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90)
제290화
마하슈트라 석굴은 악신, 샤바가 그 거체(巨體)를 뉘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장소다.
즉 사람들이 그런 신화를 상상할 정도로, 석굴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 크기도, 깊이도 말이다.
석굴의 내부는 한 점의 햇빛조차 들어오지 못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자연히, 석굴의 안쪽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횃불을 들고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
일렁이는 횃불의 작은 불빛에 의존하며 나아가는 조용한 길.
또옥!
“흐이이이이익!”
석굴 천장에 달려 있는 종유석에서 떨어진 차가운 물방울 하나가 머리에 닿자, 기겁한 파록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휴우우우우….”
단순히 물 한 방울이 떨어진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안심이 되었는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파록.
함께 있는 이가 제롬과 람팡임을 감안하면, 전혀 겁을 먹을 필요가 없는 상황임에도 이런 반응이라는 것은.
지금 그의 모습이 꾸민 것이 아니라, 애초에 천성 자체가 겁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째, 생각했던 거랑 이미지가 조금, 아니, 엄청 많이 다르지 않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람팡이 제롬에게 조용히 전음을 보내왔다.
이종의 힘에 대한 재능이 차고 넘친다는 게 파록에 대한 세간의 평이었지만, 파록은 이슈바르 님의 육성을 물려받기 위해 이종의 힘을 익히지 않은 상태였다.
즉, 제롬과 람팡은 파록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전음으로 편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람팡의 의견에는 제롬 역시 동감하는 바였다.
충만한 재능, 그리고 왕국 최고의 명문가 중 하나인 율란 공작가의 차남이라는 빵빵한 배경까지.
이쯤 되면 사실, 오만하지 않은 게 오히려 더 이상할 환경이었다.
하지만 파록의 인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한결같았다.
오만하기는커녕, 평범한 일반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내성적이고 조용해 보였다.
‘…혹시, 율란 공작가에서 파록의 대력을 보내온 것은 아닐까.’
가장 먼저 그런 추측이 들 정도였다.
아니, 추측이 아니라 대역을 보낸 것이 확실하다 여겼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귀한 둘째 아들을 그대로 석굴 안에서 전장에 휘말려 죽도록 내버려두는 게 더더욱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예상 또한 빗나갔다.
처음 파록의 모습을 보고, 제롬과 람팡은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수정구를 꺼내 들어 불칸 후작에게 통신을 연결했었으니까.
그리고 돌아온 후작의 회신은, 놀랍게도 이 소년이 파록 본인이 맞다는 답변이었다.
아니, 오히려 파록의 파격적인(?) 모습을 본 불칸 후작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었다.
이 소심하고 조용한 모습만 보아도 영락없는 파록이라면서 말이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상했던 이미지와 아득할 정도의 괴리감이 존재하는 이 소년이, 파록 슈 율란 본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제롬과 람팡의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아, 하하하… 방금 전의 비명은 제가 생각해도, 조금 많이 사내답지 못했네요.”
파록이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아버님께서도, 제 이런 모습을… 많이 못마땅해하셨지요.”
“아버지와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나?”
“하하, 사이가 좋지 못하다…라….”
파록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전제부터가 조금 틀린 것 같습니다. 저는, 아버지한테… 자식이 아닌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
도구라.
가슴이 무거워지는 표현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는, 사이가 좋지 못할 수도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서로의 마음을 몰라주어 오해하고, 속상할 수 있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파록은 지금, 스스로를 ‘도구’라 표현하였다.
도구에게, 인간관계를 기대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렇기에 파록이 내게 전제가 틀렸다고 말한 것이다.
애초에 도구인 자신과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이야기할 것도 없었으니까.
저 한마디를 듣자, 비로소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을 납득할 수 있었다.
‘…이 녀석, 버리는 패로 선택된 거야.’
애초에 생각의 시작점부터가 잘못되어 있었다.
육성을 이어받을, 재능이 넘치는 ‘사랑하는 아들’을 이 험지에 보낼 리가 없다는 가정부터가 말이다.
하지만 율란 공작이, 이 녀석을 ‘아들’이 아니라 써먹기 좋은 ‘도구’로 판단했다면 지금의 상황에 대하여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었다.
애초에 ‘육성’이라는 이슈바르의 힘을 이어받을 도구, 즉 ‘그릇’으로 생각했다면.
마하슈트라로 제롬과 람팡이라는 거슬리는 장애물을 치울 도구, 즉 ‘쥐덫의 먹이’로 생각했다면.
율란 공작의 납득이 되지 않던 묘한 결정들이,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으로 변모하게 된다.
도구라는 건, 애초에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써먹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너는 이곳에 제 발로 찾아왔지?”
소년의 말에 자연스레 반문한다.
이 소년은, 정말로 자신의 앞에 놓인 위험을 조금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상한 질문을 하시네요. 당연히, 귀곡자 님의 유지를 이어받기 위해서잖아요? 두 분은 감사하게도 제 호위를 위해 귀한 발걸음을 해주신 거구요.”
“…….”
제롬도, 람팡도.
이 소년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단순한 이들이 아니었다.
애써 침착하게 말하려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은은하게 겁에 질려 있는 눈.
저렇게 많은 힌트를 보고도 모른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이 소년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위험과 운명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역시, 안 믿으시겠죠?”
“당연히.”
제 스스로도 제롬과 람팡이 믿어주리라 생각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만약, 정말 만에 하나의 경우겠지만요….”
횃불의 미약한 빛에 은은하게 비친 소년의 얼굴에는, 아주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 남아 있었다.
“제가, 귀곡자 님께서 남기신 유지를 잇는 데 성공한다면… 아버지께서, 저를, 인정해 주실지도… 모르잖아요…?”
“…….”
안타깝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애초에 이만한 재능을 가지고도 ‘도구’ 취급을 받아온 소년이다.
즉, 율란 공작은 처음부터 이 소년을 통해 얻을 것을 명확하게 정해 두었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이 석굴 안에서.
‘…이 아이가 살아 나갈 가능성은, 거의 전무해.’
하지만 람팡도, 제롬도.
굳이 소년에게 그 사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그 선택에 대해, 제3자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제롬 일행은 각자의 생각에 빠져 석굴의 내부로 한참을 움직였다.
얼마나 진입했을까.
우우웅!
세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얇은 장막이 흔들리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제롬 일행이 위치한 곳보다 훨씬 더 깊은, 마하슈트라의 석굴 내부.
마치 드넓은 광장처럼 넓게 펼쳐진 공간의 중앙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휘익, 톡! 휘익, 톡!
넓은 공간이지만, 한 점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그곳에서 작은 빛이 미약한 소리와 함께 오르락내리락하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 빛은 횃불처럼 불규칙하게 일렁이는 형태가 아니라, 스스로 일정하게 발광하고 있었다.
야명주(夜明珠).
그것도 성인의 머리통만큼 거대한 특상품 중의 특상품이었다.
어린아이의 손가락만큼 작은 야명주도 경매에 나오는 족족 그날의 메인 상품처럼 값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이 야명주의 가격이 얼마나 높을지는 굳이 따질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못해도 작은 성 몇 채는 사고도 남을 만큼 귀한 물건을, 남자는 마치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공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자에게 이 물건의 가치는, 답답한 기다림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남자, 베라스가 턱을 괸 채 지루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흐아아아아암. 슬슬 시간이 됐으려나? 이거야 원. 컴컴한 데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려니까 답답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쯧.”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한 베라스가 머리를 괴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이번 일만 끝나면, 이 거지 같은 석굴에 두 번 다시는 들어오지 않겠노라 투덜대면서 말이다.
얼마나 더 야명주를 가지고 놀았을까.
누워 있는 그의 귓가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날개시여.
-어, 말해.
-날개께서 기다리시는 이들이, 석굴의 중간 지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탁!
크로우가 담담히 전달하는 전음의 내용에, 야명주를 가지고 놀던 베라스의 손이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멈추었다.
-…확실해?
이 석굴은 넓다.
너무 넓어서,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베라스나 다른 탁류의 지류들조차 석굴 내부를 모두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되물었다. 만에 하나 길이 엉키기라도 하면, 그들이 준비한 환영 인사가 모두 엉망이 되어버릴 테니까.
-예, 확실합니다. 팔키온이 장막을 넘어가는 감각을 느꼈다고 전해 왔습니다.
벌떡!
크로우의 대답을 들은 베라스가 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류 중 하나인 팔키온의 적을 찾아내는 능력은, 자신과 다른 지류들을 모두 포함해도 발군이었다.
가히 탁류 최고라 하여도 무방한 그의 판단이라면, 더 이상의 확인은 불필요했다.
-정확한 위치는?
-이제, 첫 지점을 넘겼다고 합니다.
석굴에 진입하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지점마다 펼쳐둔 팔키온의 장막.
그중 첫 지점이라면, 아직까지는 석굴의 초입일 터.
-다음 지점에서 갈라지겠군. 어디로 향하는지 확인하고 정확히 보고할 수 있도록. 혹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하면 곤란하니, 파악된 지점에서 환영해줄 수 있도록 하자고.
베라스와 지류들이 확인하지 못한 지형에서 마주치면 곤란하다.
재수 없게 그들도 구경하지 못한 귀곡자의 무덤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리라.
-나는 사제부터 만나도록 하겠어. 너희가 책임지고 그 사나운 짐승 같은 계집애를 묶어두고 있도록.
대륙의 영웅으로 이름 높은 사제다. 그렇다면, 그토록 빛나는 명성이라면.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
그 또한 자신과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단지 친근감에서 우러나온 망상이 아니었다.
멍청하고 답답한 청류 놈들과 달리, 그는 대륙의 수많은 일들에 관여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있었으니까.
행하는 방식이 다를 뿐, 목표하는 대의(大意)는 같을지도 모른다.
‘사제, 부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길 바라.’
그런 기대가 있었기에, 베라스는 람팡이 아닌 제롬을 선택했다.
베라스의 전음에, 잠시 머뭇거리던 크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여도, 되겠습니까?
-푸핫.
크로우의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한 질문에 절로 실소가 터져 나왔지만, 특별히 크로우를 질책하지는 않았다.
과거, 카르마를 추적할 때 람팡을 처리하겠다던 크로우를 말렸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이 빛 한 점 없는 석굴의 환경이, 크로우의 자신감을 뒷받침하고 있었으니까.
크로우의 힘, 귀음(鬼陰)은 어둠 속에서 그 능력이 족히 2배는 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둠과 함께하는 크로우의 힘은, 자신조차도 쉬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위협적이었으니까.
-뭐, 그 또라이 같은 년이라면 쉽게 당해주진 않겠지만… 기회가 와서 죽일 수 있다면, 어디 한 번 죽여봐. 어차피, 그 계집애랑 내가 관계를 회복할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을 테니까.
그 꽉 막힌 늙은이와 뜻을 같이하는 계집이다.
자신의 원대한 뜻을 이해할 생각도, 노력할 의지도 없는 장애물일 뿐.
그렇기에 베라스는 단언할 수 있었다. 그 계집과는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분기 지점에서 팔키온과 그라시아에게 백익이 어디로 향했는지 파악하라 이르겠습니다.
-그래, 그래.
전음을 끝낸 후크로우는 어딘가로 달려갔고, 베라스는 일으켰던 몸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리웠던 얼굴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상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대륙에서 이름 높은 제롬과 람팡이다.
비록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들이 자신과 충분히 손을 섞을 만한 존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서두르지 않는다.
천천히, 심장의 박동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며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 채 그들을 맞이할 생각이다.
“아아. 사제, 사저. 너무 오랜만이야. 정말이지, 너무너무 반가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아.”
간만에 조우할 두 사람을 생각하니 베라스는 벌써부터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모닥불 아래에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그때. 처음 만났던 사제가 차려준 밥을 먹었던 것도 추억이었고.
사저와 함께 어린 세월을 보내고, 그 답답한 꼰대의 뒤를 쳤던 것 역시 추억이었다.
“큭큭큭! 모처럼 이만큼 멋진 무대를 만들어 줬으니까, 어디 한번 신명 나게 놀아보자고.”
석굴의 안쪽, 여전히 야명주의 작은 불빛이 베라스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희미한 빛 속, 어스름하게 비친 베라스는 분명,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