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8
008화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고 그들의 눈에 소년과 노인의 모습이 들어섰다.
하인으로 보이는 노인을 지나쳐 모두의 시선이 소년에게로 향했을 때,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화려하게 흘러내린 백금발과 인형 같은 이목구비, 가녀린 느낌마저 드는 왜소한 몸은 사람보다는 요정처럼 느껴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탄성도 잠시.
기사들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이 표정을 굳혔고, 나머지 사람들은 얼굴에 두려운 빛을 떠올리며 최대한 시선을 마주치지 않게 얼굴을 돌렸다
표정이 없었다.
그 나이대의 소년이 가져야 할 표정이라는 것이 아렌의 얼굴에는 떠올라 있지 않았다.
즐거움, 분노, 슬픔, 경계, 실망감 ······ .
그 어떤 시기보다도 표정이 풍부해야 하는 소년의 얼굴에서 감정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으니 처음에는 미모에 감탄하다가도 그 이질감에 두려움을 느껴버린 것이다.
“커, 커허억!”
홀 안의 분위기가 한없이 가라앉으며 기묘한 압력이 모두를 누르려던 그 순간, 도일의 신음 소리가 울렸다.
“이런! 도일!”
“도일을 살펴!”
렌과 기사들이 흠칫하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리앙의 앞을 막아섬과 동시에 포션을 품에서 꺼내 도일에게 다가서며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베로아도 이때다 싶었는지 벡스터를 부축해 유나와 함께 아렌의 곁으로 다가섰고 로렌스가 벡스터를 받아들였다.
하멜을 비롯한 여관의 종업원들이 한쪽으로 물러서고 장내가 정리되려는 그 때.
“안 죽었나?”
나른하지만 무심한 목소리가 모두의 행동을 경직시켰다.
자신의 작고 하얀 손을 잠시 응시하던 아렌의 시선이 응급조치를 받고 있는 도일에게로 향했다.
홀 안의 모두가 질린 눈으로 아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가만히 도일을 응시하던 아렌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법이군.”
도일의 움푹 패인 가슴에 남아있는 마나의 잔향을 확인한 아렌이 결론을 내렸다.
“하긴 아직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다음번에는 감안해서 손을 써야겠군.”
본인의 무지와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태도야 말로 아렌을 대종사의 반열에 올려준 원동력이다.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무인의 모습이었지만 이런 아렌을 보는 모두가 창백해지는 것을 넘어서 식은땀을 흘렸다.
“ ······ 살인 예고를 저렇게 당당하게 하다니. 실로 악마 같은 심성이로구나.”
포션을 들이부으며 응급 처치를 하는데도 도일의 기색은 나아지지 않았고 거기에 이어지는 아렌의 담담한 말투가 공포로 다가온 것이다.
“······ 악마라.”
혼잣말에 가까운 렌의 말이었지만 홀 안의 모두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은 아렌도 마찬가지였다.
“무례하군요. 이분은 그라인드 백작가의 적자이신 아렌 드 그라인드 님이십니다. 예의를 갖추세요.”
정작 아렌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젖먹이부터 아렌을 보살펴온 베로아가 눈에 불똥을 튀겼다.
가녀린 여인의 외침이었지만 베로아에게는 신념에 가까운 충성심이 있었고, 그런 사람이 내뱉는 말에는 힘이 실리기 마련이다.
“메카니 공작가의 기사 렌 자이드입니다.”
베로아의 기개에 내심 감탄한 렌이 앞으로 나서며 아렌에게 슬며시 고개를 숙였지만 아렌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렌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한 대답이 아니구나.”
“예? 그게 무슨 말인지 ······.”
아렌의 나른한 목소리에 렌이 잠깐 어리둥절 하는 사이 크리앙이 앞으로 나섰다.
“놈! 본작은 메카니 공작가의 적자 크리앙 드 메카니다! 예의를 표해라!”
크리앙의 기세등등한 목소리가 아렌에게로 향했다.
* * *
표정 없는 얼굴덕분에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아렌은 기분이 나빴다.
마법이라는 힘의 편린을 보고 그것을 시험해보며 새롭게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하여 마음이 들뜬 것도 잠시뿐.
숙소로 쓰고 있는 여관에 돌아왔을 때 보인 것은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벡스터와 궁지에 몰린 것으로 보이는 베로아와 유나의 모습.
아렌은 권위적이고 오만한 성격이다.
하인이 공격받는 것은 곧 자신이 공격받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 세계의 귀족과도 흡사한 아렌은 주저하지 않고 손을 썼고, 상대가 죽지 않은 것이 뜻밖이었지만 재차 손을 쓰지는 않았다.
피를 봤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분쟁의 원인을 알아내고 마무리를 지어야 할 차례.
거기에 베로아의 충심어린 외침이 더해지니 내심 흡족한 마음이 들은 아렌은 조금 관대해져 있었다.
감히 아렌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얼빠진 기사에게 관용을 베풀 정도였지만.
크리앙의 외침에 흡족해진 기분이 깊숙이 가라앉아버렸다.
* * *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서있는 아렌을 보면서 크리앙은 쾌재를 불렀다.
근본 없는 천한 기사와는 다른 백작가의 적자인지라 자신의 위엄에 굴복했다는 느낌이 크리앙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딱 보기에도 병약한 시골의 귀족 꼬마.
자신의 하인들이 상했으니 제법 위엄을 보이는 모습이 기특하기는 했지만 귀족 사이의 음험한 암투는 잘 모르는 듯 했다.
하물며 자신은 공작가의 자제가 아닌가.
세 살 먹은 아이도 공작이 백작의 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위세를 부려 꼬마를 제압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잘 하면 ······ .’
당당한 자신의 위엄에 굴복한 꼬마를 겁박하면 사죄의 표시로 하녀들을 취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도일을 피투성이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신경 쓰였지만 어느 귀족가든지 신비한 마법기魔法器 한둘쯤은 가지고 있는 법.
‘그것도 뺏어야겠군.’
감히 메카니 공작가의 적자를 몰라보고 모욕하였으니 그것도 모자랄 것이다.
그 짧은 사이에 완벽한 계획을 짜낸 자신을 칭찬하며 크리앙은 위엄을 더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며 아렌을 노려봤다.
정작 피투성이가 된 도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은 채.
그리고 그 순간.
멍하니 서있던 렌이 몸을 날려 크리앙의 앞을 가로막았다.
* * *
렌이 메카니 공작가의 젊은 기사들 중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감각이 탁월해서였다.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렌은 마나에 대한 감각도 남달라 오러에 입문도 비교적 쉽게 한 편이었고 특히나 안 좋은 징조를 느끼는 감각은 굉장히 뛰어난 편.
그러한 부분을 잘 알고 있는 렌은 이성보다는 감을 중시하는 편이었고 덕분에 제법 많은 수의 위기를 헤쳐나 올수 있었으며 이번에도 그의 목숨을 살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콰차창!
“크헉!”
극한까지 뽑아낸 오러를 두른 일격이 너무도 쉽게 부서져 나가고 이어서 느껴지는 둔중한 충격에 렌의 몸은 마치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뒤로 날아가 버렸다.
“어억!”
물론 뒤에 있던 크리앙도 렌의 몸에 부딪쳐 볼품없이 튕겨져 나갔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니 렌은 목적을 이룬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련님을 모셔!”
거대한 공성추에 맞은 것처럼 몸 전체에 퍼진 통증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렌은 재빠르게 일어나 자세를 잡고 눈을 부릅떴다.
손.
뽀얗고 하얀, 고생이라고는 일절 해 본적 없는 것 같은 그야말로 귀족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손이 슬쩍 움직였을 뿐.
하지만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렌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고 감각은 전례 없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렌이 살아난 것도 오롯이 미지의 공격을 방어하겠다는 생각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산산조각 나버린 검을 버리고 허리춤에 메달아 놓은 예비 검을 꺼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죽이면 안 됩니다!”
자신의 한 수에서 살아난 렌을 묘한 눈으로 쳐다보던 아렌에게 벡스터의 목소리가 파고들었고 그의 시선이 충직한 기사에게로 향했다.
“왜지?”
겨우 상처를 수습한 듯 창백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주인을 향해 간언을 날리는 기사의 모습에 아렌은 조금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 그게.”
벡스터는 아렌의 물음에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다급한 마음에 외쳤지만 지난 며칠을 생각해보니 아렌은 손을 쓰는 것에 망설이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왕 손을 쓰는 상황이면 단호해야 하는 법이니 아렌의 태도는 칭찬해줘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귀족들끼리의 분쟁과 명예. 거기에 따른 역학관계 등을 설명하고 납득을 시켜야 하는데 막상 아렌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공작가의 자제를 죽이게 된다면 일이 커집니다. 가문대 가문의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차후에 도련님이 적법하게 계승하실 백작가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기사들 선에서 끝내시지요.”
베로아가 독랄한 눈빛을 띄우며 말을 받았다.
일행 중 아렌의 성향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베로아일 것이다.
권위적이고 오만하지만 자신의 것을 지킬 줄 알고 충성에 보답한다.
전형적인 고위귀족의 성향이었고 베로아는 이런 사람들을 평생 동안 모셔왔다.
그렇기에 아렌에게 적응하는 것은 베로아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지금 상황에서 아렌의 체면도 살리고 리스크도 최소화하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다만 베로아도 자신의 도련님이 모욕당한 것에는 참지 않았다.
‘감히!’
어디서 공작가의 떨거지 따위가 경애하는 도련님을 모욕한단 말인가.
되도 않는 야료를 부리며 아렌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소리쳤을 때 베로아도 눈이 돌아버렸다.
그렇기에 베로아는 수행기사들에게 분풀이하는 길을 택했다.
기사들이 흘릴 피가 도련님의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혀주기를 소망하면서.
“그렇다는구나.”
아렌이 베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 잠깐 사이에 크리앙을 둘러싼 호위 기사들이 시퍼렇게 기세를 돋우며 아렌을 노려보고 있었다.
‘괴물이다 ······.’
동료들은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아렌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친 렌은 암담한 절벽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가 크리앙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아렌의 앞에서 검을 휘두른 것도 렌 본인이니 명분도 저쪽이 쥐고 있는 셈.
크리앙은 살아 나가겠지만 렌을 포함한 호위 기사들의 운명은 벼랑 앞의 등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렌 드 그라인드 님.”
하지만 렌은 포기하지 않고 정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오늘의 일은 저희 메카니 공작가가 빚을 진 것으로 마무 ······ .”
“죽여! 죽여 버려!”
그 순간 정신을 차린 크리앙이 발악하듯 외쳤고, 렌을 제외한 세 명의 기사가 벼락처럼 뛰쳐나갔다.
* * *
유서 깊은 가문에는 그 가문의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경험들이 축적되기 마련이고, 그런 경험들이 후대로 이어질수록 가문의 힘은 강해지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아렌을 향해 달려 들어간 세 명의 기사는 공작가의 힘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었다.
내려치는 검격, 합공하는 위치, 정순한 오러, 주인의 명에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는 의지까지.
멀쩡한 두 기사의 검이 아렌의 좌우로 파고들었고, 창백한 안색의 도일의 양 손에서 빛살같은 비도가 날아들었다.
“괜찮군.”
최소한 그라인드 백작가의 2기사단 보다는 월등히 낫다고 생각하면서 아렌은 조용히 양 손을 들었다.
왼손으로 작은 원을 그리니 흡력吸力이 일어나 기사의 검들이 방향을 틀었고.
“어엇!”
그렇게 잠시 뿐이지만 중심을 잃은 기사들에게 아렌의 오른손이 뭔가를 잡는 시늉을 하며 사선으로 그어졌다.
콰드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선혈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