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190)
제190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트리스탄의 뒤에 있던 장로, 리오넬이 말을 더듬으며 세계수의 영체에게 되물었다.
-말 그대로다. 너희들이 오랜 세월 날 돌봐준 것은 정말 고맙다만, 이제는 더 이상 너희가 날 돌볼 필요가 없단 의미다.
담담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세계수의 말에 장로들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으로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어, 어째서입니까! 저희는 오직 위그드라실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나를 위해서라….
그 말에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영체가 피식 웃었다.
-그래, 맞다. 분명 나를 돌봐주었던 ‘처음’의 너희였다면 내 그 말을 단단히 믿었을 것이다.
묘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장로들이 하는 말은 믿을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너희의 마음에 순수함이 아닌, 탐욕(貪慾)이 끼어 버렸으니. 너희와 연결되어 있는 정령들의 기운에도 어찌 탁기가 깃들지 않겠느냐?
“!”
세계수는 장로들의 마음에 탐욕이 깃들었다 하였다. 나는 그제야 일의 전모를 알 수 있었다.
과거의 역사와 같이 여전히 파울로가 전권을 쥐고 있었다면, 장로들은 언감생심 전면에 나설 욕심을 낼 수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파울로가 실각되고 아직 어린 밀리아가 그 뒤를 이었으니.
장로, 아니 어른으로서 욕심을 내고 싶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칩거해 왔으니 전면에 나서 보상을 받고 싶어졌을 것이다.
시들어가는 세계수를 관리하기 위해 애쓰던 육대장로의 최상급 정령들. 그들은 장로들과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에서 일어난 탐욕이 정령들을 통해 세계수에 영향을 끼친 것이리라.
즉, 세계수가 다시금 시들기 시작한 것은 반텐과의 교역 탓이 아니라.
칩거를 깨고자 했던, 장로들의 욕망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이… 이!”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충격 탓일까. 장로들은 우리를 쫓아내려던 것도 잊고 얼굴을 붉힌 채 그 자리를 벗어났다.
멀어지는 장로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위그드라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대가 나를 부른 것인가?
“아뇨, 부른 건 제가 아닙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저 인간 여자인가. 그렇군. 너희 둘 모두에게서, 카르마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가 거둔 제자들인가.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내 씨앗의 껍질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음. 이걸 여쭤보려 여기로 모신 건 아닙니다만. 저렇게 보내도 괜찮으신 겁니까?”
내 질문에 세계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모든 건 다 나의 업보다. 저들은 오랜 세월을 칩거하며 나를 위해 봉사해온 이들, 지금이라도 후련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긴 시간 고생한 장로들을 편히 은퇴시켜 주기 위해 일부러 쳐냈다는 말인가. 그래, 세계수의 깊은 뜻은 잘 알겠다. 하지만 세계수의 뜻은 뜻이고, 이건 이거다.
‘댁이 이대로 시들어 버리면, 저 양반들은 절대로 고집을 꺾지 않을 테니깐.’
장로들에게 인간들과의 교역을 끊어내는 것은 밀리아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들이 정녕 권력에 대한 욕망에 충실코자 한다면, 이번 일의 뜻을 관철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기선 제압에 실패하면, 그 뒤는 끝없이 밀려날 뿐이었으니까.
그러니, 애초에 저들이 명분으로 삼은 시들어가는 세계수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저들의 방해는 계속될 것이다.
“이왕 실체화하신 거, 말씀이나 해주시죠. 시들고 계신 진짜 이유가 대체 뭡니까?”
내 질문에 혼이 나가 있던 애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여태껏, 세계수가 실체화된 일은 처음이었으니까. 이 이유만 알아낼 수 있다면 세계수가 시들어가는 걸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 역시 가능할지 몰랐다.
-시드는 이유 말인가. 그래, 카르마의 제자들이라면 말하지 못할 것도 없겠지.
역시, 뭔가 이유가 있었던가.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시듦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계수가 고목(古木)이 되어 시든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뿌리 쪽을 자세히 봐 보거라.
세계수의 영체는 자신의 뿌리를 가리켰다. 람팡이 말했던 무언가가 뿌리를 좀먹고 있다고 한 그 부분이었다.
세계수의 넘치도록 푸르른 생명력과 달리, 뿌리 중 가장 작은 것 하나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실로 작은 부위였기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위그드라실의 말을 듣고 집중해서 보니 확실히 저 뿌리에서는 아무런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익숙한 독기(毒氣)가 느껴졌다.
“이건…?!”
베라스가 카르마의 몸에 박아 넣었던 광물독(鑛物毒). 바로 그 광물독과 굉장히 흡사한 기운이 느껴졌다.
-너희도 알다시피, 나는 세계수다. 이 대륙의 순리를 주관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지.
그래, 이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순리를 벗어나는 것들에 한없이 약하다. 너희 인간들 기준으로는 아주 오랜 옛날, 나에게 한 남자가 엘프들의 눈을 피해 찾아왔다.
세계수는 당시의 불쾌한 감각이 떠올랐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남자는 이 세상이 혼탁해지기를 원한다 하였다. 이런 세상이 순리라면, 차라리 순리 따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낫다며 내게 다짜고짜 치명적인 독을 주입했지.
“잠깐, 그 당시의 엘프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자신들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세계수가 공격받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그 당시 남자의 무력은 차원을 달리했다. 엘프 사상 유례가 없는 강자로 평가받는 파울로보다도 강했으니까.
세계수는 아끼는 아이들인 엘프들이 전멸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이 계속해서 삶을 이어가길 원했다.
-나는 이 일을 엘프들의 역사에서 지우리라 마음먹었다. 그렇지 않으면, 후손들은 계속하여 이 일로 자책하며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갔을 테니까.
세계수는 남자의 독을 끊임없이 견뎠다고 한다.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도, 그 독이 자연 그 자체를 오염시킬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자연의 순리 앞에 해독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게 실수였다. 그의 독을, 그가 가진 악의(惡意)를 너무 가벼이 생각했던 것이야.
예상과 달리 세계수는 서서히 병들어갔다.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하지만 어느 순간, 몸집을 불려간 독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속도를 붙여갔다.
‘베라스의 광물독이 가진 특성과 똑같아.’
-다행히 수십 년 전,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던 카르마가 이 상황을 알고는 나에게 자연(自然)의 치유를 걸어주었다. 그리고 남자가 나에게 걸었던 악의(惡意)를 추출하여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냈지. 그럼에도 모든 독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이쯤 되면 놀랍지도 않다. 자신의 것도 아니고 타인의 삼라만상을, 그것도 세계수에 남겨진 파편만을 뽑아내서 비급으로 엮어 내다니.
옥좌의 위를 노닌다는 청익(靑翼)의 명성은 과장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축소된 면이 있다고 보아야 했다.
-카르마의 도움으로, 나는 최상급 정령들의 관리만 잘 받는다면 남겨진 미량의 독이 더 이상 번지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전제가 달려 있는 치료였다. ‘정령들의 관리를 잘 받으면’이라는 전제가 말이다.
“…장로들에게 욕망이 생겨버린 이상, 정령들의 관리가 잘될 수가 없게 되었군요.”
-그렇지. 그러니, 저들의 보살핌은 더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저들이 부리는 정령은 이미 저들의 탁기(濁氣)에 노출된 상태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하면 그뿐이었다.
나는 애쉬를 돌아보며 말했다.
“애쉬, 엘룬하임에 최상급 정령을 다룰 수 있는 다른 엘프들이 있나?”
하지만 내 질문에, 애쉬가 곤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최상급 정령은 그렇게 격이 낮은 존재가 아니야. 정령왕을 소환할 수 있는 여왕님을 제외하고, 최상급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엘프는 육대장로님들뿐이다. 나 역시, 아직은 상급 정령까지가 한계고.”
그 말인즉, 세계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장로들이 다시금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망할. 그럼 그렇지, 어쩐지 쉽게 간다 했다. 내 팔자에 무슨.
“위그드라실 님,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그… 한 가지 방법이 더 있기는 하다만….
세계수의 영체인 소녀가 볼을 긁으며 곤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곤욕스러울 게 뭐가 있는가. 얼른 해결해 버리면 될 것을!
“저 장로들이 정신 차리길 바라는 건 쉽지 않으니, 다른 방법을 택하든지 해야죠. 뭡니까, 그 방법이?”
-…내 독의 근원을, 잘라내는 것이다.
“…….”
잠깐이지만,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걸 거부했다.
“어… 그러니까 그 말씀은….”
스윽!
영체가, 자신의 시든 뿌리를 가리킨다.
-이 중독된 뿌리를 제거하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뿌리는 오랜 세월, 당시 남자가 심어두었던 독에 중독되어 이제 나의 심상(心想)을 벗어났다. 이 뿌리는, 그 남자의 심상에 지배되고 있지.
어째 계속해서 듣기가 조금씩 겁나는 것은 기분 탓일까. 나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누르며 영체에게 물었다.
“…그럼, 저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뿌리를 잘라낸 후 구현화된 남자의 심상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뿌리를 잘라내도, 그 남자의 구현화된 심상은 다시금 내 다른 뿌리에 깃들려 할 테니까. 그렇다면 결국 제자리겠지.
구현화된 남자의 심상이라. 즉, 이런 말이다. 지금 세계수의 영체가 실체화된 것처럼, 세계수를 공격했던 남자의 독은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하나의 격(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위그드라실의 뿌리를 잘라낸다면 그 뿌리가 실체화된다는 의미였다.
무려 세계수를 중독시킬 만큼의 강자였던 이가 말이다.
“…혹시, 카르마 님께서 과거 이 독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습니까?”
청류(淸流)로 이름 높은, 애초에 흑사자들의 대부라 불리는 청익이다. 그런 그가 이 해결책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이 방법을 고르지 않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인데.
-…이 남자의 능력은, 카르마와 완벽한 상극이다. 경지의 고하와 상관없이, 당시의 카르마는 구현화된 이 남자를 제압할 수 없었다. 뭐, 그 후로 수십 년이 흐른 지금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젠장. 역시나.’
지금까지 들은 것으로 유추할 때, 세계수를 중독시킨 남자의 삼라만상을 엮은 비급이 베라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러니 카르마가 베라스에게 당한 것이고. 그가 사용한 광물독과 유사한 기운이 세계수에서 느껴지는 것이겠지.
‘그 남자가 과거의 파울로보다 강하다 하였으니… 최소한 베라스, 그 이상으로 상정해야 한다.’
나는 람팡을 힐끗 보며 승산을 따졌다.
‘이만한 강자를 잡기 위해서는 소수 정예로 싸우는 게 유리해. 나와 람팡만으로는 확실하게 이긴다 말하기 어려워.’
지난 과거, 카르마와 람팡이 모두 베라스에게 당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분명 상성상 베라스에게 밀린다는 의미였으니까.
‘…여차하면, 파울로까지 끌어들여야겠네.’
물론, 이 모든 건 최후의 방법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독을 제거하는 것보다는 장로들을 설득하는 게 훨씬 더 안전하고 수월했으니까.
세계수의 치유도 중요하지만, 당장 나에게는 제국과의 전쟁이 훨씬 더 급선무였다.
자칫 그 전쟁에서 중요한 전력이 될지도 모르는 이들의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세계수를 반드시 치료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장로들을 설득해보는 게 먼저야.’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들을 설득하여 과거처럼 정령들을 통해 세계수를 관리할 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나와 애쉬, 그리고 람팡은 세계수의 영체를 뒤로한 채 엘룬하임의 중심부로 돌아갔다.
아무리 전후 사정을 먼저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엘프들의 땅 엘룬하임이지, 반텐이 아니었다.
우선은 돌아가서, 밀리아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녀의 의견을 듣는 것이 먼저였다.
다만, 우리 모두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
비록 욕망이 깃들었다고 하더라도, 엘프 장로들이 세계수를 경애하는 마음만은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최상급 정령을 다룰 만큼 정령 친화력이 높은 이들이었다.
세계수의 본체는 최상급 정령들의 관리를 받고 있었고, 그 정령들은 뒤늦게 알게 된 진실을 ‘사적으로’ 자신의 계약자에게 알려줄 만큼 친화력이 높다는 사실을.
이때의 우리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작은 실수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도 말이다.
* * *
“그런가.”
-그렇다, 트리스탄. 위그드라실 님께서는 지금 독에 중독되어 있으셨던 것이다.
바람의 최상급 정령, 진.
진은 자신의 계약자인 트리스탄에게 세계수와 인간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알려주었다.
진은 자신의 계약자가 욕망에 잠식되어 자신의 기운이 탁해지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계약자인 트리스탄과, 나머지 장로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세계수의 관리에만 오롯이 다시 집중하기를 바라며 말이다.
그간 지켜봤던, 함께해 왔던 트리스탄이라면 분명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 믿었다.
과연. 반짝이는 트리스탄의 눈을 보며 진은 안심했다.
이로써 자신의 계약자도 마음을 고쳐먹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위그드라실 님의 독을 제거한다면, 더 이상 우리를 막을 이는 없다는 말이렷다?”
-……?!
“정말 잘해주었다, 진. 네 공로는 잊지 않으마. 역시 넌, 최고의 파트너야.”
불행하게도 트리스탄의 반짝이는 눈빛은, 진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