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151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151화
151 첼시의 돈지랄/달라. 우리 문화재
부시 대통령이 탈레반과 전쟁을 벌이며 이라크 침공을 계획하고 있을 때, 2002 한일 월드컵이 끝났다.
월드컵 4강 신화.
한국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때 군 특례를 받은 선수들이 폭풍 성장을 하면서 훗날 한국 축구의 수준이 크게 향상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모스크바 굼백화점 블랙홀 본사.
니콜라이는 기자 시절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명단에 올라가 있는 선수들을 쭉 훑었다.
“이 선수는 일본에서 뛴 경력이 있군요. 허벅지가 무슨 통나무 같습니다.”
“네. 히딩크 감독이 협회의 요구와 압력을 뿌리치고 소신껏 이런 선수를 뽑았기에 한국이 4강에 오를 수 있었을 겁니다.”
니콜라이는 선수 명단이 적힌 서류의 다음 장을 넘기며 물었다.
“이 선수는 어떻습니까?”
영국에서 호출을 받고 급히 모스크바로 온 첼시 구단의 감독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공격수가 갖춰야 할 부분들을 두루 갖춘 선수입니다. 이탈리아전 때 골든골을 넣으면서 한국의 영웅이 된 선수죠. 지금은 세리에A에서 뛰고 있습니다.”
“잘 생겼네요. 연예인을 해도 되겠어요.”
서류를 덮으며 목을 축이는 니콜라이.
“한국 선수를 뽑는 데 특별히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없습니다. 하지만….”
“…?”
“유럽, 특히 영국은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라서 동양인 선수들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인종차별?
어디 한번 해 보라지.
“바깥에서 그러는 거야 어쩔 수 없어도 구단 내에서 선수들이 인종차별적 말이나 행동을 하면 바로 보고하세요. 그런 사람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게 만들 테니까요.”
감독의 목울대가 빠르게 오르내렸다.
니콜라이 대표라면 정말 그럴 것 같았기에.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면 선수들 정신 교육부터 다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에서는 이 세 명이 좋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표님께서 제대로 보신 듯합니다.”
“구단주의 지시라고 생각지 말고 감독님의 의견을 듣고 싶은 겁니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저도 이 세 선수를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잘 됐군요. 우리 목표는 당연히 리그와 챔스 우승입니다. 감독님이 원하는 선수가 있으면 몸값은 상관없으니 모두 스카우트하세요. 선수 외에 필요한 부분도 모두 지원할 겁니다.”
순간, 감독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선수가 부상으로 빠져서 졌다는 말이 안 나오려면 선수층이 두꺼워야잖아요.”
“맞습니다.”
“제가 모든 지원을 해 드릴 테니 감독님의 최고 커리어를 첼시에서 만들어 보십시오.”
“감사합니다, 대표님.”
“단, 그만큼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면 바로 진행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만들어 낸 주역 중 세 사람이 첼시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이탈리아전 때 골든골을 넣었던 선수.
그는 이탈리아 시민들이 그의 차를 박살 내는 모습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구단 측과 협의 후 첼시로 이적하게 되었다.
원 역사에서 이들 중 두 명은 네덜란드 리그를 거쳐 ‘맨유’와 ‘토트넘’에 입단했지만, 운명이 바뀌면서 셋은 첼시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니콜라이는 첼시의 구단주로서 모든 장벽을 없애버리고 순전히 실력만으로 선수들을 보강했다.
“첼시 구단주가 니콜라이 대표로 바뀌면서 무섭게 돈을 지르네.”
“블랙홀의 대표인데 돈 걱정할 일은 없을 거잖아.”
“그래도 유럽에서 실력 있는 선수들은 죄다 빼가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냐? 너무 돈으로 밀어붙이는 거 같단 말이야.”
“니콜라이 대표가 다른 구단을 막기라도 했냐? 나는 좋기만 한데 뭐. ”
KBC 9시 뉴스.
“4강 신화의 주역인 박지승 선수는 첼시와 연봉 56억 원으로 3년 계약을 했습니다. PSV 에인트호벤 새 감독으로 부임한 히딩크 감독이 스카우트하려고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요… 이로써 첼시엔 한국 선수 세 명이 입단하게 됐습니다. 이런 일은 한국 축구사에 처음 있는 일이기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니콜라이 대표가 딱 집어서 스카우트 한 선수들이었기에 첼시에서 이 세 선수에게 나댔다간 뒤를 보장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감독은 그렇게 만들 거라 다시 한번 다짐했다.
니콜라이가 블랙홀 본사에서 첼시 구단의 일을 잠깐 보고 있을 때, 러시아 푸시킨 박물관 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널 만나고 싶대.”
전화를 받은 샤샤의 말에 니콜라이는 잠시 머리를 갸웃했다.
“그 사람이 왜?”
“직접 만나서 꼭 할 말이 있다는데?”
“알았어. 내일 두 시에 이리로 오라고 해줘.”
다음 날, 약속대로 안경을 끼고 백발인 푸시킨 박물관 관장이 찾아왔다.
“무슨 일로 절 찾은 겁니까?”
박물관 관장은 니콜라이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인지라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그 전에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소비에트 연방 때부터 푸시킨 박물관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 자하르 대통령께서 취임한 후부터 관장직을 맡았습니다.”
그렇다는 건 이 인물은 러시아 문화재 전문가란 말이다.
“대표님께서 전에 운석들을 박물관에 전시하셨지 않습니까?”
“그랬죠.”
“그 때문에 박물관 관람객 수가 몇 배나 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군요. 그런데 감사 인사를 하려고 오신 건 아닐 테고…?”
잠시 생각에 잠긴 관장이 안경을 벗더니 손수건으로 땀을 닦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독일 박물관에 있는 우리 문화재들을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이 일을 꼭 성사시켰으면 합니다.”
예사롭지 않은 일을 말했기에 니콜라이는 귀를 기울였다.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이 유럽 전역의 문화재를 약탈했습니다.”
“그렇죠.”
나치 친위대가 문화재 전담 부대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약탈한 사실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었기에 니콜라이도 잘 알고 있었다.
세계사를 보면 침략국들이 가장 탐냈던 건 그 나라의 문화재였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문화재가 총집합해 있을 정도로 많다.
프랑스와 일본을 비롯한 다른 침략국들도 비슷했고.
그들은 약탈하고 훔쳐 갔음에도 누굴 통해서 구매했다. 기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 같은 말로 돌려주지 않았다.
훔쳐 갔어도 버티기만 하면 되는가?
물론 아니다.
그들이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우간다가 영국의 국보급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면 가만히 내버려 둘까?
어림도 없는 소리.
영국은 어떤 방법을 쓰든 회수할 것이다.
하지만 약소국들은 어떤 방법을 쓰든 회수하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 문화재를 약탈해 간 일본이 그걸 국보로 지정해 놓았음에도 한국은 반환받지 못하고 있었다.
프랑스도 한국 문화재를 약탈해 가서 박물관에 전시해 뒀지만 반환받지 못했다.
러시아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푸시킨 박물관 관장이 사명감으로 이를 되찾고자 나선 거였다.
“그 당시 독일군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 차르스코예 셀로궁 ‘호박방’에서 70X55cm 크기의 대리석 모자이크 조각품도 가져간 사실이 있습니다. 이건 한 예고, 이 같은 국보급 작품들 상당수가 독일의 박물관에 있습니다. 회화, 조각, 귀금속 장신구, 고대 유물 등 약 20여만 점의 예술품과 고서는 200만 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네. 푸시킨 박물관을 포함해 전국의 박물관에 독일 유물들이 보관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빼앗긴 수와 비슷한 양이지요.”
서로 뺏고 빼앗긴 격이니 양쪽 모두 욕할 처지는 아니었다.
“상황이 그런데 우리 유물들을 어떻게 가져오잔 겁니까?”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저는 우리가 보관하고 있는 독일 유물과 맞교환하는 식으로 가져오면 어떨까 합니다.”
니콜라이는 그제야 관장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았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저로 본 거군요?”
“그렇습니다. 우수리스크에 박물관을 세웠을 때부터 대표님이 문화재에 관심이 깊으시다는 걸 느꼈습니다. 운석을 박물관에 전시하셨을 땐 확신하게 됐고요.”
“문화재에 관심이 있긴 합니다.”
니콜라이는 기자 시절 때 보았던 기사를 떠올렸다.
프랑스와 일본에 있는 한국의 문화재를 반환받으려고 관계자들이 부단히 노력했으나 일본은 씨알도 안 먹혔고 프랑스는 그나마 임대 형식으로 몇 점을 보냈다는 기사를.
‘그런데 독일이란 말이지.’
부룬디를 포함한 아프리카 국가들과 유럽 국가들까지 침략했던 독일이니 세계적으로 이슈화할 구실을 만들자면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여동생인 빅토리아의 남편 나라가 독일이고 크게는 양국의 역사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느꼈다.
“이 문제는 먼저 대통령께 건의를 드려야겠습니다. 저도 이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길 원합니다. 그러니 돌아가셔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결과가 나오면 바로 연락드릴 테니까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음 날 니콜라이는 자하르 대통령을 만나 푸시킨 박물관장의 말을 전했다.
말을 들은 자하르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이 문제는 소비에트 시절부터 계속됐어. 1990년과 92년 두 차례에 걸쳐 ‘상호 약탈 문화재 반환 협상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었지. 한데….”
양국 모두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약탈 문화재를 감추고 내놓지 않게 되면서 실질적 효력을 잃게 되었다.
그러다 옐친 전 대통령 때 하원에서 ‘문화재 반환 금지법’을 통과시켜려 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옐친이 거부권을 행사해 뒤로 미뤄졌다가 자하르가 대통령에 오르며 완전히 조용해졌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 국내도 시끄러워질 게야.”
“그렇다고 언제까지 뒤로 미룰 순 없잖아요. 제게 맡겨 주시면 잘 해결해 보겠습니다.”
“널 믿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너도 알다시피 이 문제는 앙골라가 피해 보상금을 받은 것과 연결되어 있어. 침략국들이 어디 한둘이더냐? 아주 복잡한 문제야.”
복잡한 문제는 사람들이 그걸 반대할 이유를 계속 찾고 너무 크게 보다 보니 복잡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예기치 않게 우연히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한 기자의 오보로 베를린 장벽이 어이없게 무너진 것처럼.
니콜라이는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자 했고 해결 방안도 있었기에 자하르 대통령을 설득했다.
“할아버지가 퇴임하시면 이 문제는 다시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매듭짓고 가시죠.”
“흐음….”
잠시 생각에 잠기던 자하르 대통령이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 선진국 대부분이 관련되어 있어서 쉽진 않겠지만 이번에도 널 믿어 보도록 하마.”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기에 니콜라이는 곧바로 푸시킨 박물관 관장을 불러 상황을 알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역시 제 판단이 정확했습니다.”
“…?”
“대표님이 나서면 자하르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거든요.”
“대통령께서도 이 문제를 매듭짓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셔서 제게 맡긴 겁니다.”
니콜라이는 일단 자료들부터 준비하기로 했다.
“먼저 독일이 발뺌하지 못할 확실한 증거들이 있어야 할 겁니다. 독일에 있는 우리 문화재가 어떤 것인지부터 정확히 파악해 두세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증거는 차고 넘치니 말입니다.”
“좋습니다. 모두 준비되면 다시 만나서 의논해 보시죠.”
“네, 자료가 준비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니콜라이가 문화재 반환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침략국들과의 마찰은 필연일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뒤에 있었기에 결과는 두고 볼 일이었다.
2002년 9월 1일.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일 때, 한국 대통령은 특별 담화문을 발표했다.
“오늘은 우리나라에 있어 역사적으로 뜻깊은 날입니다. 한국(6.25) 전쟁으로 인해 미국에 넘겨줬던 ‘전시 작전 통제권’을 반환받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한국은 드디어 수십 년간의 꿈을 이루게 되면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단독으로 전시에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이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고 있었으나 니콜라이와 러시아는 역사적인 날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