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57)
제257화
그레이스의 명에 따라 선봉을 맡은 아이언메이든 해적단의 범선들이 대열을 바꾸어 좌우로 넓게 산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뒤이어 다가오는 좌익과 우익이 포진해야 할 자리를 침범하게 되었다.
“뭐, 뭐야! 저 미친놈들이 감히!”
우익을 맡은 버커니어 해적단의 부선장, 놀란드는 자신들의 영역까지 은근슬쩍 뻗어오는 아이언메이든 해적단의 움직임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아까 중앙 전열에서 뿜어져 나왔던 막대한 기운은 자신 역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저놈들 생각은 안 봐도 뻔히 알 수 있었다. 적들의 전력이 중앙에 대부분 모여 있는 것 같으니, 주위에 매복해 있는 부실한 물개들을 잡으며 공만 챙길 생각이겠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버커니어 해적단이 선봉을 맡았고 전력을 확인했다면, 자신 또한 똑같은 판단을 내렸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아이언메이든 해적단의 판단이 용서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레이스, 이 도둑고양이 같은 년!”
빠득빠득 이를 가는 놀란드.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올리비아 해군 좌측 전선으로 향한다.
“이 중요한 순간에, 이 얼빠진 인간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채 해적단의 배들이 다가가기도 전에 혼자 튀어 나가버린 선장. 선장을 떠올리며 놀란드가 신경질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하는 거야! 속도를 올리지 않고! 진군해! 멍청히 있다가 저 도둑고양이들한테 공을 다 빼앗길 생각이야!”
전공도 전공이지만, 지금의 위치도 문제였다.
북령, 파르달이 홀로 적진으로 뛰어든 상황.
이 상황을 아이언메이든 해적단이 알 리가 없었다.
즉, 그들이 대열을 바꾸며 끼어드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북령과 버커니어 해적단이 분열된 것이다.
“설마 선장이 당할 리야 없겠지만….”
명색이 해적단 선장이니, 계속해서 홀로 던져둘 수도 없는 일. 놀란드는 계속해서 선원들을 다그쳤다.
* * *
“드레이크 선장. 꼬마 계집이 선단을 반으로 나누는데요?”
가디크 해적단의 부선장, 에브리가 중견의 앞에서 갈라지는 선봉을 바라보며 말했다.
“흠, 아까 전 그 기운의 주인 때문인가 보군.”
오말리의 오러를 찢어버린 기운은 흡사 한 마리 광폭한 야수나 다름없었다.
자신조차 등줄기가 오싹해지던 기운에 드레이크 역시 확신할 수 있었다.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분명 왕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자가 있다고 말이다.
“적어도 싸움에 있어서의 감각은 탁월한 계집이야. 저 판단은 지극히 현명한 선택이다.”
사령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우회를 택할 수 있는 이는 분명 오말리뿐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왕이 그녀를 선봉으로 세운 것이다.
만약 그녀의 손에 부서질 전력이라면 델로가 저기에 있을 리가 없었고.
그녀가 옆으로 빠진다면, 그녀가 감당키 어려울 정도의 전력이 저곳에 있는 것이니까.
“흠. 괜찮겠어요, 선장? 이대로라면 선봉의 빈자리에 우리가 그대로 처박아야 할 텐데.”
에브리가 눈살을 찌푸린다. 비록 가디크 해적단이 사령 중 최강이라고 하나, 그렇다고 옥좌에 오른 이가 포함된 전력을 아무 피해도 없이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자칫 사령의 순위가 바뀔 만큼 큰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선장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도저히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었기에,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피식!
그런 에브리의 속내를 드레이크라고 모르지 않았다.
“괴물은 괴물끼리 붙어야지. 우리는 대장선 주변의 잔챙이들을 정리한다.”
젊음이란 좋은 것이다. 전공이라는 허울뿐인 것을 위해 스스럼없이 적들에게 돌격할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해 주니까.
“속도를 늦추면서 좌현으로 빠져 후방의 왕을 위해 길을 열도록. 그리고 내가 볼 때….”
좌측으로 향한 드레이크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어쩐지, 좌측 전장에 우리가 나설 일이 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 * *
“아이언메이든 해적단이 함대를 반으로 나누었습니다, 선장.”
서령의 범선들이 좌익과 우익의 항로를 침범하며 그 범위를 넓히는 모습은 머메이드 해적단의 눈에도 훤히 들어왔다.
그 모습을 바라본 텟사이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
“놈들의 대열이 우리 항로까지 횡으로 넓게 펼쳐진 지금이야말로 뒤통수를 치기 가장 최적의 순간입니다, 선장.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해요.”
“…….”
마르텔은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눈을 감은 채 고요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선장!”
그 고집스러운 모습에 텟사이는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다시 한번 다그치려는 그의 어깨에, 누군가의 두툼한 손이 올라와 만류했다.
“보니….”
“그만해라, 텟사이. 판단은 오롯이 선장님의 몫이다.”
“이렇게 갈팡질팡해서는 아무것도 안 돼! 탐욕스러운 돼지의 뒤통수를 후려치든, 아니면 풋내기 남작의 뒤통수를 갈기든!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아이언메이든 해적단이 대열을 바꿈과 동시에 속력을 올리는 버커니어 해적단과 달리 이쪽의 속도는 여전히 더디기만 했다.
아니, 오히려 처음 출발보다 더 느려진 것만 같은 속도였다.
이미 이 기이한 진군 속도에 눈치 빠른 몇몇 해적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있으면 동령, 그 노친네의 가디크 해적단까지 앞서가게 생겼어! 그럼 전부 끝장이라고!”
아무리 전략에 어두운 자가 많은 해적들이라고 하나, 그 정도까지 배의 움직임이 기이해진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모두가 눈치챌 것이다.
해적들도, 올리비아 해군들도 말이다. 양측으로부터 모두 의심을 받는 골 때리는 상황을 조우하게 되리라. 그러면 끝이다.
올리비아 해군이 이겨도, 군도가 이겨도. 머메이드 해적단은 어느 쪽에서도 불신의 눈초리를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아까 그 기운, 보니랑 선장도 분명 느꼈을 거잖아! 승산이 있다고, 정말로! 아니, 좋아. 차라리 돼지가 이길 것 같다면 지금이라도 속도를 올리기라도 하자고, 제발!”
“…….”
보니는 텟사이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오말리의 검격을 막아낸 기운을 느꼈으니까. 그야말로 전율할 수밖에 없는 힘.
그렇기에, 그 또한 선장의 선택을 내심 원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끝끝내 텟사이의 외침에 고개를 저었다.
해적단의 모든 결정은 선장이 내릴 일이었으니까.
“…빌어먹을!”
“…텟사이, 보니.”
그런 두 부선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르텔이 마침내 눈을 떴다.
“딱 두 가지만 물어보겠어, 첫 번째. 이게 정말 최선이라고 생각해?”
“적어도 선장이 선택하려던 방법보다는 백배 낫죠.”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 바보의 의견처럼 선장이 원래 생각했던 방법보다는 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내 선택이 그렇게 보였구나.”
헛똑똑이였구나, 정말로.
꽈아악!
해적답지 않게 레이피어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마르텔이, 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쥔다.
“두 번째 질문이야. 잘 생각하고 대답해…. 그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다 죽거나, 아니면… 미래의 내가, 바뀔지도 몰라.”
마르텔의 질문에 텟사이와 보니의 입꼬리가 동시에 쭈욱 올라간다.
“바다 사나이는 찌질하게, 자기가 내린 선택에 후회하고 그러지 않습니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텟사이.
“흐음, 선장이 바뀐다라…. 별로 상상은 안 되지만, 만약 그렇다면.”
잠시 고민하던 보니가, 마르텔을 향해 금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선장 볼기짝을 때려 주겠습니다. 어렸을 때처럼.”
흔들림 없는 두 사내.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던 선원들의 신뢰가 가득한 눈빛.
그 눈빛에, 마르텔은 마침내 고민을 끝낼 수 있었다.
챙!
“…전 선단, 속력을 높여. 목표는 아이언메이든 해적단.”
레이피어를 뽑아 든 마르텔이 전면으로 천천히 검을 내린다.
“올리비아를 도와, 오말리를 친다.”
* * *
처음에 와이번의 천성을 무시하고 성벽만 부수려 했을 때는 천성에게 사지가 갈려 나갔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오러와 판크라티온을 펼치며 와이번의 공격을 비껴내고, 흘리고, 받아치는 과정 속에서.
와이번이 내게 미치는 피해는 점점 줄어들어 갔다.
다리 하나, 팔 하나.
그리고 올리비아 해군의 범선에 올라탔을 때는 마침내 자그마한 생채기 하나만 남으며 벽의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연 심상의 세계.
콰아아아아아앙!
마침내, 나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부서져 내렸다.
-…흥. 인간, 이제야 끝난 거냐.
“어. 이번에는 따로 귀찮게 안 구네?”
지난번 심상의 세계에서 내게 생채기만 남겼던 이후로, 와이번의 천성은 성벽 위에서 내가 벽을 깨는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누굴 바보로 아는가. 네놈이 나를 상대로 네 기술을 갈고닦는 걸 알고도 네놈 좋은 일을 시켜줄 성싶으냐.
“그런 것치고는 지금까지 줄기차게 방해해 놓고는.”
-캬아아아악!
천성은 짜증이 난다는 듯이 괴성을 지르다가, 이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돌렸다.
-…관둬라. 어차피 더 이상 내가 막아봐야 소용도 없을 테니.
천성은 처음에 드러냈던 흉포한 성정이 낯설 만큼 차분해진 상태였다.
“어째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이미 벽을 넘은 자에게 저항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누가 이 모습을 보고, 이 와이번이 하탄과 생사의 대결을 했던 그놈이라고 생각할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네 심상 속에서 존재하는 존재다. 내 원래 몸의 주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천성은 자신을 몬스터와 동일시하지 말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가라, 인간.
“그래, 그동안 즐거웠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와이번의 천성은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아무런 적의도 느껴지지 않는 그 모습에, 나는 나를 가로막던 성벽의 너머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 ‘벽’의 너머를 디디는 순간.
휘류류류류류!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몸속을 충만하게 채워오는 마나의 감각이 느껴졌다.
* * *
“적들의 배가 양측의 날개에 전력을 지원하며 화력을 보강하고 있습니다!”
“제독님의 지휘에 따라 최대한 버티고 있지만,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흐르면 양 날개부터 전부 무너져 내릴 겁니다!”
“참모님! 명령을!”
뿌드득!
곳곳에서 날아드는 보고들을 들으며 드웨인은 이를 악물었다.
정예 해군들이라 칭송받으며 군도의 해적들을 잡아왔던 올리비아 해군이었지만, 아직까지 전장에서 승기를 잡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빌어먹을. 망할 도적놈들이 세기는 정말 더럽게 세구나.’
괜히 군도 해적들이 대륙의 금지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초강자로 손꼽히는 사령이라면, 본인의 자존심이나 명성 때문이라도 중앙으로 밀고 들어오리라 예상했건만.
놈들은 그런 드웨인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철저하게 병력을 나눠 외부를 공략하였다.
“그래, 그렇게 쉽게는 안 당해준다는 거지?”
저 멀리 침몰하는 해군의 범선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 중에는 타국에서 지원받아 이제 막 훈련을 끝낸 신병도, 올리비아에서 격전을 쌓으며 정예가 된 병사들도 있을 것이다.
훈련의 기간은 다르겠지만, 그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지금 올리비아를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단 점이었다.
시야에 닿지 않는다고 저들의 목숨이 흐드러진 꽃잎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 때문이다.’
내 섣부른 판단으로, 저들의 목숨이 허무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주르륵!
너무 꽉 다문 탓일까. 앙다문 이가 깨져 드웨인의 입을 타고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침착하십시오, 참모.”
담담하게 지휘봉을 움직이는 델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어떤 전쟁에서, 그 어떤 대승을 하더라도 아군의 희생이 없는 승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 어린아이들 동화일 뿐이지요.”
펄럭!
그의 지휘에 따라, 전열이 무너진 1선이 후퇴하고 2차로 매복해 있던 범선들이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지휘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희생의 범위는 달라지는 법. 참모가 할 일은 자책이 아니라, 다음 수를 생각하는 겁니다.”
조용하지만 준엄하게 꾸짖는 그 목소리에, 드웨인이 자신의 뺨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래, 정신 차리자.’
애초에 이런 경우도 대비해두고 있지 않았나.
지금 내가 할 일은, 저들의 희생이 개죽음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람팡 님이 자유로우셨다면, 유동적으로 전력을 보강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해.’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드웨인의 마음속 생명의 저울은 저 해군들 전원의 목숨보다 델로의 목숨을 더 높게 쳤다.
눈을 감았던 드웨인의 눈이 천천히 떠진다.
“양측의 2선 부대도 천천히 퇴각시키세요. 진짜 매복 부대가 들키지 않도록… 천천히.”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각오한 판단.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짜 매복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까.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이 계획을 짰을 때부터 상정한 피해였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배의 난간을 부여잡은 드웨인의 손은, 단호한 목소리와 다르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치 지금 이 순간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해군들처럼, 끊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