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porate state tycoon of the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37
제237화
#237. 사나운 저녁 (2)
SR얼라이언스 북미 본부장인 레이첼 크라운은 자신이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아무리 능력 있고 아무리 외모가 된다지만, 얼라이언스 북미 본부장을 이렇게 오래 연임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 이유에는 알 수 없는 김세라의 호의가 가장 크게 작동했다.
김세라. SR의 2인자이자 성세류의 연인.
공식 석상에선 비서실장직을 맡고 있지만, 그 누구도 김세라가 SR의 실질적인 부회장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최고 임원의 호의가 레이첼에게 다이렉트로 쏘아졌으니, 적어도 얼라이언스 내에서 그녀의 입지는 흔들림 없는 편안함의 연속이었다.
‘이유 없는 끌림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구나…….’
김세라가 레이첼에게 호감을 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레이첼 또한 김세라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고 반갑고 고마운 감정을 김세라에게서 느꼈다.
하지만 이것은 동성애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
‘마치 가족을 대하는 기분? 정말 전생 같은 게 있는 걸까?’
레이첼과 김세라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연인보다는 가족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무리 세라 님이 나를 좋게 본다고 해도. 성세류 회장님께서 이를 묵인하는 건 좀 이상해.’
동시에 레이첼은 세라의 연인이자 SR의 총수인 성세류가 신경 쓰였다.
아무리 2인자의 입김이 있었다지만, 이런 호의를 성세류가 묵인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의아했기 때문이다.
김세라가 사적인 감정으로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다면, 성세류는 뭔가 다른 목적으로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 같았다.
“성세류 회장님,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레이첼은 지금껏 품어 왔던 성세류의 묵인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곧 미국이 둘로 갈라질 겁니다.]“……네?”
“!!”
[레이첼 본부장은 오바마 대사와 정반대의 진영에 서십시오.]홀로그램 통신 속의 성세류의 시선은 확고했다.
[지금부터 내륙을 중심으로 얼라이언스 임직원들을 규합하세요.]“……알겠습니다.”
레이첼은 감히 성세류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 * *
델리아 라빈은 대대로 민주당원으로 샌프란시스코 토박이였다.
한국으로 치면 강남 좌파 정도가 그나마 비슷할 듯싶다.
그녀는 아들 부부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주와 함께 살고 있었다.
장성한 자식이 부모 집에 얹혀사는 상황.
그녀가 젊었을 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요즘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 때는 취업 후 몇 년만 일하면 바로 대출받아 집을 살 수 있었어……. 하지만 요즘은 취업도 안 되고 집값도 너무 올라 독립 자체가 불가능해. 하아!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요즘 들어 델리아는 탄식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하아, 이놈의 기본소득은 용돈 수준밖에 안 되고…….”
최근 그녀가 사는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로봇세와 기본소득이 시행됐다.
하지만 이 기본소득으로는 기초적인 생활도 불가능했다.
기본소득보다 물가가 터무니없이 올랐기 때문.
“델리아 씨! 좋은 아침입니다!”
그렇게 탄식을 하며 집 마당으로 나오는 데 옆집에서 인사 소리가 들렸다.
“아……! 좋은 아침입니다, 미스터 췐.”
중국계 미국인인 췐은 최근 델리아 옆집에 이사 온 아시아 이민자였다.
델리아 라빈이 사는 동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래도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타운이었고, 당연하지만 집값도 엄청 비쌌다.
하지만 이 동네에는 백인 못지않게 이민자들로 가득했다.
방금 옆집에서 인사를 건넨 중국인 췐부터, 그 옆옆집에 사는 인도인과 나이지리아인 이웃들이 언제나 델리아를 보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
델리아는 췐과 웃으면서 밝게 인사를 나눴지만, 속마음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민자들. 미국 민주당과 리버럴에게는 자부심이자 신성한 영역.
그래서 처음 델리아는 그들이 반가웠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저 이민자들이 나와 내 아이들의 것들을 빼앗고 있어. 정당한 우리의 권리들을.’
일자리와 집은 물론 기본소득까지, 원래라면 그녀와 그녀의 아들, 손주들에게 주어졌어야 할 기회가 진짜 미국인도 아닌 자들에게 주어지고 있었다.
‘당장 이민자들과 범죄자들만 없어도 나와 내 자식, 손주에게 더 많은 기본소득이 주어질 텐데……. 물가도 훨씬 적게 오를 텐데…….’
하지만 이런 델리아의 생각은 민주당과 LGBT의 메카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결코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망언이었기에.
“어휴! 장이나 보러 가야지…….”
그녀는 오늘도 불만을 삼킬 뿐이었다.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와 초등학생인 손주에게 해 줄 저녁을 위해 델리아는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향했다.
그렇게 그녀가 도착한 도시 중심가는 날이 갈수록 휑했다.
아니, 단순히 휑한 수준이 아니었다.
“저 마약 중독자들…….”
거리 곳곳에 펜타X에 중독된 사람들이 좀비처럼 굳어 꿈틀거리며 서 있었고, 길거리에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주사기와 각종 쓰레기, 노숙자들이 싼 인분이 악취와 공포 분위기를 풍기면서 널브러져 있었다.
“도대체가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이 샌프란시스코는 민주당과 LGBT가 장악한 리버럴 그 자체인 도시.
마리화나와 대마초가 합법이고, 깨끗한 주사기로 마약을 하라고 연간 400만 개의 새 주사기를 무료로 나눠 주는 동네가 샌프란시스코였다.
그리고 이 자유라고 부르기도 힘든 방종의 결과는 도시 인구의 3퍼센트를 차지하는 저 마약 중독자들로 잘 나타난다.
마치 필라델피아처럼 샌프란시스코 거리에는 펜타X에 중독된 사람들로 가득했고, 대부분은 호프의 중독 치료로도 답이 없는 인생들이었다.
‘저것들에게 기본소득 줘 봤자 마약 시장만 더 키워 주는 꼴인데! 주정부에선 도대체 무슨 생각들인지, 어휴!’
한때 애플과 구글을 비롯한 수많은 IT 기업들이 탄생했던 이 도시는 최근 몇 년 사이 완전히 몰락해 버렸다.
그것으로 흥한 자, 그것으로 망한다고 했던가?
샌프란시스코는 자유와 다양성으로 흥했으나, 결국엔 자유와 다양성으로 몰락해 버렸다.
“후우!”
마트에 도착한 델리아는 심호흡하고는 겉옷 안에 착용한 방검복을 체크했고, 허리춤에는 권총을 찼다.
마트 주위에는 마약 중독자는 물론 수많은 노숙자가 마트를 오가는 사람들을 노리고 있었다.
물론 마트에서 고용한 가드들 때문에 쉽게 다가오지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바로 장 본 물건들을 빼앗길 수 있었다.
세계적인 IT 기업들의 요람이자 금문교로 대표되는 관광의 도시는 이제 뉴욕 할렘가 못지않게 치안이 좋지 못했다.
이 또한 리버럴들로 가득 찬 샌프란시스코 시의회가 저지른 참사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공권력을 극도로 제한하다 보니, 소액 강도들은 사실상 처벌하지 않았다.
심지어 주기적으로 교도소에서 경범죄자들을 자유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풀어 주는 짓까지 해 버렸다.
덕분에 도시 전체에 좀도둑이 기승을 부렸고, 요즘엔 더 나아가 흉악 범죄가 심심치 않게 일었다.
부자 동네에서도 기업 임원들이 총이나 칼에 맞아 죽는 뉴스가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나왔다.
“치안에 자신 없으면 차라리 SRPD라도 서비스해 주든가! 하긴, SR이라면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키는 양반들이 이를 허용할 리가 없지.”
델리아는 시 행정부를 씹으면서 마트에서 장을 봤다.
정말 다행히도 델리아는 마트에서 쇼핑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운 좋게도 마트의 가드 한 명이 그녀를 주차장까지 친절히 안내해 줬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경찰차들과 가는 길이 겹쳤기 때문이다.
“어? 경찰차가 왜 해리네로 가지?”
그리고 경찰차들과 가는 길이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바로 그녀의 앞집에 멈춰 섰기 때문.
웨에에에에엥.
얼마 후, 경찰차에 이어서 구급차도 해리네 집 앞에 도착했다.
“어머!!”
그녀는 앞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해리? 설마 해리가……?”
천으로 시체를 가린 들것이 구급대원들에게 들려 구급차 안으로 실린 것이다.
“오, 해리, 안 돼.”
“…….”
그런 구급대원의 뒤를 해리의 부모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따랐다.
그렇게 해리의 시체와 해리의 부모를 태운 구급차가 빠르게 사라졌다.
“도로시, 도대체 무슨 일이야?!”
델리아는 또 다른 이웃인 도로시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최근 해리가 부모 앞에서 자신이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했다나 봐? 그것 때문에 부모와 대판 싸우고서 자살을 한 모양이야.”
“뭐라고?!”
도로시의 말에 델리아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LGBT와 정치적 올바름. 남의 일이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지지했던 것들이 정작 자신의 코앞에서 일어나니깐 공포 그 자체가 되었다.
앞집 해리네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일을 뒤로하고, 델리아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집안일을 했다.
곧 있으면 수업을 마친 손주가 스쿨버스를 타고 돌아올 시간.
“할머니!!”
“이안! 오늘은 수업이 일찍 끝났나 보네?”
때마침. 그녀의 손주가 밝게 웃으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그래, 오늘은 학교에서 뭘 배웠니?”
델리아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에게 의례적으로 물었다.
“응! LGBT에 대해 배웠어! 선생님이 그러는데 세상에 성은 남자와 여자만 있는 게 아니라 셀 수 없이 많대!”
“?!”
손주의 입에서 나온 말에 표정을 굳혔다.
“선생님이 그랬는데, 나는 범성애자(Pansexuality) 성향이 강하다고 했어.”
“……!”
그 순간, 델리아는 이 미친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몇 달 후, 샌프란시스코의 집을 처분한 델리아는 아들 부부를 설득해 텍사스로 이주했다.
아들과 며느리도 자식이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듣자마자 그녀의 결정을 지지했다.
텍사스로 이주하면서 델리아는 동시에 죄책감을 느껴야만 했다.
“우리가! 우리가 민주당과 정치적 올바름에 속아서 이 나라를 그리고 자식들을 망쳤어. 속죄, 속죄해야 해!”
그녀가 봤을 때 샌프란시스코는 시작일 뿐이었다.
현재 보 바이든의 지지율을 봤을 때 앞으로 4년도 민주당이 해 먹을 터.
얼마나 더 많은 미국 도시들이 샌프란시스코처럼 될지 감도 안 잡혔다.
그렇게 방황하던 델리아에게 들려온 것은 다름 아닌 트럼프의 SNS였다.
-민주당과 LGBT의 성지 샌프란시스코를 보라. 그곳은 범죄와 마약과 질병과 인분의 도시가 되었다. 민주당과 이민자들과 빨갱이들의 목표는 명확하다. 바로 미합중국 전체를 샌프란시스코처럼 만드는 것!
-미국을 지켜야 한다. 새로운 미국! 신합중국을 건국하자! 모든 부정한 것들을 정화하자! 모든 범죄자와 인간이길 포기한 것들에게서 인권을 박탈하자!
“신합중국주의……?”
평소 상대할 가치도 없는 미친놈으로 여겼던 트럼프의 메시지가 델리아의 마음을 뒤흔들었고, 특히 트럼프가 최근 밀고 있는 신합중국주의가 가슴에 와닿았다.
-한국을 보라! 그들은 혁명에 성공했다. 세류교의 말마따나 이제 한국은 누가 봐도 선행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낙원이 되었다.
-신합중국주의는 한국에서 일어난 혁명을 미국에 맞게 적용한 무적의 이념이다!
“그래! 한국, 한국처럼 미국도 바뀌어야 해!”
한국에서 일어난 시민 등급제와 안락사, 인권 박탈, 기업국가 등의 일들은 최근 들어 점차 재평가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미국 내 공화당원들도,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빠르게 깨끗해져 가는 한국과 여전히 마약과 범죄로 신음하는 미국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자연스레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신합중국이야말로 이 미국을 구할 유일한 해답이야!”
텍사스로 이주하고 리버럴에서 공화당원으로 전향한 델리아는 죄책감 때문인지 더욱 열성적인 신합중국주의자가 되었다.
서둘러 아들 부부와 함께 텍사스에 있는 민병대에 가입했고, 머리에는 붉은색 MAGA 모자를 쓰고 제2의 인생을 불태웠다.
델리아는 누구보다 간절히 올해 대선을 준비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트럼프에게 불리했다.
만약 이번에도 트럼프가 떨어지면?
‘상상하기도 싫어!’
그땐 텍사스주라도 미연방에서 탈퇴하라는 투표 청원을 민병대원들과 함께 올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트럼프의 대선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뉴욕! 뉴욕에서 일이 터졌다!”
저 멀리 뉴욕에서 대사건이 일어났다.
-애국자들이여, 일어나라! 신합중국의 깃발 아래로 집결하라!
트럼프의 SNS도 불을 뿜기 시작했다.
한국처럼! 한국처럼!
신합중국을 위하여!
트럼프를 지키자!
이에, 신합중국주의를 지지하는 모든 미국인이 동시에 총기를 들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