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09)
나의 악당들 509화
67. 아이스보발트의 영주(2)
서쪽 성문으로 향하는 가도는 자그 만 언덕을 가로질렀다. 덕분에 키 큰 소년은 도시의 전경을 조금이나 마 엿볼 수 있었다. 오브도르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의 위용은 그의 시 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성벽의 높이는 대략 5미터에, 두께 도 그쯤이라 무척 견고한 형상이다. 높고 각진 궁탑이 넷, 납작한 원형 방어탑도 둘이나 보인다. 억센 아래 턱에 송곳니와 어금니가 번갈아 돋 아난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 한가운데를 차지한 문루는 에곤 의 고향에 있던 아성만큼이나 육중 해 보였고, 좌우로 이어진 성벽보다 비교적 밝은 색이었다. 칼날만 전쟁 당시 ‘자안의 악마’-아니, 프로스하 펜의 새 방백에 의해 문루가 무너져 내린 뒤 새로 지어 올린 탓이다.
성벽 위로는 색색의 깃발이 펄럭였 다.
문루에서 나부끼는 두 깃발은 날개 달린 파충류의 문장을 새기고 있었 다. 머리 셋 달린 용은 미테르게란 트의 황제와 제국 그 자체를, 붉은 개체가 섞인 와이번 무리는 어린 제 국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문루를 제외하고, 높은 탑들과 그 아래 성가퀴는 온통 한 종류의 기치 로 채워져 있었다. 드펠켄 가문의 상징, 붉은 바탕에 두 뿔 달린 군마 를 새긴 깃발이었다…….
에곤이 딛고 선 언덕이 워낙 얕았 던 탓에 성벽 너머는 제대로 구경하 기 어려웠다. 그러나 조약돌과 석회 를 섞어 깐 길과 그로부터 돋아난 여러 갈래의 골목은 견고한 성벽으 로도 숨길 수 없었다.
성벽 곁에 늘어선 창고와 저장소는 지붕만 간신히 보였다. 가판대가 어 지럽게 널린 시장과 경매소가 언뜻 스쳤고, 층층이 쌓인 벽돌집과 요소 마다 자리한 관경루(觀景樓;Gazebo) 도 귀퉁이를 엿볼 수 있었다.
회색 돔을 얹은 호르히우 성당과 수정처럼 반짝이는 오-지올 대성당 은 예상보다 훨씬 웅장했다. 상류층 의 거주 구역으로 향하는 길에는 가 지런한 판석을 깔았고 좌우에는 가 로등이 늘어섰다. 3, 4층 높이의 주 택들은 가지런했고, 높은 담장을 두 른 재판소와 높다란 탑상형 저택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대로 끝 에는 거무튀튀한 성채, 아니, 영주관 이 앉아있었다.
에곤은 몽롱한 표정으로 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상상했다.
무(武)를 숭상하는 학생들과 참사 회의 사제들. 부유한 상인들과 오랜 역사를 품은 귀족들, 완고한 간수와 지엄한 법관들. 용맹하고 충성스러 운 기사들과 두렵고도 매혹적인 여 인들. 마지막으로, 두 뿔의 마수를 탄 백작까지.
그 모든 것을 이제 곧 만나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소년의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에곤의 기대는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아니, 하사관 님. 도시에 들어갈 수가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는 훈련을 받으러 왔다니까요.”
브린스트에서 온 장정들의 대표 격 인 사내가 나서서 질문하자, 문루의 성문과 샛문 사이에 선 장한이 입매 를 굳혔다.
에곤의 눈에 장한은 보기 드물게 멋진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활짝 열린 성문과 그 근처에서 행상과 여 행객, 민간 전령과 용병 등을 상대 하고 있는 병사들과 비교해 봐도 그 랬다.
“첫째로, 난 그냥 하사관이 아니야. 보다시피 상사지.”
장한은 어깨띠의 윗부분에 수 놓인 표장을 가리켰다. 넓적한 ‘V’자 부 호 세 개가 쌓인 모양새. 에곤은 트 롤 토벌 당시 전투여단의 병사들과 만나본 경험이 있으므로, 저게 계급 장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복장만 보아도 장한이 높은 군인이라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아무렴, 모를 수가 없다.
건장한 체격의 상사는 관절부에 철
편을 덧댄 사슬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 위에는 붉은 서코트를 걸쳤으며, 가죽장갑과 황갈색 장화까지 갖추었 다. 벨트에 매단 칼은 얼핏 봐도 시 골 대장간에서 만든 것들과는 차원 이 달랐다. 당연히 일개 병사나 하 사관은 아닐 터였다.
“어- 죄송합니다, 상사 나리.”
“이 인원이 모두 첫 훈련일 리는 없고, 계급장 읽는 법을 그새 잊은 모양이군.”
상사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젓더 니 북쪽을 턱짓했다.
“앞으로 동절기 평시 훈련 간에는 도시 밖에서 주둔한다. 가봐. 성벽을 따라가면 주둔지가 나올 테니.”
“예에? 하지만 나리,”
“따질 생각일랑 집어치워라. 컨휘 어 경의 명령이니, 너희는 닥치고 따르기만 하면 돼.”
“컨휘어 경의 명령이요?”
“……이 무지렁이 새끼. 방백령의 무관장이자 전투여단장이신 ‘컨휘어 폰 어죌튼’ 경의 명령이라는 뜻이 다!”
“아.”
“알았으면 이만 꺼져! 언제까지 길 을 막고 있을 셈이냐!” 짜증 섞인 호통에 브린스트의 장정 들은 굽실거리며 가도를 벗어났다. 성가퀴나 궁탑의 전안에서 병사들의 눈이 매섭게 빛나는 통에 에곤은 괜 히 오금이 저려 걸음을 재촉했다.
“……좆 같은 자식. 같은 겔란인끼 리 너무하는구먼.”
알반이 또 툴툴거렸다.
“그나저나, 제기랄, 이래서 내가 불 안하다는 거였어. 모여든 사람이 너 무 많으니 도시에 들어가지도 못하 잖아. 하기야 천 명이나 주둔하려면 저번처럼 광장을 차지하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겠지.”
“그렇게 싫어요? 어차피 광장에서 도 천막 신세를 지는 건 마찬가지라 고 들었는데.”
“성벽 밖이면 이 칼바람을 그대로 맞아야 되잖냐. 게다가 광장 근처에 는 즐길 거리가 많다고.”
깊이 아쉬워하는 중년인의 모습에 소년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즐길 거리라면 어떤 거요?”
“술이랑 계집이지, 달리 뭐겠어.”
“아……. 하지만 도시에서는 뭐든
비싸잖아요. 그, 여자도요.”
“엄두를 못 낼 정도는 아니야. 그 리고 우리는 바가지를 쓸 염려가 없 으니 생판 모르는 곳보다는 낫지.”
“어째서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구먼. 징 집병에게 바가지를 씌우면 경비대에 끌려가.”
알반은 허리춤의 주머니를 만지작 거리며 울상을 지었다.
“시발. 이날을 위해 가을 내내 마 누라 몰래 동전을 모아뒀는데.”
“뭘 하려고 했는데요?”
“이네스를 일주일 내내 부르려고 했지.”
“이네스?”
“그런 애가 있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서 푼만 내면 입으로 해주 는 애.”
“••••••무, 네?”
“싸다고 얕볼 게 아니야. 기술이 대단하거든. 아마 이네스가 방금 본 상사보다 돈을 잘 벌 걸……
음담패설에 정신이 팔린 탓인지, 아니면 정말로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는 알 수 없었지만, 에곤은 금세 북 문에 도착했다.
성문이 굳게 닫혀 있음에도 한산함 과는 거리가 멀었다. 근처에 세워진 주둔지 때문이었다. 병사들이 바글 거렸고, 서문에서 본 상사처럼 중무 장을 갖춘 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 다. 방백령 각지에서 모여든 장정들 은 우왕좌왕 주둔지를 헤매고 있었 다.
주둔지 입구 즈음에는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앞으로 줄이 길게 이어졌 다.
“어이, 거기! 방금 온 놈들! 어수 선하게 돌아다니지 말고 줄 서!”
어느 병사의 고함에 브린스트의 장 정들은 얼른 줄의 꼬리를 물었다. 영문도 모른 채 대기하는 동안, 알 반은 에곤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닥 거렸다.
“저게 분대장, 저게 부분대장 계급 장이야. 미리 확인해 둬.”
“저도 알아요. 소대장까지는 직접 본 적이 있으니까. 그리고 저건 분 대장이랑 부분대장이 아니라 숙련병 이랑 일반병이에요.”
새로운 영주는 휘하의 병력을 세분 화하여 계급을 부여했다.
여기 모인 장정들 같은 경우, 징집 병인 만큼 계급조차 없는 최하위 서 열이다.
흔히 ‘붉은 군대’라고 불리는 전투 여단이나 아이스보발트의 경비대에 정식으로 입대하는 경우에는 ‘수습 병’이라는 계급과 함께 노란 ‘—’자 부호를 계급장으로 투구와 소매에 새기게 된다.
이후 반년이 지나면 ‘일반병’이라 는 계급을 얻으며 계급장의 ‘—’자 부호가 두 겹이 된다. 수습병도 전 투수당은 받을 수 있지만, 정식으로 급료를 받는 건 이 일반병부터다.
일반병 중에서도 경험과 기량을 모 두 갖춘 소수는 세 겹의 ‘—’자 부 호를 새기며 ‘숙련병’으로 승진한다. 숙련병들은 대개 부분대장 역할을 하며, 주급으로 은화 3닢 이상을 받 게 된다.
“어, 그럴 리가 없는데. 작년에 분 명히 그렇게 들었어. 작대기 두 개 가 부분대장, 세 개가 분대장이라 고……
“훈련대대의 분대장이랑 부분대장 은 계급이 낮다고 들었어요.”
“아, 그런 거였나.”
숙련병으로서 공을 세우면 하사관 이 될 기회를 얻는다.
하사관의 첫 계급은 ‘하사’로, 노란 ‘V’자 부호를 계급장으로 얻는다. 대개 병사 아홉을 부하로 거느리는 분대장 내지는 기병분대의 부분대장 이 되며, 일주일에 은화 5닢 이상의 넉넉한 급료를 받는다. 추가로, 하사 관부터 대대의 문장을 새긴 어깨띠 를 두를 수 있게 된다.
다음 계급은 ‘중사’로, 노란 ‘V’자 부호 두 겹을 계급장으로 새긴다. 부소대장으로서 소대장의 참모 및 소대장 분대의 지휘를 맡는다. 전원 이 숙련병 계급으로 이뤄진 기병 분 대의 경우, 분대장은 중사가 맡는다.
하사관 계급의 정점은 ‘상사’로, 에 곤 일행이 방금 서문에서 본 것처럼 노란 ‘V’자 부호 세 겹을 계급장으 로 새긴다. 대개 중대 내지는 대대 단위의 관리관이 되어 지휘를 제외 한 거의 대부분의 군무를 도맡아 한 다.
“훈련대대에서는 상사가 중대장 역 할을 하나 봐요. 중사가 소대장을 하고.”
“전투여단에서는 안 그래?”
알반의 질문에 에곤이 미간을 좁혔 다.
“훈련대대도 전투여단의 일부예요. 그리고 전투여단의 다른 대대에서는 소위가 소대장을 해요. 대위가 중대 장을 하고요.”
“아, 알지. 은왕자의 부하들?”
“다 은왕자의 부하였던 건 아니에 요. 제가 본 소대장은 영주님의 사 병이었댔으니까.”
붉은 군대에서도 장교는 희귀한 존 재다. 대부분은 거의 흡수되다시피 한 은왕자군에서 높은 지위에 있던 자들이다. 나머지는 방백이 영주가 되기 전부터 거느리고 있었던 사병 들이고.
“그럼 저 장교는 뭐지?”
“누구요?”
“저기 탁자에 말이야.”
알반이 가리킨 건 훈련에 참여하려 모여든 장정들이 긴 줄을 늘어뜨린 탁자였다. 거기엔 대여섯 명의 병사 와 하사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 었다. 개중 자리에 앉아있는 건 둘 뿐이었다. 상사 계급장을 단 덩치 큰 청년과, 판금 흉갑 위에 두른 어 깨띠에 은색 직사각형 부호를 두 개 나 단 험상궂은 사내.
“어, 글쎄요. 계급장을 보니 대위 같은데……
“그렇지? 대위 씩이나 되는 사람은 처음 보네. 근데 순 산적 같이 생겼 잖아?”
“산적?”
알반이 킬킬거리며 하는 말에 반응 한 건 옆에 선 에곤이 아니었다. 마 침 근처를 지나치던 병사였다.
옷소매에 숙련병 계급장을 단 젊은 병사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그들에게 다가왔다.
“지금 산적이라고 한 거냐? ‘쇠장 갑’ 타가트 대위님께‘?”
“어, 예?”
“이 건방진 촌놈들! 너희들은 훈련 을 하루 일찍 시작해야겠다!”
“자, 잠시만. 그게-”
그 분노에 찬 고함이 관심을 끌었 는지, 다른 병사들도 모여들었다. 에 곤과 알반은 물론 브린스트에서 온 다른 장정들 역시 얼굴이 새하얗게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