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느닷없이 벌어진 참혹한 사태에 일순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다.
조심스레 복도를 오가던 시종들의 움직임이 멈추었고, 곳곳에 서 있던 기사들도 눈을 부릅떴다.
말 그대로 갑자기 일어난, 원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훌리오의 양 눈이 터졌고, 이어서 정강이가 부러져 바닥에 주저앉기까지 저택의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크으으 …….”
훌리오의 비명소리와 공기 중으로 번져 나가는 피 냄새에 그제야 멈춘 것처럼 보였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꺄아악!”
시녀 하나가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고, 기사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다가섰다.
성질 급한 누군가는 검 자루에 손을 올리고 있었지만, 에드워드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멈춰라!”
“총집사님!”
아렌의 앞을 막아서는 에드워드의 모습은 주인을 지키려는 충직한 하인의 모습이었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도련님이 더 이상 손을 쓰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평소에 사람을 잘 본다고 평가받고 그 자신도 안목이 있다고 자부하던 에드워드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아렌 도련님이시다!”
“흡!”
“도. 도련님?!”
방금 전에야 저택에 도착했고, 모두가 아렌의 얼굴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저택의 구석구석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은 자리를 함부로 벗어날 수 없었으니, 아렌의 얼굴을 아직 모르는 이가 태반이었고, 에드워드는 그 점이 너무나도 염려스러웠다.
“기사들이 도련님의 모습이 낯설어 실례를 범했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에드워드가 급한 허리 뒤로 돌린 손으로 급하게 손짓했고, 기사들도 태세를 가다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을 뵙습니다!”
기사들의 목소리가 침묵에 빠져 있던 저택을 울렸고, 시종과 시녀들이 황급히 아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최소한 이 자리에서 오롯이 고개를 들고 서 있는 것은 아렌뿐이었고, 자연스러운 위엄이 주변에 퍼져나갔다.
“고개를 들어라.”
나직하지만 모두의 귓가에 똑똑히 박히는 목소리에 에드워드와 기사들은 긴장된 얼굴로, 시종들과 시녀들은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직분과 주인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감사합니다. 도련님.”
에드워드가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비교가 되는구나.”
아렌의 시선이 자신이 흘린 피에 잠긴 채 경련하고 있는 훌리오에게로 향했다.
안구가 있던 자리가 뻥 뚫려서 쉴 새 없이 피를 흘려 내리고 있는 모습이 끔찍하기 그지없었지만 에드워드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송구스럽습니다.”
“한쪽에 치워라. 나중에 물어볼 것이 있다.”
“예. 도련님.”
아렌의 말에 답한 에드워드가 시종들에게 손짓을 하려 했지만,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만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에드워드의 시선 속에 담긴 부탁에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만 훌리오에게로 다가가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상비하고 있는 포션을 꺼내고 훌리오의 다리를 맞추는 등의 부산을 떨었지만, 아렌은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철벅.
아렌의 발이 훌리오가 흘린 피를 밟았고, 불쾌한 감촉에 아렌이 인상을 찡그렸다.
“닦을 것을 가져오겠습니다.”
아렌이 인상을 찡그린 것에 화들짝 놀란 에드워드가 수선을 떨었지만 아렌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있지 않느냐.”
이어지는 아렌의 행동에 어지간한 에드워드도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지이익.
“크억!”
아렌이 발을 들더니 이제 막 뼈를 맞춰놓은 훌리오의 바짓단에 발바닥을 비비는 것이 아닌가.
겨우겨우 쇼크 상태에서 벗어난 훌리오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지만, 아렌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이 훌리오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시구나. 저분의 눈 밖에 나면 절대로 안 되겠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바라보는 시선에 에드워드는 물론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안색이 창백해졌고, 일부는 소리를 막기 위해 입을 막았다.
그렇게 훌리오의 비명과 신발을 닦는 소리가 복도를 울리던 것도 잠시.
“그럭저럭 깨끗해졌군.”
아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떼었고, 비명에 목이 쉬어 버려 거품을 물고 있던 훌리오가 고개를 꺾었다.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과 취급에 기절해 버린 것이지만 당연히 아렌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둘째부인에게로 가자.”
“……예. 도련님.”
처벅.
아렌이 내딛는 발걸음마다 복도에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발자국이 새겨졌다.
그렇게 느릿한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발자국을 새기며 아렌이 사라질 때까지 기사들과 시종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개미새끼 한 마리 못 죽이시던 분이셨는데.”
“무서워 …….”
시녀들의 중얼거림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 * *
일반적으로 오랜 외유 끝에 집에 돌아오면 밖에서의 일이 어떻든 간에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이었고, 이제 그라인드 백작가를 집으로 삼게 된 아렌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시시각각으로 떠오르는 기억은 마음의 평정을 이룬 아렌에게도 파문을 안겨 줄 정도였고, 알게 모르게 올라오는 따뜻한 느낌은 기꺼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알코르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 불쾌감은 로렌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증폭되었고, 로렌의 방에서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마법진을 확인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훌리오.
마법진과 같은 기운을 풍기는 훌리오를 보자마자 어지간한 아렌도 참을 수 없었고, 그 자리에서 손을 쓴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입자 단위로 분해해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가주인 알코르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화할 시간 정도는 있겠지.”
나직이 중얼거리는 아렌의 목소리를 들은 에드워드의 머리칼이 쭈뼛 섰다.
내용만 보자면 별거 아닌 말이었지만, 그 말에 담겨진 써늘한 기운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지금의 에드워드는 인생에 다시없을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공기 중의 마나 한올한올까지 느껴질 정도의 집중력은 오롯이 아렌에게로 향해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상황이 정체되어 있던 에드워드의 경지를 높여 주고 있었으니, 기연이라면 기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건 뭐지?”
“……둘째 부인을 보필하는 2집사 훌리오입니다.”
사람을 완전히 물건 취급하는 아렌의 말투도 그렇지만 그것에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더 두려웠다.
“둘째부인의 식솔이 많은가?”
“……도련님이 집을 나서신 이후 조금씩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렇군.”
평이한 어투의 문답이었지만, 온 정신을 집중한 에드워드는 문득 주변의 온도가 조금씩 내려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감정만으로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경지라니……. 이런 게 가능한 것이었나?’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앞장서던 에드워드의 앞에 베로아와 벡스터가 나타났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도련님.”
베로아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고, 아렌의 발걸음이 멈추자 에드워드의 눈에 이채가 솟았다.
재회한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가급적이면 절대로 대면하고 싶지 않은 아렌을 담당할 수 있는 인선이 눈앞에 나타난 것에 안도의 감정이 솟은 것이다.
자신을 살짝 흘기며 아렌의 신발을 살피는 베로아의 모습에 에드워드는 아렌을 수행한 일행에 대한 대우를 높이기로 결정했다.
“불편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베로아가 단정한 자태로 몸을 숙여 아렌의 신발을 살피는 사이 벡스터가 아렌을 향해 물었다.
복도에서 대기하던 그 둘에게도 훌리오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너무나도 익숙한 피 냄새가 풍기자 아렌이 무언가를 한 것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아렌이 이유 없이 피를 보는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는 둘은 걱정하거나 서두르지 않았다.
베로아는 아렌의 뒤로 이어지는 붉은 발자국에 에드워드를 살짝 흘겼고, 벡스터는 혹시라도 아렌이 상했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괜찮다.”
“수행하겠습니다.”
어느덧 아렌의 신발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은 베로아가 공손한 어투로 말했지만 아렌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너희들도 가서 쉬어라. 여독은 쉽게 풀리는 게 아니다.”
뭔가를 더 말하려는 듯한 표정의 베로아였지만, 이내 공손히 예를 표하며 아렌의 앞을 비켜섰다.
“로렌드와 시종들도 잘 챙기고.”
“걱정 마십시오.”
말과 함께 멀어지는 아렌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 두 사람은 이내 각자의 할 일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과 아렌의 대화를 보고 들은 에드워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수행원들을 아끼시는군요.”
“하인을 아끼는 것은 주인의 당연한 덕목이다. 이상한 것을 묻는구나.”
“송구했습니다.”
아렌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보가 되어서 에드워드의 뇌리에 정리가 되었다.
‘잔혹하기 그지없지만 사리가 분명한 주인이라……. 나쁘지 않구나.’
아렌의 성격을 거의 유추해낸 에드워드가 표정을 굳혔다.
‘그렇다면 로렌 공자의 방에 수작을 부린 게 훌리오라는 이야기가 되는군. 둘째부인이 그 정도는 아닌데…….’
생각을 정리하며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저택의 후문으로 나서게 되었다.
가을의 끝자락에 선 후원의 모습은 묘한 흥취를 불러일으켰다.
기품 있게 조경된 후원의 모습에 아렌의 표정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너무나도 어린 기억이라 선명하지는 않지만, 햇살이 가득한 후원에서 로렌과 함께 그의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기억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첫째부인께서 후원을 참 아끼셨죠.”
그런 아렌의 기색을 눈치 챈 것인지 에드워드가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었지만, 아랫사람을 잘 챙기고 강단이 있었던 첫째부인을 사모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당연히 그라인드의 사람들은 첫째부인의 소생인 로렌과 아렌을 극진히 대했지만, 알코르의 알 수 없는 냉대와 허약한 둘의 모습에 점점 거리를 뒀던 것도 사실이었으니, 작금의 아렌의 모습에 일순 만감이 교차했던 것이다.
“저기 있나 보군.”
그런 감정도 잠시, 아렌의 냉정한 목소리가 에드워드를 현실세계로 돌려세웠다.
“안내해라.”
“예.”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에드워드가 굳은 표정으로 후원을 가로질렀다.
잘 정돈된 오솔길을 걸어가는 것도 잠시, 이내 후원 한 가운데 위치한 공터에 위치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 * *
잉그리드는 요 근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구라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것이 빠져나가려고 꿈틀거린다면 그러한 기분을 느낄 것이라고 잉그리드는 생각했다.
황금의 그라인드.
그 그라인드 백작가가 손에 들어오기 일보 직전이었건만 전혀 신경 쓰지도 않았던 아렌의 재등장에 어림없다는 듯이 그녀의 손을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계적으로 가문의 일을 처리하는 알코르는 유능한 백작이고 존경할 만한 귀족이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첫째부인을 잊지 못하고 하루하루 죽어가는 산송장이라는 것이 알코르를 향한 잉그리드의 냉정한 평가였고, 제아무리 정략결혼이라지만 알코르의 냉대에 잉그리드는 정을 떼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 그녀의 온 신경이 가있는 것은 자신의 배로 낳은 다렌과 엘렌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과 귀엽기 그지없는 딸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매일 다짐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하지만 마음을 자기 생각대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성인이나 가능한 일이다.
거기에 아렌이 오늘 저택으로 복귀까지 했으니 평소보다 더욱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애끓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후원으로 티타임을 가지기 위해 나섰고, 황실에나 납품된다는 최고급 홍차와 늠름한 아들, 귀여운 딸의 재롱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부스럭.
일부러 낸 인기척 소리와 함께 오솔길 너머로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잉그리드는 다시금 울화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