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12)
제12화
굉장히 큰 결심이었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즉참(卽斬)을 해도 모자랐다.
하나, 좋든 싫든 가장 존경하는 주군의 혈육. 어찌 감히 함부로 검을 뽑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지금은 주군의 일을 수행하러 움직이는 길. 그 임무를 무사히 이루기 위해서라면 대의를 위해, 자신이 받은 모욕 정도는 ‘사과’로 넘기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굳게 마음먹고 찾아온 길이었건만. 이 애송이는 고개를 불온하게 꼬며,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싫은데요?”
뭐, 싫어? 발작을 하려던 그 순간, 애송이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기사 베스킨, 하나 물어보죠.”
“…말씀하십시오.”
…뭔가 발작하려던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다행히 베스킨의 행동보다는 내 입이 더 빨랐다.
“기사로서, 왕국과 가문 중 무엇이 먼저입니까?”
“…우문입니다. 가문은 왕국을 이루는 기둥이며, 왕국은 가문을 감싸는 지붕입니다. 즉, 가문을 위한 것이 곧 왕국을 위한 것이고 왕국을 위한 것이 곧 가문을 위한 것인데. 어찌 우선순위를 따질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왕국과 가문의 이익이 배치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경은 어느 것을 우선하겠습니까?”
내 말에 베스킨은 발작을 멈추고 잠시 고민하다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가문을 우선할 것입니다. 이 한 몸을 바칠 굳건한 충성은, 오로지 반텐의 지배자이신 바쿠스 폰 카르비어트만을 위한 것입니다.”
“좋아요. 경의 충성심은 충분히 잘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묻지요. 왕국과 가문의 이익이 합치되는 일이 있다면. 경은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건가요?”
“기꺼운 마음으로 수행할 것입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베스킨,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 바로 그런 일입니다.”
“……?”
“내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 일. 베스킨. 멀리 보고, 멀리 생각하세요. 단순히 주인이 시키는 일만 수행하는 건 집 지키는 개들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했나요? 아뇨, 그대는 낮에 내가 이유를 알려 주었다면 필시 반대했을 겁니다. 왜냐구요? 그대의 좁은 식견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가문의 이익과 결부되지 않는, 시간 낭비인 일로 보였을 테니까.”
베스킨이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나요? 그렇다면 하나만 약속해 주시죠, 베스킨. 내일, 하루만 내가 시키는 일에 대해 절대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이후 어떤 일이 발생하든 간에, 일의 모든 책임은 제가 지도록 하죠.”
“…맹세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되물어오는 베스킨에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물론, 두말하면 잔소리. 뭣하면 이번에 간신히 유지한 후계자 후보 지위라도 포기하는 걸로 하죠.”
“가문의 후계자 자리를 그리 함부로 걸지 마십시오. 삼공자님께서 그리 가벼이 여겨도 되는 지위가 아닙니다.”
그 와중에도 가문에 충성심을 드러내는 베스킨이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 아무튼 그렇다는 겁니다.”
“…좋습니다. 삼공자님의 그 말과 뜻에, 진실로 의미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베스킨은 두고 보자는 듯이 말을 하며 천막의 밖으로 향했지만, 나는 태평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으니까.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늦은 아침을 먹고, 해를 바라보니. 천천히 해가 가장 높은 위치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살라딘이 이야기했던 위치까지는 앞으로 3km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일행의 안내를 돕던 마노 영지의 길잡이가 내게로 다가왔다.
“저… 삼공자님. 이 앞은 셀레지아 군락이 있는 곳입니다. 분명 절경이기는 합니다만, 굳이 그곳으로 향해야 할 이유가….”
“괜찮아요. 저기로 향합니다.”
“어, 네… 알겠습니다….”
베스킨의 눈치를 보며 내게 조심스레 말한 길잡이는 내 단호한 태도에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군락으로 일행을 인도했다.
온전히 군락에 도착한 지금,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는 이미 가장 높은 곳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뭐야, 여길 왜 온 거지?”
“글쎄, 뭔 바람이 부셨나?”
“정말 관광 때문에 진로를 바꾼 거였어?”
“한시가 급한데….”
곳곳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외쳤다.
“블리자드 기사단은 전투준비를, 길잡이들과 일꾼들은 뒤로 빠진다!”
“…엥? 방금, 뭔?”
예쁜 꽃밭을 보러 온 것도 황당한데, 뜬금없는 전투준비라니. 내 말에 다들 벙쪄 있을 때, 나는 베스킨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무언의 요구에, 베스킨이 다시금 소리쳤다.
“무엇들을 하는가! 삼공자님의 명이 들리지 않는가! 기사들과 병사들은 전투준비를, 비전투원들은 뒤로 빠져 있도록!”
베스킨까지 소리치자, 일행들이 그제야 무언가 있다고 여기고 표정을 굳힌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극렬한 반응 차이에 새삼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지금, 내가 가문에서 위치한 자리이니.
‘괜찮아, 천천히 바꾸어가면 되는 거니까.’
아직, 대전까지 시간은 많았으니 말이다.
해가 그 위치를 옮기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장 높은 하늘 위에 떠 있던 태양은 조금씩 조금씩,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전투대형을 유지하던 기사들은 추상같은 단장의 명에 그 대형을 말없이 유지하고 있었으나.
길잡이들과 일꾼들은 작게 소곤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진짜 뭐가 있나?”
“뭐가 있기는. 삼공자님께서 실수하신 거 같은데.”
“한시가 급한데,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조금씩 웅성거림이 커져 나의 귀에도 들려왔지만, 나는 미동도 않은 채 숲을 노려보고 있었다.
‘반드시 온다.’
시간은 조금 늦어지고 있었지만, 살라딘은 반드시 올 터였다.
내가 아는 살라딘은 그런 인물이었으니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시발, 좀 늦었다. 색깔 돼지 그리로 간다!!
살라딘의 다급한 전음이 들려오고.
전방의 숲에서 음험하고 흉포한 기세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장 먼저 느낀 이는 베스킨이었다.
촤아앙!
“블리자드 기사단, 전원. 전투준비.”
베스킨이 담담히 말하며 숲 안쪽을 노려보았다.
…으적.
무언가가 짓이겨지는 소리와 함께.
베스킨이 노려보는 숲속에서. 한 손에는 꽃 무더기를, 한 손에는 거대한 워액스를 든 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저걸 오크라고 할 수 있을까.
초록색, 아니 초록색과 주황색을 오가는 피부를 가지고 있는 엄청난 덩치의 저 ‘존재’는 무언가를 씹으며 숲의 나무들을 부러뜨리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으적! 으적! 으적! 으적! 으적! 으적! 으적! 으적! 으적! 으적!
‘존재’가 가까워질수록 무언가를 씹는 소리는 점차 커졌고, ‘존재’의 입 아래에는 하얀 꽃들이 점점이 떨어지고 있었다.
주황색. 하이 오크를 상징하는 색. 저 ‘존재’는 이미 하이 오크로의 진화를 ‘거의’ 마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이 셀레지아 군락까지 취하게 내버려 뒀다면, 분명 마노 영지를 불태웠던 괴물로 성장했겠지만.
촤아아악!
거죽이 뜯겨지는 피육음이 들렸다.
얼음의 기사라는 칭호답게, 주변의 수증기가 점점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기운을 내뿜던 베스킨이 ‘존재’를 향해 돌진하여 상처를 낸 것이다.
지금은 달랐다. 아직 저 괴물은, 진화를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했다.
“우워어어어어어어!!”
무시무시한 피어. 하지만 일만의 군대를 공포에 떨게 한다던 전설 속의 하이 오크들의 위명에 비하면 무언가 부족했다.
완전한 것과, 거의 완전한 것의 차이는 분명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 종이 한 장이 가져온 차이는, 꽤나 큰 것이었다.
콰아아아아앙!
대지가 부서지고, 폭음이 울려 퍼졌다. 정예라 불리는 방패가의 병사들이었지만, 저런 일격을 맞는다면 분명 큰 피해를 면치 못했겠지.
하나.
“흐으음!!!”
꾸우우웅!
베스킨의 투핸드 소드가 오크의 도끼를 막아냈다.
비록 오크의 육중한 일격에 깊은 밭고랑이 만들어지긴 했으나, 베스킨은 오크의 워액스를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이였다.
워액스를 휘두르며 난동을 피우는 오크를 상대로 베스킨이 시간을 끄는 사이.
“쏴라!!”
블리자드 기사단의 부단장, 라빈스의 지시가 떨어지자, 병사들이 미리 재어놓은 화살을 일제히 발사했다.
전승에 따르면 하이 오크의 피부는 금속과도 같다고 한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결코 박힐 리 없는 화살들이.
퍽! 퍼퍽!
너무도 쉽게 하나둘 박히기 시작했다.
좋아, 이대로라면 무난히 처리할 수 있겠군.
“취이이이익!!”
오크 사냥이 순조로이 진행되던 바로 그때.
화살에 피부를 관통당한 녀석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괴성을 지르며 숲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빽빽한 나무들로 인하여 말을 탄 기사들이나 병사들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
보통이라면 오크를 퇴치했다는 사실로 만족할 수 있겠지만.
“이런!”
마지막 순간, 녀석이 셀레지아 군락에서 꽃들을 한 주먹 가져간 것이 문제였다.
녀석이 얼마나 더 셀레지아를 먹어치웠을 때 하이 오크로 진화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터.
자칫하다가 공든 탑이 무너질지도 몰랐다.
제길, 어쩔 수 없었다. 플랜 B로 가는 수밖에.
“베스킨! 따라와요!”
나는 베스킨에게 짧은 명을 내리고 오크를 따라 숲속으로 몸을 날렸다.
-살라딘, 플랜 B다! 녀석의 위치는?!
-젠장, 다 떠먹여 줬는데 그걸 놓치냐!
-닥치고 빨리 얘기해!
-아가리 버릇 하고는! 나도 쫓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먼저 추적에 나선 살라딘이 말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느새, 내 뒤에 따라붙은 베스킨이 내게 말을 걸었다.
“삼공자님, 저 괴물은 대체…?!”
나는 베스킨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오크를 추적했다.
“삼공자님, 진정하십시오. 너무 깊숙이 들어오셨습니다. 저희 기사단은 모두 풀플레이트 메일을 두르고 있어 이런 숲속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대로라면 숲속에서 기사단, 사병들과 찢어져 모두 뿔뿔이 흩어질 겁니다.”
베스킨의 말에 내가 행동을 멈췄을 때는 이미 블리자드 기사단도, 우리 영지의 병사들도. 나와 베스킨이 있는 장소와 상당히 넓은 거리가 형성된 상태였다.
가뜩이나 거리도 먼데, 숲 사이에 빽빽한 나무들로 인하여 서로의 위치도 파악이 어려워 목소리로 얼추 짐작만 갈 뿐이었다.
바로 그때.
-어, 어?! 야! 색깔 돼지 네 쪽으로 돌아간다! 조심해!
살라딘의 다급한 경고성이 들리고.
“취이이이익…. 강한… 인…간. 이…제는… 취익… 이길… 수 있다.”
여전히 피부색이 점멸하고 있었지만, 아까보다 조금 더 주황색이 많아진 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짧은 시간에 지성이라도 생긴 것인지, 녀석은 어설프지만 떠듬떠듬 인간의 말까지 구사했다.
녀석은 아까의 짧은 전투에서 우리 일행 중 가장 강한 인간이 베스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각개격파를 노리려는 듯했다.
하지만.
척!
어느새, 오크를 뒤쫓아 온 살라딘이 양옆에 미미와 네네를 동반한 채 내 옆에 내려앉았다.
“누구냐!”
그런 살라딘을 베스킨은 경계했고.
“…빌어먹을! 내가 설마 기사와 함께 싸우는 날이 올 줄이야. 근데, 설명 안 했냐?”
살라딘은 똑바로 설명도 안 하고 뭐 했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투덜거렸다.
물론, 답을 원하는 것은 베스킨도 마찬가지였다.
“도련님, 이자는?”
“나중에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일단은, 음. 함께 싸울 동료라고 해두죠.”
계획이란 건 색깔 돼지, 너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크가 생각보다 약할 경우, 숫자의 힘으로 끔살 하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지만.
오크가 생각보다 강하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놓쳤을 경우의 계획이 플랜 B였다.
플랜 B.
살라딘과 베스킨, 그리고 나. 전략적으로 강한 소수 정예들이 모여 오크를 처리하는 계획.
살라딘이나 나는 흑사자였다.
우리가 가진 힘을 알게 되는 이가 많아질수록, 경계하는 이들도 늘어날 터.
아직 가문에서의 입지도 다지지 못한 이 시점에, 내가 가진 힘을 다수에게 보이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차라리 잘됐다.
이참에, 중립인 베스킨에게만 내가 ‘후계자’로서 결코 모자라지 않은 그릇이라는 점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것도….
“취이익… 약한 인…간. 너는… 이 인간을 먹은 뒤… 간식…이다.”
아니, 이런 빌어먹을 돼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