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14)
제214화
크라켄을 퇴치한 이후로 올리비아로 향하는 여정에 별다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게 정상적인 일이었다. 서해는 애초에 암초와 해류 때문에 버거운 곳이지, 해상 몬스터가 날뛰는 환경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 지랄맞은 해류에는 몬스터들도 아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겁니다.”
오랜 기간 집중하고 있던 탓일까. 능숙하게 배를 몰던 쟝 폴이 눈이 피곤한지 미간 사이를 꾹꾹 누르며 투덜거렸다.
원양(遠洋) 항해는 많은 체력과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아무리 해로를 천부적으로 파악하는 눈이 있는 쟝이라고 해도, 처음 떠나는 길이니 나침반과 키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본인을 제외하고는 뱃길을 능숙히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잠을 자더라도 쪽잠을 잘 수밖에 없어서 피곤이 누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너무 무심했나.’
“많이 피곤하시죠?”
휙!
그런 쟝을 위해 찰랑이는 액체가 들어 있는 병 하나를 던져주자, 피로에 절어 있던 쟝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아이고, 남작님. 항해 중에 뭐 이런 걸 다. 그래도 모처럼 주신 거니… 흠흠.”
괜스레 겸양을 떨던 쟝이 슬그머니 기대에 찬 눈으로 병의 뚜껑을 열었다.
퐁!
맑은 소리와 함께 퍼지는 향기. 향기로운 향임에는 분명했지만, 냄새를 맡은 쟝의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졌다.
“나, 남작님? 이건…?”
“루나가 직접 만든 특제 포션이에요. 체력 회복에 최고일 테니, 한 잔 쭉 마시고 몸 좀 챙기도록 해요.”
“그… 예. 감사합니다….”
분명 몸에 좋고,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귀한 포션이었지만 쟝의 표정은 여전히 무언가 실망을 감출 수 없다는 듯이 입이 댓발이나 튀어나왔다.
피식!
‘이제 그만 놀려야겠군.’
“장난입니다, 장난. 이따가 저녁에 한잔 걸칠 수 있게 해드릴 테니, 항로만 안정시켜 놓도록 해요.”
“더헙!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쟝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크라켄을 처리한 이후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며칠간 술을 입에도 못 대도록 하자 쟝과 선원들은 밀려오는 금단증상에 실로 버거워하고 있었다.
이제 항로도 중반을 넘어섰고, 큰 문제는 없었으니 조금쯤은 풀어주어야 할 터.
‘게다가, 정리해야 할 것도 있고.’
“아, 물론 과음은 금물입니다. 그 정도는 알고 계시죠?”
“그, 그야 물론입니다! 최대한 안정적인 해류를 타도록 하겠습니다!”
어째 루나의 포션을 마시기 전보다 더 생기가 돌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지글지글!
선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만찬 자리.
배에 실어왔던 고기와, 크라켄을 잡을 때 여파로 바다에 떠올랐던 물고기들이 노릇노릇 구워지며 진한 풍미와 함께 육즙을 뚝뚝 흘렸다.
“크으! 가끔은 이런 것도 좋구만!”
조용히 배의 후미에 서 있는 내게 다가온 살라딘이 입가에 맥주 거품을 묻힌 채 탄성을 내뱉었다.
밤하늘에 박혀 있는 반짝이는 별들과, 바닷바람의 향기가 가득한 배 위에서 먹는 만찬은 육지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색다른 기분을 선사했다.
“고생 많았다. 많이 먹어.”
크라켄 사냥 후 무료한 항해가 계속되자 알음알음 지쳐가던 이들의 얼굴에 활기가 도는 것을 보니 새삼 잘했구나 싶었다.
“흠, 그 이유가 다는 아닌 것 같은데.”
랍스타 다리 하나를 쭉 뜯으며 우물거린 살라딘이 말했다.
“크라켄을 잡은 지 사흘 정도 되긴 했지만, 네 성격상 이렇게 빨리 긴장을 풀 리가 없잖냐. 그러니 다들 술도 적당히 먹고 있는 거고.”
그 말 그대로였다.
쟝 폴과 선원들을 제외하고는 과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쟝과 선원들 역시 다른 이들에 비해 과음할 뿐, 본인들의 역량에 문제가 생길 만큼 마시지는 않았다.
“저치 때문이냐?”
스윽!
살라딘이 슬쩍 후미를 향해 고갯짓을 하자, 나는 대답 대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씨익 웃었다.
“거참,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네. 갈 길 갔으면 그만이지, 왜 자꾸 성가시게 졸졸 따라오는 건지.”
“뭔가 할 말이 있겠지. 그리고 아마 이제 슬슬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거야.”
살라딘이 흘겨보는 곳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사흘을 밤낮없이 쫓아왔으니, 몸이 한계일 테니까.”
“하여튼 음흉한 자식 같으니. 사람이 인마, 치사하게 먹을 걸로 그러는 거 아니야.”
나도 알지만, 어떡하겠나. 이게 제일 효과적인데. 경계심 많은 야생동물들도 지치고 배가 고프면 밥 앞에서 무너진다.
“사람이나 아인족도 결국 크게 보면 동물인데, 뭐가 다를까.”
중얼거리는 내 말과 향긋한 음식 내음이 바람을 타고 바다로 퍼져 나갔다.
* * *
페이는 사흘 밤낮 동안 미친 듯이 수영을 하며 인간들을 뒤쫓았다.
일족을 위해 크라켄을 처치한 인간들이 어떤 놈들인지 확인하기 위해 조용히 따라가며 관찰할 생각이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배들인지 이동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어찌나 빠른지, 바다에서 가장 수영을 잘하는 세이렌 중에서도 빠른 편인 자신이 조금만 천천히 헤엄쳐도 거리가 쫙쫙 벌어졌다.
여유롭게 따라가기는 무슨, 간신히 눈먼 물고기 정도나 하나씩 입에 물고 쫓아가기 바빴다.
심지어 배들은 밤에도 바람을 타고 천천히 나아갔다. 물론 낮에 움직이는 것보다야 훨씬 느렸지만, 그래도 움직인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쪽잠만 자며 계속해서 쫓아가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망할, 이래서야 관찰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하겠네… 어?’
일족을 위해 막중한 책임감으로 떠났던 그였지만, ‘진짜 우리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돌아갈까?’라는 생각마저 들 만큼 고된 여정에 슬슬 지쳐갈 무렵.
미친 상어 새끼처럼 광란의 질주를 하던 배가 극명하게 속도를 줄였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은은하게 불빛도 올라오는 것이 횃불을 켠 모양이었다.
평소와 다른 배의 모습에, 페이가 자신도 모르게 수면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이내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기가 배에서부터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평소에 자주 맡던 향은 아니었지만, 페이가 익히 알고 있는 향이었다.
육지의 짐승들. 그것들을 요리하여 만들 때 이런 향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페이는 알고 있었다. 이 향을 가진 음식들이 가진 맛을 말이다.
“비, 빌어먹을.”
꼬르르르르륵!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 페이가 주린 배를 움켜쥐며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가뜩이나 지치고 피로한 상태였다. 무엇을 먹어도 평상시보다 훨씬 더 감미로울 지금, 하필이면 평소에 자주 먹지도 못하는 진미(珍味)의 향을 맡으니 뇌가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그래, 과거에도 이런 고기는 ‘그들’이 간혹 선물했을 때나 먹을 수 있던….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식욕에 지배당하기 시작했던 페이의 뇌가 급속도로 차갑게 식어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지금. 내 어깨에 일족의 운명이 달려 있는데.’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그렇지, 고작 고기 몇 점 익어가는 냄새에 정신을 놓으려 하다니, 언어도단이었다.
찰싹찰싹!
자신의 뺨을 격하게 때린 페이가 다시금 의지를 다지려 하던 그때.
첨벙!
배 위에서 커다란 널빤지 하나가 날아와 페이의 바로 앞에 떨어져 물보라를 만들어냈다.
“크윽!”
갑자기 날아온 널빤지가 만들어낸 파문에 바닷물이 들어가 페이가 잠시 눈을 비비는 사이.
“에이, 애꿎은 뺨은 뭐 하러 때려.”
페이의 앞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도대체 언제 여기까지?!
스윽!
갑작스러운 인간의 목소리에 기겁한 페이의 눈앞에 목소리의 주인이 천천히 손을 뻗어왔다.
손을 뻗는 그 모습에, 페이의 눈앞에 과거 고향에서 있었던 참상이 겹쳐졌다.
믿고, 믿고, 또 믿었던 인간.
그렇게 믿었던 인간이 자신의 일족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려, 마치 짐짝이라도 치우듯이 우리에 집어 던져 납치하던 모습이 말이다.
트라우마 때문일까.
황급히 다시 물속으로 도주하려던 페이의 몸이 일순간 얼어붙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아….”
사흘간 자신을 건들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방심한 탓인가. 결국 이리 인간의 손에 잡히게 되다니.
‘스테라 할멈, 미안해…! 부디, 북해에서 잘 살아남기를…!’
이제 곧 일족들과 똑같이 붙잡혀갈 운명을 상상하며 눈을 질끈 감는 페이의 앞에 다가온 손이.
부드럽게, 페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상상했던 고통 대신, 부드러운 손길이 닿아 조심스럽게 눈을 뜬 페이의 앞에.
한 남자가 바다에 떨어진 널빤지 위에 편하게 앉은 채, 다른 손으로 자신에게 무언가를 내밀고 있었다.
남자가 내민 것은 먹을 것이었다. 바로 자신이 정신을 잃을 뻔했던 원흉인, 육지 위 짐승들의 고기 말이다.
“보아하니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인데, 이거라도 먹지 않을래?”
와구와구!!
‘잘 먹네.’
처음에는 바로 다급하게 도망가려 하더니, 해칠 의사가 없다는 걸 보이며 먹을 것을 내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운다.
역시,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는 것만큼 경계를 푸는 쉬운 방법도 없지.
게다가 크라켄의 손에서 구해주었으니, 무의식중에 조금은 경계를 풀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느새 접시 위의 음식을 싹 비운 세이렌이 살짝 거리를 벌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아니, 음식 그렇게 다 먹어놓고 노려보면 정말 야생동물 같잖아.
그 와중에 접시는 또 널빤지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언제 올려놨데.
“…고맙다, 인간. 감사를 표하지. 그런데 내가 따라오는 걸 알고 있었나?”
입가에 채 덜 닦은 고기 기름을 묻힌 채 세이렌이 굳은 표정으로 물어왔다.
“음… 당연히?”
“언제부터 말인가?”
“그야 처음부터지.”
“왜 그동안 모른 척하다가, 이제야 말을 걸었나?”
어째 듣다 보니 심문당하는 느낌에 내가 세이렌에게 반문했다.
“따라온 건 너니까? 도대체 저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따라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 말을 걸었다고 하면, 납득이 되려나?”
“…음.”
세이렌은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침음성을 흘렸다.
할 말이 없겠지. 구해준 사람에게 감사 인사조차 하지 않고 떠난 것도 모자라, 심지어 미행까지 하고 있었으니.
거기다 뻔뻔하게 음식까지 받아먹은 판국에 말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세이렌들은, 예의와 경우를 모르는 종족이 아니었다.
“…그 말이 맞군. 무례를 저지른 주제에, 오히려 따지고 들다니.”
세이렌이 널빤지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내 이름은 페이. 부족한 몸이다만 젊은 세이렌들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 미안하다, 인간. 미행한 것에 대해서 정식으로 사과하겠다. 그리고 일족을 대표하여 일족들의 목숨을 구해준 데에 고마움을 전하겠다.”
됐다.
세이렌의 태도로 볼 때, 여전히 경계를 완전히 풀지는 않았지만 대화를 이어가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래, 페이. 사흘이면 이제 충분히 시간을 준 것 같은데.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왜 따라왔는지.”
솔직히 크라켄을 구해준 후, 세이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감사 대신 경계를 표했고, 그대로 멀어져갔다.
내심 괘씸했지만, 어쩔 수 없다 여겼다. 대신 블리자드 기사단의 실전에서의 해전 능력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나쁜 결과는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게다가, 남해의 환경에서만 살 수 있다 알려진 세이렌들이 서해를 넘어 더 위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건 그만큼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런데 또 이렇게 꼬리에 붙은 것은, 아마 자신들을 구해준 우리가 어떤 자들인지 확인해 보겠다는 의미였겠지.
제법 머리를 굴리긴 했지만, 그래봐야 순진한 아인족이다. 저 더러운 인간 세상에서 구를 만큼 구른 인간들의 안목을 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실은, 그대들이 믿을 만한 인간인지 알아보기 위해 따라왔다. 만약 그대들도 우릴 노렸다면, 그냥 떠나는 우리를 보고 무언가 음모를 꾸밀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지금도 보라. 지치고 힘들 때 음식을 내밀었다는 이유로 저렇게 쉽게 속내를 털어놓지 않느냔 말이다.
“그대들‘도’라. 지금 너희가 남해를 떠나 북상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 건가?”
끄덕.
페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
“사실은….”
페이의 입에서 길고 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세이렌들의 고향인 남해의 작은 섬, 이타카.
인간들의 항로에서 멀리 동떨어진 탓에, 이타카는 세이렌들만의 안락한 보금자리로 오랜 시간 존재해왔다.
간혹 멀리 헤엄을 치다 곤경에 빠진 인간들의 배를 보면 도와주기도 하며 유유히 시간을 보내던 세이렌들은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며 매일매일 같은 일상을 보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의 신, 에기르가 노했다고 생각될 만큼 유례가 없는 거센 폭풍우가 치던 날이었다.
해로(海路)라는 것이 무색해질 만큼 바다가 미쳐 날뛰던 밤이 지나자, 그 미쳐 날뛰던 바다의 여파로 세이렌들의 안식처인 이타카에 낯선 배 한 척이 다가왔다.
거기까지 이야기하더니, 페이의 꽉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 배를,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페이는 지금도 한이 된 것인지, 눈가가 붉게 충혈된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들의 고향, 이타카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한 척의 배에 대한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