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7
007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면서 벡스터는 재빠르게 홀 안을 훑었다.
채 하루가 되기도 전에 익스퍼트에 들어선 벡스터의 감각은 예민하기가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었고 그 덕에 렌이 내뿜는 압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베로아와 유나, 주인장과 종업원, 귀족 도련님과 호위가 넷··· 젠장.’
평생 목소리를 줄여 본 적이 없을 것 같았던 도련님이 외치는 소리가 홀 내부의 상황을 알려주었고 노련한 벡스터는 이미 우선순위를 정해 둔 뒤였다.
“그라인드 백작가의 기사 벡스터 슐츠입니다.”
말과 함께 살짝 기세를 내뿜자 호위 기사들이 움찔거리며 그들의 주인 곁으로 이동했고, 그 찰나의 틈을 벡스터는 놓치지 않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베로아와 유나를 가로막고 시선을 돌렸다.
어어 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호위 기사들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노련하군. 용병 출신인가?”
조금은 감탄한 기색이 느껴지는 렌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크리앙은 정신을 차렸다.
“이익! 비천한 놈이!”
크리앙의 악에 바친 소리가 벡스터를 향하자 홀 안의 기사들이 안색을 찌푸렸다.
출신이 어떻든지 간에 기사는 기사.
그러한 기사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크리앙의 모습에 기분이 상한 것이다.
“도련님이 감정이 격해지신 거 같은데 이쯤에서 물러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정작 벡스터는 그런 모욕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용병으로 지내온 시간이 길었던 그에게는 명예보다는 임무 수행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최 중요 요건은 베로아와 유나의 보호.
덧붙어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고 좋게 마무리를 하는 모습이 가장 좋았다.
돌아가는 모양을 보아하니 베로아가 명분을 챙긴 듯 했지만 가끔씩 귀족이라는 자들은 상식 밖의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크리앙의 모습은 그런 일들을 저지르고도 남아 보였다.
“저희는 오늘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인 벡스터가 이내 하멜을 향해 눈짓하자 하멜이 황급히 허리를 조아렸다.
“예. 옜! 그렇고 말굽쇼!”
빠져나갈 명분을 쥐어 주는 벡스터의 모습에 렌이 나지막이 감탄하며 크리앙에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별장으로 돌아가시죠. 도련님.”
렌이 판단하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크리앙은 호위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일신의 무력이 떨어지는 것은 나이가 어리니 그럴 수도 있다고 치지만 특유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맞추기가 너무도 어렵다.
유피테르라는 도시의 특성 상 습격이 일어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지만 그렇게 마냥 안심하기에는 크리앙이 지금껏 쌓아온 업보가 만만치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아카데미가 입교하는 그날까지 가문의 별장에서 쥐 죽은 듯이 근신하고 있어야 했지만 그 잠깐을 못 참고 별장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크리앙이 조금 창피를 당한 모양세가 되었지만 이대로 별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렌은 결론 내렸고 다른 호위들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는지 서로 눈을 맞췄다.
하지만 그들은 크리앙을 너무 얕봤다.
얼굴이 시뻘게진 크리앙이 푸들거리며 숨을 몰아쉬더니만 이내 얼굴을 굳히며 눈을 번들거렸다.
“렌.”
“예. 도련님.”
방금 전에 고함을 지른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든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자를 무릎 꿇리고 계집들을 내 앞으로 데려와라.”
“도련님!”
천하의 크리앙도 유피테르에서 살인은 껄끄러웠는지 벡스터의 제압을 명했지만 렌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명령의 의미를 아시는 겁니까?”
모시는 주인의 명에는 불구덩이라도 두말없이 돌격해 들어가는 것이 기사의 미덕이라고 하지만 렌은 크리앙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실수한 쪽이 분명하고 그 와중에 자리를 피할 수 있는 명분이 주어졌음에도 분쟁을 택한 것.
그깟 하인과 기사 하나라고 하지만 귀족가의 다툼은 그보다 더 사소한 것으로도 일어나는 법이다.
“명령이다.”
그렇지만 이미 눈이 돌아 버린 크리앙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호한 한마디에 눈을 꾹 감아 버린 렌이 이윽고 몸을 돌리며 검을 뽑아들었다.
* * *
크리앙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평민들이나 머물 것 같은 허름한 여관에 그가 직접 행차하게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이런 누추한 자리까지 오게 하게끔 만든 원인을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크리앙 드 메카니.
제국 남부에 위치한 메카니 공작가의 삼남인 크리앙은 기사 아카데미 입교를 위해서 유피테르에 왔다.
기사 아카데미의 입교까지는 아직 3개월 이상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꽤나 일찍 유피테르에 당도한 케이스.
원활한 현지 적응을 위해서 빠르게 길을 나섰다면 매사에 꼼꼼한 귀족이라고 칭찬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크리앙이 이렇게 일찍 유피테르에 도착한 것은 전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크리앙은 흔히 말하는 귀족가 망나니다.
메카니 공작가의 적자이지만 삼남인 덕에 계승권과는 거리가 멀어서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라왔고, 귀족들의 권위가 강한 남부의 분위기와 합쳐지니 크리앙을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그림 같은 망나니로 성장했다.
처음 여자를 안은 것은 열 살 때이며, 그 이후로 건드린 여자는 수십 명.
음주는 기본이며 도박으로 날려 버린 돈만 해도 어지간한 남작가의 일 년 예산은 된다.
이쯤 되면 어딘가에서 칼 맞고 객사해도 그러려니 할 지경이지만 메카니 공작가의 위세는 이 모든 것을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니 별다른 일이 없다면 크리앙은 적당한 작위를 받고 공작가의 일원으로 사는 데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무난하게 흘러가던 크리앙의 인생에 먹구름이 낀 것은 2개월 전.
도박판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실수로 사람 하나를 죽이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평소 같으면 쉬쉬하며 넘어갈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를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리앙이 죽인 사람의 신분이 범상치가 않았다.
백작가의 자제.
그냥 백작가의 자제여도 문제가 될 텐데 심지어 계승권까지 가진 백작가의 자제가 피살된 일에 공작가는 발칵 뒤집혀 버렸다.
어중간한 백작가라도 무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심지어 상대는 제국의 남동부 경계를 지키는 변경백인 후토 백작가.
제 아무리 메카니 공작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상대다.
원래대로라면 크리앙의 목숨을 내주고 일을 무마하는 것이 맞겠지만 크리앙은 공작가에서도 사랑받는 막내.
막내를 살리려고 울부짖는 공작부인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아카데미 입교를 핑계로 유피테르로 도망쳐 올 수 있었다.
발 빠르게 행동한 덕분에 분노한 후토 백작가의 기사들을 따돌릴 수 있었고, 유피테르에 입성한 순간 후토 백작가는 더 이상 크리앙을 추격할 수 없게 되었다.
일단 한숨을 돌린 크리앙이지만 이미 그의 장래는 먹구름이 낄 만큼 낀 상황.
공작령에서처럼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은 일절 금지되었고, 아카데미 입교일 까지 연금 아닌 연금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크리앙으로서는 꼭지가 돌아 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유발한 것은 크리앙 자신이지만 그런 것들을 자각하고 반성한다면 그가 희대의 망나니라 불리지도 않았을 것.
공작가의 별장에서 갇혀 지내던 크리앙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시내로 뛰쳐나온 것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유피테르는 교육을 위한 도시.
유흥을 위한 시설 자체가 굉장히 한정되어 있고, 크리앙의 수준에 맞는 가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신하는 입장의 크리앙이 가기에는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씩씩대며 유피테르를 활보하기 얼마나 됐을까.
결국 크리앙과 일행들은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낼 수 있었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호위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감시역에 가까운 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크리앙이지만 렌의 실력만큼은 크리앙도 인정하고 있었다.
이제 저 건방진 시골 백작가의 기사는 제압당할 것이고 하녀들을 무릎 꿇릴 것을 생각하니 크리앙은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것도 같았다.
‘적당히 고문해야지. 그래. 기사니까 팔과 다리 힘줄을 끊어 놓는 거야. 계집들은 끌고 가서 밤새 괴롭혀 주자.’
포션과 고위 신관의 신성력은 외상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상처 부위를 솜씨 좋게 난도질하면 치료를 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붙지 않고 결국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불구가 되기 마련.
그리고 크리앙은 이러한 수법에 제법 조예가 깊은 편이었다.
‘크크크.’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하초가 불끈 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핏발 선 눈으로 시골 기사와 대치한 렌을 노려보았다.
* * *
하지만 크리앙의 기분은 좋아지지 않았다.
아니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차오르는 불쾌감과 늘어가는 짜증은 크리앙의 표정을 다시 흉신악살의 그것과 같이 만들어 가고 있었다.
차차창!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비산하는 오러의 불꽃에 모두가 넋을 잃었다.
메카니 공작가의 젊은 기사들 사이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렌과 벡스터가 무려 호각으로 검격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제압을 목적으로 살수를 자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용병으로 시작해서 수많은 전장을 전전한 벡스터의 경험이 익스퍼트에 이르러서 화려하게 피어난 것이 원인이었다.
“좋군.”
명령에 따라서 검을 섞고 있기는 하지만 뜻하지도 않은 자리에서 호적수를 만난 렌도 호기롭게 외치며 검격을 이어나갔다.
제압이라기보다는 대련에 가까운 모습이 이어졌고 다른 호위 기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 크리앙이 원하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크리앙이 원했던 것은 호위 기사들에게 무자비하게 린치 당하고 끌려오는 벡스터의 모습이었지만, 일대일로 붙은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화기애애한 모습까지 보이니 크리앙의 속이 불타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
크리앙은 참지 않았다.
“도일!”
“예. 도련님.”
신경질적으로 외친 소리에 크리앙의 뒤를 지키고 있던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냉막한 표정에 뱀처럼 번들거리는 눈빛이 섬뜩하지만 크리앙에게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가세해라.”
“알겠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뛰쳐나가는 도일의 모습에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었다.
카가강!
솟아오르듯 나타난 도일이 벡스터의 옆을 파고들었고.
“큭!”
순간적인 기습에 손발을 놀리며 막아내기는 했지만 벡스터의 몸 이곳저곳에 상흔이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도일!”
갑자기 난입한 도일의 모습에 공격을 멈춘 렌이 도일에게 소리쳤지만 도일의 냉막한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도련님의 명이다. 최선을 다해라.”
이어서 렌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도일의 검이 마치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벡스터를 향해 파고들었다.
“크흡!”
정직하고 강맹한 렌의 검과는 완전히 다른 빠르고 음유한 도일의 검격에 벡스터의 손발이 어지러워지면서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깊은 상처는 아니지만 몸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출혈은 순식간에 벡스터를 피투성이로 만들기 시작했고, 그런 벡스터의 모습에 홀안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래! 잘한다!”
오직 크리앙만이 환하게 웃으며 도일을 향해 소리쳤고, 그런 모습에 호응하듯 도일의 검이 속도를 높였다.
쿵.
어느덧 계단으로 완전히 몰린 벡스터가 한쪽 무릎을 꿇었고, 베로아와 유나가 그런 벡스터를 뒤에서 부축했지만 무수한 자상이 생겨난 벡스터의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죽이지는 않겠다. 그게 도련님의 명령이니.”
여전히 냉막한 표정의 도일이 다가오며 가슴 앞으로 검을 들었다.
“일단 팔 하나로 시작하지.”
뱀처럼 번들거리는 두 눈빛이 기괴하게 빛나며 벡스터의 어깨를 향해 검을 내리치려는 그 순간.
콰직!
끔찍하고 불길한 소음이 울려 퍼지며 도일의 가슴이 움푹 패였다.
“쿨럭!”
폭포수 같은 선혈이 도일의 굳게 닫힌 입을 벌리고 쏟아져 나왔고.
챙강!
검을 놓쳐 버린 도일의 두 무릎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쿵!
갑작스레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홀 안의 모두가 안색이 시퍼렇게 질리는 그때.
“내 하인에게 무슨 짓이지?”
나른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