령을 내리셨거든요.”
“무슨 명령?”
“수색할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자 원자를 모았죠. 일당으로 은화를 준 다기에 마을 청년들이 절반도 넘게 나섰고.”
키 큰 소년은 천천히 말을 이어나 가면서도 저 멀리 보이는 성곽을 눈 에 담았다.
칼날만 전쟁이 종전을 맞으며, 오 브도르프 지방은 주인이 바뀌는 동 시에 둘로 나뉘었다.
‘불푸르트’를 중심으로 한 동쪽 절 반은 젊은 제국후의 직할령이 되었 다. 서쪽 절반 역시 제국후령에 속 했으나, 그 소유주는 제국후가 아닌 그의 봉신이었다.
그런 이유로, 에곤의 고향과 그가 지금 딛고 선 땅은 ‘드펠켄 방백령’ 이라 불리게 되었다. 여전히 오브도 르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긴 하지만.
그리고 방금 막 지평선에서 솟아오 르기 시작한 도시가 바로 드펠켄 방 백령의 주도(主都) 아이스보발트였 다.
“일당으로 은화 한 닢이라. 그거 꽤 짭짤했겠는걸.”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어요. 이틀 만에 트롤이 잡혀서. 토벌이 끝난 다음 바로 해산해서 아이스보발트에 는 올 일이 없었어요.” “그런 거였군……. 그래도 대단한 데? 나이도 어린 녀석이, 트롤 토벌 경험도 갖춘 숙련병이었다니.”
어쩐지, 하고 중얼대며 알반은 새 삼스러운 눈으로 에곤을 훑어보았 다. 이 키 큰 소년은 후드가 달린 외투 아래 두꺼운 누비갑옷을 받쳐 입었고, 제 상반신만 한 원방패와 단창을 어깨에 건 채였다.
다른 일행, 즉 오브도르프 서북쪽 의 큰 고을 ‘브린스트’와 그 일대의 여러 마을에서 모여든 삼십여 장정 들과 비교하면 썩 제대로 된 무장이 었다. 아무렴 대개 몽둥이나 장대 따위만 들고 있는 것보다는 에곤이 훨씬 든든해 보였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앳된 얼굴만 빼면 말이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에곤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에요. ‘전투 여단’의 병사들 뒤만 졸졸 따라다닌 정도였으니까……. 그나마도 트롤은 시체만 구경했고요.”
“그래도 말이다. 난 여태껏 시체도 구경해 본 적이 없거든.”
에곤과 알반을 비롯하여, 브린스트 에서 온 장정들은 느긋이 걸음을 이 어갔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목적지 는 이미 시야 안에 들어왔고, 아무 리 겨울의 낮이 짧다 해도 시린 해 는 아직도 중천에 있다.
아이스보발트의 성곽 형태가 선명 히 보일 즈음 그들 일행을 닮은 인 파가 여럿 눈에 띄었다.
“작년이나 재작년보다 사람이 훨씬 많은 모양인데.”
“그런가요?”
에곤은 주변을 휘휘 훑어보았다. 모여든 사람의 수를 가늠해 보려는 것. 그러나 경험 부족한 소년에게는 들판 여기저기 흩어진 머릿수를 해 아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백 명보다는 훨씬 많겠네요.”
“삼백 명도 넘을 것 같은데.”
소년이 소리 없이 감탄하자 알반은 별것 아니라는 듯 부연했다.
“이게 전부인 것도 아니야. 먼저 도착해 있는 사람도 있을 테고, 한 창 오는 중인 사람은 더 많을 걸. 우리가 하루 일찍 왔잖냐.”
국경 너머의 고원이나 서쪽의 뷜스 루에와 달리, 오브도르프의 겨울은 나름 은화한 편이다. 눈이 꽤 오긴 해도 길이 막힐 정도는 아니며, 최 근에는 가도를 중심으로 치안이 굉 장히 안정되어 여행하기 나쁘지가 않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칼바람을 맞으며 짧으면 한나절, 길면 사흘씩 걷는 게 반가울 리 없는데도 장정들 에게서는 그리 괴로운 기색을 엿볼 수가 없다.
‘하긴, 다들 돈 벌러 가는 거니 까……
아이스보발트의 새로운 영주는 징 집에 대한 권리를 조금 새로운 방식 으로 활용했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이나 직후에 만 징집병들을 모아서는 제대로 전 투력을 발휘할 수 없다며, 평화로운 시기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 한 것. 그렇게 시작된 게 바로 ‘평 시 훈련’이었다.
물론 징집대상이 되는 장정이 모조 리 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주는 다섯 장원과 열아홉 고을의 인구를 조사해 일정 범위 내의 인원 을 보내도록 했다.
다만, 각 장원과 고을에서 최소 할 당량만큼의 인원만을 보내었다면 지 금 에곤의 시야에 보이는 장정은 반 의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당장 에곤의 고을인 브린스트에 할 당된 최소 인원은 열여섯 명이었으 나, 그들 일행은 그 두 배인 서른둘 이었다. 넘치는 자원자들로 인해 브 린스트에 허락된 최대 할당량을 꽉 채운 것이다.
자원자들이 넘쳐난 이유야 간단했 다. 일주일간 이어지는 평시 훈련을 모두 마치면 은화를 받을 수 있기 때문.
그뿐인가. 훈련을 받는 동안에는 공짜로 배를 채울 수 있으며, 여행 한 거리에 따라서는 노자로 동전도 몇 푼 더 받을 수 있다.
덕분에 작년과 재작년의 평시 훈련 에 참여한 형들과 아저씨들은 암탉 이나 오리, 송아지 따위를 끌고 마 을로 돌아왔더랬다.
에곤이 회상에 잠긴 사이, 그의 옆 에서 걷던 알반이 슬쩍 인상을 썼 다.
“아, 이거 걱정인데.”
“왜요?”
“사람이 너무 많잖아. 돈이 부족하 다고 훈련비를 못 받을지도 몰라.”
“돈을 못 받아요? 그런 적이 있나 요?”
“그건 아닌데- 하여튼 모르는 일 이야. 밀라놀 놈들 함부로 믿어서 득 될 게 하나도 없다고.”
중년인의 낮은 투덜거림에 키 큰 소년은 쓴웃음을 지었다.
“영주님이 그렇게 쩨쩨한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요.”
“쩨쩨하고 말고 할 문제냐? 딱 보 니 사람이 족히 천 명은 모일 것 같은데, 그럼 훈련비로만 은화 천 닢 아니냐. 그렇게 큰돈이 주머니에 서 나갈 상황이면, 아무리 배포가 큰 귀족 나리라도 딴생각이 들걸?”
에곤은 어깨를 살짝 으쓱일 뿐, 따 로 반박을 하지는 않았다. 시간 낭 비가 될 게 뻔해 보였으므로.
게다가 소년은 그깟 푼돈이나 받겠 다고 여기에 온 게 아니었다. 푼돈 이나 받겠다고 매형과 누나를 졸라 장비를 갖추고, 은퇴한 용병인 브룬 드 아저씨에게서 무술을 배운 게 아 니었다.
어느새 아이스보발트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채였다. 도시의 성벽은 소년이 상상한 만큼 높지 않았다. 다만 엄청나게 두꺼워서 견고한 인 상이었다.
‘반드시.’
아이스보발트를 바라보는 에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 도시를 지키고 있는 아홉 기사 와, 그들의 주인은 한때 평민이었다 고 들었다. 지금의 소년이 그런 것 처럼.
에곤은 괜스레 심호흡을 하며, 씩 씩하게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