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77)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
나의 악당들 077화
20. 혼란의 도시(6)
꾸벅거리며 졸기 시작한 엘렌이 내 팔뚝에 기대어 곤히 잠들 무렵. 보 석 감정이 끝났다.
“모두 진품입니다.”
“으음….”
예쓰!
나는 주먹을 움켜쥐며 속으로 환호 했다. 중년의 사제는 꿀꺽 침을 삼 키더니 감정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값은 얼마나 하겠나?”
“전부 합치면… 금화 삼백 장 정도 될 겁니다.”
뭐? 겨우? 턱없이 부족하잖아?
“금화 삼백 장이라뇨? 하나같이 진 귀한 보석인 데다 족히 7, 800년은 된 유물들인데….”
내가 슬쩍 언성을 높이자, 감정사 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패물함에 새긴 장식과 장신구의 모양을 보아 고대제국의 물건인 건 확실합니다.”
“그런데도 값이 그것밖에 안 된다 는 겁니까?”
“그런데도가 아니라, 그래서 값이 낮은 겁니다.”
•••뭐라고?
감정사의 말에 사제가 고개를 주억 거리며 말했다.
“‘노빌리스’가 아니라 ‘마기움’ 양 식이로군?”
“맞습니다, 신부님.”
노빌리스? 마기움? 그게 뭐길래?
중년의 사제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 며 쯧쯧 혀를 찼다.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로군. 노빌 리스는 고대제국의 황금기를 이끈 귀족들의 양식이고, 마기움은 ‘종말 의 광명’을 불러온 사악한 마도사들 의 양식일세. 이것도 필시 저주받은 마도사의 흔적일 테니 값이 헐할 수 밖에.”
내가 입을 헤 벌린 채 얼어 있는 걸 보고 감정사가 말을 보태었다.
“신부님의 말씀대로입니다. 만약 노빌리스 양식의 유물들이었다면 값 이 열 배, 아니, 스무 배쯤 더 나갔 겠지요.”
그러고 보니 이 패물함을 얻은 건 석상이 된 마법사의 방에서였지. 고 대 마법사들의 보물은 값이 좀 떨어 지는 건가?
감정사는 교회 명의로 된 감정서까 지 작성해 준 뒤 떠났다. 문서까지 남겨주는 걸 보니 사기를 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때, 옆에 있던 엘렌이 입을 열었 다.
“포이, 그냥 가자.”
“•••뭐?”
“가자고. 돈이 턱없이 부족한데 뭘 어떡해. 떼를 쓸 수도 없고….”
마법사라는 존재가 교회와 친숙한 편은 아니라서, 엘렌은 유달리 얌전 해 보였다. 평소처럼 화를 내지도 않았고, 슬퍼하거나 실망하는 내색 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되리라는 걸 예상 한 것 같은 태도였다.
“뭐 해? 가자니까?”
“ •••그래.”
으…. 이 무력감, 괴롭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곤 테이 블에 널브러진 패물들을 갈무리했 다. 사제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잠깐. 잠깐 멈춰보게.”
“네?”
“부상으로 인한 장애는 조치가 늦 어질수록 완치가 힘들어진다네. 알 고 있나?”
뭔가 그럴듯한 말이긴 한데…. 돌 아서는 손님을 만류하는 용팔이가 떠오르면 내 착각일까?
“… 그런데요?”
“주교님의 회복기도 만큼은 아니어 도, 거기 자매님이 필요로 할 만한 물건이 있네.”
“그게 뭐죠?”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게.”
사제는 잰걸음을 옮겨 회당 너머로 사라지더니, 이내 신발 박스만 한 나무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나를 포함한 이곳의 신부들이 육 개월간 매일같이 축성한 성약(聖藥) 일세. 주교님이 일으키는 기적에 버 금가는 신성력을 품고 있지.”
와, 어떻게 한 마디 한 마디가 약 장수, 사기꾼 같냐.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
“한 번 보게.”
사제의 말과 함께 상자가 열렸는 데,
후웅.
“어어?”
•••정말, 누가 봐도 영험하게 생긴 물약 여섯 병이 두 줄로 늘어서 있 었다. 물약은 포도주처럼 검붉은 색 을 띠었고, 유리병 테두리엔 경건한 광채가 은은하게 흘렀다.
아니, 분명히 사기꾼 같은 태도였 는데, 물건이 이렇게 그럴듯하다고? 이거 어떻게 해야 돼?
“끊어진 맥을 단숨에 이어붙이진 못하겠지만, 장복하면 상태가 호전 될 걸세. 내 성직을 걸고 보증하지.”
엘렌은 나와 눈을 마주치곤 어깨를 으쓱거렸다. 녀석 역시 좀 헷갈리는 눈치였다.
그런 우리를 보고 사제가 쐐기를 박아 넣었다.
“정 성약의 효과가 의심스럽다면 이렇게 하세. 일단 한 병을 복용해 보고, 효과가 없다면 금화 쉰 장만 내고 거래를 끝내는 거야. 효과가 있다면 그 패물함을 대가로 이 성약 들을 다 가져가고. 어떤가?”
•••샘플팔이냐? 이 아저씨, 아무리 봐도 성직자 아니라니까?
그건 그렇고, 한 병당 금화 쉰 장 이라. 은화로는 250닢이네.
아직 이 세상의 경제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엄청난 거금인 건 확실하다.
물론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보물 이라고 하니, 부르는 게 값이긴 하 겠지.
……음, 그라니아의 주급이 은화로 5닢이라고 했나? 식대에 숙소비까 지 포함하면 그 두 배 정도.
저 성약 한 병 살 돈이면 그라니 아를 25주 동안 고용할 수 있네.
이럴 거면 그냥 엘렌의 수발 겸 호위로 용병을 고용하는 게 싸게 먹 히지 않을까?
아냐, 내가 무슨 생각을. 지금 가 성비를 따질 때가 아닌데…….
짧은 고민 끝에, 일단 샘플을 받아 보기로 했다. 효과가 있는지 확인이 나 해보자고.
고민 끝에 마신 성약은, 곧장 효험 을 보였다.
꿈틀.
“어…?”
“야, 방금 움직였지? 움직인 거 맞 지?”
“O 으”
—, O •
엘렌은 자신의 엄지발가락을 보며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 다. 녀석은 허벅다리를 슬쩍 꼬집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감각도 약간 돌아왔는데…?”
“정말?”
와이씨, 광명교가 이 세상을 지배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탐욕스러운 사제도, 전당포 같은 교회도, 거지 같은 교회법도… 기적 한 방에 머리에서 싹 지워진다. 다 른 세상에서 살다 온 나조차도 신앙 심이 싹트는 것 같은데, 미들월드의 현지인들은 오죽할까?
그래, 이 막장 세상에서 교회를 믿 어야지 누굴 믿냐. 설마 이쪽의 하 느님이 사기꾼에게 신성력을 내려 줬겠어?
“사겠습니다. 나머지 성약도 다 주 세요.”
허벅지를 조물거리던 엘렌이 깜짝 놀라 나를 올려다보았다.
“포이, 비싸도 너무 비싼데……
“야, 됐어. 그까짓 돈, 다시 벌면 되지.”
난 호쾌하게 대답하며 패물함을 넘 기고 성약이 든 상자를 건네받았다.
사제는 패물함의 금장식을 쓰다듬 으며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탁월한 선택일세. 단, 하루에 한 병 이상 복용하진 말게.”
“네, 네. 알겠습니다, 사제님.”
그렇게 거래를 마칠 즈음, 왕자의 군종 사제가 웬 젊은 사내와 함께 나타났다.
젊은 사내는 짧은 망토를 두른 새 까만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조금 전에 본 늙은 수녀처럼 팔에 하얀 완장을 차고 있었다.
그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나를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이 포이닉스 형제이십니까?”
“아,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노리크회(會)의 루이스 데 굿맨입니다.”
…‘굿맨’이라. 차가운 인상 때문에 별로 좋은 사람 같진 않은데.
루이스라는 이름의 수도사는 내게 루크에 관한 이야기를 묻기 시작했 다.
외모, 말투, 사용한 주문, 다루는 언데드, 그 외에 내가 알고 있는 사 실들…. 그는 인상과는 다른 나긋나 긋한 말투로 마치 심문하듯 집요하 게 캐물어 왔다.
“수십 구의 망자는 물론, 목 없는 기사까지 다루는 강령술사라…. 그 럼 지진 이후로는 그자를 보지 못했 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러면 지하에 파묻혔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흐음.”
루이스는 잠시 침음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회와 교단에 보고는 올려두 겠습니다. 만약 그자가 어딘가 살아 있고, 정말로 강령술사라면 형제님 에게도 포상이 돌아갈 것입니다.”
이걸로 루크, 그 개자식은 수배범 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됐다.
아니, 수배범보다 못한 신세지.
돈을 노리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아 니라 무시무시한 성당기사들에게 쫓 기게 될 테니까. 늙어 뒤지기 전에 칼 맞고 뒤지길 기도해야겠다.
이야기를 마친 뒤, 나와 엘렌은 교 회를 나섰다.
이제 할 일이 대충 마무리되었으니 얼른 뱃고동 여관으로 가봐야겠다. 다리아 얼굴도 보고, 시원한 물에 씻은 뒤 푹 쉬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포이 닉스?”
“어, 수녀님!”
검은 튜닉에 가죽 바지, 목에 건 고리 십자가, 어깨에 기댄 양손검까 지. 꽤 특이한 행색을 한 이십대 후 반의 여인은 또렷한 눈매와 선한 인 상을 하고 있었다.
그라니아 패거리의 성직자인 올가 수녀님이 다.
간단한 인사와 그간의 사정을 설명 한 뒤 올가에게 물었다.
“수녀님은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교회에 쉬러 가는 길이야. 지난밤 부터 지금까지 소금성에 있었거든.”
“…소금성이요?”
“응. 성주님의 가족 중에 아픈 사 람이 있어서…. 나랑 다른 자매님이 번갈아 가면서 병구완을 하고 있 어.”
성주 일가가 소금성에 갇혀 있다더 니, 오가는 사람이 있나 보네? 잠 깐, 그럼?
“어? 그럼, 그라니아랑도 만나셨습 니까? 파렐이랑 길리우스도?”
“당연하지. 이 일에 자원한 것도 그것 때문인데?”
“아르날에게 듣기론 소식이 아주 끊겨 버렸다던데, 그건 아닌가 보군 요.”
“뭐? 아르날이 어딨는지 알아?”
교수대 근처에서 아르날을 만났던 이야기를 해주자, 수녀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네. 그 쪽 상황은 도통 알 수가 없다니까.”
“알 수 없다뇨? 광장이 가깝진 않 지만 그렇다고 먼 것도 아닌데.”
“여기 주교님이 울카르 왕자를 별 로……. 아니, 아니야. 못 들은 걸로 해줘.”
•••뭐지? 주교랑 왕자가 사이가 안 좋나? 아니, 그보다.
“그럼 오늘 밤에도 소금성에 들어 가십니까? 간병하러?”
“응, 그래야지. 왜?”
“그게… 잠시만,”
나는 수녀님을 끌고 교회에 들어가 종이와 펜을 사서 편지를 썼다
“이거, 그라니아에게 좀 전해주십 쇼.”
“…이게 뭔데?”
“수많은 목숨이 달린 편지입니다. 절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마시고, 꼭 그라니아에게 전해주셔야 합니 다. 아시겠죠?”
올가 수녀님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 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건네려다 잠 시 멈칫했다. 수녀님께 엘렌을 맡겼 을 때의 일이 떠올라서였다.
2주 전인가? 이 수녀님, 내가 돈까 지 쥐여주며 엘렌의 병 간호을 부탁 했는데 길리우스에게 짬을 때렸었 지.
이번엔 믿어도 될까?
“주님 앞에 맹세해 주세요.”
“뭐?”
“다른 사람에게 절대 안 보여주고, 그라니아에게 직접 전달해 주겠다 고. 주님 앞에 맹세해 주세요.”
내 강권에 올가 수녀님은 슬쩍 미 간을 찌푸렸다.
“•••다짜고짜 이게 무슨 소리니? 전 후 사정도 제대로 안 알려주고….”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서 그렇습니 다. 수많은 목숨이, 그라니아와 파 렐, 길리우스의 목숨도 달린 일입니 다. 그러니 맹세해 주십쇼.”
내가 마치 노려보듯 눈을 마주치자 올가 수녀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걱정거리를 하나 덜었군. 이 제 진짜 쉬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