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06)
제206화
드래곤 산맥은 온갖 몬스터들이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자 끝없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지옥이다.
드래곤 산맥에 대한 대륙인들의 인식은 오랜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았고, 사실 그런 인식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제나 사실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처억!
꽃봉오리가 막 피어오르는 생명력 가득한 나무에 손을 짚으며 산을 오른다.
“헥, 헥! 아이고, 죽겠네. 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거야?”
살라딘이 여름날 강아지들처럼 혀를 길게 뺀 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물었다.
살라딘의 물음에 뒤를 돌아 넘어온 산봉우리의 숫자를 확인한 후, 이내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산등성이 두세 개는 더 넘어야 할 것 같은데. 뭐, 조금만 더 힘내라.”
“으에엑….”
질린 표정을 짓는 살라딘. 사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무슨 영역이 이렇게 무식하게 넓어.’
나 역시 내심 하탄과 오크들이 차지한 땅의 크기에 질리고 있었으니까.
그렇다. 불과 10년, 아니 5년 전만 하더라도 드래곤 산맥은 대륙인들의 인식처럼 각종 몬스터들이 아귀다툼을 벌여오던 약육강식의 땅이었다.
하나 하탄과 오크들이 중부의 패자로 자리 잡고, 와이번들이 지배하던 서북부까지 밀어내자.
사실상 남부의 라이칸스로프, 북동부의 키클롭스들을 제외하면 드래곤 산맥 전역에 오크들의 영향력이 닿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하탄이 내게 주었던 단도를 내밀어 오크들에게 보여주자 너무도 편안하게 산맥을 넘나들 수 있었다.
“남작님, 아리아 영애나 세트 공자, 세이라 공주님은 엘룬하임에 쉬시도록 한 게 정답이었나 봅니다.”
곡소리를 내는 살라딘의 등을 밀어주던 베스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죠. 아무리 아군이라고 해도 이런 중요한 기밀을 전부 말해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산맥의 내부까지 들어온 것은 베스킨과 살라딘을 포함하여 나까지 총 세 명뿐이었다.
오크와 키클롭스, 엘프, 라이칸스로프까지. 모두 다 반텐, 아니 나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었다.
이 네 영역을 모두 더하면, 사실상 드래곤 산맥의 거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이미 엘프들과 교역을 하는 것만으로도 반텐의 힘이 커지고 있다며 경계하는 이들이 있는 판국이다.
만약 드래곤 산맥 전체가 반텐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신성제국뿐 아니라 아군인 남대륙의 연맹들조차 우리를 경계할 게 뻔했다.
지금 시점에 아군이라고 하여 반드시 모든 것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신성제국이라는 거대한 적이 사라진다면, 영원한 아군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뭐, 아리아나 세이라가 그런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가족이나, 왕국들까지 같은 마음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아니, 이 드넓은 땅을 실제로 본다면 그들조차도 일순간 다른 마음을 먹을지 모른다.
“그나저나, 자신은 있는 거지?”
뒤편에서 헥헥대며 따라오던 살라딘이 호흡을 고른 후 진지하게 물었다.
“네가 그리는 그림을 완성하려면, 라이칸스로프나 키클롭스도 중요하겠지만 오크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여기서 만약 네가 하탄에게 지면… 엄청 골치 아파진다.”
그 말대로다. 산맥의 대부분이 내 편인 것은 어디까지나 오크들을 포함하였을 때였다.
블리자드 기사단이나 미르온, 미샤까지 모두 엘룬하임에 대기하도록 하고 베스킨과 살라딘 단둘만 동행하여 이 깊은 오크들의 땅에 들어온 이유.
올리비아로 떠나기 전, 하탄과의 막고라를 마무리하여 오크들을 확실한 내 편으로 만들어놓기 위해서다.
비록 와이번을 함께 토벌하고, 발리스타 요새에서 탈출하던 당시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나, 오크들과의 관계는 아직도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완전한 친구라 하기에도, 그렇다고 완전한 적이라 하기에도 말이다.
그러니 살라딘이 저리 말하는 것이다. 혹여라도 내가 하탄과의 막고라에서 패배한다면 오크들에게 걸어둔 ‘금제’가 풀리게 될 테니까.
‘산맥 남부의 인간을 먹지 말라.’는 금제가 말이다.
그렇게 되면, 반텐은 바로 머리 위에 발리스타 요새 외에도 거대한 적이 하나 더 생기게 된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함께 싸웠던 전우를 상대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냐 기겁하겠지만.
“알고 있어.”
건틀릿을 착용한 팔의 손목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지.”
오크는 인간이 아니다. 그들을 인간의 사고로 이해하려는 것부터가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그렇기에 처음 엘룬하임에서 돌아오던 그날 이후, 단 한순간도 결심이 흔들린 적이 없었다.
올리비아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할 일은 바로 하탄과의 막고라를 승리로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 * *
과거 오크들을 대표하던 영광의 부족이었던 은빛 늑대 부족.
하탄은 몰락했던 부족의 고향을 오크들의 본거지로 정하고 그 이름을 야른비드르라 하였다.
야른비드르는 반텐과 가까운 대부락들을 병탄한 것을 시작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시간이 흘러, 작금에 와서는 드래곤 산맥 모든 오크들의 성역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야른비드르.
철걱! 철걱!
온몸에 무장을 갖춘 오크가 야른비드르의 땅을 가로질러 그들의 왕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파창!
“취이익! 무슨, 일인가! 취익!”
달려온 오크를 왕의 친위대가 거대한 블레이드를 들고 막아섰다.
야른비드르는 오크들의 왕이자 가장 강한 전사인 이가 머무는 대지.
그 위대한 공간에 아무나 발을 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달려온 오크가 흥분한 듯이 외쳤다.
“취이익, 인간, 왔다! 왕의, 호적수! 취익!”
“!”
오크의 말에 친위대의 표정 또한 변한다.
왕의 호적수라 불리는 인간.
오크들 가운데 그자가 누군지 모르는 오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엘프들과의 전쟁에서 왕과 가슴이 뜨거워지는 격전을 보여주었던 이.
왕의 철천지원수였던 와이번을 도륙 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이.
지금 달려온 오크와, 친위대가 걸치고 있는 무구를 왕과 오크들에게 선사한 이.
그리고 왕을 포함한 오크들에게 지독한 금제를 걸었던 이.
제롬 폰 카르비어트.
그가 야른비드르를 향해 오고 있다는 말이리라.
“취이익! 그렇다면, 당장 왕께…!!”
“취익, 괜찮다. 이미 안에서 들었으니.”
친위대가 길을 열어주려 했지만, 그보다 하탄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처억!
어깨에 애병, 배틀 액스를 걸친 하탄이 씩 웃으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을 향해 하탄이 도끼를 내밀었다.
사각!
도끼의 시린 날에 닿은 나뭇잎이 두 조각으로 나뉘어 땅으로 떨어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가 진동(振動)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그저 도끼날이 너무나도 예리하여 나뭇잎이 잘렸을 뿐이다.
과거에 사용하던 낡고 이가 빠진 도끼가 아니었다.
키클롭스들의 왕, 아르게스가 직접 제작하여 하탄에게 우정의 표시로 선물한 도끼였다.
“취익! 제롬, 네게는 고마운 일이 참 많다.”
그가 아니었다면 키클롭스와 사생결단의 전쟁을 끝까지 이어갔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종족이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고.
결국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독안의 와이번에게 원수를 갚지도 못했을 것이다.
스윽!
주변을 둘러본 하탄의 독안(獨眼)에 오크들이 걸치고 있는 정련된 무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애초에 제롬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금방 산맥의 패자(霸者)가 되지도 못했겠지.
그러나.
“취이익! 그렇다고 유감이 전혀 없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겠지.”
남쪽은 자신에게 건 금제로 인해 뻗어 나갈 수 없고, 북쪽은 아르게스, 제롬과 합의한 사항으로 또다시 뻗어 나갈 수 없었다.
결국 제롬으로 인해 드래곤 산맥 중부 지역의 패자가 될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제롬 때문에 인간들의 영역으로 조금도 뻗어 나가질 못하고 있었다.
“취익, 약속은 지킨다. 제롬, 네 말대로 머지않은 미래에 북쪽 인간들의 땅을 칠 때는 한껏 도와주지.”
그것은, 종족을 넘어선 친우(親友)로서의 예의였다.
그렇다고, 이번 막고라에서 제롬에게 일부러 져주거나 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전력을 다하여 부딪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약 제롬이 패배한다면, 하탄은 금제가 풀린 남쪽 지역의 인간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침략을 개시할 생각이었다.
비록 제롬의 아버지가 있어, 오크들이 큰 피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오크란 종족은 전사인 동시에 약탈자였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는 약탈자.
그리고 자신은 그런 오크의 정점이었다. 그러니, 인간을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동족들의 왕으로서 금제가 풀릴 경우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애당초, 자신의 도끼에 스러질 정도의 남자라면 북쪽 인간들의 땅을 친다는 약속조차 달성하지 못할 그릇이라는 말이었다.
“취익! 어서 오라, 나의 친우이자 호적수인 이여.”
위도가 높아 조금 늦게 봄이 찾아오는 드래곤 산맥.
산맥 중부의 따뜻한 날씨와 별개로, 야른비드르에 자리 잡은 오크들의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 *
따사로운 햇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이렇게 좋은 날이면, 산맥의 정상에서는 반텐이나 발리스타 요새까지도 보이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걸어간 그 길의 끝, 넓은 고원(高原)에는 마치 산맥의 숲처럼 푸르른 이들이 대거 운집해 있었다.
“워우, 저 숫자 좀 봐라. 오크들은 확실히 늘어나는 속도가 남다르네.”
야른비드르에 운집해 있는 오크들의 숫자를 본 살라딘이 질린 눈초리를 지었다.
엘룬하임, 가이아, 죽음의 계곡 등 많은 전쟁에서 셀 수 없을 정도의 오크들이 쓰러져 갔었음에도.
야른비드르에 모여든 오크들의 수를 보면 그 피해를 전혀 떠올릴 수 없었다.
하탄이 나타나기 전, 다른 몬스터들에 비해 약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오크들이 끊임없이 드래곤 산맥에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저것이었다.
쓰러지고, 짓밟혀도 거짓말처럼 또다시 일어서는 강인한 생명력.
하물며 하탄의 치세 아래 쓰러지지도, 짓밟히지도 않게 된 오크들의 생명력은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저 수많은 오크들이 일거에 반텐으로 쏟아진다면, 아무리 천패(天牌)가 지키는 땅이라 하더라도 상당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으리라. 한 손이 열 손을 막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면, 제롬이 지금껏 그려오던 그림은 완전히 끝장날 터였다.
살라딘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옆을 바라보자, 베스킨 역시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 또한 제롬의 협상 과정에 있었던 자로서, 알고 있는 것이다.
오크, 하탄을 죽이지 않고 풀어주었던 것이 제롬이 가진 비장의 카드가 될지, 아니면 최악의 실수가 될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해내라, 제롬. 네가 그리는 큰 그림은 여기서 좌초될 만큼 허접한 게 아니잖아.’
알게 모르게 표정을 굳힌 살라딘이나 베스킨과 달리, 제롬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저벅, 저벅.
고원을 향해 걸어가자, 운집해 있던 녹색 피부의 오크들이 적당히 길을 벌리며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저벅, 저벅.
오크들의 시선이 우리 일행, 아니 나에게 모조리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눈빛에 살의, 분노와 같은 마이너스적인 감정이 가득 차 있느냐 묻는다면… 글쎄.
그런 시선은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열망이나, 기대. 그런 감정에 가까웠다.
그 눈빛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너희들도 똑같구나.’
내게 오크들이 그러하듯, 오크들 에게 또한 나는 완전한 친구도, 그렇다고 적도 아니었다.
종족의 부흥에 도움을 주고, 왕의 복수를 도왔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에게 금제를 건 자이니 말이다.
그런 오크들에게, 이번 막고라는 하나의 축제나 다름없었다.
왕이 이긴다면, 제약 없이 오크들 마음대로 살 수 있었고. 내가 이긴다면, 언젠가 다가올 화려한 전투를 기다리며 산맥에서의 영향력을 키워가면 그뿐일 테니까.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왕이 설욕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결과뿐이었다.
저벅!
녹색 물결의 끝에서, 유일한 주황빛 점을 발견한다.
홀로 주황빛 피부를 띤 하이 오크는 배틀 액스를 땅에 꽂은 채 두 손을 손잡이에 포개고 있었다.
하이 오크이자, 오크들의 왕인 하탄은 내가 도착하자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취이익! 오랜만이군, 제롬.”
“그렇네. 우르크 평야에서 신세를 진 후 처음이니까. 1년 만인가?”
“취이익! 실로 오랜 기다림이었다.”
다른 오크들보다 머리 하나, 아니 둘 이상은 거대한 체격을 가진 하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4년 전, 엘룬하임에서 네 녀석과 싸웠던 이래로 그런 짜릿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취익! 아르게스와의 싸움이나, 와이번에게 했던 복수나. 그 싸움과는, 뭔가가 달랐지. 취익! 그때의 황홀했던 전투를, 생사의 간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사로서의 쾌감을.”
하탄의 터질 것 같은 근육이 꿈틀대자, 땅에 꽂혀 있던 배틀 액스의 시린 날이 태양빛에 반짝였다.
“부디 나에게, 다시 한번 선사해다오. 취이익!”
피식!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음에도, 하탄의 반응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역시, 너희들도 똑같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