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porate state tycoon of the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6
제16화
#16. 봄바람
[도청은 2건, 해킹 시도는 3회 감지되었습니다.]집무실 안에 홀로 있자, 세라가 내게 바로 보고를 올렸다.
“추잡하게도 있다 가셨군.”
세라의 말을 들은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여간 빨갱이들은 태생적으로 손버릇이 좋지 못하다.
[전부 차단하겠습니다.] “일부는 내버려 둬. 역정보 흘리는 용으로.”[하긴, 이것마저 깔끔히 차단한다면 좀 그렇겠군요?] “너무 보안을 철저히 했어. 이게 어그로를 끌었을 줄이야.”
[인간미가 없었던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적당히 몇 번 정도는 뚫려 줘야 했는데 말이에요. 지금이라도 구멍을 낼까요?] “됐어. 이미 늦었어.”
내 말에 세라는 더 권고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었다.
[아! 차밍 차이나를 말하는 것이죠? 차이나 머니에 의존하게 만들어서 나중엔 중국을 거역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래, 마치 아편처럼.”
[하지만 원 역사대로라면 이것도 얼마 못 가잖아요?] “그때까지 최대한 뽑아 먹자고. 중국에 공장 같은 거 짓는 멍청한 짓만 하지 말고. 최대한 목돈 모은다 생각하면서.”
[아주 합리적인 플랜입니다, 사장님.]
차밍 차이나는 곧 취임할 대통령이 훗날 중국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피크를 찍는다.
당연하지만, 이를 매우매우 불편하게 본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을 겁나 압박한다.
결국 한국은 사드 배치와 위안부 합의를 하는 것으로 미국을 달랜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서 중국에게 한한령을 걸 명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은 차밍 차이나와 별개로 중국 인민들을 잠식하는 한국의 문화력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어설픈 중립 외교는 미국과 중국 양쪽에게 뺨을 처맞는 것으로 처참하게 끝을 맺는다.
나는 그 외교 참사에서 최대한 꿀만 빨아 먹을 생각이다.
[네! 저는 군수 AI라 휴먼들의 이런 정치질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에요.] “어디까지나 심증이야.”
당연하지만 중국이 대놓고 ‘SR은 내 거다! 소국의 정치인들아, 조공으로 바쳐라!’라는 식으로 하진 않았다.
그저 은근슬쩍 우리가 보물 고블린이라는 정보를 기업들과 정치권에 흘렸을 것이다.
더불어 자기네들이 은밀히 지원하는 시민 단체에 SR과 ‘은의 시대’를 성토하는 운동을 벌이라고 했겠지.
그렇게 국내에서는 나와 SR을 압박하는 채찍을 휘두르게 유도하고, 국외에선 중국이 구원자라도 되는 것처럼 당근을 내미는 것이다.
‘이 짱개 새끼들이 나를 뭐로 보고!’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다.
[그나저나 중국 대단하네요? 게임으로 위장한 우리의 가치를 정확히 캐치하다니. 그런데 중국도 이렇게 움직이는데 미국은 어쩐 일로 가만히 있는 것일까요?]한편 세라는 미국보다 중국이 우리의 가치를 먼저 알아차린 것에 신기함을 표했다.
그녀의 의문에 나는 어째 답을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작업장 때문에 중국이 먼저 안 것일지도?”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세라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 내 말을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VPN 우회로 접속 시도한 작업장들, 89%가 중국이었지요. 하긴, 애초에 서구권은 아시아와 게임 문화가 달라서 관심도 안 가질 테고.]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심각한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럼, 마민수 실장의 로비도 효과 없는 거 아닐까요? 중국이 우리에게 침을 바른 거잖아요?] “아직 그 정도로 중국의 영향력이 한국에 깊진 않아. 우릴 물어뜯으려는 양반들도 지금 이 상황이 중국이 유도한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을 거다.”[제주 해군기지랑 공항 건설 반대한 거 보면 마냥 그렇지도 않던데요? 아, 그건 북한이랑 같이 한 건가?]
군수 AI인 세라답게 자연스레 군사와 관련된 이야기로 대화의 주제가 확대된다.
[그런데 군수 AI인 제가 봐도 이해가 안 가요. 제주 해군기지랑 공항 건설 방해하는 시민 단체들이요. 중국, 북한이랑 연관된 증거가 충분히 있을 텐데, 왜 안 잡는 건가요?] “여당과 청와대에서 일부러 방관 중이라서 그래.”[지금 여당은 보수인데 그 세력을 방관한다고요?] “그래야 보수가 결집되지. 반대로 야당 쪽에서는 여당을 공격할 꼬투리가 생긴 셈이니까 이적 단체인 거 알면서도 부채질하는 거고.”
일본에서 북한 조총련 이용해서 우익들 결집시키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으으, 진짜 할 말 없게 만드는 나라 꼬라지네요.]나의 냉소 섞인 분석에 세라가 치를 떨었다.
* * *
“의원님! SR에서 뵙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옳거니!”
공화당의 4선 의원 이희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게임은커녕 스마트폰도 제대로 못 다룬다.
아직도 스마트폰이 불편해 피처폰을 사용하는 그다.
그런 그가 ‘은의 시대’라는 게임의 국조에 참석한 이유는 단 하나!
돈 냄새가 물씬 풍겼기 때문.
“시간은 오늘 저녁으로…….”
“그래, 그래, 알았어. 아! 다른 연락은 없고?”
“예? 아, 예, 4번 휴대폰은 조용합니다.”
그의 말을 파파고처럼 바로 해석한 보좌관은 냅다 답했다.
“이잉, 이따 밤에 보자고 문자 한번 넣어 봐.”
“알겠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다선 정치인들은 대개 4대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VIP용, 일상용, 업무용, 불륜용.
보통 1, 2번 휴대폰인 VIP용과 일상용은 의원 본인이 들고 있고, 3, 4번 휴대폰인 업무용과 불륜용은 평소 보좌관이 들고 있다.
지금 이희문 의원이 물어본 연락은 4번, 불륜용 휴대폰이다.
‘하긴 걔도 슬슬 질리긴 했어. 20대 중반 넘어가니까 상큼함도 예전 같지 않고. 이따 SR이랑 잘 풀리면 다른 애나 알아볼까?’
그는 뻐근해지는 하체를 달래며 저녁이 오길 기다렸다.
* * *
그날 저녁, 평소 즐겨 찾는 한식당으로 걸음을 한 이희문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SR 쪽 사람을 보았다.
“아이고~ 의원님, 처음 뵙겠습니다. SR인더스트리의 경영실장 마민수입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중년 남성이 이희문을 웃으면서 대한다.
‘사장이 직접 안 왔군?’
이희문은 거만하게 마민수의 악수를 받으면서 내부를 살폈다.
곧 SR을 대상으로 국정조사가 시작된다. 최악의 경우, 그걸 신호탄으로 세무조사와 수색영장이 발부될 수 있다.
그런데 사장 본인이 안 오고 일개 임원이 온다고?
둘 중 하나의 의미로 해석된다.
눈치와 버르장머리가 심하게 없는 것이거나, 오히려 반대로 센스가 좋은 것이거나.
‘뭐, 대화를 해 보면 알겠지.’
이희문은 차가운 눈으로 자리에 앉았다.
“원래라면 저희 성세류 사장님이 나오셔야 하지만, 곧 국조가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가급적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무례를 범했습니다.”
“아아! 충분히 이해하네. 내 신조가 안전 제일이야. 괜한 의심을 받을 필요는 없지.”
‘으음, 성세류 사장, 의외로 센스가 있는 젊은이구만.’
SR에 대한 이희문 의원의 평가는 점점 센스가 있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크흠!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요? 미리 말하는 거지만 청탁 같은 거 할 생각은 어림도 없소!”
“아이고~ 당연합니다. 이희문 의원님 하면 정계에서도 대쪽 같은 분으로 소문이 자자하잖습니까?”
이희문의 말에 마민수는 속으로 비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암 그렇지! 아주 대쪽 같은 양반이시지.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다. 속이 비어 있다는 뜻은 죽통밥처럼 꽉꽉 채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 그 전에, 저와 함께 오신 분이 계시는데 말입니다.”
“다른 사람?”
“예, 의원님도 익히 아시는 분입니다. 혹시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으음…… 그렇게 하게.”
마민수의 간곡한 요청에 이희문은 떨떠름한 눈으로 허락했다.
드르륵.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이 열렸다.
“어……? 어어?!”
방문을 연 사람을 본 이희문은 마치 〈사랑의 리퀘스트〉를 찍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 *
처음 대명그룹의 경춘식이 순장당할 때만 해도 정치권은 은근히 기뻐했다. 어찌 되었든 자신들의 마지막 약점이 사라진 셈이니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옛 시절을 그리워해야만 했다.
“수익이 예전 같지가 않아.”
“국세청이랑 검찰은 뭐 하는 거야?! 니들은 깨끗해? 적당히 좀 잡아라! 사람이 상도가 있어야지!”
“아니! 그러면 티 좀 안 나게 받으시던가! 저렇게 풀풀 흘리면서 드시는데 그걸 어떻게 안 잡아요?”
경춘식뿐만이 아니다. 국내 재벌들이 모두 1세대에서 2세대 또는 3세대로 세대교체를 하면서 벌어진 문제였다.
경춘식은 1세대 기업인 중에 가장 어린 편이었고, 그래서 제일 마지막까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마지막 1세대인 대명의 최현록 회장과 경춘식마저 세대교체되었다.
업계 최고 프로페셔널이 은퇴한 정경유착은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
뒤를 이은 2세대, 3세대 들은 앞세대의 잔재를 지우고 싶어 했고, 전대 오너를 모시던 1세대 기업인들을 하나 같이 팽해 버린다. 마치 순장을 치르듯이.
당연히 최후의 순간을 대비하여 풀지 않고 있던 1세대 기업인들의 ‘진정한 비법’은 2세대와 3세대에게 온전히 계승되지 못했다.
계승되더라도 형식적이거나 파편적인 수준.
거기다 나날이 발전하는 IT 기술은 예전처럼 감쪽같은 차떼기를 어렵게 했다.
정계의 수익이 크게 줄어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 * *
“아니, 경춘식이! 이게 얼마 만이야?”
“하하하. 형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내긴! 자네 없어서 내가 얼마나 허전했는데!”
“시골에 박혀만 있으려니까 좀이 쑤시더군요. 간만에 서울 미세먼지 좀 맡으러 와 봤습니다.”
이희문과 경춘식은 10년 만에 만난 죽마고우라도 되는 듯 서로를 얼싸안았다.
“어떻게 된 거야? SR과 무슨 인연이고?”
이희문은 재회의 감회를 진정시키며 경춘식에게 물었다.
‘가만, 마민수? 어디서 본 것 같더니만! 저 친구도 대명 임원이었어! 전자나 화학 쪽 전무였던 거 같았는데?!’
그러다가 불현듯 마민수에 대해서도 기억해 낸 모양.
‘설, 설마?! SR이 그럼!’
이제야 이희문은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디서 난 돈과 기술로 SR이라는 신생 업체가 그런 게임을 만들어 서비스할 수 있었겠는가?
‘그랬군. 그랬어!’
그리고 SR의 사장! 성세류의 정체도 짐작이 되었다.
눈앞의 마민수와 경춘식이 왜 성세류를 보좌하는지도 퍼즐이 맞았다.
대명의 숨겨진 또 다른 후계자(?)였던 것이다. 성세류는!
“소식을 들으니 요즘 정계도 법조계도 많이 청렴해졌다고 들었습니다, 형님.”
“청렴은 얼어 죽을. 선비가 어디 이슬만 먹고사나?”
경춘식 앞이라서 그럴까? 이희문 의원은 마민수 때와 달리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왔지 않습니까?”
“허어! 나 생각하는 건 우리 동생밖에 없다니까?”
“아시죠? SR이 지금 돈을 쓸어 담고 있는 거?”
“알지! 암! 당연히 알지!”
“SR의 자본과 저의 노하우가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
그날, 이희문 의원의 1번 휴대폰에 마민수와 성세류의 연락처가 저장되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여의도에 SR발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