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7)
제7화
이케니아 왕국은 오랫동안 대륙 서남부를 호령해온 강국이나,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상 단 한 번도 제국의 이름을 칭하지 못했다.
이는 이케니아 왕국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말미암은 것이다.
왕국의 서북부 지역은 마수의 숲이라는 금지(禁地)를 포함하여 많은 몬스터들이 사는 드래곤 산맥을 끼고 있었고, 동북부 지역은 대륙 최강 최악의 제국인 신성제국이 떡하니 대륙 북부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국의 동쪽으로는 5국 연합과 대륙 최고의 농업 생산국인 필라도르 왕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5국 연합과 필라도르 왕국은 대대로 이케니아 왕국의 우방으로, 신성제국을 막는 연맹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이러한 안정적인 국제적 상황 덕분에, 이케니아 왕국은 왕국 대부분의 영지가 전쟁으로 소진되는 자원이 극히 적어 항시 튼튼한 국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나, 바꾸어 말하면.
그 ‘대부분’의 영지에 포함되지 않는 북방의 영지들은 서북부의 마수의 숲, 동북부의 신성제국의 움직임을 경계하기 위해 항시 군사력에 많은 부분을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왕국의 방패가로 불리는 카르비어트 백작가는 그러한 북방 영지들의 총본산(總本山)과 같은 곳.
따라서 영지의 경비 또한 삼엄할 수밖에 없었다.
깊디깊은 해자와 높은 외성의 벽은 외부의 어떤 침입도 막아낼 수 있을 것처럼 단단했다.
그리고 그런 백작가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내성이었다.
내성은 당대의 영주인 바쿠스 폰 카르비어트 백작을 포함하여 백작의 여섯 방패, 그리고 후대의 방패가를 이끌 영주의 자식들이 모여 지내는 장소.
이곳이야말로 방패가의 모든 힘이 집결되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방패가의 주요 인물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하나, 평소에는 대부분의 가신들이 각자의 장소에서 영지 내 일을 처리하느라 잘 모이지 못한다.
그 때문에 영주가 직접 소집하는 회의 때를 제외하면 모든 이들이 모이는 것이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회의실에서 그 극히 드문 일이 발생했다. 바로 나로 인해서 말이다.
아마도 후계자 쟁탈전의 권한까지 걸려 있다 보니, 모든 가신들이 함께 판단하는 자리였기에 그런 것이리라.
무려 한 달 만에 아버지를 찾아왔건만, 나는 그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전생에는 그리도 길고 길었던 하루하루가, 지금은 왜 이렇게 짧은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그때와 다르게 매일매일을 최선을 다해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분명 잘….
“도박장에, 약방에,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마지막에는 말을 타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까지… 한 달 동안 아주 화려하게도 보냈더구나. 이걸 예상대로라고 할지, 아니면 예상외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최소한 아버지나 가신들의 눈에는 말이다.
한 달 전, 그래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약간의 기대감이 담겨 있던 모습과 달리 지금은 일말의 기대조차 담겨 있지 않은 모습.
아버지의 좌우로 앉아 있는 여섯 신하들을 필두로 기사들과 마법사들, 그리고 오늘 나를 테스트할 영지의 행정 관리들조차 담담한 느낌이었다.
추측해 보건대, 아마 저들의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영지의 구성원이 아니었을 것이다.
“약속은 약속이니, 테스트는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다.”
이윽고 아버지가 오른손을 까닥하고 움직이자, 아버지의 좌측 테이블 라인에 앉아 있던 뚱뚱한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년인은 게이블 남작으로, 반텐 영지의 전반적인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이였다.
게이블 남작이 콧등에 얹어진 안경알을 들어 올리며 눈앞의 서류를 확인했다.
이윽고, 게이블 남작이 엄숙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제롬 폰 카르비어트, 그대에게 묻는다! 에 따른 영지의 근본에 대하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역시 나왔다. 저 내용이야말로 의 핵심이자 꽃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물어볼 것이라 여겼다. 물론 어렵진 않다.
책에서 말하는 정답은 ‘영지민’이었다. 평범하게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저 답과 함께 어찌하면 영지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면 끝나는 간단한 질문.
형도, 누이도 모두 저 답변과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 목표는 테스트의 통과가 아니었다. 단순히 통과만 해서는, 이미 벌어져 있는 형과 누이와의 격차를 줄일 수 없었다. 그들과 다른 관점의 시각을 가진 대답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괴물 황제가 일으킨 대전(大戰)이 보여주었던 결과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제국 내에서 상단과 용병단을 운영하며 터득한 나의 노하우로 판단했을 때는.
저 답은, 결코 옳은 답이 아니었다.
“첫 번째 질문부터 아주 쉽고 간단한 답변이군요. 영지의 근본은 당연히 ‘영주의 이익’입니다.”
나의 답변을 들은 게이블 남작과 다른 가신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어떻게 가장 기본부터 틀릴 수 있는지에 대해 한심하게 여기는 것이리라.
게이블 남작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삼공자님, 아쉽지만 정답이….”
나는 게이블 남작의 말을 자르며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았다.
“하하, 남작님. 설마 ‘영지민’이라든가 하는 구닥다리 정답을 말씀하시려는 것은 아니시겠죠?”
내 말에 불쾌함을 느꼈는지, 게이블 남작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그리고 그 추측은 틀리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게이블 남작의 어조가 다시금 공적인 어투로 돌아왔으니까.
“…제롬 폰 카르비어트. 그대의 말이 실로 이상하다. 영지민이 없으면 영주도 없는 법. 어찌 영지의 근본이 영주의 이익이란 말인가? 그것은 완벽한 탐관오리의 생각이다!”
게이블 남작은 이야기를 하며 점차 화가 끓어오르는 모양이었다.
반텐 영지의 행정부 관리들을 총괄하는 게이블 남작으로서는, 방패가의 직계라는 내가 어찌 탐관오리와도 같은 답을 할 수 있는지 심히 불쾌했을 것이다.
“아, 제가 너무 앞뒤를 다 잘라먹고 이야기했나요? 한 가지 전제를 덧붙이죠. ‘바르게 추구하는’ 영주의 이익이 정답입니다.”
“여전히 궤변이다. 어찌 영주의 이익과도 같은 사사로운 것이 영지의 근본이 될 수 있는가.”
게이블 남작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한평생을 반텐 영지의 영지민들을 위해 살아온 이로서의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참으로 올곧다. 하지만.
“그럼 하나 물어보죠. 남작님께서는 영지의 행정 업무를 보시는 데 돈이 부족했던 적이 있으신지요?”
“……?”
뜬금없는 질문에 게이블 남작이 잠시 답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다른 가신들을 둘러보며 비슷한 질문을 했다.
“앉아 계신 분들께도 여쭙겠습니다. 갑옷을 수리하고, 말의 먹이를 먹이고. 마법을 익히는 데 있어서 실험 도구들이 제공되지 않은 적이 있었을까요?”
가신들 역시 나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그랬던 적이 없었을 테니까.
“여러분이 각자의 업무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저희 카르비어트 백작가의 곳간이 겁나게 빵빵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영지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는 것이요? 말해 무엇 합니까. 영지의 수입이 지출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불경하다, 제롬 폰 카르비어트! 영지의 근본인 영지민을 보살피는 것이야말로 영주된 자의 의무이….”
“그 의무, 영주가 돈이 없다면 무엇으로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반박하는 게이블 남작의 말을 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도박장을 운영한 것은 분명 영지민들의 도박을 근절하기 위함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희 영지의 주 수입원 중 하나가 되었죠. 그리고 그 돈은 영지민들을 위한 복지로 쓰이고 있고요. 하나, 만약 도박장이 돈만 잡아먹는 시설이었다면? 그래도 저희는 계속 영지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었을까요?”
나는 아버지의 우측에 앉아 있던 기사들의 수장인 아란달이 착용한 검을 가리켰다.
“여섯 방패의 수좌(首座)인 아란달 경이 사용하는 검은 미스릴로 코팅한 명검이죠. 마법사인 멀린 경이 애지중지하는 스태프 역시 마찬가지. 여러분은, 영지가 어려워지면 그 물건들을 처분하여 굶주린 영지민들의 배를 채워줄 수 있습니까?”
내 말에 아란달 경이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며 검의 손잡이를 잡았고, 멀린 경이 스태프를 로브 안에 쑥 하고 집어넣었다.
“뭡니까? 왜 다들 말씀이 없으시죠? ‘영지민’을 위하는 게 영주의 덕이라면서요?”
“허험! 그것은 궤변입니다, 삼공자님. 지금은 영주의 도리를 논하는….”
“아, 뭐. 좋습니다. 그럼 영주로서 명한다 치고. 가엾고 가엾은 영지민들을 위해 여러분의 사치스러운 무구들 좀 가져다 팔겠노라 명하겠습니다. 따르시겠어요?”
“…….”
앉아 있는 가신들에게서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영주는 자신의 이익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 속에서 비로소 가신들을, 영지민들을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녀가 아닌 이상,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며 타인을 챙길 수 있는 인간은 결단코 없습니다. 인간이란 그런 생물이니까요.”
“……!!”
나는 저항군을 운영하며 상단의, 용병단의 우두머리로서 수없이 많은 인간 군상을 보아왔었고. 신성제국의 괴물 황제가 어떻게 연합군을 흔들었는지 똑똑히 보아왔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의 이익(利益)이다.
그 사실은 절대로,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나는 상단의 많은 이들에게 더 높은 보수, 더 나은 환경을 제안해서 유능한 인재들을 카를로스 상단의 깃발 아래 모아왔다.
그리고 상단에서 나온 풍부한 물자는 다시금 스티그마 용병단에게 흘러들어 갔고.
아무런 애로 사항 없이 ‘저항군’으로서 국가의 재건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해왔다.
그 덕분에, 카를로스 상단은 유능한 인재들을 기반으로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스티그마 용병단은 그 오랜 시간을 신성제국에 저항할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괴물 황제가 연합국을 내부에서 뒤흔들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각국의 높으신 양반들을 구워삶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신성(神聖)제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의 정점인 황제가, 누구보다 인간의 탐욕을 가장 잘 활용하여 대륙을 정벌했다는 점이.
나의 대답이 많이 의외였던 것일까. 내 생각보다 가신들의 분위기는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흠! 좋다, 제롬 폰 카르비어트. 그럼 다음 질문으로….”
정신을 차린 게이블 남작의 다음 질문들이 이어졌지만, 나는 모두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물론 제대로 된 정답은 아니었다.
내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잡힌, 조금은 꼬였을지도 모르는 답변으로 말이다.
이윽고, 게이블 남작의 서류가 그 끝을 보이자.
게이블 남작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시험을 종결해도 되는지 의사를 묻는 것이리라.
아버지, 바쿠스 폰 카르비어트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기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을 보고 익혔음에도 저런 답을 내렸다는 것은 내 아들이 책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머저리라는 뜻일 터. 분명, 책은 열어보지도 않고 네가 스스로 내린 답이겠지.”
역시 아버지. 정확하십니다요.
“묻겠다. 너는 지난 한 달간 도박장과 약방, 방에만 있다가 마지막에는 말을 타고 영지 곳곳을 돌아다녔다. 을 익히기에도 넉넉지 않은 시간에 책은 전혀 펴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느냐.”
네, 당연히 물어보시리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종(異種)의 힘을 얻기 위해서 도박장에서 만드라고라를 따고, 약방에 가서 흑현자 중 전설적인 존재, 대삼현이자 청익(靑翼)인 카르마를 만나 힘의 기초를 닦고, 1단계 힘을 완성하기 위해 방에만 있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면 내 정신 상태를 의심하시겠지.
나는 미리 준비했던 대답을 천천히 꺼냈다.
“책이란 건 결국 누군가가 정리해둔 죽은 지식일 뿐입니다. 모름지기, 진리란 결국 세상 속에 있지 않습니까? 그 답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하필 그 답을 찾기 위해 간 곳이 도박장이었다?”
“우리 영지만이 가지는 가장 뚜렷한 차이점이니까요. 역시 우리 영지를 알려면 우리 영지에 뿌리 깊게 내린 명소를 가야….”
“네가 좋아서 간 것은 아니고?”
“뭐, 그것도 맞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지나가나요.”
“성과는?”
“들으셨다시피, 책에서 보이지 않던 것을 깨칠 수 있었습니다.”
슬롯머신 패턴은 책에 없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약방은 어찌하여 갔더냐.”
“제가 간 약방은 영지 내에서 가장 외진 곳에서 늙은 노인이 홀로 운영하던 곳이었습니다. 가문의 일원으로서 낮은 곳에 있는 영지민의 고통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능하면 도움도 주고요.”
카르마의 미래에 올 탈모의 고통에 도움을 줬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방에 틀어박힌 이유는?”
“뭐, 저도 깨달은 것들을 정리할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다시금 깨달은 강철을 정리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며칠간 영지를 말을 타고 돈 것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건넸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