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메카니의 대처는 빨랐다.
제국의 그 어떤 귀족보다 권위적이고 오만한 메카니의 가주는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평소에 단련된 가신들은 움직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거기에 악마의 등장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니, 더욱 더 서둘렀고 도리안과 디어뮈드가 뛰쳐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틴은 자신 기사들과 함께 성을 벗어날 수 있었다.
콰르르르릉!
어둡고 불길하기 짝이 없는 먹구름이 쉴 새 없이 번개를 내리치는 모습은 저절로 모골이 송연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지만, 그런 것에 주눅 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일반 병사들을 배제한 마나 사용자들만으로 구성된 병력은 빠르게 거리를 좁혀 나갔고, 이내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기!”
“오러로 몸을 보호해라! 오염되면 끝장이야!”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대지를 오염시키는 마기의 모습에 발걸음이 멈췄고, 각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전투를 대비했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
마르틴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메카니 공작가는 대대로 자신들의 영지를 정성스레 가꿔 왔다.
영지야말로 귀족의 모든 것.
그 누구보다도 귀족적인 메카니가 영지를 가꾸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비록 오만하고 고압적이기는 했지만 메카니에 대한 영지민들의 지지는 한결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가꿔온 영지가 한순간 마기에 오염되어 버렸으니 눈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메카니의 이름을 달 자격이 없는 것이리라.
악마에 대한 분노와 악마를 불러온 놈들에 대한 분노가 마르틴의 얼굴을 흉신악살처럼 만들었고, 그것은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감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시지요. 적은 마계의 종자들입니다.”
그 순간 휘황한 빛과 함께 들려온 목소리가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요.”
“인간이라면 당연한 감정이지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다만 악마들은 인간의 마음을 파고드는 데 능하니 경계해야겠지요.”
선이 굵은 얼굴의 중년 사제가 덤덤하게 이야기를 받았다.
별다른 감정이 떠올라 있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두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모습이 일반적인 사제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저 사특한 종자들이 강림하는 것을 막지 못했으니 저희의 잘못이 큽니다. 그래도 발빠른 대처덕분에 이 정도에서 저지하고 있으니 다행이지요.”
남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덤덤한 말투였지만, 마르틴은 그 안에 담긴 서늘한 기운을 잃고서 말을 아꼈다.
영지가 오염된 자신도 화가 나겠지만, 존재 자체가 악마와 외신들을 상대하기 위한 만신전이 소환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사제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쩡!
“우왓!”
“심신을 보호해!”
공간이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힘의 파편이 날아들었고, 그 가공할 충격에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렌 공자가 악마와의 전투에 돌입했나 보군.”
하지만 마르틴은 비릿하게 웃었다.
가장 강력한 적을 동맹에게 맡겨 놓는 상황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필요한 희생은 없을 것이고 분노를 풀 대상은 눈앞에 한 가득 있었다.
“…… 소문은 들었지만 대단하군요. 귀족급 악마인 거 같은데 단신으로 상대가 가능하다니.”
태양신의 주교인 루안의 목소리에 희열이 묻어나왔다.
악마 척결은 모든 사제들의 소망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이름이 알려진 고위 악마 하나를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인 것이다.
쏴아아아아!
빗줄기가 거세지고 쉴 새 없이 떨어지던 번개가 줄어들었다.
“옵니다!”
루안의 외침과 함께 태양교단의 사제들이 일제히 신성력을 일으키니 또 하나의 태양이 지상에 강림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카아아아악!”
자신들을 가둬 두고 있는 번개가 뜸해지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온 마물들이 신성력에 직격 당했고 전신이 불타오르며 끔찍한 비명을 질러 댔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비명 소리에 대부분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아직 젊어 보이는 몇몇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휘청거렸다.
“크흠!”
“오러를 일으켜라!”
별거 아닌 마물의 단말마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마기에서 태어난 마계의 존재.
일반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 오염을 일으킬 수 있으니, 마계의 존재가 확인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이유다.
“그 사이에 많이도 싸질렀군.”
검은 안개가 옅어지며 안쪽의 모습이 보이자 마르틴이 다시금 이를 갈았다.
수백은 넘어 보이는 마물들이 저마다의 흉한 몰골로 저주를 뿌리고 있었고, 완전히 오염된 땅에서는 지속적으로 마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촹!
화려하기 그지없는 전신 갑주를 입은 마르틴이 살벌한 예기를 줄기줄기 흘리는 보검을 뽑아들었다.
“긴말 않겠다!”
오러를 듬뿍 실은 마르틴의 목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모였다.
“모조리 죽이고 정화해라!”
“돌격!”
“와아아아악!”
흉흉한 기세를 풍기는 기사들이 돌진했고, 마법사들과 신관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며 주문을 외우고 신에게 기도했다.
“뒈져라! 이놈들!”
무시무시한 얼굴로 마르틴이 땅을 박찼다.
* * *
온갖 감정과 기파가 들끓어 올랐지만, 고문전문가와 아렌은 지상에 신경 쓰지 않았다.
쿠구궁!
높은 허공에 떠서 서로를 노려보며 힘을 겨루고 있었으니 눈앞의 상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뻗어낸 일격은 무승부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둘 사이의 공간이 이리저리 일그러지며 꿈틀거리고 있었으니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였다.
– 제법이구나. 대적자여.
– 입을 놀릴 만한 자격은 있구나.
아렌의 대답에 악마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귀족급에 이른 악마가 인간의 힘을 인정하고 칭찬한 것인데, 정작 그 인간이 악마를 눈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으니 부아가 치민 것이다.
쩌정!
아렌의 손이 슬쩍 흔들리는가 싶더니 힘의 방향이 바뀌어서 허공으로 향했다.
신묘한 수법에 악마의 눈에 놀란 감정이 떠올랐지만, 아렌은 그저 악마를 노려보며 두 손을 들어올렸다.
우지직.
아렌이 가볍게 두 손을 쥔 것만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먹구름을 감싸고 있던 용의 그림자가 슬며시 사라지더니만 아렌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 빨리 끝내자꾸나. 뒤처리가 제법 걸릴 듯하니.
– 건방진 놈!
감정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사납기 그지없는 염파가 사방으로 풍겨져 나갔고, 악마가 옆구리에 손을 뻗어 자신의 갈비뼈를 뽑아들었다.
와드득!
악마의 뼈답게 흉흉하게 생긴 갈비뼈가 몸에서 빠져나오며 형태를 변형시키더니만 이내 거대하기 짝이 없는 거치도가 되었다.
– 살점 하나하나를 다 발라 주겠다!
보는 것만으로 타락해 버릴 것 같은 모습의 악마가 분노에 차서 외쳤다.
– 말이 많구나.
– 뭐?!
그 짧은 사이 인식의 경계를 뛰어넘은 아렌의 주먹이 악마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콰쾅!
– 커억!
붉디붉은 기운에 덮혀 있는 아렌의 손은 거짓말처럼 악마의 옆구리를 파고들었고, 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리는 악마가 자신의 갈비뼈를 뽑아낸 바로 그곳이었다.
콰직!
아렌의 왼손이 크게 휘둘러지더니 용의 발톱이 떠올랐고, 악마의 상체를 갈가리 찢어 버렸다.
– 카학!
아렌의 눈에서 전광이 번쩍임과 동시에 용의 그림자가 포효했고 강렬하기 짝이 없는 번개가 악마의 정수리로 꽂혔다.
콰릉!
소리가 따라오지 못하는 속도로 내리꽂힌 번개가 악마의 전신을 하얗게 물들였고,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이 악마의 존재를 소멸시킬 것 같이 파고들었다.
쏴아아.
완전히 탄화되어서 축 늘어진 악마의 신체에 폭우가 닿았고, 그 순간 수증기가 자욱하게 번졌다.
가공할만한 아렌의 연격에 고문전문가는 완전히 힘을 잃은 듯 보였지만, 정작 아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 장난은 그만치거라.
심드렁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아렌의 말에 완전히 탄화되어 숯덩이처럼 보였던 악마의 신체가 움찔거렸다.
– 크크크. 속지 않는군. 내 연기 실력이 줄었나?
심령을 자극하는 음산한 웃음소리에 지상에서 한참 격전을 벌이고 있는 자들까지 영향을 받았지만, 아렌의 시선은 오롯이 눈앞의 악마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 형편없었다.
– …… 악마로서 자존심 상하는 말이군.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 같았다.
사방에 자욱하게 번져 있던 검은 안개가 몰려드는가 싶더니 악마의 신체가 재구성되었다.
눈 한 번 깜빡할 정도의 시간에 어느덧 악마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어떤 면에서는 방금 전보다 더욱 힘이 넘쳐 보였다.
– 네 힘은 인정하마. 대적자여.
일그러진 얼굴에 미소 같은 것이 떠올랐다.
– 하지만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필멸자의 손에 죽는 불멸자는 없는 법이니까.
엄숙한 선언에 세계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
힘을 가득 실은 악마의 한 마디가 근원적인 무언가를 건드렸고, 악마의 존재감이 무럭무럭 커졌다.
사방으로 공포가 번져 나가고,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에서 불안감에 떨고 있던 영지민들이 갑자기 비명을 질러대며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악마의 이명은 그 악마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고문전문가라는 이름을 가진 악마는 실제로 이 세상에 알려진 것을 넘어 알려지지 않는 종류의 모든 고문에 능통했고, 그 고통을 사방으로 뿌리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렌의 심상에 막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며시 빠져나간 잔향만으로 저항력이 없는 일반인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으지지직.
무럭무럭 존재감이 커진 악마의 몸에서 무수히 많은 종류의 뼈가 튀어나오더니만 흉악하게 모습을 바꿨다.
손톱을 뽑는데 쓰는 것 같은 집게와 시퍼런 불똥을 사방으로 뿌리고 있는 인두, 근육 사이를 헤집는데 쓰는 날카롭기 그지없는 칼날과 뼈를 부수기 위한 망치, 눈꺼풀을 벌리고 안구를 찌르기 위한 송곳과 몸 이곳저곳에 꽂아 넣기 위한 바늘 수백 개 등등.
상상할 수 있는 온갖 고문 기구가 형체를 갖추고 고문전문가의 주변을 맴돌았다.
– 너의 비명과 고통은 어떤 맛일지 궁금하구나. 대적자여. 필히 감미롭겠지.
일그러진 웃음을 지으며 자신감에 차 있는 악마를 보면서 아렌이 눈가를 좁혔다.
언령.
가공할 재생력도 재생력이지만 고문전문가는 세상에 말로 선언함으로서 어딘가의 세상에 있을지도 모르는 법칙을 이곳에 새긴 것이다.
적지 않은 힘을 쏟아 부은 한 마디에 불멸자인 악마의 힘은 커지고, 필멸자인 아렌의 어깨에 무게가 실렸다.
악마를 상대하는 것이 힘든 것인 이런 이유도 있었다.
기본이 정신생명체 이다보니 수명이 의미가 없고 귀족급 악마면 반신이나 마찬가지이니 불멸한다.
오직 자신의 이름을 정체성 삼아 나아가니 우직하기 그지없어서 외부의 충격에 단단히 저항한다.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만신전의 힘에는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이니 위계가 높으면 높을수록 신의 힘에 대항한다.
아렌이 가진 용의 눈은 이러한 점을 꿰뚫어 보았고 악마의 자신감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알아본 것이다.
이대로라면 악마의 유흥거리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아렌은 웃었다.
– 그걸 누가 정했느냐.
– …… 뭐?!
아렌의 어깨에 실린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고, 어떤 초월적인 힘이 전신을 옥죄어 들어왔지만 아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필멸자는 불멸자를 죽일 수 없다고? 그걸 누가 정했냐고 물었다.
어딘가의 세계에서는 절대적인 법칙으로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는 힘이 아렌을 억눌렀지만 아렌은 비릿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 법칙이다! 세상의 절대적인 법칙이야!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악마가 자신이 불러온 법칙에 힘을 더했고, 마치 커다란 거인이 아렌의 온몸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 나는 한없이 고고하고 자유롭다.
콰직.
어딘가에 금이 그어졌다.
– 그 어떠한 법칙이라도 나를 강제할 수는 없다.
쩍!
엄숙하기 그지없는 아렌의 한 마디에 커다란 균열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