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46
046화
제 아무리 천하를 뒤엎을 힘을 가지고 있어도 먹지 않고 살수는 없다.
사람은 기본적인 의식주가 있어야 하고, 거기서 더욱 편리하고 발전하기를 원한다.
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것들을 받쳐 주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재물, 돈이다.
그렇기에 돈의 힘은 무섭다.
아렌이 재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힘을 갖추게 된다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무시해서가 아니다.
아렌은 재물을 꽤나 중요시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돈으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황금의 그라인드라.”
아렌의 중얼거림을 들은 레티시아가 설명했다.
“8대 귀족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정체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죠. 그라인드 백작가가 그중에 하나라니 놀랍네요.”
트리안, 네이던, 콜레트는 아예 몰랐던 모양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황금은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지. 돌아가야 할 길도 빠르게 가도록 만들어 주기도 하고······.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도리안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의 괴물일 줄 알았더라면 접근하지도 않았을 거다.”
“사람을 괴물이라고 하다니 실례다.”
정색하는 아렌이었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도리안의 의사에 동의한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피렌사 공작가가 돈이 없을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상상 이상의 돈이 필요했다는 뜻인데 그 정도의 거금으로 뭘 하려고 한 거죠?”
대외 활동을 잘 하지는 않지만 명색이 공작가다.
영향력과 역사를 생각한다면 막강한 자금이 쌓였을 것인데, 그런 공작가의 자금으로도 부족한 일이 무엇인지 레티시아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별을 모으기 위해서다.”
어쩐지 시원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리안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게 돈으로 모을 수 있는 거냐?”
트리안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지만, 도리안은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글쎄요. 이제 아카데미에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됐어요. 도리안 공자의 능력이라면 별을 모으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보는데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죠?”
아렌이 인정할 정도의 무력과 카리스마, 공작가라는 배경까지 생각한다면 도리안 드 피렌사는 이번 기수 최대의 기대주다.
그냥 아카데미 생활만 열심히 한다면 증명의 별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고, 20개를 모아서 조기졸업도 가능할 것이라고 레티시아는 평가했다.
“시간은 평등한 듯하지만, 각자에게 다르게 흘러가기 마련이지. 나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어.”
“그게 무슨 의미지?”
네이던의 물음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도리안이 이내 입을 열었다.
“난 하루라도 빨리 아카데미 총학생회에 들어가야 한다.”
“총학생회?”
아렌의 눈에 호기심의 빛이 떠올랐다.
* * *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다섯의 부류로 나눠진다.
개개인의 성격을 분류해서 나눈 다섯 개의 기숙사가 그것인데, 성향이 비슷한 이들을 모아놓아서 서로가 자극을 받게 해 발전을 도모하는 시스템이다.
그런 각 기숙사를 대표하는 다섯 개의 학생회가 존재한다.
유피테르 아카데미는 운영의 상당 부분을 학생들에게 맡겨 놓았다.
향후 제국의 각 부분에서 활약할 것이 확실한 인재들에게 예행연습을 시키는 일환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감찰과 교과 과정, 상벌위원회 같은 민감한 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운영을 학생회가 감당하고 있다.
그런 다섯 학생회의 위쪽으로 총학생회가 존재한다.
인재들만을 모아 놓은 아카데미이지만, 그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은 존재하는 법이고, 그런 자들이 모여 조직된 총학생회의 영향력은 아카데미를 넘어서 제국 전체에 미칠 정도다.
흔히 말하는 학연으로 연결된 끈이 제국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인데, 아카데미를 졸업한 졸업생들도 총학생회의 요청이라면 조금 무리한 부탁이라도 들어주기 때문이다.
총학생회는 총장인 부르바스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진 집단인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 인정하기는 싫지만 도리안, 너라면 총학생회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거의 확실하지. 그런데도 서두르는 이유가 있나?”
레티시아의 설명을 들은 네이던이 의문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너에게 대답할 의무는 없는 거 같군.”
치료 마법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옷차림을 단정히 한 도리안이 그림 같은 자세로 차를 들며 말했다.
꽤나 큰 소란이었지만, 눈에 보이는 피해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에 자리를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고, 이들이 모여 있는 숲의 가장자리는 도리안의 조직원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전투 의지를 잃어버린 도리안과 꽤나 민감한 이야기가 나올 것을 우려한 레티시아가 자리를 옮긴 것이다.
“피렌사 공작가라면 ······. 우생학과 관련이 있겠군요.”
레티시아의 말에 도리안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든 백작가의 영애가 영민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우리 가문의 일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
우생학.
우수한 자들끼리 결합시켜 더욱 우수한 후손을 만들고, 이것을 반복해서 최고의 후손을 만든다.
위의 내용만 본다면 귀족가문이나 힘 있는 집안에서 후손을 결합시킬 때 늘 고려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 할 수 있겠지만, 피렌사 공작가는 이 부분을 꽤나 진지하게 파고들어서 끊임없이 후손을 ‘개량’해 나가고 있었다.
보통 귀족이 혼사를 진행할 때에는 정치적인 요건이나 어떻게든 가문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하기 마련이지만, 피렌사 공작가만큼은 그 모든 것을 배제하고 오직 우생학만을 신봉하며 진행해왔다.
때로는 가문의 위기가 찾아오고, 불합리에 굴복하는 일도 있었지만 피렌사 공작가는 묵묵히 후손의 계량에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수십 대를 이어져 내려오니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피렌사의 후손치고 인재가 아닌 이가 없었으며, 본격적으로 개화한 후손들이 적재적소에서 공작가를 밝히니 당금의 피렌사 공작가의 위세는 제국 전체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였군.”
레티시아의 설명을 들은 아렌이 도리안을 슬쩍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안의 인간을 아득히 넘은 것 같은 내구력과 힘, 체력 등이 설명이 되는 것이다.
아렌이 상대이기에 이렇게 쉽게 쓰러져버린 것이지 어지간한 사람은 도리안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카데미는 제국뿐만이 아니라 대륙의 많은 인재들을 빨아들였지.”
차로 입술을 적신 도리안이 말을 이었다.
“그런 인재들이 아카데미에 모여서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났다.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고는 하지만 각지에서 모인 인재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의 양을 생각한다면 거꾸로 아카데미가 배워야 할 판이야.”
이름 있는 가문쯤 되면 숨겨진 한 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비전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고, 아카데미라는 교류의 장에서 그러한 비전들이 무수히 교차되고 기록되어졌다.
“그렇게 모인 지식과 보물들을 관리하는 곳이 총학생회다. 그중에는 금단의 지식도 있고, 어마어마한 보물도 있다고 하지. 하지만 최근에 재미있는 소문이 돌더군.”
“재미있는 소문이라면?”
트리안의 물음에 도리안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인간의 바람을 이뤄 주는 무엇인가가 총학생회의 손의 들어갔다는 소문이다.”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나요?”
레티시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소원을 이뤄 준다고 하는 물건은 역사를 뒤져 보면 제법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은 막대한 대가를 치르거나 악마를 소환하는 저주받은 물건이었고, 교황만이 쓸 수 있다는 ‘소원’ 주문이 있기는 하지만, 그 대가로 교황은 목숨을 걸어야 하니 사실상 쓰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때문에 마법학에서는 소원을 이뤄주는 물건이나 주문을 아예 불가능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소문이 났다는 것이지. 대부분은 모르겠지만, 총학생회를 지원하면서 그 보물과 지식들을 아카데미에 묶어 두는 역할을 하는 것이 8대 귀족이다. 그런 8대 귀족의 관리를 뚫고서 날 정도의 소문이라면 확인해 볼 가치가 있지.”
찻잔을 내려놓으며 도리안이 말을 이었다.
“피렌사는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 역시 피렌사고.”
손수건으로 입가를 정리한 도리안이 아렌을 보며 말했다.
“셈은 치룬 것으로 하겠다.”
“그러지.”
일반인은커녕 어지간한 귀족들도 알지 못하는 정보.
도리안은 그것을 아렌에게 알려줌으로서 대가를 치렀다고 이야기한 것이고, 아렌은 받아들였다.
“그럼 또 보도록 하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도리안에게 네이던이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아렌을 이용한다는 계획이 무너졌으니 도리안이 어떤 행보를 보일까 궁금한 것이다.
“피렌사는 포기하지 않아.”
환한 미소와 함께 도리안이 등을 돌렸다.
* * *
아카데미는 광대하다.
비어있는 건물도 꽤나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증축을 멈추지 않았고, 왜 아카데미가 끊임없이 증축하는지는 의문이지만 덕분에 학생들은 타인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었으니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자고로 귀족들이라면 비밀스런 모임을 좋아하기 마련이고, 한참 때의 학생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런 아카데미의 구석에서 하나의 모임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번에 재미있는 녀석들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거대한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과 어두운 조명 덕에 서로를 알아보기 힘든 실내, 모양만 보면 비밀 결사의 회의 장소를 흉내 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실제로 이들은 비밀 조직이 맞았으니 목적에 충실한 모습이다.
“피렌사의 기대주가 들어왔지.”
한쪽에서 들려온 나직한 대답에 원탁이 웅성거렸다.
“피렌사라면······.”
“그 정신 나간 자들 말이로군.”
“그래도 피렌사의 성과는 무시할 수 없어. 실제로 피렌사는 하나하나가 우수하다.”
공작가를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하는 이들의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기함하겠지만, 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끌어들일 수 있을까?”
누군가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수하다는 건 확실하겠지. 피렌사는 대를 이어갈수록 우수해지니까. 하지만 아무리 우수해도 우리와 맞지 않는다면 필요 없다.”
묵직한 목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라인드에서 괴상한 녀석이 왔더군.”
누군가의 목소리에 다들 멈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라인드라 ······. 요즘 내부가 시끄럽다고 하던데 그게 아니었나?”
나직하게 중얼거린 인영의 고개가 한쪽으로 향했다.
“같은 8대 귀족의 일원이잖아. 뭔가 들은 것 없나?”
모두의 시선을 받은 인영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답했다.
“글쎄. 8대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교류가 있는 건 아니라서.”
김샜다는 표정을 짓는 이도 있었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도 있었지만, 담담한 인영의 태도에 모두들 고개를 돌렸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묵직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지금은 잠잠해졌다지만 황제의 패악질은 도가 넘었고, 제국은 지저분해졌다. 결국 한바탕 청소가 필요한 시점이지. 우리의 목표를 잊지 마라.”
엄숙한 분위기에 모두가 자세를 바로 했다.
“별을 모아서 총학생회를 우리 손에 넣는다. 그때부터 모든 것은 시작될 것이다.”
쿵!
모두가 발을 구르며 결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