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184)
제184화
콰아아!
검은 얇지만, 그 검을 둘러싼 오러는 마치 쇠몽둥이와도 같이 두껍고 우악스러웠다.
퍼석!
소매의 끝부분을 가르며 지나간 오러가 바위와 부딪치자 바위가 베이는 것이 아니라, 흔적도 없이 터져 나갔다.
가루가 된 바위가 흔들리는 대기에 몸을 맡기며 봄날의 벚꽃처럼 휘날렸다.
살벌할 검격을 비끼며 거리를 좁혀 슈타트의 턱을 노렸다.
“흠!”
슈타트가 역으로 팔꿈치를 세워 내 주먹을 향해 내리찍었다.
팔꿈치와 별개로, 역수로 잡은 단검은 내 어깻죽지를 노려왔다.
휘이익!
몸을 회전시키며 단검을 피한 후 비어 있는 허리를 향해 무수히 많은 연격을 날린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어지간한 기사라면 단숨에 나가떨어질 권격이 슈타트의 허리를 향해 수도 없이 내질러졌다.
대기에 몸을 맡겼던 돌가루가 권격의 거친 움직임에 더더욱 요란스럽게 춤을 췄다.
푸스스스스!
짙어진 흙먼지에 시야가 가려지자 나는 거리를 벌린 채 슈타트를 향해 수도(手刀)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쐐애애액!
황금빛의 오러가 내 팔의 궤적을 따라 길게 반월을 그리며 먼지구름을 베어갔다.
콰아아아앙!
먼지구름이 갈라지며 더욱더 큰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화려하게 날뛴 탓일까. 거의 끝난 전황임에도 불구하고 몇 안 남은 국지적인 싸움이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저들도 대충 눈치챈 것이다. 어차피 이 싸움의 승패에 따라 자신들의 목숨 줄이 좌지우지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시원하게 때려 넣은 오러가 허공에 흩어지자 서서히 먼지 속 상황이 모습을 드러냈다.
흙먼지에 행색이 엉망진창이 된 슈타트는 오러를 피운 쌍검을 교차한 채 몸을 굽히고 있었다.
그의 몸에는 내 권격과 오러에 자잘한 상처가 셀 수 없을 만큼 생겨났지만, 그중에 전투에 영향을 줄 만큼 유효한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
‘역시 오러 싸움으로는 안 되겠군.’
내 오러가 약한 것이 아니었다. 마나 연공법 어스(Earth)를 통해 끊임없이 해온 단련과 와이번의 내단을 취한 지금, 내 오러는 어느새 일반적인 소드 마스터를 훌쩍 상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4후작도 아닌 슈타트의 오러를 뚫어내지 못했다는 건, 그의 불굴(不屈)이 주는 힘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었다.
‘…기운 자체만 놓고 보면 별것 아닌데. 제법 까다롭네.’
고작 2단계 언저리의 힘이다.
다른 성기사들처럼 이종의 힘과 오러를 섞어 쓰는 수준이었다면 결코 내 상대가 되지 못했겠지만.
저 불굴(不屈)이 가진 특성이 문제였다.
저 힘은 여타 이종의 힘들처럼, 다른 힘과 섞어서 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가진 바 힘을 더욱 증폭시키는 종류의 것이다.
즉, 슈타트가 쌓아 올린 기사 본연의 경지를 끌어 올리는 힘이다 보니 틈을 노리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이종의 힘과 오러를 동시에 사용하는 어색함에서 생기는 틈을 말이다.
명색이 차기 옥좌를 노리는 녀석이니, 알고서 고른 것이리라.
익숙하지 않은 잡다한 여러 힘을 동시에 익히는 것보다, 익숙한 힘 하나를 강화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큰소리치더니, 겨우 이 정도냐?”
몸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낸 슈타트가 비웃음을 머금으며 웅크린 몸을 폈다.
“아까 분명히 한 말이 있었지. 뭐라고 했더라… 이게 전부면 여기서 못 빠져나간다고 했던가?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제국 검술의 기수식을 쌍검술 형태로 바꾸며 슈타트가 히죽 웃었다.
“이게 전부면, 넌 여기서 죽을 거다.”
투웅!
슈타트의 몸이 빠르게 가까워진다. 거의 야수검 크랭크에 버금가는 속도였다.
촤촤촤촤촥!
우검과 좌검이 거칠게 파고들어 오며 내 몸을 난도질하려 들었다.
과연.
크랭크와 맞먹는 막대한 기운에, 감각적인 야수검이 아니라 격식 있는 제국의 검술까지 합쳐지니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분명히 기운이 강해졌지만, 아까보다 녀석을 상대하는 게 점점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하하하! 뭐 하나,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냐!”
점차 내 월보의 움직임에 익숙해진 건지 우검이 내 어깻죽지를 훑고, 좌검이 내 허리를 날카롭게 베었다.
허벅지와 가슴팍마저 베일 지경이 되자,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군. 네 녀석도, 잘난 척하더니 결국 잡아먹혀 버렸구나.”
“무슨 헛소리냐!”
취리릭!
롱소드가 우측 하단부터 머리를 향해 독사처럼 기어올랐다.
훙!
종이 한 장 차이로 비껴낸 일격. 슈타트는 빗나간 일격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왼손으로 심장을 노리며 찔러 들어왔다.
그 속도는 가히 섬전과도 같았으나.
훙!
거죽 한 꺼풀 차이로 또다시 빗나간다.
제롬의 말을 기점으로, 슈타트의 공격이 거짓말처럼 한 치 차이로 빗나가기 시작했다.
“……!!”
한두 번은 우연으로 그럴 수 있었다. 자신처럼 제국에서 키우는 천재도 아닌, 허접한 왕국가의 망나니 아들놈이라 여긴 애송이가 어떻게 저만한 무력을 쌓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롬이 보였던 무예는 진짜였다. 그렇기에, 아무리 자신의 힘이 강해졌다 하더라도 한두 번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종이 한 장의 회피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바보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상황이 무언가 더럽게 변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새끼가!”
슈타트가 제롬을 반으로 갈라 버리겠다는 듯이 거칠게 검을 내리쳤다.
그러자 건틀릿을 X자로 교차한 채 슈타트의 검격을 옆으로 흘려낸 제롬이 그대로 몸을 띄워 슈타트의 관자놀이를 걷어찼다.
빠아아악!
“크윽!”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충격에 머리가 꺾인 슈타트가 신음을 흘렸다.
다급히 오러를 끌어 올려 머리를 보호해 뼈가 부서지는 것은 면했지만, 머릿속 내부가 격하게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쿠웅!
흔들리는 슈타트와의 거리를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파고들었다.
진각에서 올라온 에너지를 그대로 등과 어깨에 휘돌리며 슈타트와 부딪쳤다.
터엉!
머리를 가격당했을 때도 검을 놓지 않고 버텼던 슈타트였지만, 철산고(鐵山靠)의 수법을 정통으로 얻어맞고도 버틸 수는 없었다.
“커헉!”
휘청휘청 물러서던 슈타트가 검을 놓친 오른손으로 가슴을 움켜쥔 채 내 건틀릿 사이에 끼어 있는 빼앗긴 검을 바라보았다.
“이놈이…!!”
툭!
건틀릿 사이에 끼어 있는 녀석의 검을 아무렇게나 던져내며 말했다.
“역시. 너희 단장들이 아무리 제국에서 칭송받는 천재라고 하지만, 그래봐야 아직은 설익은 녀석들이야.”
그러니 아직까지도 자신의 문제점이 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내린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알려주지.”
땅바닥에 떨어진 롱소드를 멀리멀리 걷어찬 후, 슈타트를 향해 돌진했다.
“죽여 버리겠다!”
슈타트의 왼손에 있던 단검이 예기를 가득 머금은 채 나를 향해 오러를 연거푸 날려 보냈다.
오러에 응축된 저 거대한 기운이라면 능히 땅을 뒤집고 바위를 부수고도 남았지만.
더 이상은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월보(月步)를 펼치며 놈의 오러를 희롱하듯 여유롭게 피해내며 거리를 좁혔다.
황금빛의 오러가 응축되고, 응축되어 두 손에 모인다.
응축된 오러가 점차로 농도를 높여가며 마침내 검은빛을 띠기 시작했을 때.
쩌어엉!
“커헉!”
슈타트의 단검을 오른손으로 밀어내며 왼손을 명치 한가운데 꽂아 넣었다.
인체의 급소 중 하나인 명치를 정통으로 맞은 탓인지, 슈타트의 움직임이 한순간 멈췄다.
그거면 충분했다.
일단은 무기를 들고 있는 왼손부터.
우두둑!
기이한 각도로 놈의 팔을 꺾으며 탈골시켰다.
다리를 걸어 슈타트의 중심축을 무너뜨리며 어깨를 처박았다.
무릎을 밟은 채 허공에 뜬 상태로 양발을 현란하게 내질렀다.
묵빛의 강철 기둥이나 다름없는 단련된 다리가 슈타트의 몸 구석구석을 정밀하게 타격했다.
터어엉!
마치 금종(金鐘)이 울리는 듯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넝마가 된 슈타트의 모습이 드러났다.
털썩!
한쪽 무릎을 꿇으며 슈타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대체… 어째서….”
충격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진 못했지만, 녀석이 묻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왜 자신이 패배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거겠지.
“스스로 고련(苦鍊)을 통해 얻지 않은 힘이란, 그렇게 조악하고 가벼운 거다.”
전장을 누비며 갈고 닦은 슈타트의 변검(變劍)은 분명 달인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판크라티온으로도 섣불리 거리를 좁히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불굴(不屈)을 발동시킨 후 자신의 경지가 4후작에 필적하게, 아니 상회하게 되자 슈타트는 그 힘에 취해버렸다.
더 이상 자신이 갈고닦았던 변검이 아닌, 오러와 신체 능력에 의존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모르는 일이다. 슈타트가 만약 정식으로 이종의 힘을 수련하여 자신의 변검과의 괴리감을 느끼며 처절하게 익혔다면, 저 능력의 적절한 사용법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흑사자들의 희생을 희롱하며, 마치 던져준 한 덩이 고기를 채가는 개새끼처럼 쉽사리 얻은 힘으로 그런 경지에 이르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슈타트는 이종의 힘을 통해 자신의 힘을 단련하려 했지만, 결국 단련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종의 힘에 취해버린 것이었다.
‘뭐, 죽을 놈에게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하게 해줄 이유는 없지.’
게다가, 목전에 도달하여 슈타트의 표정을 보니 자신이 뭘 틀렸는지 이미 눈치챈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몬스터와 같은 대륙의 악(惡)과 손잡은 네놈에게, 주의 저주가 있을 것이다! 내 원수는 카밀 공작 각하께서….”
촤아악!
악다구니를 쓰는 슈타트의 말을 수도(手刀)를 휘둘러 끊었다.
죽을 놈의 악에 받친 외침 따위, 들어줄 가치가 없었으니까.
“…휴! 그래도 대충 마무리됐나.”
주위를 둘러보니, 남아 있는 7성기사단의 기사들은 전의를 잃은 상태였다.
“취익! 더 강해졌군, 제롬.”
다가온 하탄이 순수하게 내 경지에 감탄했다. 그 눈빛 어디에도 경계심은 없었다.
‘너도 강해졌단 뜻인가.’
1년 뒤, 하탄은 나와 중지되었던 막고라를 펼칠 것이다.
만약 녀석의 실력이 과거와 마찬가지였다면 내 힘에 순수하게 감탄할 수도 없었겠지.
“취익! 이걸로 죽음의 계곡에서의 빚은 갚은 거다. 취익!”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으려나.’
이 싸움 바보인 오크라면, 자신의 경지가 어떻든 간에 지금처럼 반응했을 거 같았다.
“그래, 고맙다. 아르게스, 너에게도 감사를 표하지.”
“별말을. 네가 아니었다면 일족의 생활이 이리 변하지 못했을 거다. 그 은(恩)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스윽!
하탄과 아르게스가 쓰러진 성기사들을 향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취익, 그럼 사전에 약속대로 가져가도록 하지.”
“우리 역시.”
“…그래. 가져가라.”
하탄과 아르게스에게 약속했었다. 쓰러진 7성기사단의 뒤처리는 그들에게 맡긴다고 말이다.
키클롭스들은 대륙 최강국인 제국의 제련술이라면 뭔가 다를 것이라 여긴 것인지, 7성기사단의 갑옷과 무구를 원했다. 자신들의 제련술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오크들은, 7성기사단의 기사들 그 자체를 원했다. 이유는… 내가 하탄에게 행했던 ‘금제’ 때문이리라.
더 자세히 파고들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럼 남아 있는 이들도 얼른 처리하고 움직여야…?”
“잠깐만.”
그때, 언덕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람팡이 내려와 남아 있는 성기사들을 처리하려던 나를 제지했다.
“제롬, 저기 다섯 명만 내게 양보하지 않겠어? 저 새끼들이… 대체 어떻게 이종의 힘을 다루게 되었는지, 그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데.”
“!”
람팡의 말을 듣자 눈이 번쩍 뜨였다. 생각해보니 녀석들이 이종의 힘을 다루게 된 것만 알게 됐지, 어떻게 다루게 되었는지는 전혀 모르지 않는가?
“람팡님, 자신 있나요?”
“…내가 베라스 때문에 이미지가 유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사흘 안에 자기가 태어났을 때의 기억까지 전부 다 끄집어낼 자신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죽이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물어본 겁니다만.’
…굳이 밖으로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다만 람팡의 의견이 합당했기에, 하탄과 아르게스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소정의 대가를 약속하여 다섯 명을 인도받았다.
넘겨진 성기사들은 굴욕적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만약 끌려간 이들이 겪을 일을 안다면 저런 얼굴을 하진 못하리라.
‘이제 정말 끝이구나.’
이번 신성제국의 여정을 마지막으로, 반텐의 삼남이라는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제국의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거침없이 달려온 내게 찾아온 잠깐의 휴식이었다.
* * *
제롬의 함정에 빠져 7성기사단이 전멸한 자리.
한바탕 거센 폭풍이 지나가고,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진 산맥의 기슭에 한 무리의 인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두두두두두!
은빛의 화려한 무구를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들은 4성기사단과 카밀 공작이었다.
“여긴가?”
카밀 공작의 한마디 질문에 먼저 출발하여 7성기사단의 흔적을 추격하던 4성기사단 단원이 다가와 보고했다.
“확실합니다. 방패가의 삼남이 어째서 이쪽으로 향했는지 의아했습니다만, 이곳에 함정을 팠던 모양입니다.”
척후를 다녀온 단원의 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여태껏 전투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던 평야와 달리 이곳에는 온갖 전투의 흔적들이 가득했으니까.
“다만,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예, 각하. 적아를 막론하고 단 한 구의 시신조차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인근 1km까지 샅샅이 수색하였음에도, 단 한 구의 시신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무구나 갑옷조차도 전무하였습니다.”
“……!!”
카밀 공작의 표정이 굳었다. 실험실을 박살 낸 적이 있는 만큼, 7성기사단이 위험하리라는 예상은 익히 했던 바다.
하나, 싸움에서 패배한 것과 아무런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런 일은 규모 있는 적과의 싸움이 아니면 일어나기 힘들었으니까.
“…속도를 올린다. 계속해서 흔적을 쫓도록.”
더 내려가면 이제 곧 반텐의 영역이었다. 즉, 외교적으로 민감해질 수 있는 대지였다.
하나, 4성기사단의 단장 세인트는 공작의 말에 단 한 마디도 첨언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카밀 공작의 기세가 너무도 매서웠으니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각하.”
그저, 따를 뿐이었다. 카밀 공작은, 그 모든 문제를 묵살할 만한 힘이 있는 이였기에.
두두두두두!
카밀 공작과 4성기사단이 재차 남하하기 시작했다.
아직, 제롬의 휴식은 찾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