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13)
제13화
베스킨의 기운으로 인해 숲의 나무들이 쩍쩍 얼어붙었고.
우지지직!!
그런 얼어붙은 아름드리나무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부러져 나갔다.
명색이 숲속이고, 대기가 얼어붙었건만, 저 오크는 마치 아무런 걸림돌이 없는 평야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듯했다.
그만큼 압도적인 힘과 쾌속한 스피드가 하나가 되었을 때 나오는 파괴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재앙이나 다름없었지만.
그것도, 상대에게 적중하지 않는다면.
그저 힘이 넘치는 춤사위에 불과할 뿐이었다.
“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오크의 피어가 숲 전체를 떨어 울리며 퍼져 나갔다. 가히, 피어만으로도 뒷목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이 피어로 인해 공포로 몸이 굳어 버렸겠지만.
이 중에, 평범한 이들은 없었다.
촤라라라락!
베스킨이 오크를 붙들고 있는 사이.
살라딘의 미미와 네네가 상하좌우를 누비며 몸속에 숨겨둔 비수와 독을 날렸다.
가랑비에 옷 젖듯, 변칙적으로 날아드는 살라딘의 공격에 오크의 몸에서 조금씩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그런 미미와 네네를 오크는 매우 성가셔하며 우선적으로 부수려 들었다.
하나.
꾸우우우웅!!
그 앞에는, 내가 버티고 있었다. 내 힘, 강철은 아직 1단계 아이언 피스트에 지나지 않아 분명 잘못 맞으면 중상을 입기 딱 좋았으나.
저런 단순한 공격은, 판크라티온으로 얼마든지 흘려낼 수 있었다.
베스킨은 내가 이종의 힘을 익혔다는 사실뿐 아니라, 판크라티온을 사용한다는 것에 매우 놀란 듯했지만.
지금 그것에 대해 물어볼 만큼 머저리인 이는 결코 아니었다.
그렇게 위협적인 피어와 도끼질에도 아랑곳 않고 나와 살라딘이 오크의 시선을 끌고 있을 때.
베스킨의 검격이 오크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우측 어깨 상단부에서부터 좌측 허리 하단부까지 가로지르는 큰 상처.
분명 중상이었지만, 베임과 동시에 얼어붙은 오크의 피부에서는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아아!!”
피가 흐르지 않다 뿐이지, 상처가 얼어붙음으로 인해 고통은 더욱 극심한 것이 분명한 오크가 발작적으로 도끼를 휘둘러댔다.
그 참격에 실린 거력에, 베스킨 역시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거리를 벌렸다.
“크르륵, 크르륵….”
잠시 소강상태가 된 틈을 타, 오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상처는 얼어붙어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녀석의 체온으로 인해 상처가 녹았는지 서서히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의 압도적인 우세였지만.
우리 세 명의 표정은 확연히 굳어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베스킨은 두말할 것도 없고, 나도 살라딘도, 알고 있던 것이다.
저 상처투성이의 빈사 상태로 보이는 오크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오크의 몸은.
조금씩이지만, 주황색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지고 있었다.
* * *
어릴 때부터 자신은 남달랐다.
같은 어미의 배에서 태어난 형제들이나, 다른 부족원들보다 월등히 거대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고.
체구에서 흘러넘치는 힘과 강력한 근육은 드래곤 산맥 내의 강자인 트롤이나 오우거조차도 제압할 수 있었다.
너무도 당연하게 자신은 부족의 중심이 되었었다.
그런 모습이 단순히 족장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심각한 적이라 여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족장이 꾸민 흉계로 인하여 자신이 이끌던 부족의 자랑, 울프 라이더 부대는 악룡(惡龍), 와이번들의 구역에서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말았다.
영혼의 파트너이자 전장에서의 든든한 전우였던 블러드 울프도, 자신을 뒤따르던 용맹한 부족의 젊은 오크들도.
모두 죽어 발할라(valhalla)로 돌아갔다.
그 모든 것을 잃은 자신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줄 알았다.
하나, 그보다 더 밑이 존재했으니.
패전의 멍에를 지고 돌아간 부족에서는 전사들을 모두 잃고도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해 왔다는 경멸과 함께 부족에서 추방되었다.
그간 세웠던 공으로 목숨만은 건졌지만,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미, 전사로서의 명예는 땅에 처박혀 육신만 존재할 뿐, 영혼은 소실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절망에 빠져 신성한 영혼들이 간다는 발할라로 가고자 하였을 때.
바로 그때, 위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족에 전설로만 내려오는 선조 전사들의 영혼의 목소리가 말이다.
목소리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신성한 하얀 꽃.
그 꽃이 지닌 신비한 마나를 취하라고.
그리하면, 옛 선조들이 이루었던 오크들의 위대한 대지를 건설할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신성한 존재의 목소리가 들린 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얀 꽃들은 척박한 드래곤 산맥이 아닌, 풍요로운 남쪽. 인간들의 영토에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언제 인간들의 무리와 싸움이 시작될지 모르는 고행(苦行)의 길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은 선택받은 오크. 인간들이 무서워 선조들의 계시를 모른 척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고행의 길속에서, 눈앞에 보이는 모든 하얀 꽃들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마침내. 길었던 여정의 끝에서. 드디어 선조들이 얘기했던 신성한 하얀 꽃을 찾아낼 수 있었다.
기뻤다. 마침내 선조들의 영광스러웠던 역사를 재현하고, 한데 모은 동족들과 궐기하여 저 갈아 마셔도 부족할 족장에게 피의 복수를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러나 그 행보를 채 시작도 하기 전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전투에 오크, 하탄은 미칠 것만 같았다.
목적했던 바를 이루고 환희에 젖어 있을 때, 우연히 마주쳤던 인간들.
눈앞의 강한 인간은 다짜고짜 자신에게 날붙이를 휘둘러댔다.
뜬금없이 시작된 싸움이었지만 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마주친다면 싸우는 것이 당연했다.
애초에, 자신은 싸우는 것에서 존재 의의를 찾는 위대한 전투의 종족, ‘오크’였으니까.
가볍게 인간들을 처리하고 떠나려 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숫자였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은 선택받은 이였기에. 능히 인간들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자신의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크아아아아아아!!”
휘이잉!
발작적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과연 신성한 하얀 꽃의 힘인지, 그렇게 상처를 입고 지쳤음에도 자신의 애병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점차 가벼워졌다.
하나, 그토록 빨라진 도끼질도. 눈앞의 인간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제아무리 강맹한 일격이라도, 맞히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법.
그러나 하탄은 걱정하지 않았다. 점점 빨라지는 공격은 인간의 움직임을 점점 따라잡고 있었기에, 머지않아 곧 눈앞의 인간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나, 날파리처럼 요 근래 성가시게 굴었던 인간과 간식이나 다름없다 여긴 인간이 끼어들자.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촤라라라라락!
날파리 같은 인간이 데리고 있던 장난감에서 온갖 귀찮은 쇳조각들이 튀어나왔다.
“취이이이익!!”
머리 위로 쏟아진 쇳조각들은 도끼의 넓은 면적으로 대부분 막아낼 수 있었으나.
핏! 핏! 핏!
공교롭게도 장난감은 2개나 존재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몸 안에 상처를 적립해가는 장난감들이 위협적이었기에.
오크 하탄은 방어를 풀고 도끼로 장난감을 분쇄하려 하였으나.
쩌어어엉!!
이번에는 식후 땡으로 입가심하려던 인간이 자신의 도끼를 막아냈다.
분명, 나약하고 작은 인간이었건만. 어찌 자신의 도끼를 막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촤아악!
그 틈에 강한 인간의 대검이 자신의 굳건한 허벅지를 긁어냈다. 하체를 당하면 움직임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일. 치명상이었다.
신경도 쓰지 않던 두 인간은 분명 하나씩 상대했다면 당장이라도 씹어 먹어 버렸을 텐데.
두 인간이 유기적으로 움직이자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하탄은 조급함을 느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기껏 따돌렸던 인간들의 군대가 이곳까지 따라잡고 말 것이다.
물론, 신성한 하얀 꽃의 힘은 조금씩, 조금씩. 몸속에 녹아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힘을 채 녹이기도 전에 너무나 많은 부상을 입은 것이 문제였다.
더 이상의 부상을 입었다가는 살아남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설사, 살아남는다 하여도 자신의 원대한 야망과 복수를 이루는 데 큰 장애가 될 터.
어찌할 것인가.
“취이이이익.”
하탄은 마음을 다잡은 채, 도끼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자신은, 오크였다.
그것도, 더없이 위대한 선조들의 뒤를 이을 존재였다.
설령 아무리 큰 부상을 입는다고 하더라도.
설령 자신의 원망(遠望)을 채 이루기도 전에 이곳에서 스러지더라도.
결코, 전사로서의 명예를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전의를 다지고 있을 때. 간식으로 여긴 인간의 입이 열렸다.
* * *
“와, 씨. 진짜 세네, 저거.”
나는 강철을 운용하고 있는 두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여전히 베스킨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오크 놈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말이 오크지, 저건 이미 오크의 수준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이미 내 강철의 수준은 1단계를 넘어 2단계로 향하고 있는 상태.
거기다 어스와 판크라티온을 익힌 몸이기에, 사실상 내 주먹은 그 자체로 흉기나 다름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진즉에 몸이 다 부서져 나갔을 만큼 말이다.
하나, 저 괴물 오크는 그런 내 강철을 일순간 파훼했다. 심지어 베스킨과 살라딘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하물며, 놈은 베스킨으로 인해 다리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
‘저런 괴물이었으니, 그 형과 라이크가 고전을 면치 못했지. 어쩐다.’
지금도 저 오크는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저 멀리서 블리자드 기사단과 병사들이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긴, 이렇게 숲이 터져 나가라 싸우고 있는데. 우리 위치를 아직도 짐작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멀쩡한 하이 오크라면 어림도 없겠지만, 이미 중상을 입은 저 오크라면.
블리자드 기사단과 병사들의 힘을 총동원하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쎄.
그게 과연 최선일까.
오크를 처리한다. 살라딘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그리는 그림을 위해서 분명 필요한 일이다.
블리자드 기사단도, 가문의 병사들도 대부분 죽어나가면 가까스로 가능할지도 몰랐다.
‘제기랄! 그래서야 임무에 실패했던 형과 다를 게 하나 없잖아!’
아니, 오히려 손해일지도 몰랐다. 살라딘도, 베스킨도 죽을지 몰랐으니까.
인정해야 했다. 계산 미스였다.
단가를 잘못 계산했다. 저 오크를 너무 우습게 생각했다.
전생에서 형은 라이크가 입었던 상처를 치료하는 시간이 길어져, 필라도르 왕국으로 향하는 여정이 상당히 지체되었었다.
이 ‘사건’이 식량 교섭 실패의 전부는 아니었을지언정. 분명 일부의 원인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변수는 적을수록 좋다. 행여나 지금 베스킨이 치명상을 입거나 블리자드 기사단이 궤멸한다면. 나 역시 전생의 형이 걸었던 실패와 동일한 결과를 맞이할지도 몰랐다.
아니, 오히려 안 좋았다.
최소한, 형은 이 일을 실패해서 후계자 지위를 박탈당하지는 않았었으니까.
‘생각해라.’
형은 답답할 정도로 ‘기사도’에 충실했던 이.
그런 사람이니, 아무리 피해가 커진다고 해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
나는 달랐다. 나는 상인이자, 용병이자, 저항군이었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 따위는 가리지 않는다.
일단 물러섰다가 에드윈 자작가나 인근 영지의 힘을 빌릴까?
아니다. 그사이에 오크가 상처를 치유하면 피해가 누적될 뿐이다.
하면, 왕가에 대대적인 토벌을 요청할까?
아니다. 그 순간, 내가 한 개고생은 사라지고 나는 왕가를 띄워줄 장식품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본가에 지원을 구하면 어떨까.
아니다. 지리상 검가가 먼저 도달하여 자신들의 위상을 드높일 것이다.
역시, 지금 이 자리에서 저 오크와 사생결단을 내는 것이 최선책일까?
그거야말로 최악의 방법이다. 이 상행의 본질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버지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
이 일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수적인 일일 뿐이다. 주객이 전도되어서야 말이 되지 않았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오크도 처리하고, 실리도 챙길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을 거다… 으응?’
여러 대안을 떠올리며 전황을 바라보던 내 눈에 문득, 이상한 점이 포착되었다.
저 되다 만 하이 오크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섰을 때 보인 찰나의 멈칫거림.
비록 인간과 오크라는 종의 격차가 있을지언정, 녀석이 보인 행동이 나타내는 바는 명확했다.
저건 바로, 심적으로 갈등이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물론, 아주 잠깐 보였던 갈등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오크의 눈빛에는 갈등 대신 결연함이 서리며 놈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전쟁의 끝에서 보이는 결사대들의 분위기와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크의 저 모습을 보자 내 머릿속에서 이 답 없는 치킨 게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번쩍하고 떠올랐다.
나는 오크가 전의를 다지고 우리에게 달려들기 직전, 다급히 녀석을 바라보며 외쳤다.
“이봐, 돼지! 우리 협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