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66)
나의 악당들 066화
18. 에레나르 라다칼린(2)
•••내가 왜?
하! 경우가 없는 것도 유분수지, 다짜고짜….
•••알겠어. 약속한 거다?
흠흠, 일단….
난 신비의 섬, ‘티린 멜’에서 온 ‘에레나르 라다칼린’이야.
엘렌? 그건 스승님께서 붙여주신 애칭이고. 사투리가 심하셔서 에렌 이 아니라 엘렌이 됐지.
내 고향에 대해서 첨언하자면, 티 린 멜의 ‘라-팔라이스 궁전’이 내 집이야. 이 정도면 내가 흔해 빠진 마법사와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겠 지?
라다칼린 가문을 모른다고? ‘대마 법사 라다칼린’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라다 칼린은 라-팔라이스 궁전을 세운 고대의 대마법사고, 라다칼린 가문 은 그분의 후손들이야. 한마디로 내 몸엔 대마법사의 핏줄을 흐른다는 뜻이지.
이렇게 대단한 혈통을 타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이 항상 행복 했던 건 아니야.
음, 정확히 말하면, 거의 항상 불 행했지. 행복했던 기억은 손에 꼽을 만큼 적으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 이래 봬도 사춘기는 애저녁에 끝났거든. 부모 없이 자란 아이는 철이 빨리 드는 법이니까.
사실, 부모는 없었지만 고아로 자 랐다고 말하긴 좀 그러네. 인생에 도움은 안 되지만 친척은 꽤 많았거 든. 자식처럼 돌봐주신 스승님도 계 셨고….
그러니까, 부모가 없다는 건 내 인 생의 수많은 불행 중 하나에 불과 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다른 불행들? 어… 설명하자면 좀 긴데.
라-팔라이스 궁전은 ‘원소학파’의 마법사들의 요람이자, 훈련소고, 대 학교야.
그래, 맞아, 원소학파. 미들월드 최 고(最古)의 마법학파지. 최고(最高) 이기도 하고.
당연하게도, 라다칼린 가문의 아이 들도 궁전에서 생활하며 지식을 쌓 고 마법을 익혀. 대개 특출난 재능 을 갈고닦아 세대를 대표하는 마법 사가 되지.
난 좀 더 특별한 경우야. 라다칼린 의 후손 중에서도 특히 그 피가 진 한 적손(適孫)이니까.
내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종조 부와 숙부들을 포함한 궁전 최고의 마법사들이 나를 가르치기 시작했 어.
사람들은 모두 내 재능에 경악했 지. 난 특출난 학습능력과 가공할 집중력,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금에 유례가 없는 마력을 타고났거든. 패 (牌)를 받은 마법사보다 마나가 많 은 일곱 살 꼬마라니, 놀라지 않으 면 이상하지.
궁전 전체가 매일매일 들썩거렸어. 라다칼린을 이을 대마법사의 탄생이 라며 호들갑을 떨어댔지. 사촌들, 또 래 친구들은 하나같이 날 선망의 대 상으로 여겼어.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인생의 전성기였던 것 같아.
그래, 나도 웃겨. 일곱 살이 인생 의 전성기라니.
어쨌든, 슬슬 이상한 징조가 보인 건… 아홉 살? 열 살? 그쯤이었던 것 같아.
물론 그때도 마법어, 주문의 발음 과 발성, 술식변환, 수인, 마나의 유 도와 집중… 하여튼 모든 게 또래 중 최고였어. 내 재능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다른 모든 게 완성이 됐 는데, 이상하게 주문이 새겨지질 않 는 거야. 한마디로, 마법을 못 썼다 는 뜻이지.
물론, 당시엔 그게 큰 문제는 아니 었어. 열 살 전에 주문을 새기는 경 우는 드물거든.
내 드높은 재능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가 앞서서 그렇지, 아홉 살, 열 살에 주문을 못 새기는 건 이상한 일 아니니까.
근데 열셋, 열넷이 되도록 주문을 못 새기니까 그때부턴 문제가 되더 라?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은 비웃음과 경멸로 변해갔어. 나를 선망하던 사 촌들, 또래들도 나를 뒤에서 험담하 기 시작했지.
-대마법사의 적손이 아니라, 사생 아래.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데?
-오만하게 굴 때부터 알아봤어. 천 벌을 받은 거야.
-마력이 많고 머리가 좋으면 뭐 해? 정작 마법을 못 쓰면 농노의 딸이랑 다를 게 뭐야?
별의별 개소리를 다 하는데, 특히 ‘올리데’, 그년은 입을 찢어- 흠, 어 쨌든.
그리고 내가 열다섯이 되었을 때, 난 완벽히 혼자가 됐어. 멍청이 ‘람 피’를 마지막으로 또래 서른 명이
모두 주문을 새기는 데 성공했거든.
그러곤 그걸 기념하기 위해 뜰에서 축하파티를 열었어. 지들 딴엔 확인 사살이라도 하고 싶었나 봐. 내게 낙제생 인장을 찍고 싶었던 거지.
•••사실, 사실 그중에서 한두 명 정 돈 진짜 친구라고 생각했어. 근데 알고 보니까 걔들도 어릴 때부터 나 에 대한 열등감과 적개심을 몰래 키 워왔던 거야. 실실 웃으면서 날 위 로하는데- 아주 즐거운 파티였지.
그 시선, 동정심 때문이라면 당장 치워줄래? 눈알을 파버리고 싶거 든?
하여튼, 애들만 그런 건 아니었어. 대마법사의 스승이라는 명예를 노리 던 어른들도 하나둘 날 피하기 시작 했거든. 다들 날 실패작 취급하더라. 차라리 처음부터 둔재였으면 그런 대접은 안 받았을 텐데.
물론 그깟 주문 없더라도 난 충분 히 뛰어난 사람이었어. 괴롭다고 울 시간에 차라리 수련이나 명상에 집 중했지. 공부도 쉬지 않았어. 궁전엔 마법이 아니더라도 익혀둘 만한 지 식이 무궁무진했거든.
……뭐? 그, 그걸 어떻게 알아?
아니, 혼자 있을 때 우울해지는 건 누구에게나 흔한 일이잖아!
다들 알았다고? 어떻게?
•••베갯잇 빠는 거랑 눈 부은 걸 보고? 아, 알겠으니까 그만해. 죽고 싶어졌어.
싫어, 그만할래.
•••후, 좋아.
나이를 먹을수록 많은 사람이 날 떠나갔지만 모든 사람이 떠난 건 아 니었어. 내 진정한 스승이신 ‘제마 르’ 님만은 그러지 않으셨거든. 누 가 뭐라 해도 내가 대마법사가 될 거라 믿으셨지.
아까 말했지? 내 인생에 행복했던 기억은 손에 꼽는다고. 그 손에 꼽 는 순간들을 선물해 주신 분이 바로 스승님이셔.
겉으론 꼬장꼬장하고 괴팍한 노인 처럼 보였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따뜻하셨어. 내 생일이면 뿔닭과 레 몬으로 소테(sautO)를 만들어주셨지. 설탕을 잔뜩 넣은 케이크도, •••미, 미안. 내가 어디까지 말했 지?
아- 음. 괜찮아.
행복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궁 전에서의 생활은 나름 충실했어. 마 음을 비우며 명상하고, 새로운 지식 을 배워가는 게 내 천성에 맞았나 봐.
하지만, 내 궁전에서의 인생은 열 일곱 생일을 맞으면서 완전히 끝장 나버렸어.
스승님께선 내 문제에 관해서 연구 하고 계셨어.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주문을 새기지 못하는 경우를 연구 하신 거지.
하지만 좀처럼 성과를 얻지 못하셨 어. 연금술이나 약초술은 미들월드 최고셨지만, 다른 분야에선… 별로 특출난 편이 아니셨거든.
그리고 인간관계도 넓지 않으셔서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금서에 손을 대기 시 작하셨어.
아, 물론 나쁜 짓을 저지르신 건 아니야. 스승님께선 궁전의 원로셨 고, 궁전의 금서들도 얼마든지 이용 할 수 있으셨거든. 내 증조부님과 함께 수학하셨다니까, 배분으로 따 지면 최고 수준이지.
그리고 마침내 내 생일날이 됐어.
매년 그래왔던 대로 스승님께선 요 리를 해주셨지. 스승님의 연구실에 서 그 요리를 나눠 먹고 있는데, 도 둑이 기습해 들어온 거야.
당연히 평범한 좀도둑은 아니었어. 어떤 미친놈이 마법사들이 바글거리 는 궁전에 침입할 생각을 했겠어?
놈의 이름은 ‘사이츠’, 잔인한 전투 마법사이자 악명 높은 도둑이야. 여 든이 넘는 노인을 기습할 정도로 비 열한 놈이기도 하지.
스승님께선 필사적으로 놈에게 맞 서셨지만 역부족이었어. 놈은 스승 님께 치명상을 입힌 후 궁전의 금서 를 들고 달아나버렸지.
더 기가 막히는 건 그다음이야.
마치 기다렸다는 듯 숙부와 그 추 종자들이 나타나선 나를 도둑으로 몰아갔어. 내 몸에 씐 저주를 풀기 위해 금서를 훔쳤다고 말이야.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지. 숙부는 스승님과 날 죽이고 싶었던 거야. 라다칼린의 유일한 적손인 날 죽이면, 자기가 대신 적손이 될 테 니까. 어쩌면 사이츠를 불러들인 것 도 숙부의 짓일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스승님은 그렇게 호락 호락하게 당하지 않으셨어. 사이츠 에겐 기습을 당해서 제대로 반응하 지 못하셨지만, 원래 연로한 마법사 란 극도로 위험한 존재거든.
스승님께선 연구실에 걸어둔 ‘추방 의 마법진’을 발동시키셨어. 나와 스승님을 제외한 다른 모두를 섬 바 깥으로 전이(轉移)시켜 버리신 거 야.
그러곤 돌아가시기 직전, 나를 ‘탈 출의 마법진’으로 밀어 넣으셨어. 협해를 건너라고 하시며….
후우, 이게 끝이야. 됐지?
아, 거기까지? •••흐음, 알겠어.
스승님의 말씀대로, 난 협해를 건 너기로 했어.
아일란트는 티린 멜과는 달리 상당 히 험한 곳이야. 믿을 만한 배편을 찾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어. 배 를 타는 데 3개월이나 걸린 건 그 런 이유 때문이었지.
그리고… 사실, 궁전을 벗어난 건 처음이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 어. 정신적인 충격을 이겨내기도 쉽 지만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사우스하버로 가는 배에 타게 됐어. 맞아, 거기서 포이 를 처음으로 만났지.
첫인상? 그냥 얼간이였어.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화살 몇 대 맞고 벌벌 떠는 게 꼴불견이었 지. 포션 뺏기고 화내는 것도 멍청 이 같았어.
•••내가 언제, 내,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그냥, 어, 봐줄 만하다고 생각하긴 했지.
……뭐, 취향? 취향도 정도가 있 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니,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사실 이 그렇잖아? 포이가 못생겼다면 그 건 거짓말이지. 싸가지없게 생기긴 했어도 보기 드문 미남상이야. 특히 웃을 때 얼마나….
어쨌든, 배에 내리고 나선… 그래, 포이한테서 도움을 받았어.
포이는 생긴 거완 다르게 꼭 상인 이나 광대처럼 굴면서 병사들에게서 날 구해줬지. 당연히 고마워해야겠 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어. 그땐 엄청, 엄청… 화가 났거든.
창에 찔리고 짓밟힌 것 때문만은 아니야. 물론 그것도 무척 불쾌한 경험이었지만… 그것보다 완드를 잃 어버린 게 더 화가 났어. 스승님께 서 주신 물건 중에서 가장 귀한 물 건이었거든.
그때 날 찌른 놈, 손등을 짓밟은 놈, 완드를 박살 낸 놈, 더러운 혀 를 놀리던 놈, 모두 기억하고 있어. 기회가 되면 반드시 복수할 거야. 반드시.
•••그래, 그 얘긴 됐고.
도움을 받긴 했지만, 포이를 믿을 수는 없었어. 궁전을 나서고 삼 개 월 동안 별의별 쓰레기 같은 놈들을 많이 만났거든.
물론 그런 놈들이야 별로 큰 위협 이 아니었지. 마법사를 알아보지 못 할 정도로 멍청한 놈들이니까. 완드 를 휘둘러 팔다리를 잘라 버리면 눈 물 콧물 흘리며 빌거나 도망치기 일 쑤였어.
포이도 그런 놈이라고 생각했어.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접근하는 거 라고 말이야.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포 이의 인상이 그리 따뜻한 편은 아니 잖아. 내 마법적인 능력을 노리는 걸 수도 있고, 내가 가진 물건이나, 음, 몸을 노리는 건 아닐까 의심했 지.
그래, 포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 어.
물론,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친한 척 굴고, 시도 때도 없이 구박이나 잔소릴 해대고,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면서 애 취급해 대는 게 짜증 나긴 했지.
그래도… 거리낌 없이 나를 끌어당 기고, 도망가지 못하게 꽉 붙잡고, 당연하다는 듯 나를 지켜주는 건…, 일종의, 음, 안정감 같은 걸 줬어. 궁전에서나, 아니, 스승님의 실험실 에서나 느끼던 그런 기분.
진짜 이상하다니까. 아는 거라곤 이름뿐인 사람한테 이런 기분을 느 끼다니.
틀린 말은 아니잖아? 포이는 스스 로에 대해서 말을 거의 안 해. 물론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금방 눈치채겠지 만, 포이는 절대로 평범한 용병은 아니야.
포이는 글을 알아. 필체는 딱딱하 지만 기품이 있고, 말투엔 은근히 ‘라즈일’ 지방의 억양이 묻어나지. 얼마 전에 보니까 겔란어도 유창하 게 하는 것 같았어. 상당한 교육을 받은 게 분명해.
게다가, 평균을 훨씬 웃도는 체격 에 몸은 극도로 단련되어 있어. 말 을 제 몸처럼 다루고, 혈조술을 자 연스레 싸움에 활용해. 귀족을 대할 때도 위축되지 않고, 전투에 나서면 언제나 앞장서.
그래. 포이에게는 푸른 피가 흐르 는 게 분명해. 자기 성을 밝히지 않 는 거나 기도를 안 하는 걸 보면 아마 배교(背敎)를 했거나 범죄를 저지른 도망자 신분이 아닐까?
물론 포이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 어. 포이도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 을 텐데 그런 질문은 전혀 하지 않 거든. 나에 대한 일종의 배려겠지.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어.
사실, 이젠 별로 상관도 없어. 정 체가 뭐든 포이는… 포이는 나한 테….
•••포이는 여전히 얼간이 같아.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남한테 등을 내주잖아. ‘내 뒤에 숨어 있어’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건 또 어떻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도 항상 옆 에서 얼쩡거려. 배가 고프진 않은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심심하진 않은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귀찮을 정도로 들러붙는다니까.
아무리 짜증을 내고 욕을 하며 밀 어내도, 어느샌가 나타나서 시시한 선물을 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 머리는 또 얼마나 나쁜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바보야.
•••그래. 이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 겠어. 틈날 때마다 명상하며 스스로 관조해 봐도,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어.
맞아, 거짓말이야. 날 제일 잘 아 는 건 바로 나니까.
그리고,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가 있겠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제 목 숨 던져가며 지켜주는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대하듯이 애지중 지하며, 때때로 뭔가 흘러넘칠 것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 찾아와 등불이 되어 주는데, 어떻게…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어?
그래서… 그래서 견딜 수 없이 화 가 났어.
깊은 밤이 되고, 어두운 새벽, 아 침이 될 때까지 포이가 돌아오지 않 아서, 아무리 귀를 틀어막아도 역겨 운 소리가 끝없이 들려와서, 언제나 내 짜증을 받아주던 포이가 금방이 라도 토를 할 것처럼 얼굴을 구겨 서, 더러운 작부 년이 허접한 반지 를 보여주며 웃어대서, 그걸 보고도 풀 쪼가리 하나 벗어던지지 못하는 내가 우스워서. 그래서 화가 났어.
•••그래, 나 제정신 아니야.
오죽 미쳤으면 포이가 날 구해주러 왔을 때, 차라리 같이 죽으면 좋겠 다고 생각했을까?
포이가 날 끌어안았을 때. 그 뜨거 울 만큼 포근한 품보다 포이가 나 때문에 울고 있다는 게 더 기뻤어.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한 게 아쉽긴 해도, 포이가, 포이가 나 때 문에 평생 후회하며 살아갈 것 같아 서, 날 영원히 기억해 줄 것 같아 서, 그래서, 그래서 행복했어. 이게 제정신이야?
•••몰라, 모르겠어.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나, 난…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함께 말을 타고 트인 해변을 달리 고, 가을의 밀밭을 걸으며 노을을 보고 싶어. 하루하루 늘어가는 주문 을 자랑하고, 별자리 읽는 법을 가 르쳐주고, 좋아하는 꽃이 뭔지 물어 보고 싶어. 머리를 빗겨줬으면 좋겠 고, 이쁜 꽃반지를 받고 싶고, 너른 품에 안겨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입술을 맞추고 싶어. 난, 약속, 약속했잖아. 포이를 보게 해 줘.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한 번만 보게 해줘. 제발, 제발….
뭐?
•••그러니까, 지금?
자, 잠깐만. 그건 말이 다르잖아! 기다려, 난 아직 준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