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9
009화
소림사에는 그 역사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무공이 있고 하나하나가 절기로 인정받지 않는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소림을 대표하는 무공을 뽑으라면 백보신권百步神拳은 무조건 포함될 것이다.
백보 밖의 적을 공격한다는 이 초월적인 권법은 소림이 무림에 나설 때마다 그 이름을 떨쳤고 강호의 절기중의 하나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소림사에는 백보신권이라는 무공이 없다.
그 유명한 소림칠십이종절예少林七十二種絶藝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장경각 전체를 뒤져도 백보신권이라는 무공은 없다.
그렇다면 백보신권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무당의 면장綿掌이 궁극에 이르면 십단금十段錦이라는 절학을 펼쳐낼 수 있듯이 소림사의 무수한 권법들이 궁극에 도달하면 백보신권에 이르는 것이다.
소림의 우직한 권법과 그 우직한 만큼의 세월을 이겨내고 권법을 대성했을 때, 소림권사의 주먹에는 백보신권이 깃든 다고 할 수 있다.
* * *
어린아이가 손장난하는 것 같은 손놀림이었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렌은 아직은 어린 소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손이 불러일으킨 결과는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콰드드득!
짐승의 발톱을 형상화한 것 같은 작은 손이 기사의 갑옷의 닿았고, 아무런 저항 없이 파고들었다.
갑옷을 파고들어간 손가락이 갑옷을 찢으며 기사의 살갗에 닿았고 거짓말처럼 몸통으로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악!”
아렌의 팔 전체를 감싸고 회전하던 외기外氣가 그 세력을 넓히기 시작했고 기사의 신체 내부를 갈가리 찢어나갔다.
폐가 산산조각 났고 위가 찢겨지며 터져 나온 위액이 장기들을 녹이기 시작했으며 간, 대장, 쓸개 등 상체에 있는 장기란 장기들을 분쇄하면서 세력을 불려나간 외기는 급기야 늑골과 척추 일부분까지 갉아내었다.
그렇게 사람 하나를 갈아버린 아렌의 손은 멈추지 않고 또 다른 기사에게로 향했다.
이미 외기를 머금은 아렌의 공격은 그 범위가 커질 대로 커진 상황.
아직은 그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은지라 형상화된 외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사람 하나를 분쇄하면서 표면에 달라붙은 잔해들이 그 흉악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피와 내장 조각, 체액이 들러붙어 번들거리는 그 모습은 거대한 짐승의 발톱.
그 공포스럽고 기괴한 모습에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는 것도 잠시.
기세를 이어 나간 용의 발톱龍爪은 자비 없이 기사의 몸을 덥쳤다.
쫘자작!
비명은 없었다.
사람 몸통만 한 짐승의 발톱이 한 순간에 상체와 골반을 찢어서 신체를 동강 내버렸으니 그대로 즉사 했을 터.
차라리 처음 공격당한 기사에 비해서 고통은 없었을 테니 오히려 자비로운 죽음이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꺼 ······ 어.”
상체가 움푹 파여 척추와 늑골 일부분만이 남아 지탱하던 기사의 몸이 척추가 부러지며 접혀버렸다.
털썩.
얼굴이 하체에 닿아버린 기괴한 모양새로 절명한 기사의 몸이 홀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짐승의 발톱이 찢고 지나가 조각조각 나눠진 기사의 시체도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텅. 텅.
도일이 날린 두 자루의 비도가 아렌의 공격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던 경涇에 막혀 바닥에 떨어졌다.
한 순간에 벌어진 참변에 모두가 정신을 놓아버렸던 그 때도 아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뻐엉!
살짝 앞으로 내밀어진 주먹에 공기가 밀려나면서 굉음이 터졌고.
“컥!”
공성추 같은 기세로 공간을 뛰어넘은擊空 공격이 그대로 도일의 몸통에 닿으며 그 힘을 해방시켰다.
푸확!
외마디 비명과 함께 도일의 몸이 산산조각 나며 그 파편을 사방으로 뿌렸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인간은 너무 놀라면 말을 하지 못한다.
지금 홀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랬다.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탓에 자기방어 기재를 발동한 뇌가 잠시 정신을 놔버린 것이다.
아렌은 앞으로 내밀었던 손을 천천히 회수하면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지닌 지식과 정신적인 경지는 충분하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육신으로 구현해낸 공격이었기에 마무리殘心가 중요했고 신중하게 기세를 갈무리했다.
* * *
무림에 있을 적 아렌은 소림사의 백보신권을 꽤나 심도 있게 연구한 적이 있었다.
넓게 보면 격공장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백보신권은 그 이상의 오묘한 무엇인가가 있었고, 종사의 경지에 이르러 무학을 연구하는 것이 취미가 된 아렌에게는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주제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하나의 권법이 궁극에 이른 결과물이 백보신권이라면 권법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수긍할 수 있겠지만, 백보신권은 소림권학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
이것을 소림 무학의 특징으로 봐야하는 건지, 불문 무공의 결과로 봐야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궁구하는 것이 꽤나 지적인 유희로 다가왔던 것이다.
아렌으로서도 꽤나 시간과 심력을 기울인 주제였고 결국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소림 무학 전반에 흐르는 문파의 특징과 소림 특유의 우직한 수련이 만들어내는 외경外勁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것이 백보신권이라고 정의 할 수 있었던 것.
그러한 결과물과 아렌 자신의 심득과 지식이 더해져서 하나의 무공을 창안하였으니 그 이름을 허공수虛空修라고 명명했다.
허공을 수련한다는 광오한 이름을 가진 이 무공은 무림에 존재하는 격공 무학의 총화였으며 앉은 자리에서 천리 밖의 적을 참살한다千里煞는 많이 과장되었지만 결코 과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별호를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 *
호흡을 가다듬은 아렌이 가만히 손을 내려다 보았다.
허공수는 아렌이 가진 무학중에서도 10대 절학에 포함되는 고절한 무공.
지금의 여린 몸과 공력으로는 펼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무공이지만 광장에서 목격한 마법을 실제로 행함으로서 영감을 얻었고 그 결과 허공수를 겉핥기나마 흉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방금 전 아렌이 펼쳐 낸 세 가지 수법 하나하나가 범상한 것이 없었다.
처음 기사들의 공격을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한 것은 이화접목梨花椄木과 차력미기借力未掎의 궁극에 다다른 화경化勁이었고.
사선으로 그어 낸 조법은 용조와 허공수의 요결 일부를 결합한 외경外勁의 극치였으며.
허공수야 더 이상 말로 설명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절세무학이었으니.
만약 이 자리에 경지에 이른 무인이나 마법사가 있었다면 대경실색한 표정으로 아렌을 추앙하며 가르침을 청했을 것이다.
어쨌든 아렌은 만족했다.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틀을 깨고 한발자국 나아간 것이니 어찌 기껍지 않을까.
“좋군.”
기꺼운 마음으로 나지막하게 흘려낸 한 마디가 홀 안을 다시금 현실 세계로 돌려놓았다.
“우웨웨엑!”
“히. 히이익.”
“꺄아아아악!”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끔찍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 두 구와 아예 그 형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나서 사방으로 펼쳐진 시체 한 구.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홀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들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우우웁!”
의외로 제일 먼저 제 정신을 찾은 것은 베로아.
아렌이 앞으로 나서는 순간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을 직감하고 유나를 품에 안아 시선을 돌린 것을 정말 잘한 일이라고 자평하며 입가에 묻은 토사물을 손으로 훔쳐내었다.
“눈을 뜨지 말거라.”
“······ 예. 예!”
하지만 눈을 감은 탓에 더욱 생생하게 소리를 들은 유나는 경기를 일으키며 떨고 있었고 실금을 했는지 축축해진 아랫도리가 베로아의 옷에까지 닿았지만 베로아는 유나를 타박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인 것이다.
정작 베로아도 아랫도리에 힘을 꽉 주지 않았다면 실금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 말 해 무엇 할까.
한쪽 구석에 유나를 내려놓고 몸가짐을 바로 하는 베로아를 따라서 벡스터와 로렌드가 창백한 표정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다잡고 깨물려진 입술에서 피를 흘리며 벡스터가 아렌의 앞으로 섰다.
기사는 주인의 방패가 되고 검이 되어 나아가야 하는 존재.
실로 압도적인 무력과 공포를 각인시킨 아렌때문에 상황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는 끝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자신과 같은 모양세로 벌벌 떨면서 크리앙의 앞을 지키고 있는 렌을 보며 벡스터는 다시금 입술을 깨물고 검을 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베로아의 눈짓에 구석에 있는 유나를 감싸 위층으로 올라가는 로렌드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러를 일으켜 심신을 정비한 벡스터가 매서운 눈빛으로 정면을 노려보았고 몸가짐을 마친 베로아가 아렌의 곁에 조용히 다가섰다.
“실례하겠습니다.”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피가 묻은 아렌의 손을 세심하게 닦았다.
떨리는 손을 억지로 다잡고 섬세한 도자기를 다루는 듯 한 모습에 아렌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충직한 하인과 아직은 모자라지만 기개가 있는 기사까지.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며 지은, 아렌으로서는 보기 드문 감정표현이었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냉혹한 살인자의 미소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아아악!”
그리고 그 미소가 결정타가 되어서 크리앙을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도련님!”
눈이 뒤집히고 입에서는 거품을 물며 발작하는 크리앙의 모습에 렌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심 렌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법 실전을 겪고 담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렌으로서도 처음 마주한 공포.
도저히 눈앞의 어린 소년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거죽을 뒤집어쓴 이형異形의 무언가.
‘······ 설마 드래곤DRAGON인가.’
이제는 그 개체수를 찾기 힘들어 전설로만 회자되는 드래곤이지만 과거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유희를 즐기는 일도 자주 있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해 낸 렌이 침을 꿀꺽 삼켰다.
‘······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상대가 드래곤인지 어떤 알 수 없는 괴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자리에서 크리앙을 데리고 살아나가는 것.
무수히 많은 생각이 렌의 뇌리를 스치고 과도한 긴장으로 검을 잡은 손등에 시퍼런 핏줄이 돋던 그 순간.
“베로아.”
“······ 예. 도련님.”
아렌의 나른한 목소리가 조용히 퍼져나갔고 그 순간 공포가 홀 안을 짓눌렀다.
다시금 눈물을 흘리며 떨기 시작하는 하멜과 종업원들은 물론이고 이제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렌에게 매달려있는 크리앙까지.
벡스터와 베로아도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지만 억지로 몸에 힘을 주며 버텼다.
“저자는 죽이지 말라고 해서 가만히 놔뒀다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공포는 가증되었고 베로아는 입술을 깨물며 주인에게 간언을 올렸다.
“도련님의 명예를 모욕한 것에 대한 배상을 받아야 합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는 베로아를 보면서 아렌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