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13)
제213화
“…….”
이 상황을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해보자. 분명히 문어는 세이렌들을 잡아먹으려 공격하고 있었다.
세이렌을 보호하고 있던 문어를 우리가 해치운 게 아니었다.
설사 인간에게 적대적인 종족이라 하더라도, 이런 위기 상황에서 구해준 경우에는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게 먼저일진대.
인간 친화적인 종족으로 정평이 난 세이렌에게 이런 눈빛을 받고 있으니, 내가 혹시나 세이렌들을 지키던 문어를 멋모르고 때려죽인 건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만큼 지금 세이렌들이 보내는 시선은 내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윽!’
고민하고 있던 그때, 아리아와 세이라 공주가 만들어 주었던 공기막이 조금씩 쪼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10분이란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던 것이다.
블리자드 기사단원들의 공기막 역시 한계 시간이 다가왔는지, 하나둘씩 물 밖으로 몸을 빼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어째서 저런 눈빛을 보내는지 세이렌들과 대화를 해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람팡의 등을 가볍게 두들겨 신호를 보내자, 람팡 역시 기사단원들과 마찬가지로 물 밖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페이는 황금빛을 내뿜으며 크라켄을 처치한 은인에게 일족을 대표하여 인사를 건네려 했다.
하지만 거센 물보라와 크라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가라앉고 드러난 은인의 정체에 헤엄치던 꼬리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인간…!!’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일족들 모두가 크라켄이 쓰러졌을 때 보이던 기쁜 모습은 어디 갔는지, 하나같이 크라켄에게 쫓길 때보다 더욱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간들과 더불어 살아갔다, 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인간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던 세이렌들이었지만.
오랜 세월 인간들에게 쌓아왔던 그 ‘호의’에 뒤통수를 맞아 정든 고향마저 등지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다. 하물며 일족의 생존을 위협하던 크라켄을 순식간에 처치할 만큼 강한 인간들이었다.
저들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고향을 등지게 만들었던 그 인간들보다 더 심한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스테라 할멈, 일족들을 데리고 멀리 피해 있으십쇼.
물속에서 보내는 세이렌들의 고유 음파로 일족의 큰 어른인 스테라에게 의지를 보냈다.
크라켄에게 붙잡혔다가 풀려난 일족들의 상처를 돌보고 있던 세이렌, 스테라는 갑자기 날아온 페이의 음파에 깜짝 놀랐다.
-뭐라? 네 녀석, 뭘 하려는 게냐? 설마,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스테라는 괜히 일족 중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듯이 페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
페이는 침묵으로 스테라의 질문에 긍정했다.
-어리석은 생각 하지 말아라! 인간은 믿을 수 없다. 인간을 믿었기에 우리 일족이 지금 이 지경에 빠졌건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게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스테라의 호통에, 페이는 이를 악물며 되물었다.
-그럼, 이대로 북해에 숨어서 천천히 얼어 죽어가는 게 답입니까?
-……!!
-어차피 이대로는 일족에게 미래가 없어요. 그러니 저 혼자만 가겠다는 겁니다. 만약 잘못된 판단이었다면 저를 버리고 떠나십쇼.
페이 역시 스테라가 뭘 걱정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인간을 믿었기에 일족이 지금 이 지경에 빠진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지금 일족의 위기를 이겨낼 방법이 없었다.
페이의 눈이 물 밖으로 올라가는 인간들을 따라 바다 밖으로 향했다.
-지금은, 크라켄을 처치한 저들이 ‘좋은’ 인간이라 믿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잖수.
-…….
스테라는 아까와 달리 페이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스테라 역시 아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의 방법임을.
-일족들이랑 일단 멀리 피해요. 만약 저들이 우리에게 나쁜 마음이 있다면, 분명 추격자를 보내든지 하겠지.
페이의 제안은 분명 합리적이었다. 자신들을 놓쳐 분통을 터뜨린다면, 고향의 그 인간들과 다를 바 없는 이들이라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그리되면 홀로 남은 페이는 훨씬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될지도 몰랐다.
한동안 말이 없던 스테라는 결국, 힘겹게 한마디를 꺼냈다.
-…부디, 조심하거라.
사적으로는 사랑하는 손자였지만, 공적으로는 일족의 가장 큰 어른과 일족의 젊은이들을 이끄는 리더의 관계였다.
둘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할지는, 너무나도 명백하였다.
일족과 함께 서서히 물러가다 뒤돌아보는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며 페이가 애써 웃어 보였다.
-걱정 마슈, 할멈. 크라켄 손에서도 살아남았던 나요.
일족들이 점으로 보일 만큼 멀어진 걸 확인한 페이가 머리 위에 떠 있는 배를 바라보았다.
‘자, 인간들. 네놈들이 무슨 꿍꿍이인지 보여 봐라.’
말은 이리 호기롭게 했지만, 페이는 크라켄을 처리한 인간들이 좋은 인간이기를 간곡히 빌고 또 빌었다.
북해의 차가운 바다를, 일족들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 * *
“푸하!”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 라빈스가 가장 먼저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라빈스의 뒤를 이어 써리원과 단원들이 하나둘씩 머리를 내밀며 올라왔다.
갑판에서 내려온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그들의 눈빛에서는 아직도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았다.
비록 반텐에서 발리스타 요새와의 국지전이나 산맥의 몬스터들을 수도 없이 처리한 베테랑인 그들이었지만, 바다에서의 실제 전투는 그들 또한 처음이었다.
도즈마리 호수에서 수없이 많은 훈련을 겪었다 한들, 그것이 어디 실전과 같겠는가.
일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해적들과의 일전을 생각하면 다소 긴장하던 것도 사실이다. 비록 그들이 기사는 아닐지언정, 그들이 약했다면 대륙의 금지(禁地) 중 하나로 손꼽혔을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들은 충분히 강했다. 또한, 자신들의 주인은 더더욱 강했다.
베스킨과 달리, 블리자드 기사단은 제롬의 신위를 제대로 본 것이 처음이었다.
물론 제롬이 똑똑하고 수많은 임무들을 깔끔하게 처리해온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직접 눈으로 본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빈스는 제롬의 손에 맴돌던 가공할 황금빛의 기운에서 느낀 전율이 가시지 않았다.
“부단장님. 이거, 올리비아에서의 생활이 기대되지 않습니까?”
라빈스가 바로 밑에서 들려오는 써리원의 목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자, 흥분이 가시지 않은 써리원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의 표정 또한 써리원과 다르지 않으리라.
“그래, 아주 기대돼서 죽겠다.”
씨익 웃는 라빈스와 블리자드 기사단의 단원들. 그들의 머릿속에 세이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방금 전 있었던 첫 전투를 복기할 뿐이었다.
“기사들의 솜씨가 생각보다 대단하네요.”
기사들의 뒤를 따라 물 밖으로 나온 나는 베스킨에게 솔직한 감상을 얘기했다.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남작님과 람팡 님의 첫 일격이 워낙에 대단하셔서 그런 것이지, 별것 아닙니다.”
베스킨은 겸양을 떨었지만, 표정에서는 단원들의 실력에 대한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요, 정말로 대단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이건 빈말이 아니었다. 물은 생각보다 낯설고 위험한 환경이다. 육지와 달리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으며, 호흡 또한 제한적이다.
그런 환경에서 비록 공기막을 둘렀다고 하나, 그 상태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긴박한 전투를 벌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괜히 소사(燒死)와 익사(溺死)가 인간의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손꼽히는 것이 아니다.
물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는 물론, 반텐에서는 볼 수 없는 처음 보는 거대한 해양 몬스터와의 전투였음에도.
블리자드 기사단은 너무도 훌륭하게 제 역할을 수행해냈다.
거기다 그 꼬챙이.
일반적으로 기사들은 롱소드와 랜스, 그리고 메이스와 같은 정통적인 무기를 사용하며 그 외의 무기는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그것이 기사로서의 자부심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았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암살자들이나 쓸 법한 꼬챙이를 거리낌 없이 다루는 모습은 역으로 나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임시방편으로 다룬 것이 아니다. 그렇다 보기에는 문어의 머리를 꿰뚫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필시 오랜 시간 손에 익도록 단련하고, 또 단련한 것이 분명했다.
‘나 혼자만, 노력한 게 아니었구나.’
합격술을 익히고, 선상 박투술을 익히고, 수전에서 부력을 줄이기 위한 각고의 고심 끝에 꼬챙이를 선택했을 것이다.
은연중에 블리자드 기사단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
저들은 이미 훌륭하게 자신의 몫을 다할 수 있는, ‘함께 걸어갈’ 동료들이었다.
그래. 살라딘이나, 세이라 공주 등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푸하!”
내가 뒤늦은 반성(?)을 하고 있을 때, 람팡이 마지막으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람팡 님, 꽤나 늦었네요.”
“아아. 미안, 미안. 저 문어 대가리한테 혹시나 내단이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나를 물 밖으로 올려놓고 황급히 다시 내려갔던 건가.
“그래, 배 속에 뭐라도 있던가요?”
내 질문에 람팡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아무것도 없었어. 용종(龍種)이랑 다르게 저 자식은 그냥 덩치만 큰 무식한 괴물이었던 모양이야. ‘격’을 쌓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어.”
“뭐, 그렇겠죠.”
기대가 없었기에 그런가, 딱히 아쉬움도 없었다. 내단이라는 게 애초에 그렇게 개나 소나 다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 참, 세이렌들, 전부 다 그냥 떠나던데?”
문어의 시체를 오랫동안 살펴보느라 수면 아래에서의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았던 람팡이 첨언했다.
“아까 눈빛이 영 호의적이지 않긴 하더라니….”
이번에는 람팡과 달리 내가 입맛을 다셨다.
경계하던 그 모습을 보았기에, 잘하면 그냥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로 아무런 말도 없이 가버리다니.
세이렌들의 전승과 일화들을 생각하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괜히 힘만 뺀 것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홀랑 가버리냐. 고맙단 말 한마디 하기가 그렇게 어려워?”
오히려 람팡이 분통이 터진다는 듯이 씩씩거렸다.
기껏 수왕(獸王)의 힘까지 끌어 올려서 밥값 한다고 나섰는데 내단도 못 얻고, 감사 인사조차 듣지 못하니 심통이 난 것 같았다.
자신의 사저(師姐)는 싸울 때는 누구보다 든든한 이였지만, 이럴 때는 또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내가 뒤쫓아 가서 따져볼까? 인사라도 하라고?”
푸핫.
결국 못 참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뭐야, 그 웃음? 묘하게 기분 나쁜데?”
“아서요, 람팡 님. 엎드려 절 받는 게 무슨 의미예요? 괜히 반감만 더 생기지.”
“그래도 그렇지.”
얼굴색을 보니 붉은 것이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이 먼 타지까지 도주해온 것만 봐도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오죽이나 심적으로 몰렸으면 그랬겠어요. 게다가.”
람팡을 다독이며 갑판 위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이 싸움에서 다른 많은 것들을 얻었으니까요.”
갑판 위의 기사들의 눈빛에 깃든 자신감.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전투의 의의는 충분했다.
* * *
‘뭐, 뭐야? 이렇게 그냥 간다고?’
인간들의 눈이 닿지 않을 만큼 깊은 곳에서 유심히 배를 지켜보던 페이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크라켄을 처치하고 물 밖으로 나간 인간들의 배가, 일족들이 멀어진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경계하며 멀어진 세이렌들의 행동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페이의 삶 속에서 처음 보는 유형의 인간들이었다.
지금껏 그 어떤 인간들도 세이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호의와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오든, 아니면 ‘그들’처럼 탐욕의 욕망을 숨긴 채 다가오든.
반드시 어떤 감정을 가지기 마련임에도, 이들은 자신들을 마치 무생물 보듯이 떠나갔다.
그 낯선 반응에 페이는 오히려 이 인간들에게 맹렬히 호기심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아니야, 아직 속단해서는 안 돼.’
인간들은 믿을 수 없다. 이것조차 하나의 계산된 행동이 아니란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자신의 판단에 일족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모든 경우를 대비해도 결코 과하지 않았다.
‘조금 더 면밀히 관찰해본 후에 판단해야… 응?’
자신이 고민하며 망설이는 사이에도 점점 배가 멀어져가는 것을 깨달은 페이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황급히 배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확인해보자. 이들이 어떤 인간인지.’
어쩌면 자신의 행동조차 이미 계산한, 교활함의 끝을 달리는 인간들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순수하게 호의로 자신들을 도와주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미련 없이 떠나갈 만큼 훌륭한 품격을 갖춘 인간들이라면.
위기에 빠진 일족들을, 구원해줄 수 있지 않을까.
페이는 실낱같은 희망과 바람을 가슴에 품은 채 씨마리아호 주변을 맴돌았다.
그렇게, 올리비아로 향하던 씨마리아호에 낯선 손님 하나가 동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