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07)
제207화
과거로 돌아온 이후로 많은 싸움을 해왔다.
가문을 배신한 자, 우방국의 반란에 가담한 이들, 그리고 탁류의 흑사자에 신성제국의 기사들까지.
그중 위험하지 않았던 싸움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전생의 경험이 없었다면, 당장 언제 차디찬 바닥에 몸을 눕혀도 이상하지 않은 싸움들이었다.
하나, 그 많은 싸움들 가운데 내게 유일하게 ‘즐겁다’라는 감정을 심어주었던 싸움이 있으니.
바로, ‘하탄’과의 전투였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즐거움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를 쪼개기 위해 날아드는 도끼날이 내 망막을 가득 채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부아아아악!
공기를 가르는 어마무시한 도끼. 아르게스가 직접 공을 들여 만들었기 때문인지 날이 시리도록 예리했다.
그 예리한 날에 하이 오크들의 권능, 진동(振動)까지 담겨 있으니 닿는다면 몸이 그대로 잘려 나갈지도 몰랐다.
그래. 과거의 나였다면 말이다.
떠어엉!
무식한 도끼를 옆으로 피하며 하탄의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도끼날을 후려쳤다.
배틀 액스는 중병기 중에서도 특히나 무거운 병기다.
한 방 한 방의 파괴력은 그 어떤 무기도 우습게 볼 만큼 강한 대신, 쾌속한 공격과 던져진 한 번의 공격을 수습하는 게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무기.
그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사들에게 배틀 액스는 그리 선호되는 무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기사들에게는 좀 더 가벼우면서 무기를 부술 수도 있는 원 핸드 해머가 더 선호되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내가 후려친 하탄의 도끼는 그런 세간의 평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빠른 전환을 자랑했다.
일순 튕겨 나가던 도끼가 방향을 그대로 바꾸며 더욱 가속도를 붙인 채 내 다리를 노려왔다.
쾌애애애액!
점프한 다리 밑으로 쾌속한 하탄의 도끼가 풀들을 베어내며 지나간다.
허공에 뜬 내 몸을, 하탄의 반대 주먹이 정통으로 후려쳐왔다.
공중에서는 방향을 바꿀 수 없기에 노린 일격이리라.
하탄의 거대한 주먹에는 전사력까지 담겨 있었다. 만약 정통으로 맞는다면 그대로 몸통의 뼈가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겠지.
슈르르르르!
하탄의 주먹과 같은 방향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손과 발로 하탄의 손목과 팔뚝을 잡아챈다.
우두두두둑!
인간이었다면 이 한 번의 관절기에 팔이 걸레짝처럼 쥐어짜져야 했음에도, 하탄의 핏줄이 한가득 올라온 팔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종의 한계를 초월한 압도적인 근육이, 하탄의 뼈가 자리를 이탈하지 못하게 단단히 잡고 있는 것이다.
부우웅!
팔을 휘저은 하탄의 힘을 이용하여 그대로 먼 바닥에 착지했다.
착지하기 전 이미 거리를 좁힌 하탄의 도끼가 세 방향에서 동시에 내 목, 어깨, 몸통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흥!”
피하려면 피할 수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부우우우우!
황금빛의 오러가 내 전신을 물들이며 하탄의 진동 섞인 도끼의 진로를 방해했다.
하탄의 세 방향에서 몰아치는 진동이 담긴 에너지를, 부드럽게 역순으로 움직인다.
“!”
하탄의 도끼에서 흘러나오는 응축된 에너지가 방향을 바꾸어 되려 하탄을 향해 날아갔다.
“취이익!”
졸지에 자신의 공격이 본인을 향해 날아오자, 하탄의 도끼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쿠쿵! 쿠우웅!
응축된 기운이 모인 공격과 공격이 부딪치며 고원에 크레이터가 실시간으로 만들어졌다.
4년 전과 마찬가지였다.
하탄과의 싸움은 여전히 원시적이며, 야만적이었고. 또한 과격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하탄과 나의 경지뿐이었다.
“취이이익!”
기운을 상쇄시킨 하탄이 재차 콧소리를 내며 내게 돌진해왔다.
쿠우웅!
월보로 재차 하탄의 도끼를 흘려내며 비어 있는 하탄의 복부를 향해 진각을 밟았다.
뻐어엉!
그대로 맞았다면 복부가 터져 나갔어야 정상인 내 철산고는 하탄의 손에 가로막혔다.
아랑곳 않고 고속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하탄의 턱을 향해 뛰어올랐다.
판크라티온, 승룡격(乘龍擊).
뻐어억!
“취익!”
턱을 얻어맞은 하탄이 비틀거렸지만, 나는 하탄에게 후속타를 연결할 수 없었다.
욱신!
‘갈비뼈가 부러졌나.’
체격의 차이를 이용하여 뛰어오르던 그 순간, 어깨를 막던 하탄의 손이 진동을 품은 채로 내 몸통을 후려친 것이다.
“취이익, 좋구나!”
턱을 얻어맞아 피를 줄줄 흘리는 판국에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하탄의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미친놈. 턱주가리 얻어맞아 놓고 뭐가 그리 좋다고 웃는 거야?”
내 핀잔에 하탄은 더더욱 크게 웃을 뿐이었다.
“취이이익! 네놈 역시, 갈비뼈가 부러진 주제에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하탄의 외침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입가를 만져보았다.
손가락 끝에서 올라간 입꼬리가 만져진다.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하탄의 표정이 곧 내 표정이리라는 사실을.
하탄의 주황색 피부에 좀 더 붉은 빛이 감돈다.
하탄의 상처가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해가 지며, 하탄의 얼굴에 노을이 내려앉은 탓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조차 희미해졌던 것이다.
뒤늦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자 몸 여기저기가 욱신욱신 아려왔다.
하탄의 도끼와 주먹은 피하고 흘린다고 우습게 볼 만한 종류의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내 판크라티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처럼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깨달은 하탄이 도끼를 서서히 늘어뜨렸다.
위이이이이이잉!
이내, 늘어뜨린 하탄의 도끼에서 마치 벌 떼가 우는 것과 같은 소리가 고원에 울려 퍼졌다.
오크들은 오러라는 깨달음의 힘을 쓸 수 없다. 그 대신, 종의 한계를 초월한 압도적인 근력은 무엇이든 베어낼 수 있는 절삭력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이 오크들만의 전유물, 진동.
하탄이 진동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취이익! 시간이 이리 흐른 줄도 몰랐군.”
“동감이야.”
쿠우우우우!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오러의 농도가 짙고, 짙고, 짙어져 마치 먹빛과 같이 검게 물든다.
“취이익! 즐거운 시간은, 언젠가 끝을 마주하기 마련이지.”
“그런 말도 알고 있나?”
이 녀석은 가끔 오크가 아니라 사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취이익! 아쉽지만 이제, 그 끝을 볼 때인 것 같군.”
“그 또한 동감이야.”
처억!
하탄과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세를 낮추며 하체에 힘을 모았다.
하탄은 극한의 근력과 진동을, 나는 오러와 강철을.
가진 바 모든 힘을 끌어모아 충돌을 대비하던 그때, 산등성이 너머로 태양이 수줍다는 듯 그 모습을 감추었다.
고원에 태양을 대신하여 어둠이 내려앉은 그 직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탄과 내가, 전력으로 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앙!
* * *
-캬아아아아악!
도마뱀을 백 배, 아니 수천 배로 확장시킨 것 같은 바실리스크가 석화의 마안을 번뜩이며 다가온다.
눈이 마주치면 먹잇감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바실리스크의 특별한 이능은 죽음의 계곡에서도 꽤나 먹어주는 능력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바실리스크의 상대가 좋지 않았다.
쐐애액!
무표정한 두 인형이 바실리스크의 마안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마치 살아 있는 사람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며 전장을 누볐다.
당연한 일이었다. 석화의 마안은 생명체에게 통하는 이능.
아무리 무서운 능력이라 하더라도, 생명체가 아닌 인형들에게 통할 리는 없었으니까.
파바바바밧!
미미가 ‘실’을 든 채 바실리스크의 다리 밑으로 들어가 반대 방향으로 나왔다.
-크르륵?!
쿠우우우웅!
앞발에서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압박은 바실리스크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촤락! 촤라락!
쓰러진 바실리스크에 대한 기회를 놓치지 않은 미미와 네네가 양쪽에서 ‘실’을 교차하며 마침내 바실리스크의 목을 감아 올렸다.
-키…에엑…!
경동맥을 조여오는 강력한 압박에 바실리스크의 눈이 툭 튀어나올 것처럼 붉어졌고, 바실리스크의 머리는 그 실의 압박을 더 이상 이기지 못했다.
서걱!
떨어진 머리가 툭툭 소리를 내며 우리 눈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왔다.
“네 인형술은 갈수록 무지막지해지는구나.”
바실리스크는 그 위험도가 가히 특상급이라고 봐도 무방한 몬스터다.
그런 몬스터를 가지고 놀다니.
그것도 독이나 암기를 전혀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실만으로 말이다.
‘이 녀석, 정말 많이 늘었는데?’
농담이 아니라 이 정도면, 4후작은 몰라도 10번대 성기사단장들과는 충분히 자웅을 가릴 수준은 되는 것 같았다.
겨우 20대의 나이에 이런 실력이라니.
“오크 로드를 단신으로 박살 낸 괴물한테 그런 소리 들어봐야 별로 기쁘지도 않아, 인마.”
살라딘이 퉁명스럽게 코웃음을 치며 미미와 네네를 회수했다.
“아닌 말로, 너.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니잖아?”
“뭔 소리야?”
“시치미 떼기는. 너, 와이번 내단으로 얻은 기운은 아예 사용도 하지 않았지?”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지. 하여튼 이 녀석은 맹한 것 같으면서도 묘한 데서 날카롭다.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 대체 왜 내단의 힘을 안 쓴 거냐? 그것까지 끌어 올렸으면 좀 더 수월하게 이겼을 텐데.”
맞는 말이다. 처음부터 와이번의 내단이 가진 기운까지 끌어 올렸다면, 사실 하탄에게 질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뭐, 내 힘으로 이겨냈잖아. 그럼 된 거지.”
“생각해보면 진법도 안 썼지. 진짜 이상한 놈이라니까.”
쉬운 길을 굳이 어렵게 간다고 살라딘이 투덜댔지만,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살라딘 공자, 남작님은 호적수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었던 겁니다.”
옆에서 베스킨이 보다 못했는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엥? 예의요?”
“와이번의 내단은 남작님 본인의 힘이 아니지요. 외물(外物)의 힘을 빌려 호적수와의 승부를 더럽히고 싶지 않으셨던 겁니다.”
“그럼 진법은요? 그건 제롬 자신의 힘이니 외물이 아니잖아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살라딘의 물음에 베스킨이 반문했다.
“진법을 펼친다면 남작님께서 훨씬 유리하시기야 하겠죠.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역시. 베스킨이 좀 더 무인으로서의 시선을 가지고 있구나.
“막고라는 오크들의 신성한 결투. 그 결투를 보기 위해 야른비드르에 있는 오크들이 대거 몰려왔습니다. 그런 결투에서, 남작님과 하탄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면 오크들이 과연 납득했을까요?”
서걱!
나무 사이에서 튀어나온 아룡종 한 마리를 더 베어내며 베스킨이 담담히 말했다.
“전사로서의 명예를 살리는 뜨거운 승부를 보았기에, 그 자리에 있던 오크들 또한 승복한 겁니다.”
“흐음.”
태생이 전사가 아닌 살라딘은 여전히 전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자신 또한 사흘 전 제롬과 하탄의 호쾌했던 승부를 떠올리면 지금도 손에 땀이 날 정도이니 말이다.
“야, 저기 또 나온다.”
“…쯧!”
그러니, 제롬이 저렇게 손가락으로 거만하게 지시해도 지금은 참아주는 것이다.
피식.
입으로는 툴툴대면서도 살라딘은 튀어나오는 아룡종들을 착실히 처리했다.
혹시나 부상을 입은 내가 악화될까 염려하는 거겠지.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기실, 살라딘에게 장난스럽게 말하기는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었다.
마지막 순간 펼쳤던 금강야차(金剛夜叉).
4후작의 하나였던 크랭크 후작마저 쓰러뜨렸던 그 기예를, 놀랍게도 하탄의 도끼가 뚫어낸 것이다.
하물며 크랭크 후작과 싸웠을 때보다 더욱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음에도 말이다.
그만큼 하탄의 도끼는 날카롭고, 파괴적이었다.
물론, 내 금강야차를 뚫어내는 과정에서 생긴 빈틈을 놓치지 않고 뻗은 내 주먹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먼저 닿았지만.
자칫했으면 하탄의 도끼에 머리가 쪼개질 뻔한, 실로 한 끗 차이였던 싸움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만한 가치가 있는 싸움이었다.
하탄은 피를 줄줄 흘리며 도끼에 기댄 채로 야른비드르에서 참관한 오크들에게 선언하였다.
-향후, 제롬의 부탁을 들어주고 다시금 막고라를 행하기 전까지는 남부의 인간들을 절대로 노리지 않겠노라!
물론 전제가 깔려 있는 선언이었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신성제국과의 전쟁이 모두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내게 막고라를 다시금 도전하지 않겠다는 말이었으니까.
하탄과의 묵었던 일을 마치고,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은 바로 산맥의 서북부였다.
한때는 하탄의 원수였던 와이번들이 지배하던 땅이었지만, 와이번이 쇠하고 난 후 지금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어버린 땅.
이 땅은 현재 라이칸스로프들의 족장, 루갈이 내걸었던 조건에 따라 젊은 라이칸스로프들의 야성과 투쟁심 향상을 위한 거대한 훈련장이 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끝도 없이 몰려나오는군. 왠지 예전보다 한층 더 많아진 느낌인데?”
각종 아룡종들을 잡아먹으며 죽음의 계곡 최상위 포식자로서의 위치를 자랑하던 와이번들이 사라짐에 따라, 아룡종들의 개체 수 조절이 실패한 것일까.
루갈의 말에 따라 젊은 라이칸스로프들이 자리 잡았다는 리카온으로 향하는 행로에서는 아룡종들이 끝도 없이 달려들었다.
살라딘의 전투 인형 미미와 네네, 그리고 베스킨이 있으니 처리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피로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젠장, 바우칼라크 자식. 그동안 대체 뭘 한… 응?”
투덜대며 리카온으로 향하던 중, 또다시 나타난 아룡종.
살라딘이 한숨을 쉬며 아룡종을 처리하려던 그때, 아룡종의 뒤에서 검은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촤아아악! 철퍽!
검은 실루엣이 손을 휘두르자, 아룡종이 그대로 세 조각으로 쪼개져 나뒹굴었다.
“크르르르르….”
쪼개진 아룡종의 뒤에서 거친 짐승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낸 건, 우리에게도 익숙한 라이칸스로프의 모습이었다.
“…바우칼라크?”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라이칸스로프의 상징과도 같은 은빛 털 곳곳이 검게 물들어 있었고, 두 눈은 충혈되어 이지가 사라진 듯했다.
어째서일까.
이 상황이 어디선가 많이 본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건.
“너도냐!”
“크아아아아아!”
바우칼라크가 괴성을 지르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