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ating Who Loved Me RAW novel - chapter 24
에드먼드는 앤소니에게 말을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총을 쏘는 법을 가르쳤고, 수영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튼스쿨에 입학할 때에도 앤소니는 다른 친구들처럼 하인 딸린 마차를 태워 보낸 것이 아니라 직접 아버지가 앤소니를 그곳까지 데려다 주었으며, 앤소니가 자신의 새집이 될 학교를 불안한 시선으로 돌아보는 보습을 보자 맏아들과 함께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게 괜찮을 거라며.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앤소니는 아버지의 말씀이 틀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앤소니는 어머니를 사랑했다. 어머니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면 자기 이로 자기 팔을 물어서 잘라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할 만큼, 하지만 자라면서 그가 해낸 모든 일, 모든 목표, 모든 희망과 꿈은 모두 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훗날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습게 느껴졌다. 한 인간의 인생이 어쩌면 그렇게 한 순간에 바뀌어 버릴 수 있는 것인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것들이 다음 순간 더 이상…… 예전과 똑같지 않게 되다니.
앤소니가 열여덟 살 때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여름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와 옥스퍼드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처럼 옥스퍼드 대학 내 올 소울즈 칼리지에 입학 허가를 받았으며, 모든 열여덟 살 소년들이 꿈꿀 만한 눈부시고 아찔한 즐거움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여자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으며-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자들이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달까-부모님은 여전히 브리저튼 가문의 자식 수를 늘리는 데 열중했다. 엘로이즈, 프란체스카, 그레고리가 태어났으며, 앤소니는 복도에서 어머니와 마주칠 때마다 눈을 굴리지 않으려고 애썼다-여덟 번째 아이를 임신하시다니! 앤소니 생각에는 좀 꼴사납다고 생각되었지만,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었다.
그가 뭐라고 아버지의 결정에 반발하겠는가? 어쩌면 그 또한 나이 서른여덟이 되어서까지 아이를 더 가지고 싶어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앤소니가 그 일을 알게 된 것을 늦은 오후였다. 베네딕트와 함께 엉덩이에 멍이 들도록 오래 말을 타다가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 브리저튼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오브리 홀의 현관문을 열어젖히자 열 살 먹은 여동생이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베네딕트는 앤소니와의 내기에서 져서 그 벌로 말 두 마리의 털을 손질해야 했기에 아직 마구간에 있었다.
앤소니는 다프네를 보고 움찔 멈춰 섰다. 동생이 메인 홀의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것도 이상했지만, 더더욱 이상한 것은 동생이 울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프네는 절대 우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다프.”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여자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직은 어린 나이. 언제쯤 되어야 뭘 하면 좋을지 알게 될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그를 물었다.
“무슨……?”
그가 질문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다프네는 고개를 들었다. 동생의 커다란 갈색 눈동자에 떠올라 있는 처절한 슬픔이 앤소니의
심장을 날카롭게 후벼팠다. 그는 뒤로 물러섰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아주 끔찍하게 잘못되었다.
“돌아가셨어.”
다프네가 속삭였다.
“아빠가 돌아가셨어.”
일순 앤소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리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죽을 수도 있다. 휴고 숙부처럼. 하지만 휴고 숙부는 아버지보다 휠씬 몸집도 작고 병약한 분이었다.
“네가 잘못 안 거야. 잘못 안 게 틀림없어.”
오빠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엘로이즈가 말해 줬어. 아빠는 …… 그게 …….”
앤소니는 울고 있는 여동생을 흔들어선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게 뭐였다는 거야, 다프네?”
“꿀벌.”
그녀가 속삭였다.
“아빠가 벌에게 쏘이셨대.”
한참 동안 앤소니는 꼼짝도 않고 동생을 바라만 보았다. 마침내 그는 거칠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벌에 쏘였다고 죽진 않아. 다프네.”
다프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앉아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며 목에 경련을 일으킬 뿐이었다.
“아버지는 전에도 쏘이신 적이 있어.”
앤소니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다.
“나도 같이 있었다고, 같이 쏘였어. 지나가다 벌집을 건드렸어. 난 어깨에 쏘였었다고.”
그의 손이 몇 년 전에 벌에 쏘였던 곳으로 올라간다. 그가 속삭였다.
“아버지는 팔에 쏘이셨지.”
다프네는 이상하게 멍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는 괜찮으셨었다고.”
앤소니는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에 공포가 배어 있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동생을 두렵게 만든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자제할 힘이 없었다.
“벌에 쏘였다고 죽는 사람은 없어.”
다프네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백 살은 먹은 사람의 눈처럼 보였다.
“벌이었어.”
그녀가 공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엘로이즈가 봤대, 아빠가 거기에 서 계시다가, 눈 깜짝할 새에 아빠가…… 아빠가…….”
앤소니는 가슴속에서 뭔가 기묘한 것이 쌓이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근육이 피부를 찢고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셨다는 거야, 다프네?”
“숨을 멈추셨대.”
다프네도, 앤소니도, 그 말에 당황했다.
앤소니는 다프네를 홀에 그대로 놓아두고 계단을 한꺼번에 세 개씩 뛰어올라 부모님의 침실로 향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리가 없어. 벌에 쏘였다고 사람이 죽진 않아. 말도 안 돼. 미친 소리야. 에드먼드 브리저튼은 젊다. 그리고 강하다. 키도 크고 어깨도 넓으며 근육은 강인하다. 하나님, 조그만 꿀벌이 아버지를 쓰러뜨렸을 리가 없어요.
하지만 이층에 올라간 순간 앤소니는 방 앞을 서성거리는 열 명쯤 되는 하인들의 암울한 침묵에서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연민으로 가득찬 그들의 얼굴…… 평생동안 그는 그 연민에 가득 찬 표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을 밀어젖히고라도 부모님의 침실로 들어가려 했지만,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길을 터주었다. 침실 문을 열 때, 그는 알았다.
어머니는 침실 끝에 앉아 있었다. 울고 있지는 않았다.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앤소니는 그 다음에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
앤소니가 목멘 소리로 물었다. 엄마라고 부르지 않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던가. 이튼스쿨에 입학 한 이래로 항상 어머니라고 불러왔었다.
어머니는 몸을 돌렸다. 천천히. 마치 아들의 목소리가 기나긴 터널 저편에서 들어오는 것처럼.
“어떻게 된 거죠?”
그가 속삭였다.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의 눈동자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모르겠다.”
어머니가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다 잊은 듯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앤소니는 한 걸음 나아갔다. 몹시 어색하고 뻣뻣한 움직임이었다.
“떠나셨단다.”
바이올렛이 마침내 속삭였다.
“네 아버지는 떠나셨어. 난…… 오, 하나님, 난…….”
그녀는 임신을 하여 부푼 배 위에 한 손을 얹었다.
“난 그이에게…… 오, 앤소니, 난 네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마치 몸 안쪽에서부터 산산조각으로 깨어진 듯했다. 앤소니는 눈을 뜨겁게 태우는 눈물과 따끔거리는 목을 꾹 참고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괜찮아요, 엄마.”
앤소니는 말했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네 아버지에게 이게 마지막 아이라고 했었다.”
어머니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은 아이를 갖기 싫다고, 이젠 조심해야 할 거라고 그리고……. 오, 하나님. 앤소니, 그이에게 아이를 하나 더 낳아 줄 수만 있다면, 그이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어. 난 이해가 안 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앤소니는 흐느끼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무너져 내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날 밤 의사들이 들러 자신들 역시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은 전에도 들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젊고 건강한 사람이 벌에 쏘여 죽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며. 에드먼드는 너무도 생기에 넘치고 건강했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자작의 남동생인 휴고 역시 작년에 꽤 갑작스레 죽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괴질이 가족들 안에서 함께 나타난다는 것은 들은 적이 없다, 비록 휴고 역시 집 밖에서 죽기는 했지만 그가 벌에 쏘였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때는 아무도 벌에 쏘인 자국을 찾아볼 생각 따윈 하지 못했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의사들은 계속 말했다. 자꾸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바람에 앤소니는 다들 목을 졸라 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침내 그는 의사들을 집안에서 몰아내고 어머니를 침대에 눕혔다. 일단은 어머니를 손님용 침실에 모시기로 했다. 남편과 내내 함께 사용해 온 침실에서 자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어머니는 평정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앤소니는 여섯 명의 동생들을 다 침실로 돌려보내고,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고 말했다. 모든 것엔 변함이 없을 거라고 아버지도 만족하실 만큼 가족들을 돌보겠노라고 하면서.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시신이 눕혀진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거의 눈도 깜박이지 않고 몇 시간이고 아버지의 육신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 방을 나섰을 때,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 역시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에드먼드 브리저튼은 서른여덟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리고 앤소니는 자신이 어떤 면에서든 아버지를 능가하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수명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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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본 칼럼에서 전에도 난봉꾼에 대한 기사를 다룬 적이 있으나, 본 필자는 세상에 난봉꾼과 난봉꾼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앤소니 브리저튼은 난봉꾼이다.
난봉꾼은 젊고 미숙하다.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며, 어리석기 그지없는 행동을 하고 자신이 여자들에게 위험한 존재라 생각한다.
난봉꾼은 자신이 여자들에게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무용담 따위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는 사람들이 소리 낮춰 자신의 이야기를 해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으며, 오히려 그들이 자기 얘기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했는지 그는 똑똑히 알고 있다. 자기 스스로가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건 시간낭비로 여긴다.
그는 자신이 바보가 아니라는 극히 간단한 이유 때문에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오히려 그 점에 관한 한 세상 일반 남성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기대치를 훨씬 웃돈다). 그는 사교계의 단점을 찾아 줄 만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으며, 본 필자 역시 그런 그를 탓할 수 없다.
만일 위에 든 내용이 브리저튼 자작-이번 시즌의 가장 탐나는 독신남-을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다면 본 필자는 즉시 절필을 선언할 것이다. 유일하게 남은 질문은 이번 1814년 시즌에 그 역시 결혼이라는 성스러운 축복 아래 결국 무릎 꿇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본 필자는…
그렇지 않으리라 예상한다.
레이디 휘슬다운의 사교계 소식. 181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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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줘”
케이트 셰필드가 말했다.
“설마 또 브리저튼 자작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는 건 아니겠지.”
그녀보다 네 살 어린 이복 동생 에드위나가 한 장짜리 신문지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어떻게 알았어?”
“정신 나간 여자처럼 킥킥대고 있었잖아?”
에드위나가 킥킥거리는 바람에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있던 푸른색 다마스크(Damask 무늬를 넣어 짠 천, 능라)소파가 흔들렸다.
“그것 보라고.”
케이트가 동생의 팔을 콕 찌르며 말했다.
“비난받아 마땅한 악당 얘기가 나오면 넌 꼭 그러더라.”
하지만 케이트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동생을 약올리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 물론, 동생을 구박한다거나 하진 않지만.
에드위나의 어머니이자 지난 18년간 케이트의 의붓어머니였던 메리 셰필드가 수를 놓다가 고개를 들고 안경을 밀어올렸다.
“두 사람, 무엇 때문에 웃고 있지?”
“레이디 휘슬다운이 난봉꾼 자작 얘기를 또 썼다고 케이트 언니가 흥분하지 뭐예요.”
에드위나가 설명했다.
“내가 언제 흥분을 했다고 그래.”
케이트가 말했지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브리저튼 말이니?”
메리가 멍하게 물었다.
에드위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 얘기야 매번 나오는 얘기 아니냐”
“레이디 휘슬다운은 난봉꾼 얘기를 쓰는 게 좋은가 봐요.”
에드위나가 한
마디 거들었다.
“당연히 즐겁겠지.”
케이트가 코웃음을 쳤다.
“지겨운 사람들 얘기를 쓰면 누가 그 여자 신문을 사겠니?”
“그건 사실이 아냐.”
에드위나가 대답했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우리 얘기를 썼잖아. 우리가 런던에서 제일 흥미 진진한 사람들도 아닌데.”
케이트는 동생의 순진함에 미소를 지었다. 케이트와 메리는 런던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람이 아닐지 몰라도 버터색 머리카락과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하늘색 눈동자를 지닌 에드위나는 이미 비길 상대가 없는 1814년의 여인 이라는 칭호를 얻지 않았던가. 반면 평범한 갈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케이트는 대부분 비길 상대가 없는 여인의 언니 정도로 불리곤 했다.
더 심한 별명을 얻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비길 상대가 없는 여인의 노처녀 언니’라 불린 적은 없으니까. 비록 셰필드가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그쪽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까웠다. 스무 살(양심에 비춰 솔직하게 말하자면 거의 스물한 살에 가깝다)의 케이트는 런던에서의 첫 번째 시즌을 즐기기엔 약간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별로 선태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조차 셰필드 가는 그리 부유한 축에 들지 못했으며, 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래, 그들은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만 했다. 아직 구빈원의 도움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전 한 푼 쓰는 데까지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무리 철저하게 절약한다해도 셰필드 가에서 모은 돈으로는 런던에 딱 한 번 다녀올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성수기 요금으로 집과 마차를 빌리고 꼭 필요한 하인을 고용하는 것을 두 번씩이나 되풀이할 여유는 전혀 없었다. 이번 여행을 위해 그들은 지난 5년간 근검
절약해 왔다.
만일 딸들이 결혼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뭐, 그들을 감옥에 집어넣을 빚쟁이는 없지만 서머셋 주에 있는 우아하지만 조그마한 오두막에서 점잔을 빼며 가난한 여생을 보내는 수밖에.
따라서 두 자매는 같은 해에 데뷔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결과 가장 좋은 시기는 에드위나가 막 열 일곱 살이 되고 케이트가 스물 한 살이 되기 전인 지금이란 결론을 내렸다. 메리는 에드위나가 좀더 성숙한 열 여덟 살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케이트는 거의 스물 두 살이 된다. 맙소사. 그 때가 되면 도대체 누가 그녀와 결혼을 해줄 것인가?
케이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시즌 따위는 필요 없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자신이 사교계의 관심을 끌 만한 사람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참금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메울 수 있을 만큼 미모가 빼어난 것도 아니고, 선웃음을 친다든지 완곡하게 말하는 법, 우아하게 걷는 법 따위도 끝끝내 몸에 익히지 못했다. 다른 아가씨들은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들을 할 줄 아는 것 같은데 말이다. 심지어 사악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에드위나조차 우아하게 걷고 우아하게 한숨짓는 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남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 누구든 그녀를 도와 길을 건네주는 하잘것없는 영예라도 얻기 위해 앞다투어 몰려들고는 했다.
그 반면 케이트는 언제나 어깨를 쭉 펴고 고개를 치켜들고 서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더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으며, 걸을 때면 항상 경주를 하는 것처럼 빠르게 걸었다. 사실 그래서 안 될 이유가 뭐람? 그녀는 항상 의아해했다. 기왕 어디를 가려고 마음먹었으면 최대한 빨리 간다고 나쁠 게 뭐 있단 말인가?
런던에서의 이번 시즌을 두고 굳이 말을 하자면, 그녀는
런던이란 도시 자체도 별로였다. 물론 상당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기는 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그냥 좀 똑똑한 남자와 결혼해도 될 것을 굳이 런던 사교계에 데뷔하여 돈을 이렇게 낭비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메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가 네 아버지와 결혼했을 때.”
매번 메리는 그렇게 말했다.
“난 널 내 배를 앓아 낳은 자식처럼 애정과 헌신을 다 바쳐 키우겠다고 맹세했단다.”
케이트가 딱 한 마디 ‘하지만’ 이라고 말을 꺼냈지만 매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게다가 난 돌아가신 네 어머니에게도 책임감을 느낀다. 네가 행복하게 결혼해서 안락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그 책임의 일부란다.”
“전 시골에서도 행복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걸요.”
케이트가 대답했었다.
메리가 반박했다.
“런던으로 가면 고를 수 있는 남자의 폭이 훨씬 넓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